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78
78화.
“하아, 하아.”
“호흡이 안정되고 있습니다. 출혈도 멎었어요.”
다이니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안심시켜 주는 한나.
나 역시 기지개를 켜며 이제야 오늘 하루가 제대로 끝나감을 느낀다.
“독도 약재에 쓰인다고 들은 적 있습니다. 설마 마인화로 사람을 살릴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신기하다면서 팔짱을 낀 채로 다이니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톰.
양옆에 서있던 엘빈과 켈빈도 맞다면서 덧붙인다.
살리긴 했지만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마몬교에게 휘둘려 왔던 그녀니까.
‘힘을 다시 수거하면 또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상어수인 샤카렌도 그랬고, 지금도 기운을 나에게 빼앗긴 신도들은 비쩍 마른 미라처럼 변해버렸다.
이미 몸이 받아들인 마몬의 기운을 다시 뺏어온다는 건 대상자의 몸에 꽤나 큰 무리를 주는 듯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당장은 마몬의 기운을 몸에 담은 채로 살아야 하는 다이니였다.
“그래도 살아남은 게 중요한 거지 않습니까, 단장.”
“맞습니다! 그래야 맛있는 것도 먹고, 배도 부르죠!”
어색한 위로를 해오는 넬슨과 도로시. 일단은 다이니를 살렸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그것보다 레비아탄교는 어떻게 됐냐?”
갑자기 내가 이곳으로 소환되었던지라 그곳의 상황이 정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었다.
넬슨이 바로 웃으며 답한다.
“그 뒤에 도시의 시장이 왔습니다. 경비대장 쪽은 아무래도 체포가 될 것 같고 저희는 은빛사자 기사단인 척 속였습니다.”
“우리가 은빛사자인데 속이긴 뭘 속여!”
어이가 없다며 바로 일갈하는 톰.
넬슨의 말은 이 시대의 은빛사자 기사단인 척했다는 말이었고, 톰도 이해는 하지만 받아들이긴 힘든 듯했다.
특히나 톰은 유일하게 나랑 같이 현 시대의 은빛사자 기사단을 직접 봤던 단원이니까.
“그 머저리들을 은빛사자라고 부르지 마라. 우리가 진짜다! 속이지 않았어!”
“하아, 일단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요.”
“현실적으로 좀 봅시다.”
“산에서 살다 와서 그런가.”
“됐고, 일단 다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톰을 진정시키는 넬슨과 다른 단원들.
원래 톰의 대항마는 한나인데 지금 다이니를 돌보고 있어서인지 톰을 막을 사람이 없다.
그 순간.
“여기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지하 입구다! 돌입! 돌입!”
“어?”
천장에 뚫린 구멍 너머에서 들려오는 굵직한 목소리.
묵직한 발걸음이 일사불란하게 쿵쿵 소리를 내며 내려오기 시작한다.
“단장, 역소환을……!”
이미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단원들이 아니라 제단 중앙에 꽂아둔 대사자깃발이었다.
다른 애들은 다 보여도 괜찮지만 이것만큼은 보이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현 은빛사자 쪽에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까.
푸른 마나에 휩싸여 깃발이 입자처럼 사라지는 순간, 지하로 들이닥친 중갑의 기사들.
이미 보폭과 자세, 또한 돌입하면서 보여주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진형까지.
그들이 일류기사라는 걸 대놓고 전신으로 뽐내고 있었다.
“아.”
치켜 올리고 있는 거대한 방패에 새겨진 축복받은 검의 문양.
“신성 기사단?”
“꼼짝 마! 신성기사단 부단장 퓰리안이다!”
지하로 우르르 쏟아져 들어온 기사들은 당장이라도 우리를 찔러 죽이겠다는 투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굳건하게 자리 잡은 투지들의 일면에서는 피로감이 엿보였다.
‘마몬교를 쫓다가 여기까지 온 건가.’
타이밍 한번 참 엿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으나.
스스로를 퓰리안이라 소개한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이미 죽어있는 수많은 광신도들과 그 제단의 중심에 있는 은빛사자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
상황 파악을 하려 했는지 입을 꾹 다문 채로 생각해 보지만 결국 포기했는지 퓰리안이 다시 입을 연다.
“너희는 뭐지? 우리는 지금 마몬을 섬기는 광신도들을 추적해 왔다만…… 아무래도 상황이 이미 끝난 것 같군.”
이자벨라의 시체까지 확인한 퓰리안이 흠칫 놀라며 이쪽을 노려본다.
“그쪽의 책임자는 누구지?”
그 말에 기사단원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본다.
그나마 한나만 아닌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단원들의 한심한 반응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하여간 검만 휘두를 줄 아는 멍청이들.
“음?”
가장 어려 보이는 나에게로 시선이 쏠리자 퓰리안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뿐만 아니라 다른 신성 기사단원들조차 당황하며 내 쪽을 바라봤다.
결국 지하에 있는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상황.
나는 이를 으득 물며 외쳤다.
“여기 아저씨랑 누나들이 납치된 저희를 구해주셨어요!”
“풋.”
“큭큭.”
“후우! 후우!”
천진난만하면서도 나름의 울먹임까지 섞인 나의 외침은 실로 극단의 배우와 같은 울림을 담고 있었지만.
옆에서 웃음을 참는 단원들 쪽으로 반쯤 본능적으로 눈이 돌아갔다.
‘넬슨, 도로시, 켈빈.’
나중에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놈들을 노려보자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고는 사색이 되어선 자세를 잡는 세 사람.
그래도 이미 늦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벌써 저것들에게 어떤 얼차려를 줄지 하나둘 코스를 짜고 있었다.
“크흠.”
내 말에 퓰리안은 헛기침하며 천천히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다른 기사단원들 역시 투기를 거두며 천천히 진형을 푼다.
증인인 나도 있고, 당장에 눈앞에 자신들이 쫓고 있던 마몬의 신자들이 전부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으니 믿을 수밖에.
“일단은 알겠습니다. 상황 파악을 위해서라도 바깥으로 나가시죠.”
“이쪽에 부상자도 있습니다.”
한나가 다이니를 안은 채로 말하자 퓰리안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희 쪽에 마법사들도 있습니다.”
기사단 내부에 마법사를 두는 경우는 300년 전에도 흔했으니 당연하겠지.
우리는 그들의 안내에 따라 일단 밖으로 나섰다.
“단장, 이거 어떻게 합니까?”
슬쩍 내게 다가와서는 묻는 톰.
주변에서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일단 호의적으로 용병단인 척해. 가능하면 한나가 말하는 게 좋겠지만…… 그건 좀 위험할 수도 있어.”
은빛사자의 갑옷과 양발이 의족인 여궁수?
역사적으로 봐도 한나처럼 독특한 외형을 지닌 인물은 없다.
아무리 300년 전의 인물이라고 해도 신성 기사단도 자연스럽게 한나를 떠올릴 수밖에 없고.
그랬다가는 다른 단원들의 특징들도 하나둘 찾아내게 된다.
“네가 용병단장인 척하고 일단 잘 풀어봐. 대신 수틀리면 그냥 다 무시하고 도망칠 준비하고.”
적당히 추격을 뿌리치면 역소환 해버리면 되니까 사실상 완전범죄가 된다.
범죄랄 것도 없지만.
어쨌든 300년 전의 인물들이 현현해서 살아 돌아다닌다는 걸 아는 사람이 많아 봤자 좋을 건 없으니까.
그 대화를 끝으로 지하를 나서기 전.
나도 모르게 고개를 틀어 제단을 바라봤다.
늘어진 시신들은 싸늘했으며, 흥분이 가라앉자 피의 잔향이 이제야 코끝을 스치며 비릿하게 밀려왔다.
악마를 소환하려 했던 자들의 최후로는 더없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레비아탄교에서도 이미 한번 소환하려고 했었다고 말했지.’
경비대장이 살려달라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던 와중 같이 딸려 들어온 정보.
레비아탄교에서는 이미 예전에 레비아탄을 소환하기 위한 의식을 치렀으나, 당시 참여했던 모두가 죽었다.
아마 그 광경도 딱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만약 그렇다면.
그들을 죽인 ‘뭔가’가 이 세상에 이미 현현해 있다는 뜻이 아닐까?
‘뭐, 과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당시의 상황이 어땠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환에 필요한 뭔가가 잘못돼서 다 같이 마나에 휩쓸려 죽었거나, 아니면 다른 마수를 소환해서 참상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
괜히 마지막에 와서 찝찝해진 마음을 추스르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그러니까 용병단이라고요?”
외부로 나와, 브랜드 저택을 배경으로 한 채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은빛 사자 기사단과 신성 기사단.
서로의 단원들을 뒤에 둔 채로 퓰리안과 톰이 서로 대치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왜인지 흐름을 타서는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바라보고 있다.
참고로 나와 다이니는 신성기사단 쪽에 있었다.
아직 다이니가 기절한 상태이지만 신성기사단 소속 마법사가 휴식만 좀 취하면 문제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예에, 은빛사자 용병단이오.”
나름대로 컨셉이라도 잡았는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턱을 치켜 올리는 톰.
그 모습이 퓰리안에겐 거슬렸는지 손을 움찔거리며 물어온다.
“어쩌다 마몬교랑 싸우게 된 겁니까.”
“이 근처를 지나가다 우연히 여자애의 비명을 들었고 선의를 가지고 도와주러 왔지.”
우연과 선의.
꽤나 적절한 단어선택이긴 했으나 사실 설득력이 높진 않았다.
“흐음.”
미묘한 표정을 짓던 퓰리안은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우리가 마몬교를 토벌한 건 사실이니까.
“마몬교를 토벌해 주신 건 왕국을 대신하여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 갑옷. 과거 은빛사자 기사단의 것과 동일하군요.”
“크흠.”
괜히 기사 아니랄까 봐 300년 전 우리의 갑옷도 알고 있는 건가.
“죄송하지만 그 갑옷을 입고 다니는 건 왕국 명예를 훼손하는 범법행위입니다.”
“엥?”
저도 모르게 내뱉은 톰의 탄성.
뒤에서 불량배처럼 신성 기사단을 노려보던 다른 단원들도, 심지어는 나도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범법행위라고? 이 갑옷을 입는 게?”
“300년 전 은빛 사자는 왕국 기사의 상징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 상징을 함부로 더럽히시면 안 됩니다.”
“더, 더럽……!”
“게다가 명실상부 은빛사자의 계보를 잇는 건 저희 신성기사단입니다. 라인 레이먼드 님의 후손이신 로만 레이먼드 님께서 기사단장으로 있으시니까요.”
“하.”
모멸감이 섞인 탄성을 내뱉은 톰.
나는 다급하게 한나에게 눈짓하며 그를 막으라고 신호했지만 이미 늦었다.
“가짜 놈들이, 진짜인 양 행세하지 마라.”
톰이 명백하게 적의를 내뱉으며 경고한다.
“은빛사자 기사단이 아직 이 땅에 버젓이 존재하거늘 너희가 뭔데 그 명맥을 유지 중이라 하는가.”
“……지금 그 발언은 신성 기사단을 향한 모욕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모욕은 너희가 했지.”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당연하게도 톰의 투기에 퓰리안이 밀리고 있었으나, 그는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당당하니 어깨를 폈다.
하지만 먼저 고개를 숙인 건 의외로 퓰리안이었다.
“알겠습니다.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마몬교를 처리하신 공적도 있으니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말은 물러나는 척했지만 자신의 의견은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톰의 눈썹이 꿈틀거렸으나 나와 시선을 맞추더니 바로 헛기침하며 민망한 듯 눈을 돌린다.
“크, 크흠. 나도 잠깐 흥분했군.”
무겁게 짓누르던 투기가 흩날리듯 사라진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던 기세가 조금은 누그러진다.
“그럼 일단 용병패를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어?”
하지만 위기는 바로 찾아왔다.
“그리고 저 뒤에 여성분이 쥐고 있는 건 마몬의 성물이라 불리는 창입니다. 저희 쪽으로 인계해 주셔야겠습니다.”
내 명령으로 아르가스를 챙긴 도로시를 가리키며 말하는 퓰리안.
도로시는 아르가스를 꽉 껴안으며 울상으로 내 쪽을 휙 바라봤다.
도로시뿐만이 아니었다.
“어, 그러니까. 이 안에 있었을 텐데.”
품을 뒤적이는 척하면서도 조급하게 나를 바라보며 해답을 구하는 톰.
광신도들을 상대할 때도 보여주지 않았던 다급한 반응에.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이마를 쓸어 넘기고.
천천히 고개를 푹 숙였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내 눈으로 보기가 힘들었다.
휙.
사인을 주는 손짓 한 번.
그와 동시에.
뻐어억!
톰의 주먹이 퓰리안의 얼굴에 그대로 때려 박히는 호쾌한 울림이 퍼져왔다.
“뛰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도망치기 시작한 기사들의 뒷모습을, 나는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