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79
79화.
“하암.”
하품과 함께 피로가 내려앉은 눈을 억지로 비비며 잠에서 깬다.
덜컹거리던 마차는 어느새 정차한 상태였고 밖에는 익숙한 아카데미의 정경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까지 방학이었기에 한적하던 아카데미는 어느새 북적하니 소란스러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개학을 해버렸으니까.
신성 기사단에게 조사를 받는답시고 며칠이고 붙잡혀 있었다 보니 나이트 아카데미가 개학을 해버렸다.
뭐, 아카데미 측에 미리 연락을 해뒀기 때문에 출석 같은 부분은 문제없긴 하다.
“으음.”
어느새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다이니.
잠든 동안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기대게 된 것 같았다.
“일어나. 다 왔다.”
흔들며 깨우자 다이니는 천천히 눈을 뜨며 주변을 둘러본다.
“으음?”
“다 왔으니까 가자고.”
“아, 으응.”
다이니는 아직 잠이 다 깨지 않았는지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며 하품한다.
우리 두 사람에겐 짐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한 명은 납치된 거였고 한 명은 강제로 소환된 거니까.
마차에서 내려 마부에게 간단히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그대로 교무실로 가서 우리가 복귀했다는 걸 알렸다.
어차피 오후에 도착했으니 오늘은 강의를 듣지 말고 쉬라는 말에 나는 잘됐다 생각하며 다이니를 불러들였다.
“왜? 나 아직 졸린데.”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하품하는 다이니.
미안하지만 지금이 딱 좋은 타이밍이다.
강의 중인 시간이라 마침 한산한 대련장으로 다이니를 데려간다.
그러고 보니 방학 중에는 마음대로 썼지만 학기 중에는 또 2, 3학년만 대련장 쓸 수 있다면서 으름장을 놓겠구나 싶었다.
“검 들어 봐.”
“대련하자고……?”
대놓고 싫다는 표정을 짓는 다이니.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나랑 싸우기 싫다는 뜻이 아니었다.
“너, 지금 힘 조절이 제대로 안 되잖아. 그거 조정 좀 해야지.”
“…….”
입술을 삐죽 내민 다이니.
하지만 신성 기사단에서 조사를 받을 때부터 혹시라도 힘이 넘쳐 흘러나올까 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다 보고 있었다.
거치대에 있는 목검을 두 개 가져온다.
하나를 다이니에게 건네주자 그녀는 심호흡하며 받아 들었는데.
그 순간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쏟아져 나옴과 동시에, 눈동자가 붉게 물들며….
콰득!
“…….”
“…….”
목검이 속절없이 그대로 부러져 버렸다.
다이니는 입을 벌린 채로 이거 어떻게 하냐는 시선을 보내왔다.
“……2, 3학년이 쓰다가 그랬던 걸로 해두자.”
어차피 대련장은 1학년들이 못 들어오니까.
나는 손잡이가 완전히 부러진 목검을 다시 거치대에 걸어두고는 함부로 쓰지 말라고 주의팻말을 걸어둔 철검 쪽으로 가져왔다.
진검 수준의 묵직함이지만 살상력은 없다.
사실상 철로 된 몽둥이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후우.”
철검을 받아 든 다이니는 안심하며 숨을 고른다.
여전히 마인화의 조정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목검처럼 부러지거나 하진 않았다.
“네가 아직 제대로 힘을 써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이리저리 튀는 거야. 한번 마음껏 써보면 조정하는 게 어렵진 않을 거야.”
“근데 내가 힘 조절을 못 하면 다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살살해 줘.”
다이니도 자신의 질문이 잘못됐다는 걸 인지하고는 삐죽이며 자세를 잡았다.
그렇게 한참을 우리는 대련을 이어갔다.
정확히는 다이니가 기운이 빠져서 헥헥거리며 바닥에 늘어질 정도로.
“헤엑! 헤엑!”
가쁜 숨소리를 내뱉는 다이니의 눈동자가 다시금 갈색으로 돌아온다.
‘대충 샤카렌 수준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검술 실력이나 경험 면에서는 당연히 부족하지만 단순히 마인화를 통한 신체강화는 샤카렌을 앞선다.
이 정도면 비등한 수준의 전투도 충분히 가능하겠지.
본판이 갖춰졌으니 검술이나 경험만 키우면 훨씬 성장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었다.
“대충 마인화 조절은 알 것 같지?”
“하악! 어, 어!”
꽤나 힘든지 바닥에 누운 채로 손을 휘적거리며 답해온다.
“아카데미에 있는 동안은 절대로 쓰면 안 돼.”
“……절대로?”
휙 고개를 돌려서 나를 올려다보는 다이니.
“성적 정도는 조금 높여도 되는 거 아닐까?”
“…….”
“치, 알았어.”
아쉬워하면서도 받아들이는 다이니.
그나마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위로를 해주자면.
“넌 성적이 높을 필요 없어.”
“왜?”
“은빛사자 기사단 들어갈 거니까.”
현대의 은빛사자 기사단이 정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활짝 열린 문이라 다행이다.
다이니의 실력이 어떻든 간에 일단 들어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 말이 전혀 위로처럼 들리지 않았는지 바로 벌떡 앉으며 말한다.
“거기를 가자고? 아니, 꼭……?”
“당연한 거 아니야? 은빛기사단 첫 확정멤버가 된 걸 축하해.”
“어쩌다 이런 놈을 섬기게 돼서는.”
다이니는 목에 걸고 있는 로자리오를 한번 휙 보고는 그대로 일어났다.
섬기게 됐다는 말이 좀 거슬려서 몇 번이고 주의를 주긴 했지만, 다이니는 굳이 말을 고치지 않았다.
“조금 이르지만 저녁이라도 먹을까?”
강의가 끝났는지 훈련장 외부가 시끄럽다.
2, 3학년이 들어오면 1학년인 우리가 쓰고 있다고 괜히 투덜거릴 게 뻔하니 밖으로 나선다.
“식비 지원되지?”
밖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뻔뻔하게 물어오는 다이니.
이번에 가문이 습격당하면서 재정적인 부분에 타격이 심대한 걸 알고 있으니 이해는 한다.
“그래, 마음대로 먹어라.”
어차피 황색 마탑의 지팡이들을 팔고 남은 돈이 아직 묵직하니 주머니에 차 있다.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은지라 다이니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는데….
“우움?”
“어머.”
그곳에선 상당히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뭘 그렇게 열심히 입안으로 욱여넣고 있는지 볼이 빵빵하게 부푼 채로 포크를 물고 있는 샬롯.
단정한 교복차림에, 붉은 머리카락을 곱게 땋아서 단아함을 연출하고 있는….
“마리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마리아는 입가를 가리며 호호 웃어댄다.
“오랜만이에요, 이안.”
“……어우, 나 방금 닭살 돋았어.”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말하자 마리아는 다시 한번 살포시 웃어 보인다.
“왜 그러세요.”
“얘, 어디 얻어맞았어?”
샬롯에게 묻자, 꼭꼭 음식을 씹으며 삼킨 그녀가 어중간한 대답을 해온다.
“몰라. 방학 끝나고 와서부터 계속 이렇던데. 나는 지금이 좋아.”
해맑게 웃으면서 답하는 샬롯.
아무래도 이미 변화된 마리아에게 적응이 끝난 듯 보였다.
“예전에는 너무 폭력적이었잖아. 툭하면 대련하자면서 때리고. 지금은 대련은커녕 목검 한번 잡은 적 없어.”
나이트 아카데미의 생도면서 목검을 잡은 적 없다는 게 정말 좋은 걸까?
웃으면서 말하는 샬롯을 보며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너, 근데 살 쪘냐?”
마리아도 거슬리지만 샬롯의 포동포동해진 볼도 눈에 밟혔다.
방금까지는 뭘 먹고 있어서 그렇구나 했는데 지금 토실토실하다.
“맞네, 살 쪘네.”
“아, 아니거든!”
다이니가 옆에서 동의하자 바로 버럭하는 샬롯.
“아카데미 식당에서는 매일 싼 것만 먹다가 가문으로 돌아가니까 맛있는 게 많아서 조금 폭식을 하긴 했지만 안 쪘어!”
“쪘어요.”
옆에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며 자연스럽게 덧붙이는 마리아.
무슨 수녀님이라도 지망하는 모습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눈썹은 꿈틀거리고 있었고, 가지런히 모은 손도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
방금 샬롯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꽤나 거슬렸던 모양이다.
“내가 그렇게 훈련 게을리 하지 말라고 했는데…….”
“후, 훈련은 계속했거든! 먹는 양이 많아져서 그런 거야아…….”
뒷말이 점차 작아지는 샬롯을 보며 체형을 원상복구 시킬 계획을 대강 구상한다.
“다이어트 해서 일주일 안으로 원래 체형으로 돌린다고 치고.”
“이, 일주일? 저, 저기 이안? 나 사실 꽤 많이 쪄서 일주일은 좀…….”
울상이 된 샬롯이 뭔가 말하려 들었지만 나는 그대로 무시하며 마리아 쪽으로 다가간다.
“넌 왜 그러냐.”
“무슨 말씀이신가요?”
“아, 진짜! 닭살 돋으니까 그만하라고!”
얘가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러는지 전혀 모르겠다.
아마 주변에서도 처음엔 어색했겠지만, 변화된 마리아가 더 좋으니 샬롯처럼 그냥 놔뒀겠지.
하지만 내 입장은 조금 다르다.
기사단에 들어와 줘야 할 인재가 뜬금없이 이미지 변신을 하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예비단원이긴 해도 일단 1학년 중에는 마리아가 최우선으로 데려가야 할 인재니까.
“말해 봐, 무슨 일인지.”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진짜 이럴 거야?”
“…….”
내가 옆에서 꼬치꼬치 캐물음에도 마리아는 조금도 물러나지 않는다.
“꼬붕까진 아닌데.”
투덜거리면서 내 몫의 음식까지 주문해서 가져온 다이니.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마리아의 옆에서 계속 그녀를 건드려 본다.
“왜 그러냐고.”
“…….”
“무슨 이유가 있으니까 이 난리를 떨고 있을 거 아니야.”
“…….”
“너 진짜 더럽게 안 어울리는 거 알아?”
결국 마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뒤틀린 미소와 함께 말했다.
“뒤지기 싫으면 그냥 진지 처드세요.”
“……이게 반존대인가 그거냐?”
어이가 없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마리아는 방금 그 한마디 이후 다시금 깨작깨작 식사를 이어갔다.
호탕하게 입에 쑤셔 넣던 예전과는 다르게 포크와 나이프를 쓰며 조금씩 잘라 먹는 모습.
결국 나는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밥 다 먹고 대련 한번 할까?”
“좋지……!”
무슨 뼈다귀 앞에 둔 개가 침을 흘려대듯, 식탁을 내리치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던 마리아였으나.
뭔가 통증이 일었는지 바로 입술을 으득 깨물며 심호흡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답했다.
“……않네요. 저는 대련 안 합니다.”
“와, 저 정도면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거 아니야?”
잘 자른 고기를 입에 넣으며 마리아의 반응에 신기하다며 중얼거리는 다이니.
참고로 샬롯은 앞으로 찾아올 훈련에 이미 기가 죽은 듯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있었다.
마리아가 나와의 대련까지 거부할 정도라니.
‘가문에 가기 싫어했던 거랑 연관되어 있는 건가?’
정말 기를 쓰고 가기 싫어하던 마리아의 모습이 떠오르면서도 다이니의 말이 이상하게 걸렸다.
“마법?”
그래, 이 정도의 변화가 마리아에게 있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강제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을 게 뻔했다.
심지어 여기가 레이로즈 가문이 아닌 나이트 아카데미인데도 말이다.
“잠깐만.”
마리아의 어깨에 손을 얹어본다.
나도 이제 마법사라는 칭호를 나름 당당하게 내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으니까.
마법사가 작정하고 숨겨놓은 게 아니라면 몸에 걸린 마법 정도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마리아의 몸 안에서 감지된 기묘한 마법.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속박 마법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전혀 공부하지 않았던 방식의 마법이었다.
“진짜 마법이 걸려 있었구나?”
어이가 없어서 마리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
“나는 갈게.”
그때 축 늘어져서는 식판을 들고 일어선 샬롯.
그녀에겐 마리아의 변화란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였다.
“잠깐만, 가방에 아무 책이나 하나 있어?”
“응? 이번 강의가 고전문학이라 사전 챙겨두긴 했는데.”
샬롯이 등에 매고 있는 노란색 가방에서 나온 두꺼운 사전이 쿵 소리를 내며 식탁에 올라온다.
나는 슬며시 사전을 마리아에게 내민다.
“마음에 드는 단어 골라 봐.”
말로 하지 못한다고 해도 의사를 전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 있다.
마리아는 기다렸다는 듯 사전을 펼치더니 손가락을 글자 하나에 가져다댄다.
– 시.
“시?”
우리 세 사람은 마리아의 다음 단어 선정을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가락을 눈으로 쫓았고.
몇 번인가 페이지를 넘기던 마리아의 손가락이 다시금 단어 하나를 짚었다.
–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