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80
80화.
마리아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변신시켰다는 건 잘 알겠다.
말괄량이를 넘어서 광인이 되어가는 마리아.
아마 레이로즈 가문에서 그녀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듯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저런 방식은 좀 거친 것 같은데.’
마리아가 단순히 말로 한다고 들을 위인이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안다.
그렇다고 마법을 통해서 강제적으로 통제하려는 건 학대이지 않은가.
마리아 본인이 워낙 터프하다 보니 단순히 마법이 짜증 난다 수준의 감성 정도인 듯했으나,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였다면 트라우마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중에 메이지 아카데미의 알프레도 교수에게 부탁해서 마리아의 안에 있는 마법을 해제하기로 하고 우선 기숙사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보는 복도.
돌아온 학생들로 인해 기숙사는 간만에 북적거리는 분위기였다.
“요즘 벨레스 녀석, 수업에 열심히 참여한다는 거 같던데?”
“벨레스?”
“그 있잖아. 반편성 배치고사 때 도끼 쓰던….”
학생들을 지나쳐 내 방으로 향한다.
“이안 아이넬, 소식은 들었다.”
“오랜만.”
중간에 베런과도 만나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방으로 들어간다.
분명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파릇파릇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방에 들어간다는 기분 자체가 신선했지만….
쿵.
“꾸엑.”
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고 중간에 뭔가를 들이박았다.
슬쩍 고개를 안으로 들이밀며 확인하자 그곳에는 도로시가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쓰러져 있었다.
“……너 뭐 하냐.”
“배고파서 죽을 것 같습니다.”
“…….”
다른 기사단원들은 신성 기사단과의 거리가 얼추 벌어진 이후 전부 역소환 해버렸지만 도로시만큼은 아니었다.
도로시를 역소환하면 그녀가 챙긴 아르가스는 그대로 버려지지 않는가.
그렇기에 내 방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도로시를 역소환하면 안 되었다.
“아르가스는?”
“저기요.”
문을 밀어 그대로 도로시의 머리를 치운 나는 안으로 들어가 아르가스를 확인한다.
당장이라도 숙주를 찾아 잡아먹겠다던 기세는 사라지고, 마몬의 기운에 완벽하게 제압당해 얌전히 벽에 기대어 있다.
“잘했어, 고생했다.”
“도망치는 건 크게 어렵진 않았습니다. 군마를 타고 쫓아온 덕분에 오히려 산을 타서 따돌리기가 훨씬 수월했죠.”
“…….”
“근데 배가 너무 고파서 쓰러질 것 같습니다.”
“이미 쓰러져 있어.”
“어? 그렇군요.”
정신이 반쯤 나간 것처럼 중얼거리는 도로시.
진짜로 뭐 먹을 거라도 줘야 하나 싶다가도.
“아니, 소환수니까 굳이 뭐 먹지 않아도 상관없잖아. 따로 허기를 느끼지도 않을 텐데?”
“저는 배고픈데요.”
정신적인 질환의 일종으로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바닥을 기어 다니기 시작한 도로시에게 손을 뻗는다.
“너, 내가 신성기사단 앞에서 아이인 척 연기하는 거 보고 웃더라.”
“……그땐 지하에서 먹은 먼지 때문에 재채기가!”
뭐라 말하려던 도로시였으나 그대로 역소환 당했고 이제야 방 안이 좀 조용해졌다.
천천히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숨을 길게 내쉬며 아르가스 쪽으로 손을 뻗었다.
착 감겨 들어오는 감각이 아르가스가 나를 주인으로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다는 걸 알려온다.
“잘됐다고 해야 할지.”
마침 검을 잃었는데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수준의 무기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점점 불안해지는 마음도 한 편에 존재했다.
호우만의 영약을 먹었을 당시, 내 안에서 봤던 거대한 검은 괴물.
마몬의 무기인 아르가스가 나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주인으로 인정한 것.
마지막으로 마몬을 소환하기 위한 마법진으로 내가 소환된 것.
모든 정황 증거가 내 안에 마몬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려오고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가능하면 마몬의 힘을 사용하는 건 자제해야 했다.
특히나 아르가스를 휘두르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였다.
‘지금 당장은 아무렇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 상황이 변할지 모르니까.’
처음에는 나를 억제하던 마몬의 힘.
이를 활용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점점 더 사용하기 편해지고, 노력에 비해 극도로 좋은 효율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그것에 의존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스스로에게 되뇐다.
‘힐다의 계획으로 내가 대악마들을 막기 위해서 다시 이 세상에 온 것이라면.’
그렇다면 대악마의 힘을 가지고 그들과 대적해도 괜찮은 걸까?
전쟁 도중에 적이 선물한 군량을 먹고 있는 기분이다.
여기에 어떤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하지만 기사단원들이 이와 관련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크게 거부감을 느끼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일단 뭐가 됐든 내 본연의 힘을 늘리면 되는 거다.”
레비아탄교의 렉터는 큰 문제없었지만, 아르가스와 하나가 되었던 이자벨라 같은 경우는 마몬의 기운이 없었다면 조금 까다로울 수도 있었다.
“뭐, 결국 당장에는 내 힘이긴 하니까.”
대사자깃발과 아르가스를 손에 넣었고, 보조마법의 성취와 더불어 마몬의 힘도 상당량을 흡수했다.
당장 내가 얻은 것뿐만 아니라, 대목적이라 부를 수 있는 대악마의 저지.
마몬교와 레비아탄교를 완벽하게 무너뜨렸으니 사실상 당장에는 큰 위협은 없다고 생각해도 되겠지만.
‘고작 이 정도 가지고 나를 불렀을 것 같지는 않아.’
사실 300년 전에 비하면 가볍다고 말해도 될 정도의 위협이었다.
이런 상황이 되니 우습게도.
나라는 존재가 이 대륙이 위험하다고 알리고 있는 하나의 증거처럼 느껴졌기에.
피식 쓴웃음을 지으며 이전에 검에 해뒀던 것처럼 아르가스에 소환마법진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 * *
“하악! 하악! 하악!”
거칠게 숨을 내뱉고 있는 샬롯.
살이 쪘다는 걸 인지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나랑 같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오늘 새벽부터 시작해서, 강의가 끝난 지금 저녁까지.
샬롯의 하루는 달리는 걸로 시작해서 달리는 걸로 끝나는 중이었다.
그런데 조금 의외인 부분이 있었는데.
‘말대로 운동을 쉰 건 아니네?’
그냥 무작정 먹어대서 살만 찐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일부는 근육으로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살이 찐 이유는 단순히 먹는 양을 운동량이 따라가지 못했다고 봐야 했다.
‘차라리 이 상태로 벌크업을 하는 건…….’
아무래도 기사인지라 일단은 덩치가 크고 힘이 센 게 기본적으로 유리한 구조이긴 했으나….
‘아니다.’
넬슨도 톰처럼 억지로 커다란 근육을 만드는 게 아니라, 몸에 딱 자리 잡은 말끔한 근육을 만들었다.
다채로움이 장점인 일레인 가문의 검술에는 오히려 두꺼운 근육이 방해로 작용하겠지.
그렇단 말은.
“한 바퀴 더 뛰자.”
“흐에엑!”
옆에서 샬롯이 죽어나가는 목소리를 내뱉는다.
“이, 이안도 예전에는 체력이 약하지 않았어?”
“그랬지.”
확실히 그랬다.
방대한 마나를 신체가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보니 어렸을 때 잔병치레도 많이 하고, 근력은 약하고, 체력도 허접했으나.
“근데 지금은 아니야.”
마몬의 기운을 얻으면서 자연스럽게 내 몸 안에서 다룰 수 있는 마나량이 늘어났고.
덕분에 적어도 생도들 중에서는 중위권 이상의 신체를 갖추게 되었다.
“괜한 소리 말고 빨리 뛰자.”
샬롯의 등을 밀어주며 다시 달리려 했으나 그때 저 멀리서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오는 마리아.
평소에는 운동장으로 오는 계단을 그대로 뛰어내리는 편이었던지라 저런 몸짓 하나하나도 신선하면서 소름 끼쳤다.
내 안에 마리아 레이로즈라는 소녀의 이미지가 얼마나 강렬하게 박혀 있는지 최근 들어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혼자 뛰고 있어.”
“흐에게!”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슬며시 속도를 줄이는 샬롯.
뭐 그 정도는 못 본 체하며 나는 마리아에게 향했다.
마리아는 베런과 다이니가 대련하고 있는 걸 힐끔거리고 있었는데 끼고 싶은지 손가락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얘기는 해보셨나요.”
“……아, 더럽게 적응 안 되네.”
공손하게 말하는 마리아를 바라보며 나는 한숨을 내쉰다.
“알프레도 교수님한테는 오늘 아침에 연락을 드려봤는데, 이제 막 개학한지라 당장에 뵙는 건 무리일 것 같아.”
“…….”
입을 꾹 다물고 있지만 마리아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는 대강 눈에 보인다.
“그럼 네가 해주세요.”
“존대를 하는 거야, 반말을 하는 거야.”
“해달라고요.”
자신의 가슴을 확 내미는 마리아.
가문에서 건 마법을 나한테 풀어달라고 하는 거 같은데.
“괜히 건드렸다가 나만 레이로즈랑 척 지는 거 아니야?”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죽이면 돼요.”
마리아의 어휘에서는 저 정도면 공손한 편에 속하는 거려나.
하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쉬운 일도 아니다.
“나도 처음 보는 종류의 마법이야. 저주인지 아니면 정신 계열 같은 부류인지도 확실하지 않아.”
“해달라고요.”
“내가 함부로 건드렸다가 더 심해질 수도 있어. 나이트 아카데미에서 마법을 다룰 수 있는 교수님들도 있으니까…….”
“다들 제 가문 때문에 거절하셨어요.”
근데 그걸 나한테 부탁한다고?
따지듯이 그녀를 바라봤으나 마리아는 여전히 당당하게 나를 쳐다본다.
자신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걸 알지만 어떻게든 이 저주를 풀고 싶다는 것.
“에휴.”
모르겠다.
“알았어. 저쪽 계단에 가서 앉아봐.”
계단에 걸터앉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오늘 해주하는 건 아니고, 일단 무슨 마법인지 좀 자세하게 봐야 할 것 같아.”
“네, 얼른 하세요.”
따지듯이 재촉하는 마리아의 목덜미 쪽으로 손을 얹는다.
어제 확인했을 때 가슴 쪽에 마법이 걸려 있던 걸 확인했으니까.
천천히 눈을 감으며 미세하게 마나를 움직이며 마법에 닿는 순간.
‘너는 실패작이야.’
‘어쩜 저렇게 야만적일 수 있는지.’
‘레이로즈 가문의 일원답게 행동하렴.’
‘하아, 앞으로 구조를 바꿔야 할 것 같다. 단순히 검만 잘 휘두른다고 가문으로 받으면 안 되겠어.’
부정적인 수많은 목소리들이 내 머릿속으로 강압적으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 * *
“죄송합니다.”
신성 기사단의 부단장, 퓰리안은 다시금 사죄를 입에 담는다.
마몬교의 처리는 했으나, 그들의 성물인 아르가스의 회수는 실패했고 스스로를 은빛사자 용병단이라고 칭한 이들은 하나도 잡지 못했다.
인질이던 아카데미 생도들에게 물어봐도 두 사람 모두 전혀 모른다고 답할 뿐.
피해자인 두 사람을 더 잡아둘 수도 없으며 따로 알고 있는 정보도 없어 보여 진즉에 보내준 뒤였다.
“됐다, 마몬교와 수장인 이자벨라의 처형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으니 그만 마음에 담아둬라.”
함께 기사단 외부의 풍경을 보며 답하는 기사단장 로만 레이먼드.
떨어지는 노을 밑으로 잠시도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자신의 기사들이 보인다.
로만에게 이들은 자랑스러운 동료들이었다.
이번 임무에서는 조금 삐걱거림이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 임무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으니까.
‘은빛사자 용병단이라.’
일단 수배는 넣어뒀다.
은빛사자 기사단 쪽에 서신도 보냈으나 그쪽에서도 모른다는 답만 올 뿐이었다.
그렇게 혼자 상념에 젖어있던 로만의 귀에 뜬금없이 들려온 소란스러움.
눈이 자연스럽게 소리의 근원지를 쫓았고 신성기사단의 입구에는 삿갓을 쓰고 천 옷을 입은 여성이 하나 서 있었다.
“태도군요?”
여인이 허리춤에 매고 있는 기사단과는 다른 형식의 검에 눈이 먼저 갔는지 퓰리안이 중얼거린다.
“무슨 일이지?”
보초를 서던 종기사들이 그녀를 막아서지만 여성은 뭔가가 마음에 안 드는지 이런저런 말을 하더니 결국.
쿵!
발로 바닥을 크게 내리찍으며 마나를 담은 일갈을 쏟아낸다.
“라인 레이먼드가 여기 있을 수 있다고 들었다아! 오래된 벗이 찾아왔는데 대접이 이따구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