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81
81화.
“라인 레이먼드가 여기 있다고 들었다아! 오래된 벗이 찾아왔는데 대접이 이 따구냐아!”
대장부.
딱 그런 말이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여인의 체격이라고는 볼 수 없는 듬직한 덩치, 손에 박혀 있는 문드러진 굳은살.
떡 벌어진 어깨와 입에 물고 있는 장죽에서 뿜어지는 쾌쾌한 연초의 향.
그녀는 훈련 중인 신성 기사단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화제성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긍정적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라인 레이먼드?”
“감히 저게 누구 이름을 함부로.”
마법사 중 힐다가 있다면.
기사 중에는 라인 레이먼드가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우상이자, 기사의 정점과도 같은 존재.
특히나 명목상 은빛사자 기사단의 의지를 이어가고 있다는 신성 기사단의 신경을 거스를 수밖에 없는 말투였다.
“하아.”
“또 취객이야.”
“허리에 술병 들린 거 봐라.”
하지만 왕국을 대표하는 신성 기사단은 당연하지만 단순히 검만 휘두른다고 들어올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단체 생활이며, 기본적인 인성이 뒷받침되어야 들어올 수 있는 왕국의 가장 좁은 문.
기사단원들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자신들이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종기사들이 알아서 쫓아내겠거니 싶었던 것.
하지만.
“라인 레이먼드으으으! 어디 있냐아아아!”
후웅!
실로 마술 같은 행위였다.
여인이 손 한번 휘저었을 뿐인데 종기사들의 몸이 허공에서 핑그르르 돌더니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것.
여인은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는 당당하니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결국, 기사단원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이 이상 들어오시면 침입행위로 간주되어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친구 집에 놀러오는 것도 처벌을 받나? 라인 레이먼드! 어디 있냐아!”
도발이나 다름없는 격한 외침에 결국 기사는 이를 으득 물며 손을 뻗는다.
검을 뽑진 않아도 취객을 제압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지만.
툭.
기사는 어느새 잡힌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인간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엄청난 악력.
당장이라도 손목이 부러질 것만 같은 통증에 기사가 뜨거운 숨을 토해낸다.
“커헉!”
고통 속에 자연스럽게 꿇은 무릎.
여인은 시시하다면서 기사를 놓아주고는 다시 앞으로 향했다.
스르릉!
동시다발적으로 뽑혀 나오며 노을빛을 반사하는 잘 관리된 검들.
기사단까지 찾아와서 기사단원에게 직접적인 상해까지 입혔다면 이제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아.”
여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들을 보더니 입에 물고 있던 장죽을 깊게 빨아들인 후, 품에 집어넣는다.
“그려, 기사란 놈들이랑은 늘 이런 관계였지.”
연기를 내뿜으며 끌끌하고 웃기 시작한 여인은 쓰고 있던 삿갓을 벗어던진다.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
“수인?”
그 위에 삐죽 솟아 올라있는 늑대의 귀. 그걸 보는 순간 기사단원들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진다.
“감히 수인이 수도인 프랑트에서, 그것도 우리 기사단에 들어와 난리를 치셨다.
“제압한다. 레지스탕스와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다.”
기사단장과 부단장이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사고하고 행동한다.
신성 기사단은 재능 있는 뛰어난 자들의 집합소였다.
게다가 상대는 수인.
더욱 손속을 둘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그들을 보며 여인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태도에 손을 얹는다.
“사자 놈들이랑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지.”
홀로 은빛의 기사들을 상대했던 기분 좋은 과거를 떠올리며, 여인은 그대로 검을 뽑았고.
하늘이 요동치듯 울려오기 시작한다.
* * *
“…….”
수많은 목소리와 감정들이 물밀 듯이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것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잠시 입을 다물고 정신을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
“뭔 일이세요?”
마리아의 질문에 대답하는데도 잠깐의 시간이 걸렸다.
입을 열었다가는 쏟아져 들어온 강압적인 감정들 중 하나가 툭 튀어나갈 것만 같았으니까.
꿀꺽.
침을 삼키며 감정들도 누그러뜨린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마법인 것 같아. 나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들 것 같은데?”
“……책 좀 가져오세요.”
“욕하고 싶다는 걸 참 교양 있게도 말한다.”
어제 하고 싶은 말을 가리키라고 책을 줬더니 욕만 계속해 댔지.
“안 되면 저는 이만 갈게요.”
“그, 인형 같은 거라도 샬롯이나 다이니한테 빌려볼까?”
딱 봐도 어딘가에 화풀이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물어봤는데 마리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본다.
“이미 빌렸어요.”
“……그래, 힘내고.”
검도 쥐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인형 같은 거에라도 화풀이 할 수밖에 없겠지.
기지개를 켜며 방금 느꼈던 감정들과 마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자니 베런과 대련하던 다이니가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는다.
“어때? 힘들 것 같아?”
“으음.”
슬쩍 다이니를 바라보다가 주변으로 눈을 돌린다.
베런은 어느새 근력 운동을 하는 중이었고, 샬롯은 아직까지 헥헥거리며 뛰어다니고 있다.
우리 대화를 들을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곤 입을 열었다.
“사실 마법 자체를 부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아.”
“으음?”
“마몬의 기운을 흘려 넣으면 되니까.”
마나를 통해서 마몬의 기운을 넣어주면 아마 좋다고 먹어치울 게 분명했다.
그러자 내 말에 다이니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아하.”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반응.
굳이 다시 묻지는 않고 그냥 무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마리아의 몸 안 마몬의 기운이 남게 될 수도 있어. 너 정도는 아니겠지만, 성장이나 신체에 영향을 주는 건 분명하겠지.”
“으음, 그렇지.”
격하게 동의한 다이니는 뭔가 해답을 얻은 듯 손뼉을 한번 짝 친다.
“그럼 마리아의 마법 해제는 보류하자.”
“음?”
“하긴, 생각해 보면 예전 마리아보다는 지금의 마리아가 더 나은 것 같기도 해. 그치?”
“어제는 가문한테 속박당하는 게 불쌍하다고 그러지 않았냐?”
“…….”
입을 꾹 다문 다이니가 괜히 내 어깨를 툭 치며 답한다.
“그 힘을 다른 사람한테 나눠주지 말라는 소리야. 일단은 이런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면 충분하잖아?”
“뭐, 그건 그렇지.”
“그래, 나 하나면 되는 거야.”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다이니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말했다.
그때 한 바퀴를 다 돌고 온 샬롯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다, 다아! 돌았어!”
“고생했어. 나도 한 바퀴 돌고 올게.”
샬롯 혼자만 뛰게 하는 것도 미안하니까 나도 바로 다시 달리려고 지나치는 순간, 샬롯의 손이 내 팔을 잡는다.
“그, 무슨…… 얘기했어?”
“어?”
“아니, 그냥. 궁금해서.”
호흡을 애써 조절하며 물어오는 샬롯.
아무래도 여름방학 동안 갑자기 다이니와 내가 친해진 게 어색하게 느껴졌던 모양인데.
그때 옆에서 다이니가 툭 치고 들어왔다.
“비밀이야, 그치?”
“뭐,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다.
마몬의 기운이나 광신도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당장 샬롯에게 할 수는 없으니까.
조금 거칠어지는 샬롯의 숨소리를 뒤로한 채, 나는 그대로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은빛사자로 샬롯이 들어오면 알려주긴 해야겠지.’
어쩌다 보니 다이니가 나의 비밀에 대해서 다 알게 되어버리긴 했으나, 반대로 마몬의 기운을 통해서 믿을 수 있는 동료가 되었으니까.
차라리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녀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일단 지금 확정은 다이니 뿐이니까.’
은빛사자 기사단이 아닌 다른 인원에게 나의 비밀에 대해서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뛰고 있자니 아카데미 입구 쪽에서 익숙한 얼굴의 두 사람이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이안 아이넬! 내 제자!”
“애들 있는데 쪽팔리게.”
마음고생이 조금 줄었기 때문일까, 예전의 푹 삭았던 얼굴에서 조금은 나아진 테르토나 샤이먼과 그의 친구이자 영약제조사 호우만.
“으음?”
너무 뜬금없는 두 사람의 등장에 나도 모르게 뜀박질을 멈추고 두 사람에게 다가간다.
“아니, 무슨 일이세요?”
메이제렌에서 로베르담까지 오려면 꽤나 고생했을 텐데.
내가 당황하며 묻자 두 사람은 히죽 웃으면서 답했다.
“특별 강사로 초청 받았단다.”
“황색 마탑 사건을 해결하는 데 일조했다고 테르토나한테 강사를 부탁했다더라.”
아마 마탑 협회에서 연줄을 놓아준 거겠지 하고 덧붙이는 호우만.
“물론, 메이지 아카데미 쪽이지만.”
나이트 아카데미에서 소환마법사인 테르토나를 초청 강사로 초빙할 리가 없겠지.
테르토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팔짱을 낀다.
“뭐, 나도 메이지 아카데미 차석 졸업생이기도 하니까 무시할 수 없었지. 게다가 무지한 학도들에게 소환마법의 위대함을 알릴 수 있는 시간이지 않느냐!”
사람이 참 한결같다.
“나는 그냥 보조로 온 거야. 학회 측에서 테르토나를 제어해 달라고 부탁했거든. 돈도 받고 좋지.”
“아하.”
마탑 학회장인 프라이드의 입장에서는 괴짜인 테르토나를 혼자서 보내기 불안했겠지.
그를 제어할 수 있는 호우만을 붙인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이트 아카데미로 와서 너도 한번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정말 생도구나?”
“아쉬워, 정말 아쉬워.”
호우만의 말에 맞장구치며 혀를 차는 테르토나.
그래서 정말 나 하나 보려고 온 건가 싶었는데 테르토나가 웃으면서 묻는다.
“오늘 오전에 알프레도 교수님께 자문을 구했지? 친구 중 하나가 이상한 마법에 걸렸다며?”
“아, 설마.”
내 질문에 테르토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도와주러 왔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인사만 하러 왔고, 내일 약속을 잡으려고.”
뒤따라 설명을 보충하는 호우만.
“잘됐네요.”
단순히 마리아의 마법을 해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도대체 정확히 어떤 마법인지 또 그것을 통해 내게 흘러 들어온 목소리와 감정은 무엇인지.
답을 내어줄 두 사람의 등판에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 * *
달이 떠오른 늦은 저녁.
신성 기사단의 단장, 로만 레이먼드는 검을 바닥에 꽂으며 버티려 했으나 결국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앞에는 이미 전투가 끝났음을 선언하듯 검집에 검을 집어넣은 여인이 품에 넣어뒀던 장죽을 다시 입에 문다.
“후우, 네가 레이먼드의 후손이라고 했나?”
쩝하고 로만을 내려다보던 여인은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금의 미련도 없이 몸을 틀었다.
“아닌 것 같은데?”
욱씬!
로만 레이먼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온다.
하지만 어떠한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완패.
신성 기사단이라는 왕국 최고의 기사단 전원이 달려들었음에도 여인에게 패배했다.
자잘한 검상 정도는 입혔으나, 치명상 하나 만들지 못했다.
게다가 레이먼드 가문에 대한 모욕까지.
– 진짜로 라인 레이먼드의 후손입니까?
문득, 예전 나이트 아카데미에서 실습을 위해 면접을 봤을 때 자신에게 물었던 당돌하던 은발의 소년이 떠오른다.
정말 라인 레이먼드의 후손이냐?
자신의 자긍심과 같았던 핏줄에 대한 진실.
파도 하나 없던 호수에 거대한 바위가 떨어진 것처럼.
로만의 손이 부르르 떨려왔으며 당장이라도 부정하고 싶었지만.
텁텁하니 차오르는 먼지에 바싹 마른 혀는 제대로 말 한마디 내뱉지 못했다.
“흐음.”
전투 시작 전 벗었던 삿갓을 다시 쓰며 자신의 늑대 귀를 가린 여인은 연초 연기를 내뿜으며 슬며시 달을 바라본다.
“여기가 아니었구나?”
심드렁하니 중얼거리며 여인은 밤의 달빛을 따라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