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82
82화.
다음 날.
나는 웃으면서 부실 문에다 문패를 떡하니 걸었다.
어제 쌍둥이 중 하나인 엘빈을 시켜서 만든 것.
– 은빛사자 연구회.
1학년들도 2학기가 되면서 동아리에 가입할 수 있고.
인원만 충분하다면 직접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바로 신청해서 동아리를 설립하고 부실까지 받아냈다.
인원이 5명이면 부실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얼른 이름을 적어 넣고는 받아 왔다.
“흐흐.”
문패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음을 흘리자 옆에서 멀뚱히 보고 있던 다이니가 과자를 오독오독 씹어 먹으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인다.
“이름 진짜 구려.”
“어허!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기사단을 연구하는 게 뭐가 이상해.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애들을 포섭할 수도 있잖아.”
은빛사자의 좋은 점을 말해주면서 인재들을 영입하는 거다.
앞으로 찾아올 인재들을 떠올리다가 퍼뜩 다이니를 가리키며 외쳤다.
“너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신입부원을 데려와야 해!”
“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애들한테 이런 데 들어오라고 하면 사이비 같은 건 줄 안다고!”
“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오히려 애들한테 기회를 주는 거야. 영광에 참여할 기회를!”
“그거 알아? 넌 진짜 아저씨 같을 때가 꽤 있거든?”
“…….”
“근데 가끔 진짜 더럽게 아저씨 같을 때가 있어.”
“……아저씨 맞잖아.”
굳이 억지를 부려보자면 삼백하고도 열 몇 살 더 산 건데. 그런 내 말은 못 들은 척 다이니가 손을 휘젓는다.
“아, 어쨌든 안 된다면 안 돼. 그리고 나 친구 없는 거 몰라?”
“하아, 왜 우리 애들은 이렇게 하나씩 뭐가 모자라…….”
“어허.”
바로 내 입에 자기가 먹던 과자를 욱여넣는 다이니 탓에 결국 말이 막혀버렸다.
초코맛이 가미된 과자라 그런지 막상 단맛에 스트레스가 풀려 오독오독 씹어 먹는다.
“옳지, 잘 먹네.”
다이니는 그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흐뭇하니 팔짱을 끼고 바라봤다.
뭔가 먹이를 받아먹는 기분이라 한마디 해주려 했으나.
“이안!”
복도 끝에서 샬롯과 베런 그리고 마리아가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샬롯은 내가 다이니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더니 흠칫 떨며 발걸음이 느려졌지만 베런과 마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동아리에 들어가 있더군.”
“연구 같은 거 할 생각 없는데요?”
두 사람은 꽤나 불쾌한 듯 내게 따지고 들었지만 나는 웃으면서 답했다.
“너희 어차피 따로 들어갈 동아리도 없었잖아. 연구회라고 적어두고 우리끼리 훈련하거나 대련인원 맞출 때 쓰려고 만든 거야.”
‘부실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었어.’라는 말을 솔직하게 하는 것보다는 일단 이렇게 두 사람이 원하는 쪽으로 꼬드기는 게 맞겠지.
실제로 둘은 낚싯바늘을 문 물고기처럼 눈을 번뜩인다.
하지만 바로 베런이 이의를 제기한다.
“대련 동아리라고 따로 있다. 그곳에서는 늘 대련상대를 구할 수도 있고 훈련방법도 공유하더군. 차라리 그쪽에 합류하는 게 낫지 않나?”
나름 옳은 소리를 하는 베런이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있으면 안 되지. 거기서 네가 원하는 사람이랑만 대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
강한 사람과 대련을 하면 당연히 약한 사람이랑도 대련을 해줘야 한다.
대련 동아리는 로테이션으로 돌리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공평함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강해지는 데 공평함은 필요 없다.
“우리 동아리는 내가 엄하게 선별해서 받아들일 거야. 정예 중의 정예만 모아서 빠르게 성장하는 그런 동아리.”
하나의 우리 안에 수많은 독종들을 집어넣고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우게 만든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경쟁하고 성장하는 그런 장소가 될 것이다.
‘물론 은빛사자로 들어오게 자연스럽게 꼬실 수도 있고.’
대목적은 따로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마리아와 베런은 벌써 넘어온 듯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럼 된 거지? 얼른 들어가자.”
여기서 다이니가 눈치 좋게 어시스트를 넣어준다.
자연스럽게 재촉하면서 자신은 이미 동아리에 들어가는 걸 확정했다는 태도.
그러자 베런과 마리아도 슬며시 안으로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샬롯.
그녀는 아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안한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너만 빼놓을까 봐? 걱정 마. 너도 이미 1학년 중에는 충분히 강하니까. 오히려 여기서 제일 많이 배우는 게 너일걸?”
“으응.”
“들어올 거지?”
슬며시 손을 뻗자 샬롯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왔다.
좋다.
아주 좋다.
“흐흐흐흐.”
마리아는 몰라도 베런 같은 경우는 주변에 따르는 친구들이 많다.
자연스럽게 우리 동아리로 들어오고 싶어 할 거다.
베런의 친구들도 나름 중상위권의 실력자들이었기에 원석이 알아서 굴러올 거라는 말.
게다가 방학 시작하기 전에 나한테 배우고 싶다고 찾아왔던 생도들도 있으니 동아리는 눈덩이 굴리듯 커져가겠지.
동아리에 들어오는 절차와 면접은 까다롭지만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거의 가정교사가 되어 몸에 맞는 검술부터 자세 교정, 심화과정까지.
쑥쑥 늘어가는 실력을 주변에서도 보게 되며 성적으로 증명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소문이 퍼지게 될 것이다. 은빛사자 연구회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생도들이 많아지겠지.
‘그러면 이제 은빛사자 연구회 자체가 하나의 네임드가 되는 거야.’
결과적으로는 전 학년에서 모두가 소속되고 싶은 동아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입맛에 맞는 생도들만 쏙쏙 골라서 스카우트하면 되는 거고!
“흐흐!”
완벽한 계획이다!
물론, 이건 절대적으로 실력에 자신이 있으며, 검을 보는 눈이 높아야 실현 가능한 계획이지만.
이 아카데미에 나보다 실력이 좋은 검사가 어디 있겠는가!
“흐하하하하!”
“왜 저래.”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자 안에서 다이니가 부끄럽다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흠.”
어쨌든 나는 문에 걸린 명패를 다시금 만족스럽게 쳐다보곤 안으로 들어섰다.
* * *
“언제 오나요.”
“아, 기다리라고.”
동아리 활동이라고 하고 간단한 계획만 설명한 이후, 모두를 돌려보냈지만 유일하게 마리아만 나랑 함께 남아있었다.
마리아의 몸 안에 걸린 마법을 풀기 위해 찾아올 테르토나 샤이먼과 호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언제 오나요.”
“……적당히 물어봐라.”
“언제 오나요.”
쿵.
책상을 손바닥으로 약하게 내리치는 마리아.
아마 원래의 마리아였으면 바로 이마로 들이박았을 것이다.
“아, 씨! 너 한 번만 더 물어보면 돌아가라고 한다!”
몇 번을 물어보는지 모르겠는지라 한마디 해주자 마리아가 곧바로 입을 다문다.
이제 좀 괜찮아졌나 했는데.
툭.
툭.
툭.
이제는 책상을 리듬에 맞춰서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진짜로 무슨 병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지경까지 와버렸다.
‘이거 마법 해제하면 큰일 나는 거 아니야?’
강제로 억눌려 있던 그 괴팍한 본성이 터져 나오면서 아무한테나 칼 휘두르고 다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익숙한 두 얼굴. 테르토나 샤이먼과 호우만이 안으로 들어온다.
“오셨어요.”
“하아, 지치는군.”
“에휴.”
두 사람 다 꽤나 피곤한 몰골이었는데 오늘부터 시작한 특강이 썩 원하는 대로 진행되진 않은 듯했다.
“소환마법에 대한 인식이 너무 물러. 이것들이 이안, 네 반만 따라와 줘도 소원이 없겠어.”
아무래도 소환마법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아직 학도들에게 썩 좋지 않다보니 그걸 뜯어고치는 것만으로도 고생하는 듯했다.
그럼 호우만은 왜 지쳤나 슬쩍 봤더니.
“이 늙은이가 하루 종일 투덜거리는 걸 옆에서 들어 봐.”
“동갑보고 늙은이라니…….”
테르토나는 풀이 죽으며 한마디 하려했으나.
벌떡 일어난 마리아가 곧장 두 사람에게 걸어가서는 가슴을 내민다.
“부탁드려요.”
“……호탕한 아이구나?”
“얘가 마법에 걸렸다는 그 애지?”
호우만은 바로 마리아를 데리고 가더니 자리에 앉힌다.
마리아는 기다렸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한숨을 내쉬며 호우만도 손을 뻗었다.
“그래, 애가 오죽 답답하면 초면인 우리한테 이러겠어.”
사실 그런 거 상관없이 그냥 마리아라는 여자가 원래 막무가내였지만.
호우만이 알아서 오해해 준다면 넘어가기로 했다.
마법 확인은 테르토나가 아니라 호우만이 하기로 했다.
소환마법밖에 모르는 테르토나보다는 마법사의 성향과 사용하는 마법 여부에 따라서 영약을 내어주는 호우만 쪽이 이런 부분은 훨씬 뛰어나니까.
천천히 마리아의 가슴팍에 손을 얹은 호우만.
호우만의 마나가 자연스럽게 마리아의 안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는 게 보인다.
그 틈을 타서 테르토나가 슬며시 내게 다가왔다.
“소환마법에 진척은 좀 있나?”
“……이런 상황에서 물어보시는 겁니까?”
“뭐, 짬을 내서 얘기하는 거지.”
어이가 없긴 했으나,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예, 이전보다는 확실히 늘었어요. 특히나 전격 속성을 이용해서 마법진을 그리는 건 확실하게 마스터한 것 같아요. 지팡이를 사용하긴 해야 하지만.”
“오! 그래!? 빠르게 캐스팅해야 되는 소환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지.”
테르토나 샤이먼이 개발한 방식이기도 하고.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히죽 웃으며 묻는다.
“그럼 주말에 시간 되나?”
무슨 데이트 하자고 말하는 아저씨를 보는 것 같았지만.
“좋습니다.”
마법을 배울 수 있다면 나쁘지 않겠지.
자연스럽게 메이지 아카데미로 넘어가서 알프레도 교수랑 얘기도 해볼 수 있을 거고.
“잘됐군! 잘됐어! 실은 저번에 보여줬던 인형으로 다루는 소환마법 있지 않나? 그게 이번에 개량을 해서……!”
“끝났어.”
테르토나의 말을 끊는 호우만.
그러면서 이쪽을 날카롭게 째려본다.
“누가 입을 닫고만 있었으면 좀 더 일찍 끝났을 텐데 살짝 걸렸네.”
“크흠.”
어색한 헛기침을 뱉으며 슬며시 고개를 돌린 테르토나를 무시한 호우만은 한숨을 내쉬며 마리아를 바라본다.
“그러니까 마법은 마법인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못 볼 걸 봤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어깨를 두드리는 호우만.
“너도 참, 고생한다.”
“무슨 마법인데 그러세요?”
마리아의 질문에 결국 호우만의 입이 열렸다.
“서커스단이나, 노예상 같은 애들이 종종 쓰는 마법이야. 공격성 자체를 극단적으로 거세시키는 방식으로 정신계열 중에서도 상당히 독한 부류에 속해.”
“…….”
“그런데 얘한테 걸린 건 단순히 공격성을 거세시키는 수준을 넘어서, 거기에 묶어 기억관련 마법까지 덧붙여 뒀어.”
“기억 마법?”
어느새 고개를 돌린 테르토나가 턱을 쓰다듬으며 되묻는다.
호우만은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는 듯 불쾌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 아이가 공격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 과거를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잊게 만드는 거야. 느리지만 확실하게 지워지게 되겠지. 아마 지금도 몇 개…… 잊어버렸을걸?”
마리아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갸웃거렸으나 사실 당연하다.
본인이 잊은 기억이 뭔지 본인이 어떻게 알겠는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마법.
마리아를 정신적 거세시키겠다는 레이로즈 가문의 의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정황.
“진짜로 이 애의 가문에서 걸어둔 마법이라고? 이거 단순하게 학대로 끝날 문제가 아닌데?”
“중범죄자나 레지스탕스 출신 노예한테나 쓸 법한 지독한 마법이군.”
호우만과 테르토나의 감상에는 동의하지만 일단 중요한 건.
“해주는 가능합니까?”
당연히 해주였다.
마리아를 이렇게 둘 수는 없다.
그녀를 우리 기사단으로 데려오는 게 아니더라도, 어린 아이가 짊어지기에는 너무 가혹한 마법이지 않은가.
하지만 호우만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할 것 같아. 이 정도면 굉장히 뛰어난 마법사…… 왕실 소속 정도는 돼야 할 거야.”
“그러면 영약 중에 몸을 정결하게 하거나 맑게 만드는 건 있으십니까?”
“으음?”
너무 뜬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서일까 호우만은 멀뚱히 나를 바라보면서도 있다고 답해준다.
“이, 있지? 메이지 아카데미 학도들은 돈이 많으니까…… 영약 좀 팔아먹으려고 했지.”
“……쓰레기.”
옆에서 테르토나가 한마디 했지만 나는 바로 마리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해주할 테니까 영약 가져오세요.”
마몬의 기운을 통해서 마법 자체를 먹어치우는 방식으로라도 일단 해결할 필요가 있다.
과격한 방식에 기운 자체가 마리아의 몸 안에 남을 수도 있으니 호우만의 영약에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가능한가요?”
멀끔히 올려다보며 묻는 마리아. 나는 괜히 안심시키려 입꼬리를 씩 올려준다.
“약간 아플 수도 있어.”
사실 꽤나 아플 거다.
그런 속 뜻 정도는 마리아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여름방학 이후 처음으로, 호쾌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고.”
직후, 마몬의 기운을 담은 마나가 마리아의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