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83
83화.
“윽!”
마리아의 입 밖으로 묵직한 탄성이 새어 나온다.
폭력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마몬의 기운을 처음 느껴보는지라 상당히 놀란 듯 보였다.
하지만 곧이어 입술을 으득 물며 걱정 말고 그냥 진행하라는 의미를 담아 나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인다.
거칠게 쏟아져 들어가는 마나는 곧이어 마리아의 가슴에 걸려 있는 마법에 닿는다.
간을 보거나, 마법을 살피는 기색도 없었다.
허기진 마수처럼 마몬의 기운이 담긴 나의 마나는 거칠게 마리아에게 걸린 마법을 탐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그 안에 담겨 있던 기억들이 나를 향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 검술 실력 자체는 시설 최고 수준이긴 합니다만 성격 자체에서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 그래도 지금까지 중에서는 가장 잠재력이 높다고 했지?
– 예, 맞습니다.
– 씁, 데려가지.
붉은 머리를 한 남성을 물끄러미 올려보고 있다.
아마 어린 마리아의 시선이 아닐까 싶었다.
남성은 마리아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 이제부터 너는 마리아 레이로즈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며 조금 더 자란 마리아는 자신을 향한 평가를 듣고 있었다.
– 애한테 최소한의 예절조차 가르치지 못하는 건가?
– 잠재력이 높다고 무작정 데려온 건 당신이잖아요. 저 아이는 미쳤어요. 건달패마냥 싸움 말고 다른 걸 배울 생각이 전혀 없어요.
– 그걸 해내는 게 당신 역할 아니야?
– 제 애도 아닌데 왜요? 억지 부리지 마세요.
타인의 기억을 읽는다는 것.
그것도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자리 잡았을 수 있을 기억들이 내 안에 강제적으로 들어온다는 건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 내 감정이 정말 내 것인지. 혹은 마리아가 느껴왔던 것인지에 대한 분별이 되지 않았다.
– 내가 짐승을 딸로 들였어.
– 하아, 지금이라도 바꾸면 안 돼요?
– 이미 아카데미도 들어갔잖아. 얘는 포기하고 다른 애들한테 기대해 보자.
– 그래요, 마리안느랑 메릴 같은 애들한테 지원을 더 해보죠.
콰득!
마몬의 기운이 마리아의 안에 있는 모든 마법을 집어삼키자 이제는 그 이상을 넘어, 마리아의 몸을 탐하려 든다.
쏟아져 들어오는 마리아의 기억들을 무시하며 마몬의 기운을 통제하기 위해 이를 악 문다.
“크, 으으!”
전신의 근육들이 긴장하여 단단해지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마나를 거두면서 혹시라도 어딘가에 흠집이라도 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매우 조심스럽게 마나를 통해서 기운을 거의 다 빼낸 순간.
“오?”
마리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이쪽은 한참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손을 번쩍 들며 일어나는 게 아닌가.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갓 대에에에에에에에에엠!”
거친 포효.
승리의 사인처럼 높게 뻗은 양팔과 마리아의 함박웃음.
그리고 그녀의 마나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는 아직 다 빼내지 못한 마몬의 기운.
“아…….”
허탈함에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리아는 내 반응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로 책상 위로 올라간다.
“이거지! 이게 인생이야! 아우 답답해 뒤질 뻔했네! 으아아아아아악! 내가 다시는 가문으로 돌아가나 봐라아아아아아아아!”
부실 책상 위에서 양쪽 무릎을 꿇고 세레머니 하듯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허공을 향해 외쳐대는 마리아.
호우만과 테르토나는 급변한 마리아의 모습에 당황하고 있었으나.
나는 울컥하고 치솟는 감정에 마리아의 뒷덜미를 잡고 그대로 당겨 책상 위에 넘어트린다.
“쿠억!”
머리를 책상에 박은 마리아는 아파하면서도 입은 쉬지 않고 웃고 있었다.
“좋냐? 좋아? 너 때문에 다 망했는데? 지금 몸에 이상한 마나 느껴지지 않아?”
내 말에 마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마나를 갈무리하더니 웃어 보인다.
“뭔가 불순물 같은 게 섞여 들어오긴 했네.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 빌어먹을 마법이 사라졌는데!”
내 손을 툭 치더니 벌떡 일어나서는 바로 검부터 찾는 마리아.
“바로 대련하러 가자! 내가 진짜 한동안 검 못 휘둘러서 밥을 먹어도 먹는 것 같지가 않더라.”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마나를 타고 마몬의 기운이 돌아다니고 있을 텐데도 아무런 문제없다면서 깔깔거린다.
“나, 검 챙겨서 올 테니까 바로 운동장으로 나와라!”
그리 말하곤 바로 나가버린 마리아를 보며 테르토나와 호우만이 꾹 닫고 있던 입을 뗀다.
“왜 마법을 걸어뒀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군.”
“애가 어떻게 저렇게 휙휙 바뀌지.”
“하아, 호우만 님은 일단 영약 좀 가져다주세요.”
일단 영약으로 몸에 있는 노폐물이나 더러운 것들을 최대한 빼둬야 한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마나로 흡수된 마몬의 기운이기에 내가 강제로 뺏어온다면 마인화를 했던 샤카렌이나 다른 신도들처럼 몸이 확 나빠지게 될 것이다.
마몬의 힘은 그렇게 쉽게 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대금은 쟤한테 청구하면 되는 건가?”
“당연하죠.”
어쨌든 레이로즈 가문이니까 그쪽으로 청구하면 문제는 없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부탁이 있습니다.”
내 말에 테르토나는 자신에게 뭔가 요구하는 줄 알고 눈을 반짝였으나 나는 호우만 쪽으로 다가갔다.
“이것 좀 봐주시겠습니까?”
“으엑!”
내가 내민 것을 본 테르토나는 비명을 질렀으나, 호우만은 흥미롭다는 콧소리를 내며 턱을 어루만진다.
눈알처럼 생긴 보옥.
렉터를 쓰러트리고 얻은 레비아탄교의 성물이었다.
마몬교의 성물인 아르가스는 그냥 내가 사용하면 됐지만, 이것만큼은 도저히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마몬의 각인은 이걸 먹어치우고 싶다고 외쳐대지만 막상 어떤 방식으로 힘을 흡수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딱딱한 보옥을 그냥 씹어 먹을 수도 없는 거 아닌가.
내가 내밀고 있는 보옥을 유심히 보던 호우만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이거 어디서 났냐?”
“대악마를 섬긴다는 광신도들이랑 싸우다 주웠습니다.”
“……넌 참, 바쁘게도 사는구나.”
“의도치는 않았지만요.”
어깨를 으쓱하면서 호우만에게 되묻는다.
“이전에 아스모데우스의 검은 꽃을 가지고 영약을 만드신 적도 있으니까 이것도 가능할까 했습니다.”
“흐으으음.”
벌써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걸로 보아 이미 깊은 흥미를 가진 듯 보였다.
“가능은 할 것 같은데…… 여기서는 불가능해.”
“그렇겠죠.”
여기서 될 거라고 생각은 안 했다. 어쨌든 그렇다면 일은 수월하다.
나는 호우만에게 보옥을 건네며 의뢰했다.
“그럼 이걸 이용해서 영약을 하나 만들어주시겠습니까? 당연히 제가 먹을 거고요. 대금은…….”
내 말에 호우만은 보옥과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침을 꿀꺽 삼킨다.
일부러 대금 부분에서 살짝 끊자 그녀가 먼저 선수를 친다.
“됐어. 이런 물건을 다룰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죠?”
애써 호들갑 떨고 싶은 반응을 참는 호우만을 바라본다.
그녀는 보옥을 꽉 쥔 채로 테르토나에게 외쳤다.
“야, 난 돌아간다.”
“……뭐?”
“어차피 너만 있으면 되잖아. 나는 마탑이 아니라 프라이드 개인의뢰를 받고 따라온 거라 파기해도 상관없어.”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 돌아간다고?”
“이걸 봐, 이 자식아! 이걸! 너는 이런 걸 손에 쥐고 가만히 기다릴 수 있어? 나는 못 해!”
마리아에게 줄 영약만 건네고 바로 떠나버린 호우만.
따로 완성되면 연락을 준다는 말만 남긴 채로 방을 나섰다.
“…….”
괜히 서운해 보이는 테르토나를 그냥 두고 나가고 싶었지만.
“부실 문 잠굴 건데 나가주시죠.”
“다들 정말 너무하군.”
내 축객령에 투덜거리면서 팔짱을 끼고는 그대로 쫓겨나는 테르토나였다.
* * *
“야! 여기!”
막상 정말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마리아를 보자니 조금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이미 운동장에서 목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있었는데 벌써 샬롯이랑 다이니와는 대련은 끝냈는지 두 사람은 근처에서 헥헥거리며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오랫동안 못 놀아준 개 같네.’
자기 기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순박하게도 보일 지경.
만약 꼬리가 있는 수인이었다면 사방팔방으로 꼬리를 흔들어대었을 모습이 눈에 보였다.
“얼른 오라고! 얼른!”
방방 날뛰면서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마리아.
정말 저렇게 두다가는 병원이라도 가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샬롯이 쓰던 목검을 집어 들고 마리아의 앞에 섰다.
‘마몬의 힘이 마나에 스며들었어, 확인을 해야 돼.’
마리아의 대련을 받아준 이유는 날뛰는 그녀를 좀 잠재우기 위함도 있지만, 마몬의 기운에 대해서 확인하기 위함도 있었다.
다이니가 별말 없는 걸로 보아 두 사람이랑 대련할 때는 큰 문제 없었나 본데.
“진심으로 해보자. 너 몸 상태도 봐야 하니까.”
내 말에 마리아는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자세를 잡는다.
“난 네 앞에선 언제나 진심이야!”
타오르는 붉은 마나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폭발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마리아.
확실히 오랜만이라 그런지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게 눈에 확 보였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상대하기 더 쉬웠다.
나는 바로 보조마법을 몸에 걸면서 마리아의 검과 부딪쳐 갔다.
“오!”
그 동안 근력이 부족한 부분 때문에 정면대결을 피해왔던 내가 이렇게 대놓고 받아주니 꽤나 기쁜지 마리아는 탄성을 내뱉으며 환하게 웃는다.
“그렇지! 이거야 이거!”
자세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양손으로 검을 쥐며 다시 한번 내리치는 마리아.
원래라면 자세가 망가져 가볍게 막을 수 있어야 했으나 마리아의 선천적인 근력과 마나 때문인지 꽤나 묵직하게 들어왔다.
‘일단 좀 지켜보자.’
마나를 계속 쏟아 넣다 보면 마몬의 기운이 빠져 나오게 될 수도 있다.
영약을 사용하기 전에 한번 마나를 이런 식으로 소진시켜 주는 게 훨씬 효율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일부러 마리아의 검을 받아주고 있자니 그녀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진다.
예전이었다면 공격이 막히더라도 그냥 뚫겠다는 무식한 방식으로 치고 들어왔을 텐데, 지금은 뭔가 이상했다.
“어?”
그리고 실제로.
그녀의 검이 기이한 궤도를 그린다.
아래로 내리찍는 척하며 올려치기를 하려는 일종의 속임수였는데.
격하면서도 미숙한 움직임에 오히려 마리아의 근육이 뒤틀리며 쥐가 났는지 검을 놓쳐버렸다.
“아악! 미친!”
근육과 마나가 함께 뒤틀리며 그녀의 손이 바르르 떨려온다.
나는 바로 검을 내던지고 그녀의 팔을 잡고 꾹꾹 눌러줬다.
“심호흡하고 마나 가라앉혀. 종종 있는 일이야.”
“아오! 인생 엿 같네!”
스스로에게 화가 났는지 마리아는 심통을 부리면서 발로 바닥을 쿵 내리찍는다.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로 나는 방금 마리아가 보여준 검의 궤도를 떠올리며 물었다.
“레이로즈 가문의 검술이지?”
내가 마리 레이로즈의 상관이자 그녀와 함께했던 동료가 아니었다면 마리아의 조잡한 검술을 보고 뭔가 싶었을 거다.
하지만 그건 분명 마리가 종종 사용하던 검술의 일종이었다.
“어떻게 알, 았냐아!”
손을 눌러주는 게 꽤나 아팠는지 말끝을 높이는 마리아.
여러 생각이 들었다.
레이로즈 가문의 출신으로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꽤나 많은 사연을 지닌 마리아.
가문의 검술이라도 분명하게 익혀서 가주에게 인정이라도 받으려 했던 걸까 싶었는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찰나와 다름없는 순간이었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부단장인 마리 레이로즈의 검을 수없이 봐왔기에 더더욱.
“너한테 레이로즈의 검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상극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