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84
84화.
사실 예전부터 생각해 오던 부분이었다.
마리아의 밑바탕은 레이로즈의 검술이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크게 부각되지 않아서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
하지만 마리아가 그들의 검술을 뒤따라 배우려 한다면 이제는 더 이상 침묵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뭐?”
“애초에 성향적으로 레이로즈의 검이랑 너는 어울리지 않아.”
마리 레이로즈.
부단장이었던 그녀의 검술 재능은 다른 단원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다.
하지만 그녀가 그런 실력까지 이룩하기 위해선 단순히 재능만으로는 당연히 불가능했다.
전통적으로 이어온 가문의 검술에만 매달리지 않으며 늘 자신의 검술에 대해서 개선점을 찾고, 거듭된 연구와 타인의 조언을 듣는 걸 아끼지 않아 만들어진 하나의 작품과 같은 완성형의 검술.
세세한 부분에서까지 디테일을 살려야 하는, 굉장히 어려운 검술 중 하나였다.
“하, 신기하네. 우리 가문 검술도 알아?”
원래라면 화를 내어도 이상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가문의 검술에 대해서 타인이 지적하는 꼴이었으니까.
팔이 뒤틀리는 고통이 점차 멎어 가는지 마리아는 입술을 길게 찢으며 물었다.
“틀린 말이라고는 하지 않을게. 근데 어쩌라고.”
“…….”
“내가 왜 그 거지 같은 마법에 걸렸는지 알아?”
다시금 떨어트렸던 목검을 쥐며 묻는 마리아.
아직 손이 살짝 떨려오는 걸로 봐서는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듯 보였다.
“이 빌어먹을 검술을 사용하는 언니들한테 개 같이 처 맞았거든.”
기억에서 얼핏 이름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마리안느와 메릴이라고 했던가.
“나한테 검술은 단순히 도구일 뿐이야. 뭘 사용하든 일단 이겨야 할 거 아니야.”
“…….”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봤던 도구들 중에 레이로즈의 것이 가장 강해보였어.”
그렇기에 마리아는 자신과 맞지 않는 검술에 억지로 스스로를 맞추고 있는 것이었다.
레이로즈 가문을 향한 원망이나 복수의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패배했으니까, 다음에는 이기겠다는 욕심.
딱 그것만이 마리아 레이로즈라는 소녀가 움직이는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무엇이 소녀를 이렇게까지 만들었을까.
단편적인 과거만을 보았던 나였기에 오히려 더 궁금증이 늘어갔으나.
어쨌든 이렇게까지 대놓고 자신의 의도를 밝혀준 덕분에 그녀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럼 내가 지금부터.”
마나가 손 안으로 소용돌이치며 몰려온다.
호우만의 영약이나, 마리아의 몸 안에 있는 마몬의 기운은 잠시 제쳐둔다.
감각적으로 싸워가는 소녀가 봤던 것은 수많은 노력과 계산을 통해 이루어진 공든 탑.
이미 동경하게 된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네가 쫓을 등을 보여줄게.”
마나가 뭉치며 만들어진 건 한 자루의 검이었다.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양날의 뭉툭한 검이 아니라.
얇은 태도.
아주 오래 전, 나를 찾아왔던 한 검객이 사용하던 물건.
사실 마리아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딱 감이 왔다.
이 아이에게 어울리는 검술은 따로 있다는 걸.
그리고 나는 그 검술을 다루던 여인과 적어도 수십 번은 검을 휘둘러왔다.
“검을 들어, 마리아.”
레이로즈의 검에게 패배했기에, 그곳의 검을 동경해 왔다면.
내가 너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더 압도적인 패배를 안겨주겠다.
* * *
“하.”
늦은 저녁.
이안 아이넬부터 시작해서 그 뒤를 따라 다이니와 샬롯이 돌아갔다.
홀로 덩그러니 남아있는 운동장에서 마리아는 누운 채로 어이없다는 한숨을 토해낸다.
일검을 얻어맞고 쓰러진 이후, 계속 이 자세로 자신이 보았던 검을 곱씹고 있었다.
“어이가 없네.”
찰나의 순간.
엄청난 속도로 치고 들어왔던 묵직한 한 방은 마리아가 가지고 있던 강함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박살 내버렸다.
자신 오르던 산의 뒤에, 실은 더 큰 산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충격이지만 마리아는 무기력해지거나 허탈함을 느끼진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지금까지 자신이 레이로즈 가문의 검술을 억지로 구사하려고 했던 노력들이 한없이 어리석게 느껴질 정도로.
“어디서 저런 걸 배워 온 거야.”
타인의 것이 탐스럽다고 느끼는 경우가 비교적 적은 마리아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자신의 몸에 딱 맞는 옷을 발견한 듯 본능처럼 그것을 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레이로즈의 검술처럼 불필요한 모든 것을 쳐내고, 계산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검술과는 정반대의 물건이었다.
그렇다고 일레인 가문의 검술처럼 다채롭고 화려한 형태를 가지고 적에게 혼란을 주지도 않는다.
묵직했으나 더없이 가볍다.
어떻게 서로 상반되는 감상이 튀어 나올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리아는 그렇게 느꼈다.
야생적이지만 정돈되어 있었고.
거칠지만 날카롭다.
마나를 이용해 태도를 만들 때부터 평소 이안 아이넬이 보여주던 검술이 아닌 전혀 색다른 무언가가 튀어나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독특한 물건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레이로즈 가문에서 언니들에게 패배했던 기억은 이안이 보여준 검술에 전부 베여서 사라졌다.
뇌리에 강렬한 충격처럼 남은 검술.
“가지고 싶다.”
그것을 원한다.
방금 이안 아이넬이 보여줬던 그 검을 자신의 손으로 재현하고 싶었다.
* * *
다이니와 샬롯을 기숙사까지 배웅해 주고 방으로 돌아오자 방 안에 있던 단원들은 왜인지 저들끼리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그나마 나는 꽤 버텼다니까? 한나랑 비교하면 안 돼지.”
어이가 없다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톰.
그러자 반대편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나가 바로 반박한다.
“너는 갑옷 입고 싸웠잖아.”
“그럼 너도 갑옷을 입지 그랬냐!”
가장 고참인 두 사람이 서로 과거 얘기를 하면서 싸우고 있는 걸 보고 있는 넬슨과 쌍둥이.
그리고 내 가방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도로시.
여러 가지 거슬리지만 일단 도로시가 가장 눈에 띄기에 슬쩍 손을 뻗어 묻는다.
“쟤 뭐 하냐.”
내 질문에 넬슨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답해왔다.
“단장님 가방 안에서 도시락 냄새 난다고 그거 맡고 있습니다.”
“…….”
“저 정도면 뭐라도 사주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쟤는 저거 고쳐야 해.”
이참에 아예 아무것도 안 주면서 저런 버릇을 좀 단단히 고칠 필요가 있다.
소환수라서 마나만 제대로 연결되어 있으면 배가 고플 수가 없는데 왜 저러는지.
“그래서 그때 엘빈이 커버 치다가 한 방에 나가 떨어졌잖아.”
톰이 갑자기 자신을 참전시키자 엘빈이 화들짝 놀라며 부정한다.
“그거 저 아니고 켈빈이었습니다!”
“뭐라는 거야! 너 맞잖아!”
서로 자기가 진 게 아니라면서 또 투닥거리기 시작하는 엘빈과 켈빈.
이것들은 기숙사에 방음이 제대로 되어있는 게 아니었으면 절대로 불러내지 않았을 거다.
“뭔 일 때문에 그러냐.”
한숨을 내쉬며 묻자 톰이 곧장 내 쪽으로 다가와서는 외친다.
“단장! 윤이랑 싸웠을 때 그나마 제가 가장 승산이 있지 않았습니까?”
“아.”
그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아무래도 내가 마리아에게 윤의 검술을 보여줬던 걸 단원들끼리 보고는 이야기가 거기까지 흘러간 모양이다.
스스로를 검객이라고 칭했던 여검사 윤.
늑대 수인으로, 도장 깨기를 하겠답시고 갑자기 기사단에 찾아왔었다.
분명.
“다 털렸지?”
내 말에 단원들이 움찔거리더니 몸이 굳는다.
그래, 혼자서 찾아온 윤을 상대로 일대일 대결에서 단원들 전원이 패배했었다.
덕분에 헤이해진 정신을 강화시킨다고 엄청 빡세게 굴렸었는데.
“그나마 마리가 비등하게 싸웠었는데 반나절 동안 승부가 안 났고.”
결국 결투를 중단시키고 다음 날 내가 상대해서 이겼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기에 헛웃음을 흘리며 침대에 걸터앉는다.
“대륙 최고의 기사단을 만든답시고 모았던 놈들이 그렇게 털린 걸 보고 참 씁쓸했지.”
“그, 그때는 아직 모인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습니까.”
톰이 어떻게든 변명해 본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당시에는 아직 마몬과 싸우던 때도 아니고, 기사단원들이 이제 막 합을 맞추면서 커져가던 시기니까.
“그래도 진 건 진 거잖아.”
“다, 다시 싸우면 무조건 이깁니다!”
“그래, 300년 전에 그 얘기를 하지 그랬냐.”
그러고 보면 윤은 어떻게 됐을까.
나한테 패배한 이후로 매일같이 찾아온 그녀와 대련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검에 대한 토론이나, 술자리를 가지면서 나름대로 정을 쌓았었는데.
마몬의 군세가 밀려오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전선으로 향했고 그 뒤로는 윤도 자취를 감췄다.
‘아마 또 어디서 싸울 상대를 찾아서 해매고 다녔겠지.’
굶주린 짐승처럼, 자신과 검을 맞댈 강자를 찾아 헤매던 여인.
승패는 깔끔하게 인정하면서도,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끊임없이 도전하는 강단까지.
“딱 마리아한테 어울리는 검술이지 않냐?”
윤의 검술을 마리아에게 가르칠 판단을 한 나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자화자찬하며 감탄했으나 기사단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뭐야, 왜 그래.”
시원찮은 반응들에 내가 묻자 한나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선다.
“단장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윤의 검술은 일종의 재능의 영역입니다.”
“그렇지.”
타고났으면서도 천부적인 센스가 바탕이 된 검술.
“거기에 더불어 그녀가 수인이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판단이 옳아. 윤이 가지고 있던 괴력은 수인이 아니면 힘들지.”
그녀가 늑대 수인이었던 덕분에 검을 뒷받침해 주고 보완해 줄 수 있는 근력이 있었다.
“단순히 근력만이 아니라 본능적인 판단도 그렇겠죠.”
또한 상황에 따른 판단의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빠르다.
그건 머리를 쓰는 게 아니라 몸이 알아서 정답을 찾는 부류.
동물적인 감각이라고밖에 설명하지 못할 종류의 것이었다.
“윤의 검술이 뛰어난 건 알지만, 범인은 따라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음.”
단원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겠다.
윤의 검술이 훌륭하더라도 그걸 마리아가 제대로 소화할 수 있겠냐는 부분.
게다가 내가 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검술을 직접 배운 건 아니다.
간접적으로 보고, 부딪치며 얻었던 경험만을 가지고 가르치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걱정할 필요는….
“부단장님께서도…… 걱정하실 겁니다.”
“왜 그러나 했는데 부단장 때문이었구나?”
이 녀석들이 걱정한 건 단순히 마리아가 감당하기 힘든 검술 때문이 아니었다.
부단장의 후손에게 윤의 검술을 가르친다는 점 때문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그, 왜. 부단장님과 윤은 사이가 굉장히 안 좋지 않았습니까.”
톰이 슬며시 끼어들며 한나의 말에 힘을 보탠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 돼. 윤의 검술은 마리아에게 딱 어울려.”
“……그 정도 수준의 재능입니까?”
이번엔 넬슨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어 물었고 나는 더없이 확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윤의 검술을 익힌 마리아 레이로즈.
검술의 비어있는 부분은 마리아가 자신의 경험과 본능으로 알아서 채워 나가겠지.
결국, 검술이 완성되었다고 본인 스스로가 느낄 때가 된다면.
마리아 레이로즈라는 이름을 대륙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