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69
269화
17장 유구경략론(琉球經略論)(1)
내가 정안연을 남송에 보내려는 것에는 당연히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다.
“유구국을 발견한 이상 남조에서 알아봐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모든 일을 믿고 맡길 능력과 상재에도 밝은 이가 내 주변에는 그대 말고 없다.”
내 말에 정안연도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우리 주변에 상재까지 밝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 걸까?
“…소신이 무엇을 하면 되겠사옵니까?”
“우선 유구국… 아니, 아직 제대로 된 나라가 없으니 유구국이라는 말도 틀리군. 유구에 유황이 있다면 그 유황은 개발해야 마땅하다. 감자(甘蔗 설탕)나 물소야 유구인들이 자체적으로 기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유황 경우에는 그 광산이나 맥을 찾고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을… 아니, 만전을 위해서라도 남조에서 감자와 물소를 기를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하다.”
“그것만 하면 되겠사옵니까?”
“아니, 이것 외에도 있다. 지난번에 요청한 남조의 돼지와 미곡 등에 대한 답이 아직도 오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지금 남조 황제가 조정 내에 거동이 쉽지 않기 때문이겠지. 아무래도 여기서 다시금 남조가 구미가 당길 제안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구미가 당길 제안이라고 한다면 무엇이옵니까?”
“현종 대왕 시기 정복한 고려의 갈라전이 남조와 북조에서는 어떻게 적혀 있는지 본국의 기록과 교차 비교하고 싶으니 알려달라고 전하라.”
“예?”
내 말에 갈라전은 고려의 문제인데 남송에서 그것이 무엇이라고 구미가 당길 제안이 되겠냐는 시선을 보냈다.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지금 이쪽에서 주장하는 땅의 일부가 옷치긴 왕가가 점거하고 있는 땅에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것을 알게 된다면 남송도 우리가 옷치긴 왕가와 영토를 두고 다툼을 벌이려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그렇다면 고려가 놀고만 있다는 말은 하지 못할 것이고, 자연히 고려와의 국교를 중시하는 남송 황제의 조정 내 입지도 다시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북방에 옷치긴 왕가가 점거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라. 그렇다면 저들은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알아서 우리가 비정한 땅이 합당하고 인정하는 자료를 줄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이건 남송 황제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좋은 것이 갈라전이 금의 갈라로보다 컸다고 외국에서도 인정받게 되면 북벌 확장 명분을 보다 공고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꽁으로 확장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전쟁에서 이긴 후 더욱 강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손해는 아니다.
“그리고 내 듣기로 남조는 정강의 변 이후 서역으로 향하는 육로가 끊겨 바다를 통해 여러 나라들과 교역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나라들과 통할 수 있는 방도도 찾아보아라. 불가능하다면 그들에 관련된 정보라도 들고 오라.”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방금 말한 유구에서 기를 물소와 유황 광산, 감자(설탕) 문제는 반드시 유구의 일이 아닌 본국의 일로써 해결하라.”
“…전하. 유구가 아닌 본국의 일로 해결하라는 것은 무슨 뜻이옵니까?”
“유구가 남조의 동쪽에 있고 왜국과도 밀접한 것을 확인한 이상 저곳은 남조에서 말하는 해동의 영역이다. 거기다 유구에 나라가 없는 이상 이후 일어날 일도 나라 간의 분쟁이 아니로다.
그렇다면 당연히 본국의 치외이자 관할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남조에서 알게 되더라도 유구는 해동의 일부라는 사실과 왜상들이 밀무역을 하지 못하게 보다 엄중히 관할하게 되었다는 것을 저들에게 염두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걸로 만에 하나라도 유구 문제로 따질 나라는 사라졌다.
이 시기 일본 조정은 해외에 무관심이고, 남송도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에 대해 따지진 않을 테니 말이다. 유구가 생각보다 발전하긴 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쪽도 이점이 있다. 예상보다 발전했다는 것은 일단 영향권에 넣기만 한다면 개발비용이 줄어들고, 통치도 수월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석기시대를 상정하여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드는 준비 기간도 줄어들 것이다. 다만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또 아닌데.
‘문제는 어떻게 복속시키냐인데, 성주(아지)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공성을 해야 할 성들도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솔직히 오키나와는 너무 멀다. 지속적인 보급은 기대할 수 없고, 제주도 보다 큰 섬이라 인구도 더 많을지 모르는데다가 풍토병이나 독사들도 득실거리는 것을 감안하면 저 섬을 판옥선 십수 척만으로 될까?’
그런 고민으로 오키나와 문제를 궁리하고 있던 내게 화포를 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 * *
그렇게 화포를 효능을 보여주고 부하들과 의논을 나누려는데 화포의 위력이 아쉽긴 해도 이 정도면 남정에 큰 도움이 되긴 할 것이다.
설령 다 실패하더라도 일부 지역만이라도 무력으로 점령한다면 남송이 대만을 경략하지 않고 그 앞에 팽호(澎湖. 오늘 날 펑후현)섬을 해상 실크로드의 중간 기착지 중 하나로 사용하는 것처럼 사용하기엔 충분하다.
아직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닌 부족에 가까운 소국들이니 동원할수 있는 수도 많지 않을 테고, 많다 하더라도 방어전 목적이면 문제없으며 주변 신경 쓰지 않고 화포를 실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경략을 시도해 볼 만한 일들이다.
“작금의 유구가 금 태조 이전의 여진처럼 여러 부족들이 산재되어 있다면, 아직 나라라고 비정하기 힘들다. 그러니 그곳을 나라로 보아선 아니 된다.”
사실 수, 당 시기 만들어진 사서에서 나오는 유구국이 대만이 아니라 오키나와를 말한다면 당나라 시기 유구는 이미 탐라와 더불어 해외잡국(海外雜國) 중 하나로서 나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 되지만 솔직히 황제국은 조공을 보내면 그저 부족일지라도 일단 나라 취급을 해주는 경향이 있으니 예외로 치자.
실제 당장 고려사에서도 금 건국 이전 여진의 조공 기록 중에 여진국(女眞國)이라고 기록된 것도 있고 말이다.
“전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지금 전하께서는 유구를 무력으로 병탄하시려는 것이옵니까?”
탐라에서 돌아온 후 내 측근이 된 김구가 내게 물었고, 나는 윤리와 도의적 문제로 반대하는 것인가 싶어 병탄은 확정이 아닌 가능성 정도라고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병탄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김구가 묻고자 하는 것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달리 단순히 인륜적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다음 말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전하, 외람되오나 한 말씀 드리자면 아조는 이미 근래 들어 군사를 많이 일으켰사옵니다. 작년과 올해만 하여도 군사로 소모된 비용이 적지가 않은데 여기서 또 군사를, 그것도 먼 외방을 향한 출병은 많은 지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사료 되옵니다.”
주변 이목은 순식간에 김구에 집중 되었다. 김구의 그 말은 화포와 신기전의 위력으로 가열되던 상황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 시선을 받고도 김구는 낭랑하게 자신의 주장을 이었다.
“단순히 지출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소신도 군비를 확충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은 필요하다 생각되옵니다. 그러나 지금 북방에 일이 벌어지면 군사를 움직여 대응할 필요는 분명 있사옵니다. 남방의 일 또한 왜상들이 밀무역을 하거나 왜구가 준동할 경우 군사를 움직여야 합니다.
혹시라도 본조 내부의 변란이라도 일어난다면 이에 또 군사를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비용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나라의 방위에도 영향이 있습니다. 부디 북벌, 남정을 할 때는 다른 일 하나는 해결한 후 움직여야 주시옵소서.”
유갑수의 인상이 구겨지며 뭔가 말을 하려는 입을 열려고 했으나 내가 손을 뻗자 입을 다물었다.
그에 비해 김방경과 송문주, 척인사, 정안연은 일단 들어보겠다는 듯한 시선으로 김구를 바라보았다.
“네가 우려하는 바는 이해한다. 하나 지금 유구는 약할 데가 이를 데 없으며, 이 화포라는 병기를 대적들에게 들키지 않고 사용하기에 충분한 상대로다. 거기다 실제로 군사를 일으킬지, 한다면 언제, 그리고 얼마나 일으킬지는 아직 제대로 정하지 않았기에 지금 그것을 따져보고 있는 것인데 그것에 대해서도 따지지 말라는 것인가?”
“송구하옵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신이 섣불리 말한 듯하옵니다. 부디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알겠다.”
라고 넘기긴 했지만 이 녀석 분명 일부러 말한 거다.
출병을 확정하려면 방금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먼저 선을 그어 둔 것이다.
신참이라서 다소 주눅 들어 조용히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다.
* * *
“하온데, 전하. 만약 유구를 신속히 병탄하고자 한다면 언제 배를 띄우는 것이 좋겠사옵니까?”
“유구로 가기 위해서는 빠르면 늦가을, 늦어도 겨울이 되면 탐라에서 출항하는 것이 가장 적기이오. 장군.”
그렇게 재개된 유구 경략 회의에서 김방경은 군대를 보낸다면 언제가 적당하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는 정안연이 대신 대답했다.
“탐라에서라면, 계절풍(季節風)을 탄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본래 탐라에서는 당이나 송에 갈 때 편히 가기 위해 겨울철에 출항하는 일이 잦은데 이것은 겨울이 되면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서풍을 타고 남쪽으로 가기 편하기 때문이오. 반대로 여름에는 남동 계절풍이 불어오기 때문에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오기가 편하오. 그러니 탐라보다 수 곱절은 멀리 있는 유구로 안전하고 빠르게 가려면 겨울철에 가는 것이 좋은 것이오.”
위치적으로 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제주도가 오키나와와 가장 가깝고 계절풍에 따라 빠르게 갈 수 있다.
정안연의 보고에 의하면 탐라인은 고려인들보다 오키나와, 정확히는 남방의 섬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탐라국이 고려의 군현에 들어가고 고려에서 탐라의 조공에 점점 제한을 하게 되자 당시 탐라 상인들이 이윤을 얻기 위해 겨울철 계절풍을 이용해 남방의 섬과 무역을 했다나, 혹은 시도하려다가 결국 이윤이 남지 않아 포기했다나 했다는 것이다.
이에 어째서 알고 있었는가 물어보니 과거 탐라인들 중에 남방의 어느 섬에 표류가 되어 탐라국 내부에서는 알음알음 전해졌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은 탐라-유구 항로를 정확한 아는 이들은 없어져서 근래 내 지시 하에 새로 개척했다.
“그렇다면 추수는 마치고 갈 수 있겠군요.”
다소 안도하는 김방경의 말에 정안연은 물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키나와에 갈 병사들이 모조리 동궁 혹은 상비군들만으로 보낸다 하더라도 추수를 마치고 가는 것이 좋은 것이 이번 출병 비용에는 동궁에서도 지원을 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특히 추수 이후가 된다면 번거롭게 시장에서 구할 필요 없이 내 토지에서 나온 식량을 그대로 들고 가는 선택지도 있다.
“하오나 전하. 토벌이 아닌 정벌까지 염두에 둔다면 사민(徙民)도 염두에 둬야 할 것입니다.”
이장용의 말은 일리가 있는 것이 아무리 군대를 보내 일시적으로 충성 약속을 받고 복속했다고 하더라 그대로 백성이 되지 않는다.
당장 탐라국을 봐라. 왕건 시절 조공을 바치고, 고려는 그런 탐라를 천천히 내지화하려고 노력하여 숙종 때는 기어이 군현에 넣었는데도, 이번 거사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독립을 하려고 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지척에 있는 탐라국만 해도 그 정도라면 오키나와는 두말할 것도 없다. 눈앞에서 고려군이 사라진다면 언제 다시 반항할지 모른다.
설령 정벌이 아닌 속국화인 복속 차원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힘을 각인시키고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자면 그에 맞는 병력을 상주시키거나 혹은 상기시킬 수 있게 조치를 해둬야 한다. 그리고 그걸로 적당한 것이 이장용이 말한 사민정책이다.
조선시대 세종 대왕이 4군 6진을 개척한 후 수많은 사람들을 북방에 사민 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전부 새로 정복한 땅에 여진족을 경고하고 견제하며, 정복한 땅 내 있던 여진인들을 관리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것을 나도 할 생각이다.
“그에 대해선 다행스럽게 이번에 전가사변을 보낼 이들이 있지 않으냐?”
“…전하. 혹시 이번 난에 연루된 탐라인들을 유구로 보내려 하시는 것이옵니까?”
과연 이장용. 서당개가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벌써 내 의도를 눈치챈 듯하다.
“그렇다. 그들의 수가 적지 않으니 전역은 힘들더라도 향후 본국의 사람들이 지낼 마을과 건물을 만들고 지킬 정도는 충분할 것이다.”
이때 김구가 당황한 기색이 역려한 목소리로 물었다.
“전하. 지금 이번에 끌려온 탐라인들에게 전가사변(全家徙邊)형을 내리시려는 것입니까?”
사민은 다른 곳으로 살려고 이동하는 것이고, 전가사변이란 죄인과 그 가족을 모두 변경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형벌이다. 당연히 사는 곳에서 벗어날 수 없고, 고향에도 돌아올 수 없다. 만약 어긴다면 더 큰 벌을 받는다.
이 전가사변도 목적은 사민과 똑같이 목적은 강제이주를 통한 국경 지역 인구 확보다.
둘의 차이가 있다면 전가사변은 방금 말했듯 ‘죄를 지인 죄인들을 강제로 보내는 것이다.’ 그에 비해 사민의 보통 목적은 같더라도 일단은 스스로 사민을 자원하거나 각 지역에서 선택돼버려 이주하는 ‘일반 백성’으로 죄인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이번 내가 말한 탐라인들은 ‘반란을 저지른 죄로’ 노비가 된 이들이니 유구로 보낸다면 사민보다는 전가사변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 작가의 말
*작중 고려와 오키나와에 대한 명확한 기록도 없는 상황에서 탐라와 오키나와에 대한 명확한 교역 기록은 당연히 없습니다만 전에 군현에 편입된 이후 조공을 제한받게 되었다는 자료와 위의 고려와 오키나와 사이 교역 추측과 연관하여 작중 조공이 제한받자 제주도 상인이 오키나와로 무역을 트려고 시도는 한 적 있었다고 설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