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97
297화
39장 몽골, 옷치긴 왕가
그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진영은 발칵 뒤집혔다.
“고려가 배신한 것인가!”
“…….”
“내가 얼마나 잘해줬겄만, 그 대가가 이것이란 말이냐! 수부타이를 불러라!”
서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동쪽에 대해서도 안심하고 있던 와중, 동쪽에서 고려와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이야기는 그들에게 큰 충격과 분노를 주기는 충분했다.
오고타이 또한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몽골 진영이 고려에 대한 분노의 열기로 고조되어 갔을 때 나온 전령의 다음 말은 찬물을 끼얹은 것과 같았다.
“정확히는 옷치긴 울루스와 고려 간에만 벌어질 것이라 합니다.”
“옷치긴 울루스와….”
“어… 음.”
“옷치긴 울루스와의 전쟁이라면….”
그 말이 나온 순간 방금까지 길길이 날뛰던 장수들은 멈칫하며 멈추기 시작했다.
“…일단, …일단은 묻겠다. 이유는 무엇이냐?”
“옷치긴 울루스와 고려 사이에서 갈라전을 두고 분쟁이 일어난 듯 합니다.”
“…그런가.”
거기까지 말하자 대칸과 노년 장수들의 얼굴에서는 고려에 대한 분노의 열기는 이미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고, 다른 장수들 또한 입을 다물고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옷치긴 왕가의 동방지역에 대한 욕구는 구태여 입 밖으로 언급하지 않을 뿐 제국 내에서도 공공연한 사실이었던지라 갈라전의 문제라는 말 한마디에 모두가 ‘그 문제 때문인가.’ 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오고타이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일단 더 물었다.
“갈라전은 동진국의 영토였으나 과거에는 고려의 영토다. 하여 동진국을 토벌에 큰 공을 세운 고려에게 하사한 것이고, 그것을 숙부도 알 텐데 분쟁이 일어났단 말이냐?”
“그것이 옷치긴 울루스와 고려 양측에서 말하는 갈라전의 범주가 틀리다고 합니다. 고려는 자신들의 고토였던 갈라전을 기준으로 주장하였고, 옷치긴 울루스에서는 동진과 금에서 규정한 갈라전이 맞다하여….”
전령의 이야기가 끝나자 게르 내에서 ‘아…’ 하는 탄식의 소리가 들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주변의 반응과 표정은 미묘했다.
실제 몽골에서 고려에게 준 갈라전의 범주가 고려가 정복했다는 갈라전이 기준인지, 금의 갈라로가 기준인지는 오고타이칸과 구유크 조차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실이었으니 일견 당연하다면 당연한 문제이긴 했으나 적어도 고려에서는 자신들의 고토를 기준으로 반환받은 것으로 알고, 평소부터 그것을 몹시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예케 몽골 울루스 조정에선 알 사람은 모두가 아는 일이었다.
그에 반해 평소 옷치긴 울루스의 행적을 생각하고 전령의 보고를 듣자면 마치 옷치긴 울루스가 고려에 일부러 시비와 트집을 건 것으로 밖에 안 들렸다.
‘숙부의 욕심이 큰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아니, 내가 친정을 나선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긴 하니 이것도 무리도 아니긴 하다만….’
평소라면 그런 옷치긴 울루스의 트집을 눈감아주고, 고려보고 일부 양보하라는 방향도 한번쯤 생각했을 오고타이였으나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남송을 잘 견제해 주고 있는 고려와 척을 질 이유는 없었고, 그렇게하면서까지 자기가 비어있는 동안 동방에 옷치긴 울루스의 확장을 허용할 이유도 없었다.
결국 대칸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손을 저으며 간단히 지시를 내렸다.
“내가 고려에게 갈라전을 준 것은 그곳이 고려의 고토였기에 돌려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금의 갈라전과는 다르다 하여 취하는 것은 내 뜻이 아니니, 숙부께는 고려와 분쟁을 멈추라 전해라.”
결국 전령의 보고로 확인한 것은 숙부인 테무케의 야욕을 다시금 확인한 것 밖에 되지 않아 대칸은 눈을 찌푸리고 동방에서 관심을 버리고 다시 서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동쪽의 문제는 이것으로 끝을 낸다. 우리가 지금 해야할 것은 서쪽이다. 척후를 나간 수부타이가 합류하는 대로 우리는 산맥을 넘을 것이다.”
* * *
연전연승을 거듭한 고려에게 더이상 옷치긴 왕가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옷치긴 왕가의 힘만으론 고려를 멸망시키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언제는 옷치긴 왕가가 고려보다 강하다고 보고, 그것이 최고의 장애물이라고 보았던가?
몽골 제국의 문제를 이겨내지 않으면 과장 보태서 의미 없는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세! 만세! 만만세!!”
그러나 승리는 승리였고, 그 승리에 기뻐하는 나라가 있었고, 안도하는 백성들이 있었다. 강화도에 도착한 태자를 맞이한 것은 그런 백성들의 환호였다.
그러한 환호를 받으며 태자는 왕을 만나고 허례허식의 잔치까지 받았다, 그리고 잔치가 끝난 뒤 왕은 왕태자와 독대를 하며 물었다.
“연회장에서도 말하였으나 이번에 태자의 공적은 참으로 크니 상을 내리기 마땅할 것이다. 무슨 상이라도 원하는 것이 있느냐?”
“갈라전의 승리는 송문주와 김방경, 같은 자에게 있고, 북계의 승리는 이자성와 성의 병사들에게 그 공이 있는데, 어찌 소자에게 모든 공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세운 공에 비하면 스스로 공적을 세운 바가 없으니 부디 거두어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에게 상을 내려주시옵소서.”
“하나 상장군 이자성은 일전의 전투에서 패하였다. 그 대가로 적들이 북계에 모이는 것을 관망하였고, 자칫하면 북계만이 아니라 북방 전토의 백성들이 위험에 빠질 뻔하였으니 그 죄를 물으라는 상소가 올라왔다. 이 아비 또한 그들의 상소가 일리도 있다 생각하는데, 태자는 상장군에게 벌이 아닌 상을 내리라 하는가?”
“승패는 병가지상사(勝敗兵家常事)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이 상장군이 한번 패하긴 하였어도 기병들을 전멸치 않고 퇴각에 성공하여 후일 반격에 보탬이 되었고, 귀주성의 군민들을 다독여 적들과 용전하여 버티었으니 그 실력과 노고는 필히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번 몽고적의 서북면 침공은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니 그러한 상황에서의 분전을 본다면 과보다는 공이 더 크다 할 수 있사옵니다. 부디 한 번의 실수로 인재를 내치는 것은 지양하여 주시옵소서.”
“흐음. 이 상장군이 태자가 그토록 평가할 정도의 인재인가?”
태자의 말에 대왕은 고심하더니 이내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며 결정한 듯 물었다.
“이번에 상장군 이자성이 용전을 하였으나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다. 그의 건강을 생각하여 잠시 소환하여 추밀원부사 직을 내리려 한다. 이것은 어떠하느냐?”
대왕의 말에 이번엔 태자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하였다.
명장인 이자성을 최전선에서 소환하는 것은 국방에 있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거기에 이렇게 독대에서 묻는다는 시점에서 태자가 거부한다면 그것을 들어 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왕의 말에는 진의가 따로 있었다.
우선 추밀원부사는 품계로 따지면 정 3품이니 만큼 상장군(정 3품)에서 따로 승진을 하였다고 할 수 없었지만, 좌천일 수도 없었고, 굳이 논하자면 변경에 있는 장수를 조정에 불렸다는 것은 상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상소의 대부분이 패전한 장수를 전선에 두지 말라는 것이 겉의 이유였고, 속으로는 최우가 보냈던 장수에게 병력을 쥐여준 채 변경에 두지 말라는 것이 이유였으니 소환을 한다면 상이던 좌천이던 상소를 올린 이들과 경계하는 이들도 납득할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조정의 왕의 숙위(宿衛)를 담당하는 추밀원의 직을 내린다는 것은 왕의 근처에 두겠다는 뜻이며 언제든지 지시를 내리면 쉽사리 이동시키기 쉬운 위치였다.
그렇다면 이 처사는 이자성을 소환하여 상소와 신하들의 불만을 달래는 동시에 이자성에게도 여독과 부상을 회복하게도 하겠다는 조치이기도 하였다.
그것을 간파한 태자는 고개를 숙여 답했다.
“아버님께서 그렇게 봐주신다면 어찌 문제가 있겠습니까. 이 상장군 또한 황명을 따를 것입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이번에는 태자에게 내릴 상이니 묻겠다. 이다음은 이 애비가 ‘무엇을 허락해 주면’ 되는 것이냐?”
왕이면서 왕으로서 하기 힘든 말임에도 왕태자를 바라보는 대왕의 얼굴에서는 마치 귀여운 손주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믿어주는 할아버지와 같은 애정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었기에 멈칫하는 반응을 보인 것은 도리어 태자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태자는 아비의 물음에 상주(上奏)하였다.
“나라 안으로는 옛 성종대제께서 하셨듯 국자감(國子監)을 중심으로, 전국에 사학(私學)이 아닌 공학(共學)의 학교를 만들어 나라의 인재를 발굴, 양성하고, 돈을 주조하고 장려하여 상업과 무역을 진흥시켜야 할 것이며, 나라 밖으로는 북조와 남조에게 이번 전쟁을 알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잠시 말을 중단하고 숨을 고른 후 태자는 이어 말했다.
“나아가 부디 해동의 천하를 넓히는 것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잠자코 듣던 대왕이었으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태자는 간단히 말하는 듯했지만 어느 하나 가벼운 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장 처음 말한 나라 안의 인재 발굴과 양성 이야기조차, 나라에서 관장하는 교육 시설인 국자감만 하여도 근래까지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을 태자가 계사지주를 성공한 이후 겨우 중흥을 하고 있었고, 전국의 학교는 고려가 전성기였던 시절조차 여요전쟁 이후 무신들이 집권하기 전까지는 공학보다는 사학이 줄곧 강세였다.
무신정권이 끝을 맞이한 지금 사학이 다시 강세가 될 것인데 조종조가 실패한 조정 중심의 학교 설치가 결코 쉬운 일일 리가 없었다.
또한 돈을 주조하여 장려한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역대 군주들이 주전(鑄錢 돈을 주조함.)하였으나 대다수 전국에 유통되지 못하고 중단된 일들이다.
즉, 하나같이 선대왕들이 시행하였으나 실패하거나 미완에 머문 문제들이었다.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역대 선대제들께서도 완성하지 못한 것을 태자는 지금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냐?”
“소자는 소자가 그렇게 뛰어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번 일 또한 소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소자가 선대제분들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선대제들께서 터를 닦아주셨기에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자가 하는 것은 그 닦여놓은 터를 마저 더욱 닦고 길을 만드는 것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쉽지가 않을 것이라 생각하나 설령 소자의 생에도 미완에 그친다 할지라도 이것은 본국이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라 생각하여 행하려는 것입니다.”
태자의 각오를 들은 대왕은 그렇다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주전만 하여도 몇 번이고 실패했음에도 태자의 말대로 반드시 행하여야 할 문제라 계속하여 돈을 만들어 유통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흐음… 태자의 말이 갸륵하구나. 좋다. 그 문제에 대해선 짐도 대전에서 신료들과 나누어보도록 하겠다. 하지만 마지막의 말은 묻지 않을수 없구나. 천하를 넓힌다는 것은 무슨 뜻이더냐? 이미 이번 전쟁으로 아조의 영토가 넓어졌으니 이미 천하가 넓어진 것이 아니냐?”
옷치긴 왕가와의 전쟁으로 갈라전이 넓어진 것을 말하였지만, 태자는 고래를 저으며 말했다.
“갈라전은 본디 아조의 땅이었으니 이번 전쟁의 승리는 확장이 아니라 땅을 수어(守禦)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아조의 천하를 넓혔다고 할 수 없사옵니다.”
“…하면 혹 거란(契丹)이나 왜(倭)를 치려는 생각인가?”
갈라전은 지킨 것이니 영토를 넓힌 것이 아니라는 말에 대왕은 동요와 일본을 떠올리며 거론하였다.
양국 모두 외국의 땅이며 거란은 요동이라는 중요한 땅을 가지고 있었고, 일본 또한 사람이 많고 땅이 크니 쳐서 점령한다면 마땅히 천하를 넓혔다고 해도 무방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태자는 그것마저 부정하였다.
“거란은 이제 본국의 아우이며, 왜는 아조에 입조하는 번국입니다. 어찌 그들을 쳐, 긁어 부스럼을 만들겠나이까.”
“하면 어디를 말하는 것이냐?”
“탐라로부터 수백 리 남쪽에 있는 유구국(流球國)이라는 나라를 경략하려고 하옵니다.”
“유… 구… 국? 흐음. 그러한 나라가 있었던가? 짐은 들어본 적이 없으나 태자는 어째서 그러한 나라를 치려는 것이냐?”
왕의 물음에 왕태자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번 전쟁에서 소자는 보았고 다시금 확신했습니다. 소자가 기른 정예군은 노왕의 정예기병과 견주어도 당당히 싸울 정도로 뛰어난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여태 개발한 무기와 증축한 성들 또한 지난 참변에 비하면 활약을 할 것입니다.”
“호오. 좋은 소식이로다.”
“그러나 몽골은 여전히 위험하고, 그 영토와 사람의 수도 생각보다 크고 많으며 강합니다. 만일 몽고와 싸운다면 정예병의 수와 수어를 위한 준비가 더욱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수가 모자랍니다.”
“…아조가 비록 서토만큼 영토와 사람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곤 하나, 물산이 풍부하고 사람이 많은 편이라 자부하노라. 하여 일찍이 수십만의 대군을 동원한 전례가 종종 있으니, 태자는 그러한 대군을 동원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냐?”
그 질문에 태자는 긍정하고 동시에 부정하였다.
“대군이 필요한 것은 맞으나 진정으로 몽골과의 대전을 하여 승리를, 나아가 요동마저 탈환하는 것을 추구한다면 일시의 동원만으로 부족하며, 단순히 수만 채워서도 아니 됩니다.”
요동이 언급되는 순간 잔잔하던 왕의 눈썹은 눈에 드러날 정도로 꿈틀거리며 크게 동요했다.
스스로의 동요를 느끼면서도 왕은 이상할 것은 없었다고 이해하며 진정시켰다. 태자는 지금 요동 땅을 언급한 것이다. 다름 아닌 요동, 갈망의 땅이자, 고토, 태조 시절부터 꿈꾸던 그 땅을, 다른 누구도 아닌 아들이 언급해 준 것이다.
자신의 치세에 혹은 아들의 치세에 요동 정벌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왕은 태자의 다음 말을 듣고자 했다.
“…하면?”
태자는 숙인 고개를 들어 고려왕을 똑바로 바라보며 비장하게 대답하였다.
“…10만. 현 군제에 10만의 강병(强兵)을 추가로 양병(良兵)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아들의 그 답에 대왕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 작가의 말
*이자성에게 준다는 추밀원부사는 전화에서 나온 영녕공 일행으로 딸려간 최임수가 받은 그 추밀원부사가 맞습니다.
보통 10만 양병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율곡 이이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