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52
352화
62장 테무케의 마지막 도전(1)
왕검이 이 시기 호환은 물론, 북방이라곤 하나 서경을 비울 수 있었던 것은 몽골 조정과 옷치긴 왕가의 정쟁으로 생긴 상황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몽골 제국의 일익인 옷치긴 왕가라 할지라도 칸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섣불리 고려에 군대를 움직였다간 최악의 경우 그사이 반란이라는 명목으로 몽골 조정의 공격을 받을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이라도 옷치긴 왕가는 몽골 내부와 조정을 설득하고 난 후에야 군대를 움직일 수 있었고, 그렇게 불안정하지만 고려는 전쟁까지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흑태자조차 예상하지 못한 불행이 일어났다. 그것은 차가타이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인한 것이었다.
오고타이칸과 함께 서정이라는 국가 대사를 추진하고 대칸이 자리를 비운 동안 거대한 몽골 제국의 중앙 및 변방과 유사시 조정을 지키기 위해 서정 1년 후 먼저 귀국까지 한 차가타이였다.
그런 황형(皇兄)의 서거는 몽골 제국을 술렁이게 하기는 충분했다.
‘차카타이가 죽었다고?’
보고를 들은 왕검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주위의 시선도 잊은 채 중얼거렸다.
“어쩌다가… 아니, 이상할 건 없지. 그래. 이상할 건 없어.”
현대랑 달리 전근대에선 60을 넘지 못하고 죽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차카타이의 임종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다만, 차카타이가 지금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왕검으로서는 그가 앞으로 서정군이 귀환할 때까지, 아니, 해수 구제사업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더 살아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으로 입맛을 다셨다.
“전하!”
다그치는 목소리가 왕검의 의식을 단번에 깨웠다. 이장용이었다.
“황형(皇兄) 찰합태(察合台 차카타이)는 몽고 한(汗)의 든든한 우군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이 없는 지금, 한의 우군이던 찰합태가 죽었다는 것은….”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검의 호흡이 일순 멎었다. 왕검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것은 자신에게 있어선 불행이었으나 틈을 기다리고 있던 자들에게 있어선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말이다.
“각하! 예상컨대 지금 찰합태가 죽은 것은 몽고 황후가 노왕 와적흔(옷치긴)을 견제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며, 와적흔 또한 행동에 나설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만일 그렇게 해서 몽고인들 끼리 다투어서 서로의 힘만을 빼는 것으로 끝이 난다면 좋겠으나 노왕이 노리는 바를 생각한다면 절대 그렇지를 못할 것입니다. 빠르건 늦건 간에 이 틈을 타 아조를 침공하려 들 것입니다.”
“그대 말이 옳도다.”
이장용의 말에 진지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젊은 왕태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했다.
“몽고 조정 내에 노왕의 입지를 두고 견제를 한다고 찰합태가 죽어 불안한 상황에서 노왕과 분쟁을 심화시켜 불안을 야기하는 짓거리는 하지 않을 것이고, 노왕 또한 아조와의 전쟁을 묵인받는 것을 우선으로 할 것이란 말이겠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몽고 조정에서는 나에게 손을 뻗을 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왕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굴 카미시도, 소르칵타니도, 설령 구유크가 이 자리에 있다 한들 이 상황에서 옷치긴과 대립하며 고려의 편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보다는 빠르게 됐지만 결국 각오한 전쟁이다. 군대를 소집하도록 하라.”
“존명!”
“그나저나 이번에는 노왕이 유리하게 되긴 했어.”
왕검은 솔직하게 아쉬움을 표했다.
* * *
예케 몽골 울루스.
“차카타이가 죽었단 말이냐?”
“예. 차카타이님께선….”
공신의 죽음이자 황실 어른의 죽음에 나름 비탄에 잠겨 있던 부하들은 다음 나온 테무케의 말에 지부겐만을 제외하곤 모든 장군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잘됐군! 하늘이 내게 기회를 주는구나.”
“예?”
“차가타이의 죽음은 안타까우나 지금으로선 잘된 일이다. 우리가 고려를 칠 수 있을 것 같구나.”
“하지만 그랬다가는 카툰께서….”
“카툰은 더 이상 나를 막지 못할 것이다! 나까지 적대하는 것을 드러낸다면 안 그래도 불안한 울루스의 분위기가 더욱 불온해질 것인데, 그녀가 그것을 택하겠느냐? 절대 아니다.”
히죽 웃으며 확신하는 테무케에게 테무케의 아들 지부겐은 조용히 의견을 내밀었다.
“그래도 철저히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대도.”
“아버지. 지난 전쟁에서 우리가 고려를 이기지 못한 것은 힘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오래 싸울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시찰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려 또한 우리가 침공하려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대비에 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전쟁을 서두르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카라콜룸의 개입을 배제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테무케는 대꾸를 하려다 말고, 침을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쟁은 단순히 신속하게 일으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자신도 그렇게 말했고, 자식인 지부겐은 끝까지 그것을 이행한 후 움직이자는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상대는 그 영악한 고려 태자다. 어차피 이번 전쟁은 우리 울루스의 위상을 올리기 위한 전쟁. 카라콜룸의 지원이 없는 것은 몰라도, 지난번처럼 간섭을 받아선 안 될 문제지. 카툰에게 은밀히 우리의 뜻을 전하라. 차카타이의 죽음으로 웅성거리는 울루스를 위해서라도 그녀는 절대 나의 제의를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우리들의 행동을 눈감아 줄 것이다.”
테무케의 예상대로 대몽골 제국의 건설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공신 차카타이의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몽골 제국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 퇴레게네 카툰은 대칸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내부의 분열로 외침의 단초를 마련하고 싶지도, 대칸을 걱정하게 하여 예정보다 이르게 귀환하는 우를 만들어두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한 그녀의 마음에는 분명 예케 몽골 울루스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도 있었으나 그 못지않게 자신의 권력과 나아가 아들인 구유크가 칸의 자리를 계승하길 바라는 마음도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자면 차카타이가 사라진 지금 이 상황에서도 무사히 제국을 운영하고, 구유크에게도 공을 세울 시간을 오래 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정쟁(政爭), 옷치긴 울루스가 건넨 제안에 대해선 그녀도 큰 난감함을 느껴야 했는데, 고려와 옷치긴 울루스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려는 대칸과 구유크. 그 아이가 만든 번국이다. 그 번국이 사라지는 것을 가만둔다면….’
테무케와 왕검의 예상대로 그녀는 옷치긴 왕가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제안을 수락도 하지 못하고 크게 고민했다.
“카툰. 소르칵타니에게 묻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한 그녀에게 총애하는 시종 파티마는 시찰단을 제안한 것이 소르칵타니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말했고, 그녀도 그 조언에 따라 소르칵타니를 불러 의견을 듣기로 하였다.
설명을 들은 소르칵타니는 잠자코 궁리하더니 결국 답을 내놓았다.
“카툰께서 저를 불러주신 것에 대해선 참으로 감읍하오며, 이 문제의 단초는 제게도 있으니 속히 혜답을 내놓아야 하나, 이 문제는 저로서도 명답을 모르겠습니다. 우선 차카타이 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이상 이 이상 씨족 내에 내분과 불안을 조장하는 것은 차카타이 님은 물론, 대칸의 뜻과도 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옷치긴 어르신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위험하다 생각합니다.”
“…그렇지.”
“하지만 고려는 우리 예케 몽골 울루스의 울타리 같은 곳입니다. 고려가 사라지면 예케 몽골 울루스의 변방이 위험해지는 물론, 만자들이 준동할 수도 있습니다. 거기다 고려 태자는 구유크 님의 아들이며, 우리에게는 자식이나 손주 같은 자입니다. 그들을 매몰차게 버리는 것 또한 예케 몽골 울루스와 우리들에게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 내가 그것이 큰 걱정이라 이리 난감해하는 것이 아니더냐?”
“하오면 (테무케)어르신의 뜻을 따라주되 고려의 명줄도 보존시키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제가 생각건대 어르신이 이토록 고려에 집착하는 것은 지난 전쟁과 거슬러 올라가면 갈라전을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전쟁을 그곳에서 하는 것으로 한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갈라전은 대칸과 구유크 그 아이가 이미 반환을 인정한 고려의 땅이다. 그곳을 어르신께 주라고 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하면 어르신이 이길 경우 갈라전은 땅은 고려가 소유하되 그곳의 세금을 어르신께 바치는 것으로 하시지요. 그렇다면 고려와 어르신 양쪽 모두 면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소르칵타니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퇴레게네는 그녀의 목적을 간파하곤 되물었다. 그 물음에 소르칵타니는 싱거울 정도로 쉽게 긍정했다.
“지금 그 말은 고려와 옷치긴 양쪽을 충돌시켜 양쪽 모두의 힘을 깎자는 말인 것이냐?”
“예. 만일 칸께서 돌아온 후 우리 예케 몽골 울루스가 만자(남송을 부르는 멸칭)을 치는데 선군이 되어 싸워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나 그럴 가능성은 적습니다. 그럴 바엔 이 기회에 고려의 힘을 깎아두는 것입니다. 어르신과 고려의 전쟁이 시작되고 적절한 시기에 우리가 개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려는 고려대로 우리 예케 몽골 울루스에게 은혜를 느낄 것이고 입은 피해를 복구할 것인데, 다행히 시간은 우리의 편입니다.”
현실적으로 오늘날 몽골 제국의 건국 공신인 옷치긴 왕가와 대립은 몽골 제국에 있어선 여러 의미로 불안을 조장하는 일이었고, 옷치긴 왕가의 힘은 물론, 고려가 강성해지는 것도 몽골 조정에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자 퇴레게네는 그녀의 제안에 따라 고려를 끌어들이기로 하였다.
즉, 퇴레게네는 옷치긴 왕가에서 은밀히 보낸 밀사에게 고려와 전쟁을 하는 것을 묵인하되, 지난 전쟁(옷치긴 전쟁)에서 빼앗긴 땅의 권리와 갈라전 일대에서 나오는 세금의 일부를 고려한테서 공물로 얻는다는 조건을 내건 것이다.
“만일 어르신께서 이것을 동의한다면 묵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 갈라전은 여전히 고려가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까?”
“갈라전을 고려에 하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칸의 뜻이다. 그리고 고려가 그 땅을 받고 우리 예케 몽골 울루스의 충실한 사냥개가 되었는데, 지금 어르신이 기세를 타 고려에게서 취해 버리면 대칸과 구유크의 입장은 물론, 세상이 우리 몽골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그러니 너는 나의 이 말을 어르신께 제대로 전해야 할 것이다.”
퇴레게네 카툰의 조건을 들은 테무케를 위시한 옷치긴 세력들은 처음엔 실망하다 못해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나 그 내용을 쉽사리 무시할 수는 없었다.
비록 자신들 입장에선 원래 자신의 땅인데 눈앞에서 고려가 채가 버린 땅에 불과했으나 칸이 정식으로 하사한 땅임은 맞았고, 무엇보다 그 땅에 대한 집착은 고려도 절대 작지 않다는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지난 전쟁에서 그 나긋나긋하던 고려가 그렇게까지 대놓고 대들며 갈라전을 줄 수 없다고 한 것은 여러모로 큰 각인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오냐! 그 부분에 대해선 내가 넘어가지. 땅에 대해선 지난 전쟁에서 그들의 내건 땅의 범주(목단강 이동 전역 모두 고려 땅이란 주장)를 철회하고 우리가 규정한 영토로 두는 것으로 하고, 갈라전 자체는 고려의 것으로 한다. 대신 고려는 우리에게 매해 공물을 바치게는 해야 할 것이다!”
결국 테무케도 한발 물러나 카툰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두 사람 모두 상대의 제안을 따르되 그 내에서 자기의 지위와 이익을 확보하며 거래는 성립된 것이다.
세상을 호령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 몽골 제국 내부에선 이렇게 겉에선 보이지 않는 무수한 상념들을 품은 이들이 준동을 하고 있을 때, 동방의 일국(一國) 고려에서는 그러한 제국의 동태를 크게 경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