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30
530화
29장 한라산회맹(漢拏山會盟)
한라산.
이번에 한라산회맹 의식에 참석하기 위해 산을 오른 사절들과 그들을 호종하는 인원만 하여도 수천이다.
다른 호종 인원들을 산 아래에 두고 왔음에도 이 정도인데, 산 아래 있는 이들과 상인들까지 포함한다면, 현재 탐라국에는 탐라국의 인구에 필적하는 외국인들(고려인 포함)이 머무르고 있는 셈이다.
이것만 봐도 이번 회맹에 참가한 나라가 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이상으로 전근대 제주도의 인구가 매우 적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탐라국의 인구는 아직도 2만 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양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으로 상당수의 양 씨 일가 및 그 세력하에 있던 호족들 산하의 탐라인들이 고려로 끌려갔는데, 이 수가 수천 명으로 탐라국에서 있어선 수분의 1 정도로 빠진 셈이다.
그렇게 빠진 인구를 빠른 시간에 충당하는 게 쉬울 리 없다.
때문에 이번 회맹에 참가하는 외국인들을 대접하기 위한 인력 중 제법 많은 수가 고려와 용강상단에서도 많이 차출했다. 전자는 외교 관련 인사들 위주로, 후자는 장사나 일꾼들 위주로 말이다.
이번 일이 일이다 보니, 공적인 일인지라 조정에서도 별 반대가 없었고, 후자에 이르러선 오히려 돈을 벌고 있다.
물론 용강상단이 수익을 번다고 탐라 본토 상인들을 억압하지는 않았다. 탐라 상인 자체가 수가 적고, 반대로 손님이 많은데 굳이 탐라인들과 드잡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드디어 이제 시작하는 건가?’
* * *
회맹 의식에 앞서 단 앞에서 송 천자를 대신하여 참석한 송의 복왕은 패자(霸者) 고려 대왕을 대신하여 이 자리에 오고, 장차 (명목상) 몽골과의 전쟁에서 천하연합군의 총사령관(總司令官)에 해당하는 당대의 악의(樂毅 연나라 명장). 왕검을 고명(誥命)과 함께 대장군에 재수하였다.
“…(전략)…경은 천성이 엄숙하고 장엄해서 사람들이 모두 정중하고 공손하다고 칭찬하도다. 경은 사욕을 이기고 예를 다하니, 짐을 우러르고 사모하며, 만방의 모범이 된 지가 여러 날이 되었도다. 지금 적이 크게 성하여 천하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짐은 경의 위세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당대의 난세를 정벌하기 어렵도다.
이에 패자(霸者) 동평왕(東平王) 고려대왕(高麗大王) 철(㬚 고려 고종)을 대리하는 고려국(高麗國) 왕태자(王太子) 왕검(王儉)을 ‘천하전국탕정대장군(天下戰國蕩定大將軍 어지러운 난세를 평정할 천하대장군)’으로 삼아 적을 정벌하는 권한을 모두 경에게 위임하노니, 경은 속히 제후들과 함께 협력하여 이길 계책을 세워 빠른 시일 내에 승전보를 알리기 바라노라.
아, 한 황실의 중홍에 어찌 스물여덟 명의 장수가 모두 모이기를 기다렸겠는가? 당나라가 오원제(吳元濟 당나라 시기 반적)를 섬멸할 수 있었던 것 한두 신하가 힘을 합쳤기 때문이다. 이제 경이 힘쓰고 힘쓸지어다!”
그리고 조서를 내리자 그들로부터 다소 뒤로 떨어져 있던 탐라 성주 고적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아뢰었다.
“지금 고려국 왕태자께서는 대송 천자의 칙서에 따라 만방의 대장군으로 제수되었습니다. 오늘은 기일 중 기일로 이제 주나라 무왕(武王)이 여상(呂尙=태공망)을 제수하고 한나라 고조가 한신(韓信)을 제수하였던 옛일에 의거하여 설치된 단장(壇場)에서 대장군으로서 여기 모인 만방 제후들과 함께 회맹의 예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왕검과 복왕은 이에 따라 쌓인 단을 향해 함께 나아갔다. 단의 길이와 넓이, 네모지고 둥근 모양은 각각 법도를 따랐고, 이미 모든 예전(禮典)이 다 갖추어진 상태로 기다리고 있으니, 왕검이 맹주가 되어 희생(犧牲 제물)인 하얀 소의 귀를 잡고, 복왕 조여예가 회맹의 의식을 주관하기 시작했다.
“대고려국 왕태자. 신 왕검은 삼가 대송 황제와 대고려국 대왕의 명을 황천후토(皇天后土) 천지신명(天地神明)께 아룁니다.
천하가 신의 미진한 능력을 높이사 대송 왕자(王者)와 고려 패자(霸者)께 큰일임을 받는 분에 넘치는 영광을 받아, 이제는 마침내 천하대장군에 제수되어 이제는 북적을 정벌하는 일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하니, 천하만국 만민의 안전을 위해 적을 몰아낼 수 있기를 바라니, 천지신명께서는 노여움을 풀고 도와주시어 속히 천하의 난세 평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시오.”
축문(祝文) 읽기를 마치자, 복왕이 친히 맹주(盟主)를 상징하는 검을 들고 무릎을 꿇고, 왕검에게 바치면서 말하였다.
“원컨대 전하께서 이 천하회맹군(天下會盟軍)의 맹주를 상징하는 의천검(義天劍)으로 들고 천의군(天意軍 천하연합군)을 이끌고 속히 대적을 소탕하여 천하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왕검이 그 검을 받고는 검으로 먼저 잡은 흰소의 피를 묻히고 손으로 검 면을 닦아 입술에 바르자, 참석한 모든 사절의 정사들도 차례대로 입술에 희생의 피를 바르는 삽혈(歃血 입술에 피를 발라 맹세)의식을 치르며 회맹을 행했다.
삽혈 순서는 맹주인 고려 왕검과 개최를 허락한 송의 복왕이 최우선이었고, 최하위는 고려 제후인 유구의 의본(기혼)과 우산국주 백겸이었다.
그렇게 회맹의 의식이 다 끝나자 모두가 단에서 내려오니 천하회맹 의식은 드디어 끝이 났다.
“적의 세력이 매우 치성(熾盛 불길 같이 성하다는 의미)하다고 들었는데, 전하께선 시기가 언제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왕검이 단에서 내려오자 가장 먼저 출병의 질문을 한 것은 송의 복왕도, 대리국의 정사이자 장군 ‘고화’도 아니었다. 대월국(=안남국)의 정사로 온 국상보(國尙父) 진수도(陳守度)라는 대신(大臣)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한 것은 복왕이었다.
“몽고적의 용맹과 흉폭함은 그 옛날 흉노와 초나라 항적(項籍)에 비견된다. 하나 항적의 용맹함이 천하의 으뜸이었지만 한의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은 이길 수 있음을 미리 헤아렸으며, 위(魏)나라 조조(曹操)는 당대 제일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공근(公瑾) 주유(周瑜)는 그것을 격파할 수 있음을 계산하였다. 경이 논한 바가 또한 이와 부합하니, 기일과 때를 맞추면 출병을 할 것이네.”
이때 왕검은 복왕을 잠시 의아하게 바라보다가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몽고의 성정상 혈전(血戰)을 결행하는 것은 피할 수 없네. 풍후(風后)가 황제(黃帝)를 보필하자 역목(力牧)이 장수의 일에 전념할 수 있었고, 위상(魏相)이 재상이 되자 조충국(趙充國)이 강족(羌族)을 격파할 수 있었으니, 이는 안팎이 서로 협력하여야지 일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네. 예로부터 안에는 좋은 재상이 있고 난 후에 바깥에는 좋은 장수가 있는 법이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이네.
반대로 하송(夏竦)이 몰래 시기하자 범중엄(范仲淹)이 끝내 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지 못하였으며, 진회(秦檜)가 공공연히 배척하자 악왕(岳王 악비)이 끝내 군대를 되돌리게 되었으니, 이는 지난날의 거울로 삼을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몽고는 대적이니 우리도 이 절차를 뛰어넘어 일을 행할 수는 없을 것이고, 반드시 기초를 다지고 먼저 힘을 모은 후에야 일을 하는 것이 거사를 성사시킬 방안일 것이네.”
복왕은 이 말에 고개를 숙이며 크게 동의하곤 다시 진수도(陳守度)를 보며 말했다.
“전하들의 말씀대로입니다. 안남국도 크게 지원하여야 할 것이네.”
송과 고려에서 그렇게 말하니, 회맹에 참석한 이상 진수도는 실제 보내는지와는 별개로 일단은 그러겠다고 대답하며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하산하는 도중에 대월에서 다시 사람을 보내 왕검에게 조용히 전달하니 그 내용을 요약하면, “식사 자리를 마련했으니 고려 태자 전하와 은밀히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라는 것이었고, 이에 왕검은 “참가하겠다.”고 답하였다.
* * *
이후 식사 자리가 되자 오늘 있었던 회맹 의식에 대해 말을 하는데, 그 내용이 의기롭고, 용맹하니, 찬탄이 나온다는 것을 시작하다가 본론을 꺼내니 바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
“오늘 회맹에 참가하는데, 기어코 삽혈의식에 군후(君侯=제후)가 아닌 자가, 제후의 신분으로 참가하였으니 이해할 수 없어 통탄할 따름입니다.”
왕검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남만의 술을 들이켜며 반문하니 진수도는 더욱 불쾌감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무슨 말이오?”
“어찌 모른 척하시는지요. 회맹에 앞서 이미 사람을 알려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가 어찌 고려에 있는지는 모르나, 그는 회맹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기어코 그자를 회맹에 참가시키고 본국과 함께 삽혈까지 하게 하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뜻이신지요.”
점점 날이 서는 그의 말을 두고 왕검은 제 잔에 술을 따르고는 다시 마시며 모르쇠 하는 태도를 유지하며 말하였다.
“하여, 그 순서를 안남국보다 뒤로 두지 않았소?”
회맹의 삽혈 순서는 곧 제후의 순서다. 맹주인 왕검과 장소를 제공하고 복왕과 함께 사맹(司盟 맹약의 기재(記載)나 그 의례 담당하는 벼슬)의 역할도 겸하고 보조하던 탐라 성주는 예외적으로 본래 순서보다 다소 앞서서 받더라도 이해받았으나 그 외에는 달랐다.
형식적인 것은 알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 자신보다 앞에 서는 것만은 싫다는 자존심 문제로 회맹에 앞서 왕검을 만난 각국 사절들은 상당수가 이 순서 문제를 은근슬쩍 거론했을 정도였다.
이 중 유별난 게 반응한 것이 대월과 참파였는데, 서로가 앙숙이던 나라답게 참파는 이번 회맹에서 대월이 먼저 삽혈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왕검을 찾아가 불만을 표했다.
“우리는 천자의 명을 받고 여기에 왔습니다. 왕자(남송)와 패자국(고려)는 몰라도 어찌 감히 안남 따위를 우리보다 앞서게 하시려는지요?”
“양국 중 어느 누구를 홀대하거나 할 생각이 없소. 그저 귀국의 정사보다 안남국 정사의 나이와 그 나라에서 지위가 높아서 그런 것이오.”
이때 왕검은 대월의 정사 진수도(陳守度)가 참파의 정사보다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다는 점을 구실로 그들의 불만을 달래주었고, 참파는 불만을 느끼면서도 순서를 뒤집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해서 정사의 연공 때문이란 구실을 받아주기로 했다.
그게 그들로서도 그나마 체면을 챙길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참파보다 우대받았음에도 대월국 진수도의 불만과 경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이번 회맹에서 그의 가장 큰 불만과 경계심은 참파가 아니라 고려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순서의 문제가 아닙니다. 군후가 아닌 자가 귀국의 제후가 되어 회맹에 참가했다는 것 자체가 통탄스러운 것입니다. 고려가 무슨 저의로 그를 제후로 삼고, 이 자리에 참가시킨 것인가 그게 궁금한 것입니다.”
“이번 회맹에서 보았듯이 당대 아조는 계절존망(繼絶存亡)의 도를 행하고 있으니 이것은 덕치를 근간으로 삼으시는 주상의 뜻이기도 하네.”
“하면 지금 고려는 ‘그’를 복위시키는 것도 고려 대왕의 덕치에 들어간다고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근래 들어 고려가 명성이 자자하다고 하더라도 그 명성이 절대적인 것은 어디까지나 고려나 요동이다. 해동 밖으로 가고, 송 너머에서는 그저 멀리 있는 나라에 불과하다.
하물며, 대월은 고려 이상으로 외왕내제를 추구하는 만큼 회맹에 참가했다고 하더라도 자국이 고려보다 아래거나 국력이 약하다는 생각도 일절 하지 않았다.
애당초 작금의 대월국의 왕은 이미 남송으로부터 안남국왕(安南國王)으로 책봉을 받은 지 오래였다. 명목상 제후인 고려가 그것을 뒤집는 게 쉬울 리 없었다.
덕분에 흑태자의 말에도 진수도는 눈 하나 꿈적하지 않은 채 강경한 목소리로 되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흑태자는 그 강경한 반응마저 무시하며 술을 들이켜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오늘 회맹에 참가하여 삽혈한 안남국은 귀국인가? 아니면 전조인가?”
“…….”
그 반문 하나에 적의가 고조되던 진수도는 즉시 입꼬리를 올리고는 다소 누그러진 적의와 함께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 늙은이가 편협한 식견으로 성급한 판단을 내려 왕태자 전하께 큰 무례를 언사를 내뱉었습니다.”
“아니오. 화산후(花山侯) ‘이용상(李龍祥)’에 대한 귀국의 사정을 내 어찌 모르겠소.”
#작가의 말
*정말 오랜만에 다시 언급되는 이용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