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31
531화
30장 이용상(李龍祥)
대월(大越)의 권신(權臣) 진수도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좋은 의미라면 혼란스러운 대월의 난세를 평정하고, 국력 성장에 기틀을 만들고 있다는 측면이고, 나쁜 의미로는 그 방식과 결과가 연개소문과 흡사했다는 점이다.
그 예를 들자면 자신이 모시던 왕과 왕족, 귀족들을 도륙 내고 권력을 가졌다는 것과 그렇게 권력을 쥐면서도 스스로는 왕좌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의 차이가 있다면 연개소문은 왕조를 바꾸지는 않았는데, 그는 스스로 왕좌에 오르지 않았을 뿐, 기존 왕조 이조(李朝) 대월을 멸망시키고 기어코 자신의 조카를 왕으로 옹립시키며 자신의 가문으로 대월의 새 왕가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다만 현 대월의 권신이 진수도인 만큼, 왕위를 조카에게 준 것이지. 권력을 준 것은 아니기에 그의 권세는 여전히 강력했다.
당장 권신인 그가 회맹에 직접 참가했다는 점에서 대월 내에서 그의 권세가 얼마나 굳건하고 강력한지 증명하는 셈이다.
물론 그가 회맹에 참석한 이유가 그저 자신의 권력이 강하다는 것을 주변에 알리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강력함을 선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목적한 바에서 부차적으로 오는 것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고, 참석 자체는 다른 이유가 더 컸다.
“진수도가 직접 참가했다고?! 아니, 그가 왜 이런 일에…?!”
하나, 진수도의 생각을 모르는 이들, 특히 대월과 앙숙인 참파의 입장에선 별것도 없어 보이는 회맹에 자국에도 이름을 날린 적국의 권신이 직접 참가했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이곳에 자신들이 모르는 밀약이 있는 것이란 의심을 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이후 삽혈의 순서에서도 밀리는 굴욕을 당하면서도 진수도가 직접 오면서 중한 일을 약조한 것 같다며 자가 납득하며 물러났으니, 그의 참가가 주변 여럿에게 많은 오해와 심적 피로를 안겨다 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진수도의 위명과 위상이 남만 대월국 주변에선 가히 흑태자에 준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해동의 작은 소국에 왔다가 예상치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되니….
“고려 제후 중 한 명이 리롱뜨엉(*이용상 베트남 발음. 이후 편의상 특수한 경우 제외하면 이용상으로 표기하겠습니다.)이라고?”
그건 진수도의 머릿속에서 천천히 잊히며 사라져 가던, 그리고 한때 많은 관심이 갔던 자의 이름이었다.
* * *
진수도는 당대의 진씨(陳氏) 대월이 개국되는 데 큰 공을 세운 공신의 수준을 넘은 사실상 실질 창건자나 다를 바 없었다.
이 씨 왕조의 마지막 왕이자 여왕인 소황을 조카와 결혼시킨 후 소황이 어리다는 핑계로 남편인 조카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하고, 그 후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핑계로 이혼하게 만들어 왕후의 자리마저 내리며 온전히 이 씨 대월 왕조를 만든 것이 그다.
그리고 그렇게 이씨 왕조가 만들 때 기존 왕족을 중심으로 뭉쳐질 것을 우려하여 조치하였으니 바로 구 왕족의 숙청이라는 당연하면서도 끔찍한 조치였다.
이때 이 씨 왕족들은 마지막 왕이었던 소황과 그 언니를 제외하면 사실상 전부 숙청되고 살아남아도 성을 바꾸며 살아가게 되었는데, 단 한 명 죽지 않고 성도 갈지 않은 채 살아남은 왕족이 있었다.
그는 이조 대월 제6대 왕 영종(英宗)의 일곱째 아들이었다. 그는 조카 혜종(惠宗 이조 대월 제8대 왕)이 즉위하자 평해공 이군필, 진일조(陳日照)과 함께 삼공(三公)이 되어 국정을 위임을 받았다.
그러나 진수도의 성장과 야욕을 막지 못해 조카가 진수도에게 의해 자살을 강요당해 죽는 것을 봐야 했고, 조카 딸이 그 권신의 조카와 결혼하는 것도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진수도가 다른 왕족들마저 죽이려고 하는 것을 간파한 왕자는 가족들과 함께 배를 타고 나라 밖으로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라에서 벗어난 왕자가 진수도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다를 떠돌며 당도한 곳이 바로 고려의 서해도 옹진현(甕津縣 오늘날 황해도 옹진군)이었다.
당시 도적들이 마을 사람을 습격하던 것을 본 그는 도적을 소탕하였고, 이를 인연으로 왕자는 자신이 망국의 왕자라는 사실을 고려 왕에게도 전할 수 있었다.
당시 이미 고려의 왕이지만 최 씨 정권이 국정을 장악당한 시절이었던 왕철은 그런 망국의 왕자에게 연민을 느끼고는 바로 식읍을 하사하고 작위를 내리려 했으나, 처음 조정에선 반대가 많았다.
“폐하. 안남 왕자가 공을 세우고, 사정이 딱하긴 하오나 금은과 미곡을 내리는 것으로도 충분히 편의를 봐주는 것이옵니다. 하물며 주상께서는 지금 외인에게 식읍과 작위까지 내리겠다고 하시니 뭇 신료들은 광종 대왕께서 서인(西人 서쪽 사람. 여기선 중국인을 의미)들을 중용하던 것을 떠올리며 깊이 우려하고 있사옵니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그리고 왕자로 대우한다는 아조의 제왕(諸王 다른 왕족들)과 같은 작위를 내린다는 말인데, 어찌 타국의 왕자가 아조의 왕자들과 동등할 수가 있다고 하시옵니까? 이는 광종 대왕께서도 하시지 않은 일이옵니다.”
“그것만이 아니옵니다. 아조와 안남국은 본래 악감정도 없고 악연도 없었고, 당대의 안남국도 우리가 경계해야 할 필요조차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저들의 전조의 왕자를 극진히 대접한다면 저들이 어떤 오해를 하겠나이까? 이를 보아도 안남국 왕자에게 작위를 내리는 것은 나라에 터럭만큼도 이익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줄 이유가 있냐는 조정 신료들의 의견 앞에서도, 고려왕은 없는 권력을 이용해서라도 그들을 달래며 설득하였다.
“경들의 우려는 이해하나 먼 나라에서 온 손님을 어찌 홀대하겠소? 내가 안남 왕자를 대우하는 것은 작금의 안남과 적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도적을 토벌한 공을 기리고 인정으로 하는 것이니 논할 것이 없소. 또한 다른 제왕과 신료들이 우려하는 일이 없도록 그 지위를 혼란이 일지 않도록 할 것이오.”
그러면서 안남국의 왕자에게 식읍과 작위를 내리되 고려 초기에나 왕자에게 사용하던 군(君)으로 봉한 것이다.
봉작(封爵)이 형식상 제후로 봉한다는 의미라는 것과 군(君)이 중국에선 주나라 전국 시대에 후(侯)로 책봉 받지 못한 읍의 소유자를 부르는 칭호인 것을 감안하여 안남국 왕자를 봉군(封君)한다는 것은 식읍을 주며 존중하겠으나 그 의전은 고려의 제후를 넘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
어찌 보면 외왕내제(外王內帝)라곤 하나 자국에선 황자에 왕작까지 있던 그에겐 제후조차 아닌 군호는 굴욕이겠으나, 당장 나라에 있을 때에도 권신에게 죽을 뻔하다가 겨우 도주한 안남국 왕자는 자국과 비슷한 처지인 고려 왕실이면서 단순히 이름뿐인 작위가 아니라 식읍까지 내린 고려왕이 자신을 모욕하고자 준 것이 아니라 정말로 과할 정도로 대우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폐하께서 망국의 왕자를 이리도 과하게 대우하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흥망성쇠(興亡盛衰)는 필연이라, 망국이라는 건 어느 나라도 피할 수가 없다. 그대가 망국의 왕자가 된 것처럼 짐도 언제 망국의 왕이 될지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런 고종의 편의 끝에 안남국 왕자는 고려의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지니 그가 바로 이용상(李龍祥)이었다.
* * *
그렇게 고려왕의 파격적인 배려로 화산군에 봉해진 이용상이 원 역사에서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1253년 제5차 여몽전쟁이 발발하면서 몽골군을 격퇴하면서였다.
그러나 역사가 개변되면서 그는 다른 시기, 다른 이유로 존재감을 드러나게 되었으니 우연히 무산계를 받거나 상을 받아도 될 북방의 연로한 노인들의 보고를 받다가 이용상을 알게 된 왕검에 의해서였다.
한라산 회맹에 추가로 보낼 고려 제후로 왕검은 안남국 왕자였던 이용상을 천거한 것이다.
“하오나 전하. 화산군을 단순히 봉작하는 것은 몰라도, 회맹에까지 참가시킨다면 작금의 안남국에서 본국을 적대하거나 반감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화산군 이용상에게 정식으로 봉작(封爵)하고 회맹에 참가시키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에 마지막에 와서 추가로 제후를 늘리는 행위가 달갑지 않은 신료들은 일전에 왕에게 한 이유를 들어 반대해 봤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도 상대도 모두 다른 상황에서 이미 의지를 굳힌 왕검의 뜻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화산군을 봉작하고 제후로 삼겠다고 했지. 그를 안남국왕으로 복위시키겠다고는 하지 않았네. 오히려 그를 보임으로써 현 안남국의 근심을 제거하고, 안남국 구 왕가를 구명하여 존속시키는 방도가 없나 모색하고 싶은 것이네. 이는 성공하면 더할 나위 없고, 실패하더라도 큰 탈이 없으니 충분히 시도할 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네.”
결국 이용상의 연세도 이미 조정 신료였으면 궤장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양인이라고 할지라도 조만간 무산계를 받을 정도로 연로하니 그냥 작위로 주자는 왕검의 마지막 말에 못이기는 척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 *
이용상은 이번 회맹에 그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처음 봉작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이용상은 그러려니 했다. 이미 그 나이가 환갑을 넘어 70이 다 되었다. 이용상 본인부터 자기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지 의심스러운 나이였다.
“얘야. 밥은 아직이니?”
수년 전 흑태자의 활약을 들었을 때에도 이미 부러움 이상으로 아쉬움과 자조감이 컸던 그다. 지금 와선 화산군이든 화산후든 큰 의미를 느끼던 상태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한 것은 봉작을 받은 당일 은밀히 전해진 왕검의 비밀서찰을 확인한 이후였다.
“암! 그렇다면 가야지! 내가 가고말고! 내가 탐라국에 갈 것이야!!”
“아, 아버지?!”
이용상은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는 놀라는 주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노비를 불렀다.
“너는 지금 즉시 신료들에게 가서 관복을 준비하고 탐라로 가는 사행(使行)을 채비하라 이르라!”
이용상이 말하는 신료란 과거 대월에서 도주할 때 함께 동행한 부하들을 일컬었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이미 죽었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 이들도 있었고, 이용상은 그들과 함께 갈 의지가 만만이었다.
불과 하루 전만 하더라도 뒷방 늙은이라고 하면 실례일지라도 적어도 그냥 인심 좋은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던 이용상의 거칠고 강맹한 언행에 가족들은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
“아버지? 그들은 왜 부르시는 것입니까? 그리고 사행이라니요?”
“고려 조정에서 이번에 탐라에서 회맹을 하니 나보고 제후로서 참가하라고 하는구나.”
“길이 험한데 어찌 아버지께서… 소자가 대신 가도 되는 것이라면 소자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자식으로서 순수하게 연로한 아버지를 배려한 말이었으나 이용상은 매우 광분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거절했다.
“필요 없다! 이 아비가 고작 탐라 하나 못 갈 정도로 나약해 보이더냐!”
“…그런 것이 아니라….”
“시끄럽다. 내가 간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갈 것이야!”
이러한 고집은 이용상만의 것이 아니었다. 노신들의 자식들과 가족 중에서도 늙은 부친이 여행길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 것을 우려하여 말리려고 했으나 이용상이 받은 비밀서찰의 내용을 알려주자 노신들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모두 참가 의지를 강하게 토해냈다.
“하, 하면 가야지! 가고말고! 얘야. 채비하려무나.”
“아버님.”
“아가. 만약 나를 막는다면 나는 오늘 대들보에 목을 매달고 죽을 것이다!”
“내가 이번 사행으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갈 것이다. 막는다면 너는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
“하늘도 무심하지 않으시구나. 말년에 드디어 충정을 증명할 기회가 생겼어!”
모두에게 염파(廉頗 조나라의 명장)라도 빙의한 것인지 다 죽어가는 노신들은 이번에 사행에 갈 수 있는 건장함을 피력하고 안 되면 협박을 해서라도 갈 것을 고집했다.
이용상을 비롯한 구 안남국 노신들이 참가를 표명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번 회맹에 그대들이 참가하여 살아 있다는 것만을 알리는 것으로도 천하가 그들을 규탄하여 난처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이조의 왕가가 해동에 살아 있음을 안남에서 널리 전할 수 있을 것이로다.’
그 외에 지위를 제후로 두며, 왕은 아니더라도 봉국(封國)에 대해선 거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그런 것은 그들에게 부차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과거 목숨을 구명하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도주하며 복수를 꿈꿨으나 어느 사이엔가 복수가 불가능함을 인지했다.
심지어 충정을 위해 도주한 것이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는 사실에 회한을 느끼고 있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 충정을 고국은 물론 천하에 알리고 진가(陳家) 놈들을 놀라게 할 기회가 있다는 사실은 오늘내일하는 노구에 활기를 가져다주기 충분했다.
특히 이용상에 이르러선 과거의권토중래(捲土重來)를 위해 바다로 몸을 던졌던 시절 총기(聰氣) 있던 눈빛을 되찾으며 고국에서 도주할 때 챙겨와 고이 보관하던 조카의 왕관(王冠)과 용포(龍袍), 그리고 상방보검(尚方寶劍)까지 챙긴 채 고려의 탐라 행 배에 올라탄 것이다.
그런 노구들을 이끌고도 회맹에 참석하는 그들의 의지를 고려에서도 인정하여 회맹의 삽혈의식에서 이용상의 순서를 고려 제후 중 위로 두니, 그 순서는 탐라 성주 바로 다음이었다.
#작가의 말
*이용상을 첫 등장시킨 게 1부였으니 작품 외적으로도 수년 만에 재등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중 고려 조정에서 이용상에게 작위는 심하다고 반대하자 왕이 오등작(五等爵)이 아닌 봉군(封君)을 했다고 적었으나 실제《화산이씨세보》에서는 그냥 망국의 왕자에게 연민을 느껴 화산군으로 삼았다가 끝입니다.
그러나 1부 시절에도 말했지만 고려 초기에나 쓰지 작중 시기에선 고려에서도 쓰지도 않던 군호(君號)를 이용상에게 내렸다는 것이 이상해서 저렇게 창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