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33
533화
31장 여금협약(麗金協約)(2)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회수 이북은 본디 우리의 땅이었습니다. 북벌이 무사히 성사된다면 회수 이북의 땅을 본국에게 돌려주신다고 확답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말하는 것만 본다면, 마치 조(趙)의 인상여가 진(秦)의 소양왕의 성을 줄 테니 옥을 달라는 요구에 옥을 들고 갔다가 옥만 먹고 입 닫을 듯하자 성을 주지 않으면 옥을 부숴 버리겠다고 협박한 것과 같이, 북벌에서 금나라에게 땅을 준다는 약속을 하지 않으면 회맹이든 뭐든 안 하겠다는 것 같다.
그러나 실상은 회맹 의식은 이미 끝나고 삽혈의식도 마친 상태라, 정상적으로 보면 뒷북이나 다를 바 없다. 다만 현재 잔금의 상태를 생각하면 이 행동이 미련하게 뒷북을 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고려는 계절존망의 도를 행하며 자못 만방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본국은 고려와 고래(古來)부터 같은 뿌리였으며, 당대에는 그 친교가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하여 황상께서는 고려의 회맹 요청에 즉각 응답하며 협력하고자 저를 보냈으니 가히 본국은 송과 고려에 협력을 다할 것을 천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국이 되찾아야 할 땅에 대해선 고려에서 아무런 언급이 없으니 일국의 정사이자 대신으로서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이야 잘하는군. 협력을 하지 않으면 결국 몽골에게 멸망 당하는 미래밖에 없으니 협력하는 것이고, 이제 와서 땅에 대해 말하는 것도 이미 회맹 의식을 끝냈으니 이제 와서 고려나 송이 빠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그러는 것이면서….’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의 금에겐 방도가 없다는 것도 현실이다.
“땅의 주인임을 논하자면, 그 땅은 송의 땅이기도 하지 않은가? 나아가 옛 땅을 전부 운운하자면 요동도 전부 금국의 땅이 되는데, 이 경우 아조의 갈라전도 달라고 할 것인가?”
“물론 요하 이동도 본국의 땅인 것은 맞습니다. 국가 발본한 지역이 요하 동쪽인데 어찌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
협력을 요청하는 입장상 이걸 지적하면 움츠러들 줄 알았는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렇다고 말한 것은 솔직히 놀랐다.
사실 금 건국과 초기까지 본거지가 요하 동쪽이었는데 그걸 부정하긴 힘들긴 하다. 고려로 치면 개경을 빼앗긴 상황에서 무력에 겁난다고 개경이 고려의 땅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꼴이니 말이다.
참고로 원 역사 원간섭기의 고려만 해도 동녕부가 한반도에 있는 동안 지속적으로 서경은 고려의 중요한 땅이라고 반환 요청해서 결국 동녕부를 받았다.
개경이나 발본지가 걸렸다면 무력을 떠나 자기 땅이었다는 주장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고려와 우리 뿌리는 같으며 요동에 대해서도 어느 나라들과 비교해도 밀접합니다. 본국 이전에는 옛 고려(고구려)와 조선의 발본도 요동인데 어찌 그것을 부정하겠나이까? 그러니 요동 이동에 대한 관리는 본국과 고려 어디가 취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동문(同門)이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하. 송은 아닙니다. 송과 본국이 같은 뿌리입니까? 아니면 고려와 송이 같은 뿌리인 것입니까?”
“…아닐세.”
당연한 말이지만 금나라가 갈라전을 비롯한 요하 이동의 우리가 이미 점유 중인 땅을 돌려달라고 해도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러나 현재로선 명분으로나 앞으로 ‘협력해서 싸워야 할 전쟁’을 염두에 두면 돌려주진 않더라도 저들이 원래 자기 땅이었으니 반환 ‘요구하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저들은 지금 이후 논쟁에서 자신들이 불리할 것은 감안하고서라도 요동을 두고 고조선과 고구려의 발흥지라고 먼저 언급하며 인정하고 요하 이동의 땅에 대해선 같은 뿌리인 고려의 점유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해준 것이다.
이건 요동의 땅에 대한 점유권에 대해 고려와 금이 대등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거 한 방 먹었군.’
내가 몽골이나 남송, 동요에게 줄곧 써먹은 ‘이들(거란, 여진)이랑은 같은 뿌리니까. 이제 우리가 먹음.’이라는 논리를 역으로 써먹은 것이다.
거기다 고려와 금의 뿌리는 같으니 점유 권리가 대등하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동시에 남송과의 회수 이북 반환 문제는 고려와 여진의 요동과는 문제가 다르다는 말이다.
여기서 그래도 ‘송나라 고토니까’라는 말을 하면, 이쪽에서 스스로 같은 뿌리인 여진과 고려의 점유권과 근본이 다른 남송과 금나라의 고토 문제는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한 격이 된다.
이제 회수 이북은 송의 땅이기도 하다는 말로만 설득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그래. 애당초 고토라는 이유로 몽골과 동요에게서 갈라전과 만주 여기저기를 받은 이쪽에서 고토가 무슨 상관이냐는 말로 무마하기도 힘든 노릇이고….’
남송인들에게 금나라의 체면을 신경 써서 섣불리 자극하지 말라고 한 내가 그들이 굽힌 자존심을 더욱 굽히게 만들어 고집을 하는 것도 문제다.
“본국이 지금 사정이 어려워 송과의 외교에서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것은 수치스러우나 사실이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부디 본국의 어려운 처지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지난번 옥새 문제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금나라의 외교는 마치 내가 몽골이나 남송에게 하는 것을 역이용하는 것이 뻔한데 쉽게 막기가 힘들다.
‘뭐, 실패하면 나라가 진짜 망하니까 처절하게 발악하는 것도 당연하긴 하지만….’
“흠. 나라고 어찌 귀국의 사정을 모르겠는가? 그러나 이번 북벌에 남조의 협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네. 아조가 대군을 보내고 싶으나 귀국과의 거리가 멀어 돕기 힘드니 어찌 남조의 도움 없이 귀국의 사직을 보존하고 중흥사업을 완수하겠는가? 우선 대적을 토벌하고 차차 논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과인’도 쉬이 답할 수가 없는 것이네.”
“전하. 본국은 이미 중원에서 고립되어 있으나 고려와 전하만을 믿고 여기까지 온 것이옵니다. 그런데 전하마저 그리 말씀하시면 본국은 누굴 믿고 힘껏 싸우겠나이까? 잊으셔선 아니됩니다. 송은 과거 요를 상대로는 ‘전연의 맹(澶淵之盟)’을 어기고, 본국 상대로는 해상의 맹(海上之盟)을 배신한 후안무치한 나라입니다. 작금에도 몽고가 본국의 채주를 칠 때 몽고에 붙은 자들인데 그를 믿을 수 있사옵니까?
게다가 지금 본국의 황제가 있는 성과 땅들도 저들이 말하는 송의 옛 땅인데 저들이 끝없이 욕심을 부려 지금의 땅마저 돌려달라고 하면 우리는 어찌 살 수 있겠사옵니까? 그리되면 본국이 망할 것인데, 확답을 받지 못할 바엔 차라리 여기서 굶어 죽거나 도끼에 맞아 죽는 형벌을 받을지언정 돌아갈 수 없습니다!”
확답을 받지 못하면 차라리 죽겠다며 꼿꼿한 자세로 당당히 말하는 곽하마의 모습은 마치 책봉을 하지 않을 거면 굶어 죽겠다는 고려 유응규의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작자에 대한 원 역사의 평가가 사실이라면 단식이나 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오기처럼 뭔가 사달을 낼 작자인데…. 에고고. 금을 상대론 유독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당하는구만.’
유응규의 단식에 곤란함을 느꼈던 금 세종의 기분을 알 것 같다. 맹주가 되자마자 세 번째로 삽혈한 나라의 정사가 돌아가지 않고 죽었다고 한다면 곤란하다.
하물며 명분적으로나 심정적으로도 동정하는 대상이 저렇다면 이제 구구절절 길게 끌어봐야 이쪽이 피곤하다.
‘그래. 내가 졌다. 내가 먼저 패를 공개하마.’
“곽공(郭公)은 어찌 쉽사리 목숨을 버린다고 하는가? 공(公)만을 믿는 귀국의 많은 이들은 어찌하려는가? 공의 걱정은 아조도 알고, 공이 말한 것처럼 본국은 계절존망의 도를 실천하고 있는데, 부자의 나라(父子之國)이자 친척의 나라(親戚之國)인 귀국의 사직이 끊어지는 것을 가만히 관망하겠는가? 당연히 생각한 바가 있네.”
순간 부자의 나라라 말에 살짝 꿈틀댄 것 같지만 이내 갈무리한 듯하다.
입장적으로 불리한 건 알지만 그래도 완안부 시절처럼 아버지의 나라로 있는 것은 싫다 이거냐? 그래도 이 자리에서 이미 뿌리를 긍정한 시점에서 이걸 대놓고 부정은 못 해 이 녀석아!
“무엇이옵니까?”
“우선 아무리 과인이라고 할지라도 회수 이북을 귀국에 전부 반환하라는 것은 어렵네. 남조가 그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고, 혹 여기서 억지로 말한다고 하더라도 남조가 정말로 순순히 줄 것이라고 믿는가?”
“그러니 고려에서 도와준다면….”
“불가능하네. 남조가 북벌을 하는 것은 정강의 변으로 잃은 땅은 물론, 연운 16주까지 복구하는 것인데, 적어도 옛 수도인 개봉을 얻어야 송 황제와 조정에서도 몽고적과의 전쟁에서 성과를 얻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네.
그것을 막겠다면 저들은 아조를 불신할 것이고, 설령 억지로 맹약을 맺게 한다고 해도 그것이야말로 해상의 맹과 다를 바 없네. 아니, 적당히 기회를 보아 그대들을 몽고에게 팔아 공명하거나 화살받이로 이용할 수도 있겠지.”
곽하마의 얼굴이 굳었지만 부정하진 않았다. 남송이 채주성에서 몽골과 협력하여 금 애종을 잡은 것이 아직 10년도 안 지났다. 남송이 금을 불신하듯, 금도 남송을 매우 불신하고 있다.
“그리고 아조는 중원의 서북부까지 보내기엔 보급의 문제도 있고 힘드네.”
중원의 서북부 끝까지 가는 것은 사실상 만리장성 대장정 수준이다.
“하면 결국 본국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참으란 말씀이십니까?”
눈썹을 꿈틀거리며 반문하는 그 모습은 이 인간이 나를 태자로 보는 것인지 아니면 맞먹는 장수로 보는 건지 모르겠다. 너랑 싸울 생각 없으니 눈썹에 힘 좀 풀어라.
“성급히 단정하지 말게. 귀국은 이번 북벌에 협력할 것이고 함께 싸울 것인데 답례가 없다며 어찌 그것을 무시하겠는가? 그리고 회수 이북의 백성들은 이제 송보다 금의 백성에 가까운데, 전쟁 중 남조가 점령한다고 그들이 온전히 통어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하면?”
“그렇네. 남조가 아무리 병력이 많다고 하더라도 모든 지역을 점령하며 진격할 수는 없고, 지리도 귀국보다 해박할 수 없네. 하여 나는 전쟁 중 일부 지역을 그대들에게 주도록 해야 한다고 건의했고, 이후 보다 구체적으로 할 것일세.”
“…어디서 어디인지요?”
자국과 상의 없이 자국에 줄, 혹은 자국의 땅을 분할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얼굴이 더욱 굳어졌지만 그래도 이것도 고려에선 노력했다는 것을 이해했는지 다른 말 없이 어느 땅이고, 얼마나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앞서 말한 대로 개봉은 남조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이는 이해해 주게. 그들에겐 정강의 일 이전 도읍만은 어떻게 해서든 탈환한다는 것이 북벌의 근간 목적일세. 그리고 남조가 귀국을 상대할 때, 아조가 귀국을 돕기 위해서라도 아조에 가까운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네. 하여, 산동 지역, 그렇군. 춘추시대로 따지자면 제(濟)나라에 해당하는 강토를 귀국이 맡게 되는 것이네.”
“…제 …입니까?”
제나라는 통일 중원에 비하면 적지만 적어도 한 나라를 칭하기엔 충분히 넓은 영토는 된다. 거기다 지금의 잔금의 영토보다는 수 배, 아니, 십수 배는 되는 땅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영토를 받았다는 것은 귀국이 중원의 동북을 맡아야 한다는 말일세.”
그리고 곽하마도 과연 단순히 용맹하기만 한 장수는 아닌지 전략을 논하는 상황이 되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제, 아니, 연(燕)나라도 포함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물론 요동은 제외되겠지만 말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만리)장성 이남으로 한하여 연과 제의 영토를 귀국이 넣는 것일세.”
아무것도 모르는 이라면 ‘장성 이북과 요하 사이는 어째서 언급 안 하냐? 고려가 가지려는 속셈이냐!’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몽골의 강대한 영토와 그들의 주력 병종을 생각한다면 전쟁이 시작되어 무사히 북진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곳을 점령한다고 하더라도 간혈적으로 뺏고 빼앗기는 격전지가 될 확률이 높다.
그럴 바엔 거긴 완충지대로 두어 요하 동쪽은 고려가, 장성 이남은 잔금이 점령하는 것으로 동쪽으론 우리가, 남쪽으론 잔금이 협격을 하는 것이 전비나 전략적으로도 훨씬 편한 일이다.
“이것이 과인이 현재 귀국에 보장할 수 있는 전부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