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45
545화
41장 점검(1)
“으윽, 주, 죽겠어.”
아직 한여름까진 아니라고 대낮 햇볕 아래의 노동은 제아무리 건장한 장정이라도 고된 피로를 안겨다 줄 수밖에 없었다.
하여 일을 하던 이들은 기진맥진하여 팔의 움직임이 느려졌으나, 감찰하던 이는 그들의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뭐 하느냐! 어서 엎지 못하냐!”
“하지 말라우. 진짜 못하겠단 말이우.”
“쉬지 말래도!!”
어눌한 말로 손사래를 치는 여진인 사내지만 곧장 이어지는 몽둥이질에 곁에서 눈치 보며 함께 쉬고 있던 이들은 다시 팔과 다리를 부산히 움직이며 엎기 시작했다.
그들은 염전(鹽田)에서 일하는 공노비(公奴婢)들이었다. 공노비라고 하지만, 다른 공노비들 사이에서도 취급이 박하였는데, 그들 대다수가 범죄를 저질렀거나 전쟁 중 포로로 잡힌 여진인, 거란인, 한인 등 외지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성실하게 일해야 죄가 삭감되고, 면천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염전은 하루 종일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가운데 쉴 새 없이 소금물을 엎고, 엎고, 또 엎어야 하기 때문에 현대에서도 매우 가혹한 노동으로 유명한 일이다.
때문에 작금의 고려에서도 한 번이라도 경험한 공노비들은 염전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대다수가 거부했고, 왕검도 염전노비는 면천까지의 복무기간이 가장 짧게 책정시켰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하는 이가 많이 없자 기어이 전쟁 포로나 범죄자들을 염전에 투입한 것이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는 적국이었거나 적대한 이들이 (전근대 기준) 짧은 기간 동안 일하면 면천까지 준다는 특혜를 받은 것을 눈꼴 시려했고, 감독관들도 이들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염전의 성과는 이전보다 늘어난 대신 노동의 가혹함은 더욱 심해져 있었다. 이런 가혹함 속에서 그들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들도 전근대인답게 노비들이 할 법한 일이라는 인식과 함께 이 일을 끝내면 돌아올 특혜에 매달려서였다.
“알았소. 알았으니 이제 그만하시오. 그러다가 죽겠소!”
그때 팔 하나가 없는 사내가 몽둥이에 맞고 쓰러진 여진인을 부축하며 감독하는 이를 막아섰는데, 그는 ‘무운’이라는 ‘탐라인’이었다. 지난 왕자의 난에서 탐라 왕자 양원의 편에 들었고, 양원의 세력에서 부천에 버금갈 정도로 높은 이였다.
그러나 전쟁 중 고려군에 한 팔을 잘리고, 포로로 고려에 끌려왔다가 노비가 되었는데, 많은 이들이 유구로 갈 때, 팔 하나도 잃은 채 먼 섬까지 가는 것이 꺼림칙하여 가지 않았던 것이다.
“…노비 놈이… 반말?!”
그러나 그가 과거 탐라에서 어떤 지위였던 지금은 일개 염전 노비에 불과했다. 고려말이 어리숙한 여진인도 아니고, 고려 말에 익숙한 노비가 반말을 하자 감독관은 즉시 인상을 쓰며 그에게도 예절을 주입하는 몽둥이를 크게 들었다.
칭! 칭!
그리고 그때 꽹과리 소리가 염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칫. 새참 시간이군.”
태자가 내린 명령 중 하나인 염전 노비들에게는 매일 새참을 주고, 그 시간은 절대 뺏어선 안 된다는 규칙을 어길 수 없었던 감독관은 꽹과리 소리가 울리자 그대로 몽둥이를 내리고는 돌아갔다.
“후우.”
운이 좋게 맞지 않고 넘어간 것에 그들은 안심하면서 새참을 받기 위해 염전을 떠나 육지로 향했다.
“고, 고마우라.”
“아니 됐소. 그보다 일어설 수 있겠소? 새참 시간이 끝나면 다시 해야 할 것인데?”
“하, 할 수 있우라. 나 할 수 있우라.”
여진인은 그렇게 말하며 제 발로 새참을 받으러 가기 시작했다. 그런 여진의 뒤를 보던 무운은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유구보다 여기가 빨리 면천된다길래 남았는데, 더럽게 힘들구만….”
그날 다른 동포들과 함께 유구로 갈 것을 후회하는 무운이었다.
.
.
.
“이, 이게 뭐시여?”
“고깃국? 새참에 고깃국이 나온 것이여? 와따. 나가 살다가 여기서 고깃국도 먹어보게 됐구마!”
최근 들어 염전에 발령된 노비들은 이번 새참으로 나온 주먹밥과 장아찌, 고깃국 한 사발에 이어 막걸리 한잔까지 나오자 놀라 말했다.
비록 전체적으로 양은 많지 않았지만 고려에서 육고기 요리는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고, 노비들의 새참으로 준다는 것은 결코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다.
물론 새참에 언제나 고깃국이 딸려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간혹이나마 계속 나온다는 것도 충분히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파격적인 새참이 바로 염전 노비들이 가혹한 노동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으니, 양질의 새참은 염전 노비로 발령되기 전 태자가 말했다는 기간 동안 업무를 하면 면천시키고 보상도 줄 것이고, 그사이 보상을 주지 않기 위해 죽이거나 하는 것도 아니라는 믿음도 제공해 준 것이다.
물론 그들이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된 것에는 새참만이 아니라, 지금도 감독하는 이들 중이나 염전 근처에 사는 주민들 중에 전 염전 공노비 출신자들도 있다는 사실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즉, 시키는 대로 하면 면천이 된 자를 눈으로 확인했기에 자신들도 저들처럼 면천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일을 끝나면 저녁은 태자 전하께서 너희들에게 특식을 내린다고 하니, 오후에도 게으름 피우지 마라.”
“태자 전하께서 특식을 내린단 말입니까? 태자 전하께서 내리신다면 무슨 특식입니까? 이번에도 고기입니까?”
풍채가 대단한 염전 노비 한 명이 손을 들어 묻자, 감독관은 비웃으며 말했다.
“이 돼지 뇨속. 세상천지에 태자 전하께서 특식을 내린다는 소리에 그 말부터 하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침 질질 흘리기 전에 태자 전하의 하늘 같은 은혜에 먼저 감읍해야지.”
그리 말하는 감독관도 전 염전 노비 출신이었고, 그곳의 노비들도 그걸 알기에 껄껄 웃으며 받아들였다.
“특식이 궁금하면 열심히 일하고 있어라. 고깃국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것만은 알려주지.”
* * *
힘든 염전의 일과를 끝내고 특식을 기대하며 돌아온 염전 노비들은 자신 앞에 놓여있는 큰 사발에 담긴 내용물을 보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그래. 냉면(冷麪)이다! 냉면! 너희도 들은 적은 있겠지? 전하께서도 그토록 즐겨 드신다는 냉면이다!”
몸을 많이 움직이는 이들에겐 단백질은 필수였기에, 왕검은 종종 병사들이나 장수들에게 냉면을 내렸고, 여름이라도 석빙고에서 얼음을 캐내 쓰는 한이 있더라도 만들어 먹거나 부하들에게 하사하여 고려 태자가 냉면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공공연한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가 퍼지자 냉면을 먹는 이들이 늘긴 했다. 그러나 냉면은 여전히 쉽게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아니었다.
조정에서 백성들은 먹지 못하게 막고 있다기보다는 재료와 계절이 타는 요리라서 하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일단 냉면의 주 맛을 내는 육수의 재료부터 왕검이나 조정, 혹은 귀족들이 먹는 것은 대개 소고기 양지머리나 꿩고기를 푹 고아낸 것을 사용하고, 귀족들이 아닌 민간의 냉면들조차 일단 개나 소고기 뼈 혹은 닭고기 등 동물고기로 고아내고 거기에 동치미 국물을 가미하는 식인데, 고려는 불교 국가였다.
원 역사에 비해 육식 풍조가 늘긴 했지만 여전히 고기보단 채식이 주였고, 냉면은 그 차가움을 만들 수 있는 얼음 때문에 보통 여름보다 겨울의 별미로 인식되고 겨울에 많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여러 이유로 왕검의 간접 광고에도 아직 많이 먹는 음식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노비들에게 있어서 냉면은 더더욱 꿈도 꾸기 힘든 음식이었다.
“나도 여기 있는 동안 냉면은 처음 먹어보는데, 너희들은 진짜 태자 전하의 하늘 같은 은혜에 깊이 감읍하며 먹어라.”
시원한 꿩고기와 소고기로 우린 육수 국물과 면 위에 올려진 육전으로 이루어진 냉면은 그들이 기대한 것 이상의 특식이었고, 그 맛도 먹는 족족 목구멍에 넘어갈 정도로 맛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맛에 감탄하고 있을 때, 탐라인 무운만은 자신 앞에 배급된 냉면을 먹으면서도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고려 태자의 토지라고 하지만 일개 노비들에게도 이런 요리를 주다니…. 아조와 고려의 차이가 크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차이가 컸단 말인가.’
꿩이나 소고기를 넣은 밀과 메밀로 만든 국수를 특식이라고 해도 노비들에게 이렇게 내려준다는 것은 탐라국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이번 특식만이 아니다. 염전 노비가 되어 일을 하면서 노동의 가혹함을 느끼면서도 꼬박꼬박 (양은 몰라도) 질적으론 매우 준수한 수준의 새참이 제공되었다.
이는 고려에는 그만한 재산이 있다는 방증이었다.
‘처음부터 이길 수가 없었구나.’
자국에서 그토록 소란을 떨고, 실제로도 역대 손꼽히는 대규모였던 왕자의 난은 고려에서는 큰 소란조차 아니었다.
난 이후 폐현치번으로 인해 탐라인들 사이에서도 왕자의 난에 대해선 원래부터 고려는 탐라에 강경책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구태여 난을 일으켜 희생을 만들었다고 난을 일으킨 자들을 어리석고 욕심만 많은 자들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무운도 난에 참가한 상당수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거사를 일으키기 전 고뇌하고 노력하던 양원의 모습을 잊지 않았다.
‘양원 님께서는 이것을 알면서도 그랬습니까?’
운 좋게 고려군이 당도하기 전에 계획대로 성주를 몰아내고, 양 씨 성의 성주가 등극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고려가 군대를 보낸다면 자신들은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자신들은, 아니. 왕자 양원은 고 씨 성주를 몰아내고, 고려를 상대하고 교섭하여 기어코 탐라의 승리를 논하고 있었다.
‘아니면… 알았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까?’
친 고려파인 고 씨 가문을 처결하면서도, 고려에 대한 사대와 관계를 끊지 않겠다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으나 지금 생각하면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따랐던 왕자 양원은 그 누구보다 고려에 거대함과 강력함을 이해하면서도 진심으로 상대하려고 했던 것이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상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것이 노비에서 벗어날 방도를 모색하는 노력이 어찌 잘못된 것이란 말인가.’
어느 사이에 다 먹은 냉면을 두고 북쪽을 바라보았다. 그가 섬 밖으로 나오면서 알게 된 것은 생각 이상의 고려의 강대함과 부유함만이 아니다. 세상에는 이런 고려 이상으로 부유한 나라와, 거대하고 강력한 나라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상 고려는 그 거대한 것들과의 무척 잦은 마찰이 있고, 지금도 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만약 우리의 행동이 쓸데없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장차 고려도 우리와 같은 꼴이 될 것이오. 그때도 태자께서는 우리의 행동이 어리석다고 할 수 있을 것이오이까?!’
* * *
고려 고종 32년(1245년), 남송 순우 5년, 을사년(乙巳年). 3월 25일.
바람이 시원하게 뺨을 매만지며 지나간다. 시야 저편까지 펼쳐진 수평선은 날씨 때문인지 서남해의 험한 파도로 배가 흔들리며 함께 흔들린다.
“그러고 보니 전선(戰船)을 타고 지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군.”
전선 자체는 타본 적이 있다. 당장 남송과 탐라를 갈 때 탄 배도 일종의 전선을 개조한 선박이다.
그러나 서남해의 수적 토벌은 김방경에게 맡겼고, 유구 정벌도 송문주에게 맡겨서 해군을 지휘한 경험은 군사 훈련으로조차 없었다. 쉽게 말해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이곳이 비록 몽고에게서는 멀리 떨어진 남방이라곤 하더라도, 몽고와 전쟁이 터진다면, 몽고군이 절대 오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설령 몽고군이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곳은 요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수적들이 득세를 이루었던 곳이라, 수적들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경상도와 전라도의 수군을 정예로 단련시키는 것을 절대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수군에 대해선 내가 너에게 배워야 하니, 네가 보기에 지금 내 지휘에 문제가 있다면 주저 말고 내게 말해라.”
“그리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때문에 지금 수군 훈련을 하면서도 내 곁에 측근 중 가장 수군 지휘를 많이 해본 김방경을 곁에 두고 조언을 받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