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52
교랑의경 152화
돌아온 몸종을 보면서도 오 관리인과 서무수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기에 몸종이 어딜 갔다 왔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보다 못한 몸종이 이대작을 향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대작은 고개를 숙인 채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수시로 주먹을 쥐었다 펴는 동작을 반복했다.
“맞네,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자네 연습 많이 했잖아.”
옆에 서 있던 오 관리인도 거들었다.
태평거 일행은 총 넷이었다. 서봉추는 커다란 멜대를 짊어지고 있었다. 멜대의 한쪽에는 진흙 화로가 걸려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각종 요리 도구가 가득 담겨 있었다.
“괜찮소, 괜찮아. 두부는 잘 준비해뒀소. 정 힘들 것 같으면 꽃으로 바꾸시오.”
하지 않아도 됐을 서봉추의 말이 이대작을 더욱 긴장하게 했다.
무조건 한 번에 끝내야 한다. 한 번에 되면 된 거고, 그렇지 않으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두 번, 세 번의 기회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앞쪽에서 인파가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양 자리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네 사람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태평거의 자리는 가장 안쪽이다 보니,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인파로 인해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체 사람이 많은지라 금방 길이 막혀버렸다. 가장 눈에 띄는 바깥 자리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화로를 가지고 왔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멜대로 짐을 옮기는 서봉추 일행과 달리 마차로 옮겼다. 그들이 조심스럽게 늘어놓고 있는 식기들도 전부 금과 은으로 만든 것이었다. 식기는 새벽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며 반짝였다.
“길 좀 비킵시다.”
서봉추가 외쳤다.
“비키긴 뭘 비켜요? 기다리라고.”
길 한가운데 서 있던 사환이 받아쳤다. 서봉추가 눈을 부라리자, 오 관리인이 얼른 나서서 말리고는 사환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보게, 우린 사람도 적고 짐도 별로 없으니, 지나가도록 조금만 비켜주게나.”
사환이 곁눈질로 네 사람을 쓱 훑었다. 그러고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는지 거만한 투로 대꾸했다.
“사람도 적고 물건도 없는데, 뭐가 그리 급하실까? 좀 기다려요.”
서봉추가 사환을 발로 냅다 걷어찼다.
“꺼지라면 꺼질 것이지, 어디서 행패야.”
사환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 뒷사람에게 부딪쳤다. 뒷사람은 비단옷에 두모를 쓰고 귀에 꽃을 끼우고 있었다.
두칠이 몸을 돌려 사환의 뺨을 올려붙였다.
“눈이 멀었느냐!”
“주인어른, 그게 아니라 누가 우리 일을 훼방 놓으려고 해서요.”
사환은 뺨을 부여잡고 손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두칠은 눈을 치켜뜨며 사환이 가리키는 쪽을 쳐다봤다. 멜대를 진 채 호탕하게 웃고 있는 서봉추와 그 옆에 선 이대작, 그리고 오 관리인이 보였다.
“두 대인.”
오 관리인이 웃는 얼굴로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오씨? 여긴 웬일들인가?”
두칠은 오 관리인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다 한참 만에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입에 풀칠이나 해 보자고 하던 일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저희 주인어른도 공양을 올리겠다고 하셔서 왔지요.”
이대작은 고개를 들어 복잡한 표정으로 두칠을 쓱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잠자코 있었다. 두칠은 그러냐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랬군. 어디 있는 점포인가?”
“성 밖에 있는 가게입니다. 저희는 대웅보전 바로 앞자리를 받았으니, 지나갈 수 있도록 편의를 좀 봐주시지요.”
오 관리인이 웃으며 공수의 예를 표했다. 대웅보전 앞자리라면 제일 싼 곳이잖아. 두칠은 미소를 띤 채 길을 내주라고 명했다.
“지나가게나.”
오 관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굽혀 감사 인사를 하고, 이대작과 서봉추, 몸종이 서둘러 나가도록 손짓을 했다.
“돈 많이 버시오.”
두칠이 서봉추 일행을 향해 말끝을 길게 늘어트리며 외치자, 관리인이 고개를 돌려 다시 예를 표했다. 내내 웃던 두칠은 고개를 돌리자마자 웃음기를 싹 거두고 침을 퉤 뱉었다.
“벌긴 뭘 벌어, 둘 다 재수가 없어서 집안을 망치는 놈들이었는데!”
대웅보전 앞쪽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시끌벅적한 바깥보다는 훨씬 조용했다. 한 해에 몇 번 안 되는 성대한 행사다 보니, 남녀노소 할 거 없이 화려한 옷차림이었다. 불상 앞인지라 지나친 소란은 삼가야 했지만, 수시로 터져 나오는 여인들의 웃음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곤 했다.
“저기 봐, 자네 누이도 왔네.”
진 공자의 말에 주육낭이 고개를 휙 돌렸다. 멀리서 두 시녀와 사환 하나가 여인을 모시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 앞에서 쪼르르 뛰어가는 여자아이와 여자아이의 뒤를 조심스레 따르는 유모도 보였다.
“단랑, 천천히 와”
자매들이 뛰어다니는 단랑에게 외쳤다. 진 부인이 손을 뻗어 단랑을 붙잡았다.
“어머니, 제가 정 언니도 같이 데려왔어요.”
진단랑이 뿌듯한 듯 자랑하자, 진 부인은 웃으며 단랑을 칭찬하고 아직 걸어오고 있는 정교랑을 바라봤다. 정교랑이 진 부인을 향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진십팔랑도 앞으로 나왔다. 나머지 자매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정교랑을 살폈다. 정교랑에 관한 이야기를 익히 들었기에, 섣불리 다가가 인사를 건네는 이는 없었다.
“어머니, 어머니, 저는 안 들어갈래요. 정 언니랑 밖에서 놀고 싶어요.”
진단랑은 기대에 찬 목소리였지만 진 부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막무가내로 굴면 못써.”
진단랑이 입술을 삐쭉이자 정교랑이 웃으며 진 부인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같이 놀자고 했어요. 저는 본래 차를 즐기지 않으나, 십팔랑의 초대에 응하고자 나왔거든요. 좋은 날씨에 이렇게 나올 곳도 있고, 같이 즐길 사람도 있으니, 이것으로 충분해요.”
진 부인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진십팔랑이 웃으면서 정교랑의 말을 거들었다.
“어머니, 낭자가 그리하고 싶다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세요.”
진십팔랑이 진단랑을 잡아끌었다.
“너 올해는 소원성취했구나. 놀러 나온 것도 모자라 저 안에서 답답하게 안 기다려도 되고.”
진단랑이 배시시 웃으면서 정교랑의 옷소매를 잡았다.
“이제 들어가시지요.”
정교랑이 다시 진 부인에게 예를 표했다. 진 부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여종과 몸종에게 시중을 잘 들라며 재차 당부했다.
“아, 그리고 제 간식도 주세요, 제 간식이요.”
진단랑이 보채듯 외치자 옆에 있던 여종이 웃으며 진단랑에게 찬합을 보여주었다. 얼마 전 정교랑이 보냈던 간식이었다.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은 진단랑은 신이 나서 정교랑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뒤에 작은 방생지(放生池) 연못이 하나 있는데, 비단잉어가 엄청 많아요. 우리 물고기 먹이 주러 가요.”
멀어져 가는 정교랑 일행을 보며 진 부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단랑이 예의범절 모르는 개구쟁이도 아니고, 정 낭자와도 말이 통하잖아요. 정 낭자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같이 있겠다고 하는 것도 진심이겠죠. 더구나 오늘은 보수사의 출입이 삼엄하여 아무나 들어올 수 없으니 마음 놓고 둘러보기 좋을 때잖아요.”
진십팔랑은 진 부인의 팔짱을 끼면서 말을 이었다.
“저 둘이 즐겁게 즐긴다니 우리 모녀도 자매들과 마음 놓고 즐겨야죠.”
진십팔랑의 그럴싸한 일장 연설에 진 부인이 웃음을 터트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정 낭자와 가깝게 지낸다 했네. 넌 나처럼 우둔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어머니, 놀리지 마세요.”
진십팔랑이 진 부인의 뒤를 따랐다.
“전 그저 단랑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정 낭자를 대했을 뿐인걸요.”
진씨 가문 사람들은 인파에 섞여 측문을 통해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갔다.
무수히 많은 신자의 헌납과 공양으로 만들어진 이 유명한 사원은 정전(正殿)이 아니어도 20장(丈) 넓이에 10장의 깊이를 가질 정도로 위용이 어마어마했다. 양쪽에 세워진 전각기둥은 여러 사람이 팔을 벌려 안아야 할 정도로 큰 규모였다.
동서 방향으로 난 기둥이 대웅보전을 반으로 갈랐다. 이미 자리가 절반 이상 채워졌고,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으로 질서정연하게 나뉘어 앉았다.
진 공자의 인맥 덕에 주육낭도 꽤 좋은 자리에 앉게 됐다. 시야가 탁 트여 선다 의식의 모든 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자리에 앉은 사람도 전부 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저쪽에는 진(陳)씨 가문의 여인들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직 의식이 시작되기 전이라, 진씨 가문 낭자들은 주변의 지인들과 웃으며 조용히 인사를 나눴다.
진 부인의 좌우 양쪽 자리는 줄곧 비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몇 명이 들어오더니 기대와 불안이 섞인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도 그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주육낭이 미간을 찌푸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밖에서 악기 소리와 불경을 읊는 소리에 이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선다회가 곧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대웅보전 안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이 시점 이후로는 아무도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주육낭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무릎 위에 올려놓은 주먹에서 힘을 풀었다.
왔으면서 왜 안 들어와, 뭐하러 간 거야? 이 여인은 어떻게 된 게 한시라도 마음 편히 있지를 못해?
꽃잎 하나가 천천히 연못 위로 떨어지자, 물속에 있던 비단잉어들이 순식간에 꽃잎을 향해 달려들었다가 속은 걸 알아채고는 이내 뿔뿔이 흩어졌다.
진단랑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옆에서 시중을 드는 여종과 몸종은 진단랑이 난간을 제대로 못 잡을까 봐 조심스레 살폈다.
“제가 한번 해 볼게요.”
금가아가 미리 사 두었던 물고기 먹이를 조금 떼어 내어 연못으로 던졌다.
“저 잉어 좀 봐, 듣기로는 폐하께서 직접 방생하신 거라던데.”
시녀가 잉어 중 한 마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연못 안은 잉어로 가득 차 있어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반근은 아무리 눈을 씻고 쳐다봐도 어느 게 어느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정 언니.”
연못 근처에 있던 진단랑이 정교랑 앞으로 뛰어왔다. 정교랑은 팔짱을 낀 채로 하염없이 연못만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기분이 안 좋아요?”
진단랑이 주춤하면서 묻자 정교랑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왜 그렇게 생각해?”
“어머니가 그랬어요. 언니는 가족들한테 미움을 받아 불쌍하다면서…….”
“단랑 아씨, 농담이 지나치세요. 부, 부인께서 언제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요.”
뒤에 서 있던 여종이 놀라 황급히 말을 끊으며 앞으로 나섰다. 어머니가 분명 그렇게 말했는데도 여종이 말을 못 하게 하자, 어린 진단랑도 자신이 하면 안 될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러니까 내, 내 말은 겁내지 말라는 뜻이에요. 나랑 어머니, 그리고 우리 언니 모두 정 언니를 좋아하잖아요. 그 사람들은 언니가 필요 없다고 해도, 우린 언니가 필요해요. 언니는 하나도 안 불쌍해요.”
이런 말은 안 하느니만 못한데. 여종은 더욱 불안해졌다.
뒤에서 남의 얘기를 할 때는 칭찬할 수도, 흉을 볼 수도 있지만 불쌍하다는 말을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된다. 그저 지나가는 이야깃거리로 가볍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자칫하면 사람을 무시하는 거만한 태도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여인은 예민한 사람이지 않은가. 표정에서는 아무런 변화를 찾아볼 수 없지만, 속으로는 남들이 뒤에서 뭐라고 쑥덕거리는지 신경을 쓸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행동이 좀 괴팍하긴 해도 집안사람들이 몹시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행여 말뜻이 잘못 전달되어 이 여인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야단이 날 터였다.
단랑 아씨의 시중을 잘 들라며 재차 당부하시더니, 어려서 그런지 말을 가려서 할 줄 모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