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77
교랑의경 177화
오 관리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별다른 말 없이 장부를 정리했다.
“누이, 이제 와도 괜찮은 거야?”
서무수가 정교랑을 보며 물었다.
왕대 등 무뢰배가 살해되고 주오가 자결하면서, 협박을 받던 위기를 넘기고 호시탐탐 점포를 노리던 악당들까지 두려움에 떨도록 만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끝난 일이지만, 이들을 계략에 빠뜨린 태평거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다는 걸 모두가 알았다.
무뢰배를 도발한 일은 별것 아닐지 몰라도, 주오를 자결로 내몬 걸 보면 아주 독하고 악랄한 이가 틀림없다.
“괜찮아요. 올 일은 오고야 말죠.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어요.”
정교랑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딱히 두려울 것도 없고요.”
서무수와 범강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놓았다.
“전부 정 언니의 오라버니들이에요?”
옆에서 맛있게 먹고 있던 진단랑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요. 아씨, 음식이 입에 맞으십니까?”
서무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입에 잘 맞아요.”
진단랑은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 자주 오세요. 싸게 드릴게요.”
서무수가 웃으며 말했다.
“진짜요? 다른 사람들 데려와도 싸게 해 줄 거예요?”
진단랑은 신이 나서 물었다.
“당연히 진짜죠.”
서무수가 오 관리인을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
“관리인, 기억해 두시오. 여기 진씨 가문 아씨가 오거든 우리 손님이라 여기고 대접하시구려.”
오 관리인이 웃으며 알았다고 하자 진단랑은 기뻐 어쩔 줄 몰랐다.
“너무 잘됐다. 다들 날 부러워할 거예요.”
다들 웃고 떠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일부러 남들 눈을 피하지도, 그렇다고 일부러 눈에 띄게 행동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배불리 먹고 난 후 정교랑은 진단랑을 데리고 나왔다. 서무수 등은 위층까지만 나와 배웅했다.
“형님, 저기 좀 보시오. 저 사람…….”
형제 하나가 바깥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불쑥 입을 열었다.
주육낭은 정교랑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말에서 내렸다.
“왜 계속 시치미를 떼지 않고?”
주육낭이 콧방귀를 뀌자 진 공자가 웃으며 대꾸했다.
“계속 안 오는 게 더 이상하지. 됐으니까 어서 가자고. 쓸데없이 걱정할 것 없어. 오라버니들도 있잖아.”
주육낭이 진 공자를 노려봤다. 진 공자는 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지팡이를 짚고 시종의 부축을 받아 앞으로 걸어갔다. 잘 닦아 놓은 돌바닥 위에서 딱딱 소리가 났다. 발걸음 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소리였고, 보통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주육낭은 귓가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눈에 불길이 치솟았다. 주육낭은 시선을 옆으로 옮기며 내려뜨린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맞은편에서 오던 정교랑이 가까워졌다.
“낭자, 오랜만입니다.”
진 공자가 웃으며 예를 표하자 정교랑이 답례했다. 진단랑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진 공자를 살폈다.
“그 일은 어쩔 생각이야?”
주육낭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굳은 얼굴로 물었다.
“정말 너희 집에서 네 혼사를 정하길 기다리려고?”
정교랑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면 그 댁에서 정하길 기다릴까요?”
“그야 너한테 달렸지.”
주육낭이 콧방귀를 뀌었다.
“모처럼 나한테 달린 일이 있네요.”
정교랑이 웃었다. 주육낭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진 공자가 옆에서 하하 웃었다.
“당신 말인데.”
정교랑이 고개를 돌리며 진 공자를 쳐다보자 진 공자도 웃으며 정교랑을 쳐다봤다.
“뭐하러 초연한 척 연기를 하죠?”
정교랑은 냉담한 표정으로 진 공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절름발이로, 평생 살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그 말이 떨어지자 진 공자의 얼굴에 있던 웃음기가 서서히 굳어졌다.
“정교랑!”
주육낭이 벌컥 성을 냈다.
말이 전보다 유창해지긴 했지만, 이 여인의 말은 어째 갈수록 악독해졌다.
어떻게 사람을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해! 그래도 여인이면서! 하긴, 여인이면 뭐? 사람도 손쉽게 죽이는 여인인데…….
주육낭은 주먹을 꽉 쥐었다. 사내였다면 주먹을 날려 패 죽였을 텐데!
“저 사람 친구로 지내는 게 좋은가 봐요.”
정교랑이 진 공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진 공자는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가 하하 웃음을 터뜨렸지만, 주육낭은 여전히 이를 갈며 눈을 부릅떴다.
“정교랑, 적당히 해. 네가 대단하다는 건 알아. 이젠 이 태평거도 있고…….”
주육낭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이를 갈고 말했다. 하지만 주육낭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 공자가 말을 잘랐다.
“태평거 음식도 딱히 별다를 건 없잖아. 다른 데로 가자고.”
마침 거리를 오가는 사람이 많은 시간대고, 식당 앞이다 보니 드나드는 손님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 서서 대화를 나눈다 한들 딱히 눈길을 끄는 일은 아니었지만, 주육낭이 두 번이나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행인들도 호기심에 다들 쳐다봤다.
진 공자가 주육낭을 제지하자, 정교랑이 그 모습을 힐끔 쳐다봤다. 벌써 조그마한 받침대를 내려놓은 시녀가 정교랑이 마차에 오르도록 부축해 주었다. 마차의 휘장이 내려지고 마차가 흔들거리며 출발했다.
“아직도 저 애를 감싸? 저리 악독한 여인을?”
주육낭이 냉소를 지었다.
“말다툼을 해서 뭐해.”
진 공자는 웃으며 주육낭을 재촉했다.
“어서 가자고. 밥 먹는 게 중하지.”
주육낭이 주변을 둘러봤다. 여러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태평거는 수많은 사람이 음으로 양으로 주목하는 곳이 됐다. 주육낭은 더 말하지 않고 발을 들어 안으로 들어갔다.
주육낭에 이어 진 공자도 태평거로 들어갔다. 수레를 밀다가 잠시 쉬어 가려고 태평거 입구에서 자리를 기다리는 듯 보이는 젊은이가 일어섰다. 젊은이는 태평거 안과 정교랑이 탄 마차가 멀어져가는 모습을 차례로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이제는 이 태평거도 있다는 게 무슨 뜻이지?”
젊은이가 중얼거렸다.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경성인데도 신선거 앞은 한산해 보였다. 입구에서는 점원 몇 명이 서서 나른한 듯 웃고 떠들었다.
후원 별실에 있던 두칠은 눈앞에 꿇어앉아 있는 사환을 귀찮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시끄럽다!”
두칠이 말을 자르며 소리치자 사환은 깜짝 놀라 얼른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며 옆에 있는 관리인을 쳐다봤다.
“시간 있으면 어떻게 해야 장사가 잘될지 그 생각이나 해!”
두칠은 쥘부채로 관리인을 쿡 찌르며 말을 이었다.
“태평거 장사가 얼마나 잘되는지 하루가 멀다고 나한테 전하는 이유가 뭐야? 나 망신 주려고 이래?”
“아닙니다, 주인어른. 저는 그저 태평거의 배후에 있는 진짜 주인이 누군지 알고 싶어서요.”
사람들 앞에서 무뢰배 다섯 명을 죽이고도 멀쩡히 살아남은 태평거의 일은 경성 전체를 뒤흔들었다. 다들 태평거가 어마어마한 거물을 뒷배로 두고 있다고 추측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태평거에는 신비감이 더해졌고, 신비감이 더해질수록 태평거에 경외심을 갖는 이가 많아졌다. 무뢰배들이 시비를 걸기는커녕 관졸들조차 감히 못 건드리는 곳이 됐다.
배후에 있는 진짜 주인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벌써 며칠째 태평거의 배후를 수소문하던 두칠은 유 교리를 통해 그날 보수사의 명해선사 앞에서 이야기를 꺼낸 게 진 노태야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조사해 보니 진씨 가문은 태평거의 진짜 주인이 아니었다.
진씨 가문까지 나서서 도와줄 정도라면 평범한 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는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다.
“제 생각에 주인이라면 태평거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기란 불가능합니다. 자취를 남기게 돼 있죠. 그래서 제가 사환들을 시켜 태평거를 지키게 했습니다. 뭐 알아낼 게 없을까 하고요.”
두칠이 쥘부채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래서 알아낸 건?”
사환이 쭈뼛쭈뼛 고개를 가로젓자, 두칠은 퉤 하고 침을 뱉었다.
“데려올 숙수는 알아봤고?”
두칠이 관리인을 보며 물었다.
“솜씨 좋은 숙수로 데려와. 지금 숙수처럼 고기 써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인간 말고. 그나마 그 고기 써는 것도 남한테 배운…….”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던 사환이 그 말에 갑자기 고개를 쳐들며 외쳤다.
“생각났습니다!”
말하고 있던 두칠은 사환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놀라 욕을 해댔다.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관리인, 주인어른, 생각났습니다. 그 두 사람이에요!”
사환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두 사람이라니?”
관리인이 물었다.
“그 두 사람이요.”
사환은 손짓을 해 가며 말을 이었다.
“우리 가게에서 숙수한테 고기 써는 법을 알려 주던 그 사람! 그, 신선 말입니다!”
신선? 관리인과 두칠이 사환을 쳐다봤다.
“주씨 가문 사람 말이냐?”
두칠의 물음에 사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소년과 소녀 말입니다. 과로신선을 자기네가 만들었다고 했잖아요.”
당시 두칠은 그 두 사람을 지켜봤지만, 그 후로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둘이, 밥 먹으러 갔나 보지.”
두칠은 탁자에 기대며 눈을 가늘게 떴다. 태평거는 이름이 난 곳이니 특별히 거기까지 밥을 먹으러 간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밥 먹으러 간 건 맞습니다.”
두칠이 또 욕을 해댔다.
“밥 먹으러 간 게 무슨 대수라고!”
두칠은 손을 들어 한 대 칠 기세였다. 사환이 얼른 머리를 감싸 쥐며 몸을 피했다.
“그런데 옆에서 들어 보니 그 사내가 ‘이제는 태평거도 있고’ 어쩌고 하는 말을 하더라고요.”
두칠이 들어 올린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뭐라고?”
두칠이 물었다. 관리인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환을 쳐다봤다.
“그때 옆에 앉아 있다가 소년과 소년이 그런 말을 나누는 걸 들었습니다. 근데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말을 끊었어요.”
사환은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들어 쳐다봤는데 어쩐지 낯이 익었습니다. 통 생각이 안 나더니 방금 갑자기 떠올랐어요. 바로 그 두 사람이었습니다.”
두칠은 다시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복잡미묘한 표정이었다.
“그자들이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말해 봐라. 한 자도 빼놓지 말고.”
같은 시각, 강주 정씨 저택.
주 노야는 부인이 보낸 서찰을 읽은 후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돌고 돌아서 결국 이리되는군. 그러게 몇 달 전에 결정을 내렸으면, 이리 성가실 일도 없었을 텐데.”
문밖에서 사환이 급히 들어왔다.
“노야, 알아봤습니다.”
사환은 밝은 표정이었다. 주 노야는 들고 있던 서찰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누구라더냐?”
“팽씨 가문의 방계인데, 글공부를 한 서생인 건 맞습니다.”
사환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난해에 병을 얻었답니다.”
밥 먹고 사는 사람인데 병이 날 수도 있지.
“무슨 병인데?”
주 노야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노야, 화류병(花柳病: 성병)이래요.”
사환은 목소리를 낮추고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화류병? 순간 주 노야는 눈을 부릅뜨고 손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사람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주 노야는 벌떡 일어나 한쪽 벽에 걸어 둔 보검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정동! 가만두지 않겠다!”
발치로 떨어진 서찰이 아무렇게나 밟혔다. 아비란 사람이 저리 뻔뻔하니, 굳이 내 아들까지 고생할 필요도 없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