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19
교랑의경 219화
그 시각 덕승루에서는 두 젊은이가 먼지 나게 구르며 기다시피 쫓겨났다.
“썩 꺼지거라.”
그들을 끌고 나온 네다섯 명의 건장한 사내가 젊은이들을 매섭게 노려보면서 손가락질했다.
“돈도 없는 주제에 감히 덕승루 음식을 공으로 먹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금세 구경꾼들이 거리에 몰려들자 정사낭은 창피함을 숨기지 못하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누가 공으로 먹었다고 그러시오? 잠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 뿐이지.”
왕십칠은 분한 듯이 대꾸한 것도 모자라 한마디를 더 덧붙이려 했으나, 정사낭이 손을 뻗어 간신히 제지했다.
“창피하니까 그만해. 어서 가자!”
왕십칠은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손을 뿌리쳤지만, 결국 정사낭의 손에 이끌려 덕승루 앞을 벗어났다.
“퉤, 남쪽에서 온 촌뜨기들까지 서생들처럼 공으로 먹으려 드네!”
덕승루 대문 뒤에 숨어 있던 몸종 하나가 조심스럽게 걸어 나왔다. 애티가 나는 몸종의 얼굴에는 나이답지 않게 복잡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몸종은 거리의 인파 속으로 사라져가는 두 젊은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더니 품에 있던 보따리를 꼭 안아 보고는 고개를 숙인 채 잽싸게 그들의 뒤를 밟았다.
“넌 어서 집에나 가. 창피한 짓거리 좀 그만하고.”
“창피한 게 누군데? 집에서 어떻게 자랐기에 고모님이 그런 푼돈을 쥐여 보낸 거야? 첩의 자식만도 못하네.”
“왕십칠, 지금 누굴 욕하는 거야?”
“공자님, 공자님.”
티격태격 말씨름을 하며 걷고 있던 두 젊은이의 뒤에서 익숙한 고향 말씨가 들려왔다. 정사낭이 급히 고개를 돌리자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몸종이 두려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 낭자, 날 부른 것이냐?”
정사낭이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공자께 여쭙고 싶습니다. 혹시 강주 분이신지요?”
몸종은 흥분과 불안이 섞인 표정으로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물었다. 기대에 가득 찬 몸종의 커다란 눈이 반짝거렸다.
고향 말씨를 쓰는 꼬마 낭자의 기대에 가득 찬 모습을 본 정사낭은 곧바로 사정을 눈치채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래. 너도?”
정사낭도 고향 말씨로 꼬마 낭자의 말에 대답했다.
“네.”
몸종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어디서 본 계집 같은데.”
왕십칠이 갑자기 끼어들어서 몸종을 위아래로 훑었다.
“설마 주 낭자 옆에서 칠현금을 들어주던 몸종?”
춘령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불안한 기색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소, 소인은 여기로 팔려 왔어요. 공자님의 말씀을 듣고 잠시 실례했습니다.”
춘령은 자신의 처지가 창피한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이렇게 먼 곳까지 팔려오다니. 게다가 그런 곳으로. 정말 딱하네.
“우리가 도와줄…….”
흥분한 왕십칠이 정사낭을 밀쳐내면서 정사낭의 말을 끊었다.
“네가 정말 주 낭자의 몸종이라고? 거참 잘됐구나. 주 낭자를 잠깐 보게 도와준다면, 내가 당장 너를 사서 집으로 돌려보내 주마.”
* * *
말발굽 소리가 다그닥 울리며 마차가 멈춰 섰다. 급작스러운 정차에 반근의 몸이 흔들렸다.
“앞에 또 무슨 일 났어요?”
반근이 마차 휘장을 올리며 물었다.
“덕승루에서 공짜 밥을 먹은 놈들이 쫓겨났다네요.”
마부가 흥분한 얼굴로 대답하면서 고개를 쭉 내밀었다.
“서생 같아 보이는데요? 하여간 서생들은 돈도 없으면서 꼭 저런 꼴을 자처한다니까요.”
별일 아니라는 마부의 말에 시녀가 그를 재촉했다.
“할 일이 있으니, 그만 보고 가요.”
시녀의 말에 마부가 재빨리 자세를 고쳐앉고는 사람들 사이로 마차를 몰았다. 마차의 휘장을 내리자 바깥의 소란스러움이 차단됐다.
물론 마차가 두 서생 앞을 지날 때, 마부는 잊지 않고 고개를 돌려 웃으며 그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생긴 건 나쁘지 않은데…….”
마부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두 젊은이를 향해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래도 덕승루의 아가씨들한테는 얼굴이 다가 아니지.”
마부의 말을 들었는지 젊은이 하나가 마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마부가 일개 서생을 두려워할 리가.
“시골 촌뜨기들!”
마부는 콧방귀를 뀌며 큰 소리로 외치고는 말을 향해 채찍을 크게 휘둘렀다. 그는 일부러 마차를 두 청년 바로 옆으로 몰면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경성 사람들은 참으로 무례하구나!”
왕십칠이 마차를 향해 침을 뱉고는 고개를 돌려 몸종을 쳐다봤다.
“내가 널 사서 강주로 데려간다니까, 어때?”
왕십칠의 말은 이미 떠나간 마차의 안까지 전해지지 못하고 시끌벅적한 저잣거리의 소리에 묻혔다.
“이 마부는 이제 못 쓰겠어요.”
시녀가 조용히 정교랑에게 말했다.
“아씨, 우리도 이제 마차를 사야 되지 않을까요? 금가아도 다 컸으니까, 그냥 놀게 놔두지 말고 뭘 좀 가르쳐야겠어요. 말 길들이기 고수인 넷째 도련님에게 한 번 부탁해 볼까요? 금가아한테 말 다루는 방법 좀 가르쳐 달라고요.”
“넷째 도련님께서 말을 훈련시킬 줄 안다고?”
반근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시녀에게 묻자 시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이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응, 처음엔 나도 잘 몰랐는데 태평거에 유독 마차와 말이 많았던 날이 있었어. 말 몇 마리가 서로 뒤엉켜 물어뜯고 싸우는 통에 마부랑 사환들이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었거든. 그때 말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넷째 도련님이 달려와 두어 바퀴 돌며 말들을 향해 몇 번 소리치셨더니 말들이 다 순한 양처럼 얌전해지더라니까.”
반근이 시녀의 이야기를 듣고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이야?”
“진짜라니까?”
시녀가 정교랑을 살짝 흔들며 재촉했다.
“아씨, 아씨께서도 보셨죠?”
정교랑이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시녀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뒤로 넷째 도련님이 말을 끄는 걸 유심히 지켜봤어. 넷째 도련님께서 말을 데려올 때는 단 한 번도 말고삐를 쥔 적이 없더라고. 말들이 제 발로 넷째 도련님을 따라온 거야. 전에 노야께서 해 주신 말씀을 들었었는데, 서북의 기병 부대에는 유능한 목감(牧監)이 있어서 말들을 제대로 길들일 수 있대. 평범한 말도 그들 손에 들어가면 하서 지역의 명마로 변하지.”
반근이 시녀의 말을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넷째 도련님이 엄청 대단하신 거구나.”
“모든 일엔 경지가 있는 법이야. 뭐든 얕잡아 보면 안 돼.”
시녀가 반근을 향해 말했다. 시녀와 반근이 잡담을 나누는 사이, 마차는 저잣거리를 지나 신선거 앞에 멈춰 섰다.
“누이, 순찰 나온 거야?”
마중을 나온 서봉추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짓궂은 농담을 던졌다. 정교랑이 서봉추를 향해 진지하게 예를 올렸다.
“누이는 꼭 이걸로 날 놀려먹더라.”
서봉추가 꽁무니를 쓱 빼며 도망갔다. 서봉추가 가장 겁내는 게 이런 예법이었다.
“약포에 갔었어?”
서무수가 미소지으며 묻자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의원 두 분을 모셨어요.”
이춘당에 진료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넘쳐났지만, 정교랑이 진료를 보는 일은 없었다. 단지 약포의 관리인에게 정성을 다해 약포를 관리하라고 당부할 뿐이었다. 좋은 약재를 써야 하고, 좋은 의원을 둬야 한다고. 물론 처우도 당연히 좋은 편이었다.
“죽을 정도의 병이 흔하지는 않죠. 이 기세가 그리 오래 갈 것도 아니고요. 치술(治術)과 의술(醫術)을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의술이 더 중하죠. 큰 걸 중심으로 하고 작은 건 보조로 둬야 해요.”
“누이는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잘 아네.”
서무수가 웃으며 말하자 정교랑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실은, 돈이 모자라지 않아서죠.”
서무수가 잠시 멈칫하다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은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들이 지나가는 복도는 조용했고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복도 끝자락에 있는 청동으로 만든 연꽃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라 복도 전체에 은은한 향이 스며들었다.
신선거는 과로신선만 팔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뜸했다. 하지만 신선거 요리에 쓰이는 식재료는 특등급이었다. 고기는 모두 당일 도살한 것만 쓰고, 채소도 당일 사 온 것만 사용했다.
신선거에서는 하루 안에 다 쓰지 못한 채소와 고기를 과감하게 버렸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밤에 거리로 나와 신선거 앞에서 버려지는 채소와 고기를 주워가려고 기다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신선거의 영업시간이 길어지면서 버려지는 채소와 고기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정갈한 요리와 금은으로 정교하게 만든 식기, 그리고 기품 있게 꾸며진 별실이 있으니, 신선거의 손님들이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였다.
비싼 게 무슨 대수냐며, 도리어 값이 싼 것을 싫어하는 이도 있기 마련이었다.
신선이 달리 신선인가. 모두가 누릴 수 있으면 신선이 아니지.
“지출이 너무 컸습니다. 일 년은 지나야 흑자가 나겠어요.”
오 관리인이 장부를 가져오며 말했다.
“흑자든 아니든 뭔 상관이에요. 그냥 두고 노는 거죠, 뭐.”
정교랑의 말에 오 관리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자고로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아야만 돈을 벌 수 있다. 금덩어리는 줘야 백은으로 바꿀 수 있지, 돈에 있어서는 어떤 꼼수도 통하지 않는 법이다.
관리인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주인어른이 돈 한 푼 들이지 않으면서 큰돈을 벌고 싶어 하는 것과 끽해야 한 푼을 쓰고는 곧바로 두 푼을 내놓으라 하는 것이다.
정교랑처럼 돈이 있지만 돈을 욕심내지 않는 사람만이 옥돌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질 기회가 있고, 가늘고 길게 갈 수 있다.
이런 주인어른을 만나는 일은 장인에게 최상급 옥돌과 손에 딱 맞는 도구를 쥐여주고 충분한 시간을 준 것과 같다. 온 정성을 들여 옥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대대손손 전해질 명품을 만들 기회가 온 것과 다름없었다.
정교랑이 창밖을 내다보자 뒷마당에 세워진 과녁이 보였다.
“누이가 활쏘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우리도 심심풀이용으로 쓰려고 하나 만들었어.”
서무수가 정교랑의 시선을 따라 밖을 내다보고는 다시 정교랑을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누이는 너무 허약해. 열심히 수련해 봐.”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번엔 오라버니의 활을 쓸래요.”
뒷마당에서 시녀가 정교랑의 소매를 동여매는 동안 정교랑이 말했다.
“아이고, 누이의 그 가녀린 팔뚝과 몸으로 우리가 쓰는 활을 어떻게 들어.”
서봉추가 옆에서 하하 웃었다.
“봉추 오라버니는 처음부터 삼석궁(三石弓: 활시위를 당기는 데 450근의 힘을 써야 하는 활)을 썼어요?”
서봉추가 멋쩍게 웃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서무수가 자신의 활을 가져와 정교랑에게 건넸다.
“삼석궁은 생각도 하지 마. 나도 이제야 겨우 활시위를 당기는 정도야. 누이는 지금 팔두궁(八斗弓)만 당길 수 있어도 대단한 거야.”
정교랑은 몸을 올곧게 펴고 활시위를 당기려고 했지만 역시나 지금 수준에서는 무리였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본 서봉추가 고소하다는 듯 낄낄 웃어댔다.
정교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똑바로 서서 심호흡을 하고 활시위를 당겼다. 하지만 힘에 부쳐 손을 바들바들 떨다가 활을 내려놓았다.
“이게 다 셋째 형님 때문이오. 자기가 쓸 것만 가져다 놓고 애들이 쓸 만한 건 준비를 안 했으니.”
서봉추가 소리 내어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서무수가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며 서봉추를 노려본 다음 정교랑 가까이로 다가갔다.
“이쪽에 힘을 주고.”
서무수가 직접 손을 뻗어 활을 꽉 잡고 다시 말했다.
“자, 이제 활시위를 당겨봐.”
정교랑이 있는 힘껏 활시위를 당기자, 팽팽하던 명주실에 드디어 곡선이 그려졌다. 정교랑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지만, 곧바로 힘이 빠져서 활을 놓칠 뻔했다. 서무수가 재빨리 정교랑의 손을 잡고 화살을 끼워 더욱 세게 활시위를 당겼다.
텅 소리와 함께 깃털 달린 화살이 날아가 과녁을 맞혔다.
“역시 아직은 안 되네요.”
정교랑이 웃으면서 고개를 돌려 서무수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