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423
교랑의경 423화
“주인어른, 주인어른······.”
거리에서 유독 큰 소리로 오열하며 이목을 끄는 사내가 있었다. 우느라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길을 가로막고 있는 사내를 점원 둘이 양쪽에서 부축했다. 그 뒤로 흰 깃발을 든 이들이 열댓 명 따르고 있었다. 한쪽 옆에서 ‘신선거’라는 글자가 쓰인 커다란 깃발이 나부꼈다.
“주인어른, 주인어른, 어찌 이렇게 가십니까. 어찌 이렇게······.”
사내는 주먹으로 가슴을 마구 치며, 거의 까무러칠 정도로 목놓아 울었다. 부축하던 점원들도 더는 당해 내지 못하고, 바닥에 꿇어앉도록 두었다.
“저게 누구요?”
“누군지 모르겠소? 신선거의 왼팔 숙수 이대작이잖아.”
“왼팔 숙수? 생선회를 잘 치는 그 신선거 숙수 말이오?”
“오른팔을 잘리고 나서도 왼팔로 훌륭한 칼솜씨를 연마한 숙수 말이오.”
“맞아, 맞아, 그 사람이군. 그 생선회 맛을 보려고 신선거에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솜씨가 끝내주거든.”
“그 사람들이 신선거의 주인이었소?”
그러자 누군가가 즉시 반박했다.
“어디 신선거뿐인가. 태평거랑 이춘당의 주인이기도 하다오.”
경성에서 유명한 세 점포가 전부 그 사람들과 관련이 있었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 재산이 다 얼만데! 그만한 재산을 가진 사람이 죽는다고? 아니, 죽을 수야 있다지만 그 자리가 결단코 전장일 수는 없는 법인데.
그리 돈 많은 사람이 목숨으로 장난을 친다고? 바보인가?
“댁들을 속여서 뭐하오? 난 구경하려고 따라온 거요. 점포마다 길에 제사상을 차려 놓고 기다렸다가 뒤따르고 있거든.”
“그 세 점포의 주인이 같은 사람이었다니!”
소식은 순식간에 거리로 퍼져나갔고, 이는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실로 엄청난 소식이었다. 경성에서 유명한 세 점포의 주인은 줄곧 장막에 가려져 있으며 수많은 추측을 낳았는데, 장례를 통해 갑자기 비밀이 풀린 것이다.
“어서 가 보자고. 그 행수란 사람이 대체 누군지.”
거리에 몰려든 사람들은 어느새 장례 행렬을 뒤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그들을 불러세웠다.
“여러분, 사례주입니다. 한 사발씩 드시고 가세요.”
“딱 두 동이밖에 없는데, 우리 행수 어른께서 직접 빚으신 거라 따로 팔진 않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술이고, 세상에서 제일가는 독한 술이에요. 기회 놓치지 말고 한 사발씩 드십시오.”
“허풍도 정도껏 쳐야지. 뭐 얼마나 대단한 술이라고.”
의심 어린 목소리로 투덜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저쪽에서 말을 자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 줘요, 나!”
와글와글한 소리에 이목이 집중됐다. 고개를 돌려 보니 꽤 여러 사람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다들 취기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눈빛을 반짝였다. 벌써 걸음까지 비틀거리는 이도 있었지만 술을 향해 달려드는 발걸음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이 술그릇을 낚아챘다.
“끝내주는 술이오. 아주 끝내줘. 세상에서 제일가는 독한 술이지.”
“그리 맛있소?”
“그렇다니까. 어서 가서 맛들 보시오. 벌써 취해서 쓰러진 이가 몇인지도 몰라. 한 그릇만 마시면 바로 취해!”
“어서 쫓아가 보자고. 저쪽에도 있을 테니 어서 가세.”
이미 행렬 속으로 들어가 있는 이들은 그 행렬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모르는 채로 점점 붐비고 혼잡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만 받았다. 하지만 거리 양옆으로 늘어선 점포의 위층에서 구경하던 이들은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위쪽에서 내려다보니, 온 거리가 인파로 물샐 틈이 없었다. 정월 대보름에 꽃등을 보러 나온 인파와 맞먹을 정도로 떠들썩했다.
갑자기 웬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든 거지?
장례 행렬이 지나갔는데도, 사람들이 흩어지기는커녕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쫓아가잖아? 구경하던 이들은 저도 모르게 장례 행렬이 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쪽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몰려오고 있었다. 제방이 터지자 그 안에 있던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듯한 모습인지라, 보고만 있어도 두려움에 숨이 막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서북에서 범강림을 따라 왔다가 지금은 장례 행렬 속에 함께 있는 병졸들은 마음속으로 이 질문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성 밖에서 장례를 준비하던 이들을 봤을 때 이미 놀란 터였지만, 이제 보니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사람이 너무 많잖아!
세상에, 이게 대체 몇 명이야! 온 경성 사람이 죄다 영접하러 나온 것 같네!
세상에, 정말 자그마한 점포의 주인 맞아?
병졸들은 장례 행렬 속에 멍하니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시선이 닿는 곳엔 온통 새까맣게 몰려드는 사람들뿐이었다. 앞에도, 뒤에도,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심지어 양옆으로 늘어선 건물 위층은 물론이고 지붕과 나무 위에도 사람이 있었다.
인파에 떠밀려 앞쪽으로 오지 못한 이들은 소리를 질러대며 어떻게든 파고들려고 애썼다. 사람들은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본디 장례 행렬에 있던 이들 중 여럿이 밖으로 나와 손에 손을 잡고 인파를 막으며 간신히 길을 텄다. 다들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소리를 질러대며 사력을 다했다.
병졸들이 고개를 들자 하늘을 가득 수놓은 지전이 보였다. 온 천지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온 천지가 함께 슬퍼하는 듯이.
– 온 성이 상복을 입고 영령을 맞이하였나니.
글공부를 하지 않은 병졸들의 머릿속에 돌연 그 구절이 떠올랐다. 그들이 한 말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들은 말이었다.
몇 년 전 서북에서 큰 전투가 있었다. 성과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필사의 각오로 한 성보의 관군과 백성이 사흘 밤낮을 싸우며 저항한 끝에 거의 전멸한 전투였다.
서북 전선에서는 그 영령들을 위한 사당을 짓고, 모두가 상복을 입은 채 장례를 치렀다. 당시 병졸들은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하늘이 울릴 정도로 쳐 대던 징 소리와 북소리, 온 천지를 뒤덮었던 지전, 거리로 뛰쳐나와 장례 행렬을 배웅하던 백성들의 모습은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당시 문인들과 서생들은 그 일을 글로 남겼다. 화려한 수사까지 외울 순 없었지만 쉽게 쓰인 그 구절만큼은 머릿속에 깊이 각인됐다.
– 온 성이 상복을 입고 영령을 맞이하였나니.
그 광경을 경성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자신들과 같은 병졸들의 장례 행렬에서.
대체 뭐 하던 사람들이지?
– 자네들이 경성까지 무사히 호송해 주면, 부귀영화와 함께할 앞날을 보장해 주겠네.
출발 전 서사근이 했던 말이 귓가에 울렸다. 딱히 뭐라 대꾸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코웃음을 쳤다.
무원산 형제 본인들의 부귀영화도 끝났잖아. 목숨도 잃은 마당에 누구한테 뭘 줘?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온 경성을 뒤흔들 정도의 장례를 치를 능력이 있는데, 한낱 병졸들의 부귀영화 하나 보장하지 못할까.
병졸들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그때 다급하면서도 질서 있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호령 소리가 들려왔다.
“비켜라, 비켜!”
소식을 듣고 달려온 오성병마사의 병사들은 거리의 인파를 보며 헙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민란이 일어날 것 같다는 급보를 듣고 달려온 터였다. 막상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를 보고 있노라니 갑옷 차림에 장창까지 들고 있는데도 병사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뭐 하는 거야? 뭣들 하는 거냐고!”
우두머리 순갑(巡甲)이 외쳤다.
“뭘 하는 게 아니라, 장례를 구경하는 겁니다.”
“겸사겸사 술도 얻어 마시고요.”
인파 속에 있던 백성들이 시끄럽게 외쳐댔다.
장례를 구경한다고? 술을 얻어 마시고? 퉤, 누굴 바보로 아나!
누가 죽었는진 모르겠다만, 백성들을 동원해 소란을 피우려는 것 같은데?
“장례를 치를 거면 성 밖으로 나가야지, 왜 성안으로 들어와?”
순갑이 소리치며 손짓을 하자, 뒤에 있던 병졸들이 즉시 앞으로 나왔다. 병졸들은 손에 쥔 쇠뇌로 장례 행렬을 조준한 채 대기했다.
“즉시 해산해라. 거역하면 체포하여 죄를 묻겠다.”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말을 타고 있던 범강림은 길을 막아서는 병졸들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 뒤로 있는 장례 행렬 속 사람들은 엄숙한 표정이었고, 흰 깃발만이 바람에 표표히 나부꼈다. 지전에 뒤덮이다시피 한 채로 거리에 일렬로 늘어선 관 다섯 개가 시끌벅적한 주변 상황과 기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갑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누구지?
“소생은 서북 군영의 감용 범강림입니다. 전사한 형제들을 안장하기 위해 경성으로 왔습니다.”
범강림이 품에서 문서를 꺼내 내밀며 천천히 말했다. 순갑이 문서를 받아 확인해 보니, 과연 죽은 자의 신분은 확실했다.
“서북 군영의 감용이었군.”
순갑의 표정이 다소 누그러졌다.
그런데 구경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이런 광경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후 경성에서 헌부례(獻俘禮: 생포한 포로를 종묘에 바치고 승전을 고하는 의식)를 치를 때나 볼 수 있지 않나. 그 정도는 돼야 관이 뒤따르지. 그때도 이 정도 대우를 받으려면 전사한 이가 오품 이상의 무관은 되어야 하는데.
언제부터 병졸들한테도 이런 대우를 하게 된 거야?
“안장은 성 밖에서 할 텐데, 성안엔 왜 들어온 거요? 얼른 성 밖으로 나가시오.”
순갑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대인.”
순갑은 앞에 있는 사내를 보며 멈칫했다. 사내가 왜 갑자기 여자 목소리를 내지?
“대인, 성안으로 들어온 건, 저 때문이에요.”
모두가 고개를 돌리자, 순갑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언제 온 건지 사람들 무리가 와 있었다. 주변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백성과 달리, 흰 깃발을 든 것으로 보아 장례 행렬에 포함된 이들 같았다.
그중 멱리(冪罹: 여인이 외출할 때 사용한 쓰개의 일종)를 쓴 여인이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여인은 검은 옷을 입은 채, 허리에 삼베 끈을 매고 있었다.
“누이.”
여인을 본 범강림이 훌쩍 몸을 날려 말에서 내렸다. 말을 오래 타서인지 슬픔을 가누지 못해서인지, 범강림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넘어질 뻔했다. 품속에 있던 아기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까르르 웃었다.
“누이.”
범강림이 앞으로 다가가며 더욱 목멘 목소리로 불렀다.
“아우들을 데리고 돌아왔어.”
그 평범한 말을 갈라진 목소리로 전하자, 옆에 있던 순갑도 순간 가슴이 뭉클해져 저도 모르게 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인의 옆에 있는 두 시녀는 이미 바닥에 꿇어앉아 통곡하고 있었다.
오는 내내 사내들만 행렬을 뒤따랐기에 맨 처음 노제를 지내며 오열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곡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던 터였다. 이내 여인의 울음소리까지 터져 나오자 장례 행렬의 분위기는 더욱 어두워졌다.
사람들이 많아 놀란 건지 여인들의 울음소리에 놀란 건지, 아기까지 울음을 터트리며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이들은 되레 조용해지고, 거리를 가득 메울 정도로 새카맣게 몰려든 인파 속에서 두 여인과 아기의 울음소리만이 울려 퍼지자 분위기는 더욱 기묘하고 침울해졌다.
“대인, 묘지는 성 동쪽입니다.”
정교랑이 순갑을 보며 말했다. 순갑이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정교랑이 먼저 말을 이었다.
“물론, 성 동쪽이라 해도 성 밖으로 돌아서 갈 수 있지요. 꼭 성을 가로질러야 하는 건 아니에요.”
잘 알고 있군.
순갑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제가 오라버니들한테 약조한 게 있어요. 오라버니들이 경성을 떠나 서북으로 갈 때요.”
정교랑의 얼굴에 설핏 미소가 번졌다. 물론 멱리에 가려져 아무도 볼 수 없었지만. 정교랑의 시선은 관이 담긴 수레로 향했다.
“오라버니들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치고, 개선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 준마로 거리를 메우고, 독한 술을 마시며 불꽃놀이를 즐기게 해 주겠다고 했죠.”
천천히 순갑의 옆을 지나 관 쪽으로 걸어간 정교랑은 손을 뻗어 수레를 끄는 말을 어루만졌다. 다섯 필 모두 털 색깔이 똑같은 준마였다. 말을 볼 줄 아는 이라면 딱 봐도 보기 드문 명마임을 알아봤을 테고, 말을 볼 줄 모른다 해도 좋은 말이라고 칭찬할 정도의 말이었다.
떠들썩한 인파 때문에 미처 몰랐는데, 수레를 끄는 말조차도 이런 준마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