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47
교랑의경 47화
태평 만두? 멈칫했던 몸종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쪼그려 앉아 있던 몸종은 웃느라 아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네, 아씨. 그럼 우리 오늘 저녁엔 태평 만두 먹어요. 도사님들한테 부탁해서 양의 간이랑 이것저것 사다 놨어요.”
정교랑도 좋다고 했다. 마당 안으로 들어오던 손 관주는 검은 비단으로 된 겉옷에 긴 흑발을 내려뜨리고 단정히 앉아 있는 여인과 무릎께에 꿇어앉아 환히 웃고 있는 몸종을 바라봤다. 흡사 가을 경치를 감상하는 여인을 그린 미인도 같았다.
녹음이 짙푸른 나뭇가지나 밝은 옷을 입고 맑게 웃는 몸종은 이 그림의 핵심이 아니었다. 극도로 수수한 옷차림에 무표정한 채 멍하니 있는 여인이 핵심이었다. 손 관주는 잠시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저런 여인을 정씨 가문에선 왜 나 몰라라 하고 내치는 건지.
“무량천존(無量天尊: 도교에서 예를 표할 때 하는 말).”
정교랑과 몸종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손 관주에게 답례했다.
“아씨, 며칠 후면 저쪽 일이 마무리됩니다. 더 손볼 곳은 없는지 한번 가 보세요.”
“네.”
손 관주의 말에 정교랑이 대답했다. 몸종과 손 관주의 부축을 받으며 함께 가 보니 소현묘관의 모습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앞쪽 전각은 엄숙하고 경건해 보였고 뒤쪽의 거처는 그윽하고 품위가 있었다. 마당 입구에 선 몸종은 얼떨떨한 느낌이었다.
뇌우가 내리치던 밤이 불과 얼마 전에 있었다. 당시 몸종은 덜덜 떨며 바깥마당에 있는 사다리를 통해 지붕 위로 올라갔다. 지붕 위에서 몸을 바짝 엎드리고 앞으로 기어가며 이제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비가 그치고 날이 갠 후에도 그녀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 그 악몽과도 같았던 일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팔각정 주변에 새 흙을 깔고 대나무를 옮겨 심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쉭쉭 소리가 났다. 손 관주와 정교랑의 대화가 귓가로 들려왔다.
“괜찮아 보이세요? 화초를 더 심을까요?”
“괜찮네요.”
손 관주가 공손하게 묻자 정교랑이 대답했다. 몸종은 정신을 차리고 정교랑을 부축해 앞으로 걸어갔다. 두 아이가 뛰어나와 정자 안에 공손하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아씨, 앉으세요.”
아이는 눈을 내리깔고 상냥하게 말했다. 소현묘관에 일이 일어나고 정교랑과 몸종이 산 아래로 옮겨가면서 두 아이도 따라서 거처를 옮겼다. 그러다가 소현묘관이 수리에 들어가면서 손 관주 혼자 이곳저곳 관리하는 게 힘에 부치자 두 아이는 자신들이 돕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섰다.
“요 며칠 묘춘과 묘령 두 아이가 쓸고 닦고 하면서 청소했어요.”
손 관주가 웃으며 말했다. 두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한쪽 옆에 쭈뼛쭈뼛 서 있었다.
딱하기도 하지, 그 여인이 아무렇게나 데려다가 가축 대하듯 키웠으니. 기분 좋으면 무시하고 기분 나쁘면 때리고 욕하며 화풀이하고. 무량천존, 그 화근덩어리는 이제 죽었어. 손 관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 아씨를 따르면 좋은 날이 올 게야.
“아씨, 이 두 아이는 원래 이곳 사람이었으니 어찌 처리할지 아씨께서 결정하세요.”
소현묘관은 이제 정교랑의 구역이었다. 수행을 계속할 생각이라면 어린아이들이 자신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게 옳겠지만 정교랑 쪽에도 시중들 사람이 필요했다. 정교랑은 두 아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요, 내가 처리하죠.”
두 아이는 살짝 고개를 들고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 눈 속에 놀람과 기쁨이 드러났다.
“아씨,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아이는 털썩 소리가 나도록 꿇어앉아 고개 숙여 연신 절을 올렸다. 이 아씨만 따르면 이제 좋은 날이 올 거다. 너희에게도 드디어 좋은 날이 왔구나. 손 관주 역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 관주.”
정교랑이 손 관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잘 아는 도관이 있습니까?”
손 관주는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있는데요.”
“이 둘을 그리로 보내세요.”
정교랑이 말했다. 뭐라고? 두 아이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고, 손 관주와 몸종 역시 흠칫 놀랐다. 어째서?
“아씨, 아씨. 저희가 뭘 잘못했다면 벌을 주시고 내쫓지만 말아 주세요. 저희를 내쫓지 마세요.”
두 아이는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로 호소했다.
“사실 너희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어.”
정자에 앉은 정교랑은 시종일관 무표정한 채로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살길을 찾으려 하고, 살아남고자 목숨 걸고 도박을 하기도 해. 개미 같은 미물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데 사람인들 오죽할까. 그러니 너희가 한 일은, 잘못이라고 볼 수 없어.”
무슨 뜻이지? 손 관주는 이해가 안 가 저도 모르게 몸종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몸종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씨, 아씨. 저희가, 저희가 뭘 했는데요?”
한 아이가 고개를 들고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울며 말했다.
“그 관주의 손에 자란 건 저희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 관주와 지내면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만 그런 못된 심보는 안 배웠어요. 아씨, 부디 살펴 주세요.”
아이들은 더 이상 정교랑을 보지 않고 몸종과 손 관주를 보며 말했다. 저 사람은 바보니까 좋아했다가 화냈다가 이랬다저랬다 하겠지. 아무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 몸종과 손 관주는 이치를 알 거야. 이치로는 저 바보가 윗전이라지만 최종 결정은 이 두 사람이 하겠지.
몸종과 손 관주도 울고불고하며 매달리는 아이들을 보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두 아이가 그 여인의 제자라고는 하나 나이도 아직 어리고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도 아니잖아. 제자라는 게 맘에 안 든다고 내쫓기에는 실로 가엾지. 손 관주가 말을 거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그날, 너희가 마당 문을 열어서 그 사내가 들어오도록 유인했지?”
정교랑의 말에 두 아이는 공포에 떨며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떻게 알았지? 정말 바보가 아닌 거야?
순간 몸종의 낯빛도 싹 변했다. 그날 문단속을 확실히 하고 간 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그 호색한이 대담하게도 문을 열고 들어간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중간에서 수작을 부린 자가 있었어!
그날 그 문이 닫혀 있었다면 아무리 호색한이라 해도 그 안으로 들어갈 생각까지는 못 했을 터였다. 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 슬쩍 엿봤다가 흥분된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겠지. 작은 구멍 하나에 둑이 무너지듯 결국 그 안으로 돌진해 들어갔을 터였다.
세상에, 누가 일부러 덫을 놓았다니! 세상에, 그 속이 시커먼 계집이 아니라 이 가엾은 것들의 짓이었다니! 어떻게! 어떻게 이래! 어떻게! 어떻게 감히!
“너희!”
소리를 빽 지른 몸종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손으로 두 아이를 가리켰지만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손 관주 역시 아무 말도 못 했다. 자신이 들어서는 안 될 일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자리를 피할 수 없어 그저 고개만 숙였다. 두 아이는 더 큰 소리로 울며 머리를 쾅쾅 찧으며 정교랑을 향해 절을 올렸다.
“아씨, 아씨. 저희는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우리 언니가 보고 있다가 바로 사람을 부르러 갔어요. 절대, 절대로…….”
한 아이가 울며 말했다.
“그래, 너희는 아주 잘했어. 정씨 가문이 나서서 처벌할 수 있도록, 그 사내가 내 심기를 건드리게 하면서도, 때맞춰 사람을 불러와서, 일이 수습하지 못할 지경으로 번지는 걸 막았지.”
정교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너희가 그런 짓을 벌인 것도, 아마 막다른 길에 몰려서였을 거야.”
두 아이는 울며 머리를 조아렸다. 살짝 안도감이 들었다.
“아씨, 혜안으로 살펴 주세요. 부디 사정을 살펴 주세요.”
두 아이가 울며 말했다. 이번에는 진심으로 하는 부탁이었다.
“당연히 사정을 살펴야겠지. 하지만.”
정교랑이 둘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속이 좀 좁거든.”
두 아이는 또다시 놀라 고개를 들고, 여전히 무표정한 채로 정자에 단정히 앉아 있는 그 여인을 바라봤다.
손 관주가 오자 회랑 아래에 앉아 버선을 깁고 있던 몸종이 급히 손 관주를 향해 손짓을 했다. 손 관주는 얼른 발소리를 죽이고 회랑 아래로 걸어와 앉았다.
“아씨는 주무셔?”
손 관주가 나지막이 묻자 몸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씨는 몸이 안 좋고 기력도 온전치 않으셔서 낮엔 반 시진씩 주무셔야 해요.”
몸종이 손에 든 바늘과 실을 계속 움직이며 말하자 손 관주는 아, 하고 대꾸했다.
“어쨌든 좋아지시고 있잖아. 요양하면 점점 더 좋아지실 거야.”
손 관주는 웃으며 덧붙였다.
“주 부인께서 올리신 간절한 기도가 헛되지 않았네. ”
몸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께서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지.”
손 관주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려 방 안을 쳐다봤다. 얼마나 영리한 아이인가. 게다가 얼마나 대단한 아이인가.
“그 두 아이는 벌써 보냈어. 보원산에 있는 도관이야. 거기 관주가 나랑 동문수학한 사이니까 아씨께서 마음 놓으셔도 될 거야.”
마음을 놓으라니, 무슨 마음을 놓으란 거지? 몸종은 고개를 숙인 채 바느질을 하며 네 하고 대답했다. 손 관주는 바느질 솜씨가 좋다고 칭찬 몇 마디를 던진 후 돌아갔다. 몸종이 바느질거리를 들고 잠시 멍하니 있는데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씨.”
몸종은 얼른 바느질거리를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교랑은 벌써 침상에 앉아 있었다. 몸종은 정교랑을 똑바로 앉혀 주고 물을 한 잔 올린 다음 머리를 빗겨 주었다.
“아씨, 관주님이 그 두 아이를 벌써 보내셨대요.”
몸종의 말에 정교랑은 응 하고 대꾸한 후 고개를 숙인 채 책을 봤다. 방 안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그 두 아이가 불쌍하단 생각이 드니?”
정교랑이 물었다.
“아니요. 불쌍한 사람에겐 미운 구석이 있는 법이죠. 딴에는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만에 하나가 있잖아요. 만에 하나 아씨께서 무슨 일이라도 당하셨으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몸종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듯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요 며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정말 그랬다면, 우리 모두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정교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규방 여인이 치욕을 당한 일만큼 수치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정씨 가문에서는 사정을 아는 이를 모조리 죽여 입을 막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 두 아이가 밖에서 조심스레 살폈겠지. 만에 하나 너나 관주가 오지 않았더라도 그 아이들이 들이닥쳤을 거야.”
정교랑의 말에 몸종은 아, 하고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둘 다 아주 잘했어.”
정교랑은 책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두 아이가, 똑똑하긴 해.”
몸종은 이해가 안 가는 듯 정교랑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아씨. 그 두 아이가 마음에 드세요?”
정교랑은 고개를 들고 몸종을 바라봤다.
“난 바보일 뿐, 미치광이는 아니야.”
정교랑의 말에 몸종은 풉, 웃음을 터뜨렸다.
“아씨, 또 절 놀리시네요.”
“놀린 거 아니야. 내가 말했잖아, 난 속이 좁다고.”
정교랑은 책장을 한 장 넘기며 말했다.
“나를 속이고 짓밟고 이용한 사람을 어떻게 곁에 둘 수 있겠어.”
그렇지. 아씨를 속이고 짓밟은 사람은 이미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그 두 아이는 다른 도관으로 보내졌을 뿐이니, 정말이지 운이 좋았다. 몸종은 고개를 숙인 채, 네 하고 대답했다.
“아씨, 생선을 새로 샀는데 어떻게 드시고 싶으세요?”
몸종이 한결 홀가분해진 말투로 물었다.
“무슨 생선인데?”
“커다란 청어예요.”
정교랑의 물음에 몸종이 대답했다.
“부엌에 있는 재료는?”
정교랑이 또다시 물었다.
“파랑 달걀이 있어요. 어제 산에서 딴 버섯이랑 목이도 있고요.”
몸종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대답했다.
“그리고 또…….”
“됐어.”
정교랑이 말을 끊었다.
“어죽을 만들자.”
몸종은 기쁘게 고개를 끄덕이고 단정히 꿇어앉아 진지하게 듣고 기억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