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46
교랑의경 46화
찬합에 든 음식을 차려놓은 반근은 예를 표하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나 주육낭 뒤에 앉았다.
“먹어. 지난번에 먹었던 게 바로 이거야.”
주육낭이 말했다. 맞은편에 앉은 진 공자는 웃으며 소매를 걷고 손을 뻗어 앞에 있는 접시에 놓인 노란 튀김 하나를 꺼내 입에 넣더니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해. 이렇게 정교한 맛을 내다니, 어떻게 만든 거야?”
진 공자는 주육낭을 무시한 채 뒤에 있는 반근을 보며 물었다.
“별거 없어요. 그냥 반죽에 벌꿀을 넣고 주무른 다음 기름에 튀긴 것뿐이에요.”
반근이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그깟 간식 하나 가지고 그리 허겁지겁 먹기는.”
주육낭은 하찮다는 투로 말했다.
“상자, 자네 부친 말씀마따나 뭔가에 빠지면 헤어나올 줄 모른다니까.”
진 공자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고 하나를 더 집어 먹었다.
“그깟 간식? 그깟 간식이 아니야. 벌꿀만 더 넣었을 뿐인데 우리가 전에 먹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야.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난 찬모가 아니잖아.”
주육낭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하자 진 공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닐세. 마음을 쓰느냐 안 쓰느냐의 차이야. 마음을 쓰면 먹고 마시고 입고 자는 모든 게 남과 다르거든.”
“그런 일에 마음을 써서 뭐 하게? 잔재주일 뿐인걸.”
주육낭은 계속해서 코웃음을 쳤다.
“아니면 이런 작은 일에도 그토록 마음을 쓸 정도니 그 지혜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거나.”
진 공자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작은 도(道)나 큰 도나 모두 도야. 작은 게 모이면 커지니 작은 도도 함부로 봐선 안 돼.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도 있잖아.”
주육낭은 술잔을 들어 한입에 털어 넣고는 튀김이 놓인 접시를 진 공자 쪽으로 밀어주었다.
“먹어, 먹어, 전부 다 먹어. 어서 먹고 그 입 좀 막아.”
주육낭이 소리쳤다.
“자네처럼 억지를 부리는 자와 논쟁을 하려 했으니 내가 화를 자초한 거지. 승려 각공(覺空)이 왜 자네만 보면 벙어리처럼 구는지 이제야 알겠군! 불법 설파를 포기할지언정 자네 같은 수다쟁이 불존(佛尊)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진 않았던 거야.”
진 공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억지라니. 자네도 본인 말이 억지인 걸 알면서 그럴듯하게 꾸며대곤 하잖아. 하여간 남의 잘못만 보이지, 본인 잘못은 인정도 안 하고.”
“그 입 다물어, 다물라고. 계속 떠들면 나 확 가 버린다.”
주육낭은 성가신 듯 소리치고는 고개를 돌려 반근을 쳐다보며 호통을 쳤다.
“이게 다 네가 만든 이 간식 때문이다. 괜한 말썽을 일으키잖아.”
반근은 공자가 자신에게 농담을 한다는 걸 알았다. 자신을 중히 여기니 이렇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거겠지. 반근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네, 소인의 잘못이에요.”
진 공자도 웃으며 술을 마시고는 물었다.
“반근, 이 간식은 이름이 뭐냐?”
고개 숙인 반근의 귓가로 전에 나눴던 비슷한 대화가 울리는 듯했다.
“아씨, 이건 뭐라고 불러요?”
“난, 모르겠어.”
그 소리가 맴돌았다.
“소인은,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진 공자는 반근을 보며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주육낭은 성가신 듯 혀를 내둘렀다.
“그냥 먹는 거잖아. 뭔 이름이 있다고 이름을 찾아.”
그렇지. 그런데 이 아인 왜 이름이 없다고 하지 않고 이름을 모른다고 하는 거지? 모른다는 말인즉 이름이 있다는 뜻이고, 이름이 있다는 것은 그 주인이 있다는 의미다. 이 간식의 주인이 이 아이가 아니었나? 그럼 누구? 진 공자는 더 캐물으려 했지만 주육낭이 말을 끊었다.
“난 자네랑 술 마시러 온 거야. 식(食)을 논하러 온 게 아니라고. 따분해 죽겠네.”
주육낭은 술 주전자를 들어 술을 따라주며 질린다는 듯 말했다.
시(詩)를 논한다는 말을 식을 논한다는 말로 바꾸다니, 제법인걸! 진 공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서생과 무인, 절름발이와 신체 건장한 젊은이. 바로 남들이 보기엔 하등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 이 두 사람이 어릴 때부터 절친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거칠면서도 세심한 구석이 있고 고상하면서도 속된 면모가 있으니 호흡이 척척 맞을 수밖에.
진 공자는 술을 주전자째 들어 고개를 젖혀가며 벌컥벌컥 마셨다. 주육낭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진작 그랬어야지.”
술이 세 순배쯤 돌자 두 사람 모두 불콰하게 취해 한껏 흥이 올랐다. 주육낭이 성 밖으로 말을 타고 산을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병으로 걸음을 못 걷는 진 공자 또한 말의 능력에 기대 잠시나마 자유롭게 활보하는 쾌감을 즐길 수 있어 말 타는 것을 좋아했다. 곧바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시종을 부르고 후다닥 아래층으로 내려와 술집을 나왔다. 반근도 따라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난 말 탈 줄 모르는데.”
반근은 기쁘면서도 불안해했다.
“뭘 겁내, 공자님께서 가르쳐 주실 텐데.”
다른 몸종이 히히 웃으며 대꾸했다. 반근은 얼굴이 빨개진 채 그 몸종과 웃고 떠들었다.
거리에는 사람도 많고 마차도 많았다. 늠름한 소년과 아리따운 시녀의 행차는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마차가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앞쪽에서 위압적인 호령으로 길을 여는 소리가 났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던 인파는 신기할 정도로 쫙 갈라지면서 길을 텄다.
“누구지?”
술기운이 알딸딸한 주육낭은 미간을 찌푸렸다. 붐비는 인파 사이에 껴 있으려다 보니 이리저리 흔들려 부아가 치밀었다.
“이 몸이 성 밖으로 나가야겠다는데, 어디서 감히 길을 막아.”
주육낭이 고삐를 틀어쥐고 말을 내달리려는데 앞쪽 마차에 있던 진 공자가 얼른 휘장을 들고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진안군왕(晉安郡王)의 행렬이야.”
취기가 확 달아난 주육낭은 휙 몸을 날려 말에서 내려와 사람들과 함께 길을 비켜섰다. 인파에 밀려 뒤로 물러난 반근은 잘생기고 늠름한 주 공자와 총명하고 기품 있는 진 공자가 이토록 공손한 태도를 보이자 의아했다. 반근의 눈에 이 둘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이들마저 이토록 공손하게 만드는 사람은 대체 누굴까?
“고관대작이야?”
반근이 궁금증을 못 이기고 옆에 있던 몸종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역시 촌에서 온 계집이라 어쩔 수 없네.
“군왕(郡王)이셔. 황제의 친척이지.”
몸종이 대답하자 반근은 아, 하고 대꾸했다. 황제의 친척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네. 군왕의 마차가 코앞으로 오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이리저리 몸을 밀치며 군왕을 보려고 애썼다. 황제의 친척을 볼 수 있다니, 역시 경성은 대단한 곳이구나. 반근도 흥분을 안고 까치발을 들며 군왕을 보고자 했다.
황족만 달 수 있는 표식이 달린 마차에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의 위병들은 살기를 띠고 있었다. 마차가 흔들리면서 단정히 앉아 있는 군왕의 옆얼굴이 이따금 보였다. 가지런히 묶은 머리에 진지한 표정이었는데 콧대가 특히 높았다.
어찌나 순식간에 지나갔는지 반근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휘장에 가려져 있으니 제대로 볼 수 없을 수밖에. 마차가 저 멀리로 사라지자 이쪽 거리는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반근과 몸종도 얼른 진 공자의 마차 옆으로 따라붙었다.
“많이 봐 둬, 좋은 기운 얻게.”
진 공자의 말에 주육낭은 말 위에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씩 웃었다.
“좋은 기운은 여자들이나 받는 거지. 우리 사내들한테 뭐 좋을 게 있다고.”
진안군왕은 수왕(秀王)의 장자로 어릴 때 부친을 따라 입궁했다가 황후의 품에 안긴 적이 있는데 그 후 얼마 안 가 황후가 회임을 했다. 자손이 귀했던 황제와 태후가 크게 기뻐했음은 물론이었다. 이후 황후는 황자를 낳았지만 안타깝게도 석 달 만에 요절했다. 이듬해에는 진안군왕이 또다시 상경하여 귀비의 품에 안겼는데 얼마 안 가 귀비도 회임을 하여 태후와 황제를 기쁘게 했다. 그때부터 진안군왕은 황실의 복덩이로 여겨졌고 당시 5살이었던 진안군왕을 황궁으로 데려와 키운 게 벌써 10년이었다.
10살을 넘기면서 비빈의 품에 함부로 안기는 게 힘들어졌지만 여전히 태후의 곁에서 자랐다. 우연인지 아니면 정말 뭐가 있는 것인지 진안군왕이 황궁에서 지낸 후로 황제의 자손이 번성하여 벌써 자녀가 열이나 됐다. 황자는 두 명에 불과했지만 나이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부친이 된 황제로서는 그 정도도 흡족해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진안군왕은 황실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고 비빈들 사이에서는 아이를 보내 주는 동자라는 뜻에서 ‘송자동자(送子童子)’라고 불렸다. 어린아이일 때는 이런 칭호를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명색이 군왕이라는 자가 황궁에서 자라며 곧 성년의 나이인데도 그리 불린다면 웃을 일이 아니었다. 듣기로 진안군왕은 부친의 봉지(封地)로 돌아간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저분도 가엾지.”
벌써 저만치 멀어진 행렬을 보며 진 공자가 중얼거렸다.
자고로 황실의 일은 논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일행은 빠르게 성문을 빠져나왔다.
잠시 후 주육낭과 진 공자가 머물렀던 술집으로 7~8명쯤 되는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점원은 기겁을 했다.
“누구신지…….”
여럿이 우르르 달려 나와 묻자 우두머리인 집사가 손을 휙 내저었다. 술집 주인은 손을 뻗어 집사가 던진 은자를 잽싸게 낚아챘다. 제법 묵직하군, 통이 크네.
“분부라도 있으신지요?”
주인이 생글생글 웃으며 앞에 있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너울을 쓴 여인 둘과 여자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을 찾고 있어요.”
너울을 쓴 채 아이를 손잡은 여인이 대답했다.
같은 시각 강주의 현묘관은 시끌벅적한 속세와 달리 더없이 조용했다.
“반근.”
나무 아래의 정교랑이 손을 뻗으며 말하자 몸종은 나뭇가지 끝을 손수건으로 감싸 건넸다. 나뭇가지를 건네받은 정교랑은 느릿느릿 부들방석 위에 앉아 힘겹게 글자 하나를 썼다. 몸종은 그게 무슨 글자인지 몰랐으나 그래도 그게 글자라는 건 알았다.
“어머, 아씨, 쓰셨네요. 글자를 쓰셨어요.”
몸종이 흥분하여 외쳤다. 마지막 획을 느릿느릿 마무리하고 난 정교랑은 그제야 손을 떨며 숨을 토했다. 곧이어 두 번째 글자를 쓰려고 했지만 손은 이미 통제 불가능한 상태여서 좀처럼 써지지 않았다. 정교랑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뭇가지를 쥔 손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못 쓰겠어, 못 쓰겠네.”
“아씨, 벌써 한 글자를 쓰셨잖아요. 잘하셨어요. 내일이면 두 글자를 쓰실 수 있을 거예요.”
정교랑 앞에 앉은 몸종이 정교랑의 무릎을 주무르며 기쁘게 말했다.
“서두르지 마세요. 서두를 것 없어요.”
정교랑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난 안 서둘러.”
정교랑은 땅 위에 쓴 글자를 나뭇가지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내 말은, 이 글자를, 너무 못 썼단 뜻이야.”
몸종은 땅 위의 글자를 다시 쳐다봤다. 반듯하고 똑바른 게 아주 훌륭해 보였다.
“아주 예쁜데요. 집에 있는 공자님들의 쪽지에 있는 글자보다 훨씬 나아요.”
정교랑은 나뭇가지로 몸종의 이마를 톡 치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싶은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정교랑은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
“아씨, 이게 무슨 글자예요.”
“태.”
몸종의 물음에 정교랑이 대답했다.
“‘태’요?”
몸종은 다시 한번 발음해 보다가 퍼뜩 깨닫고 물었다.
“태평할 때 ‘태’요?”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좋네요. 아씨께서 많이 연습해서 편액을 직접 쓰시면 되겠어요.”
몸종은 손뼉을 치며 물었다.
“태평, 태평, 너무 좋은 이름이네요. 태평을 기원한단 뜻이에요?”
“아니야.”
정교랑이 말을 이었다.
“내가 태평 만두를 좋아해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