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52
교랑의경 652화
소심이 마차 휘장을 걷어 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왜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거지?”
지름길로 간다고 하지 않았나?
지름길은 혼례 날에 이미 가 봤는데? 사람이 그리 많았는데도 한 시진이면 갔었어. 평소라면 반 시진도 안 걸려서 도착할 길인데, 왜 혼례 당일보다도 오래 걸리는 거 같지?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훑어보던 소심은 깜짝 놀랐다.
“이게 지금 무슨······.”
“왜 그래?”
반근이 소심의 옆에서 머리를 내밀고 밖을 내다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주위 환경은 낯설기만 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여기는 군왕부가 아니잖아?”
소심이 앞쪽을 내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마차의 앞뒤에 붙어있던 의장 행렬이 없어지고, 시위 열댓 명만 남아 간격을 두고 마차 주변을 호위하고 있었다. 진안 군왕의 마차는 앞쪽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여기는 군왕부잖아.”
반근이 갑자기 말하면서 옆에 있던 담벼락을 가리켰다.
“군왕부 후원의 담벼락 같은데?”
군왕부 후원의 담벼락?
반근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자, 소심은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군왕부 안은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경성 곳곳을 누비고 다녔던 소심은 뒤늦게나마 이곳을 알아보았다.
저건 정말 군왕부 후원의 담벼락인데, 지금 어딜 가려는 거지?
“뒤를 따라오라고만 하시고, 어디로 간다고는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일단 지금은 군왕부를 끼고 계속 돌고 있어요.”
마부가 조용히 말했다.
군왕부 주위를 돌고 있다고?
소심과 반근은 서로 마주 보다가 다시 앞쪽의 마차를 내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중독된 이후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아요. 깨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를 당신 저택에 데려갔던 거 같은데. 그때 당신이 집에 없었어요. 거기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당신이 거기에 있지 않아서······.”
진안 군왕이 말하면서 정교랑의 허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그는 무언가를 꽉 잡으려는 듯이 한 손을 세게 주먹 쥐었지만, 손바닥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다시 손을 폈다.
“그 후로는 계속 혼수상태였어요. 이대로 정말 죽는구나 싶었는데, 또 잠시 깨어났죠. 깨어나자마자 정사낭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고.”
정사낭이 죽었다. 무려 정사낭이. 정씨 가문에서 유일하게 진심으로 그녀를 아껴 주던 그 정사낭이.
정사낭이 죽다니, 심지어 그녀가 보는 앞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얼마나, 그녀가 얼마나 아플까. 그런 아픔은 대체 어떤 아픔일까.
그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생각만 떠올리면, 가슴이 너무 아파서 숨이 턱 막혔으니까.
“정방, 미안해요.”
진안 군왕이 고개를 들자, 정교랑의 매끈하고 쭉 뻗은 목이 보였다. 언제 어디서든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정교랑의 습관 때문일 것이다.
“나 때문이 아니었다면, 당신과 정사낭도 이렇게 남의 계략에 빠지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 이 일도 결국 내 탓이 돼요.”
정교랑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정교랑의 옆모습이 진안 군왕의 눈에 들어왔다. 정교랑의 오뚝한 코가 먼저 보였고, 위아래로 움직이는 짙은 속눈썹이 보였다.
“만약 내가 의술을 모르고, 죽을병이 아니면 고치지 않는다는 원칙이 없었더라면, 남들의 계략에 이용되지도 않았을 거고, 오라버니도 죽지 않았겠죠.”
정교랑이 말했다. 진안 군왕은 그런 정교랑을 바라보았다.
“정방, 미안해요. 내가 말을 잘못했어요.”
정교랑이 고개를 돌려 무엇을 잘못 말했는지 설명해 주기를 기다리는 듯한 눈빛으로 진안 군왕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진안 군왕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정교랑을 빤히 바라보았다.
언제나 평온하고 담담해 보이는 얼굴.
속상하고 마음 아픈 일들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이 여인의 얼굴에는 그런 상심이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저 얼굴 뒤로, 얼마나 많은 슬픔을 홀로 억누르며 감당하고 있을까.
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믿어 왔는데, 이 여인은 매번 나보다 더 불행한 일을 겪어.
생각해 보니 우리가 천생연분이긴 하네. 남들 눈에는 화려하기만 한데, 우리가 겪은 일은 그 누구보다도 참혹하잖아.
진안 군왕의 귓가에 작은 기침이 들려왔다.
“계속 이렇게 앉아 있으면, 가슴팍이 아플 텐데.”
이렇게 앉아 있으면? 내가 어떻게 앉아 있지?
진안 군왕이 뒤늦게 자신의 자세를 내려다보고는 불에 덴 듯이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튕겨 나갔다.
쿵 소리와 함께, 마차가 잠깐 흔들거렸다.
마부 대신 직접 마차를 끌고 있던 내시가 덩달아 몸을 살짝 떨었다.
안전을 위해 이 마차를 탄 게 천만다행이었네. 여름에 조금 덥긴 해도, 휘장이 아니라 문과 창문이 다 달린 마차라 방음도 잘 되고 말이야. 마차 안에 타 있는 사람도 여기가 길 위인지, 왕부 근처인지 전혀 모를 거야.
좋은 마차야. 워낙 방음이 좋아서 그런지, 큰 소리가 새어 나오지도 않고, 조용히 대화하는 듯한 말소리만 간간이 들려오네.
이렇게 큰 소리가 난 건 처음인데.
“괜찮아요?”
“아파요!”
마차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 공공은 머릿속에 단단히 자리 잡은 음란한 생각을 황급히 떨쳐내고, 앞을 바라보며 오늘 정씨 저택에서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를 곰곰이 곱씹었다.
두부, 음, 꽃으로 조각된 두부를 먹었지. 태평거에서 만든 태평 두부가 유명하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는데, 말로만 듣던 태평 두부를 직접 먹은 건 또 처음이네.
미간을 찌푸리면서 뒤통수를 매만지는 진안 군왕을 보며 정교랑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픈 걸 알면 됐어요. 아픈 걸 모르면, 오히려 곤란해지죠.”
진안 군왕은 정교랑의 눈을 피한 채 민망하게 웃으며 애써 괜찮은 척을 했다.
“맞는 말이에요. 아픈 건 살아 있다는 증거죠(痛則生).”
진안 군왕의 귀는 거의 녹아버릴 정도로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치겠네. 내가 뭘 한 거야!
“통해야 산다(通則生), 아니에요?”
정교랑이 웃음기 서린 눈으로 말했다.
“비슷한 거 아니겠어요? 아플 통이나, 기가 통할 통이나.”
여전히 정교랑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던 진안 군왕은 정교랑의 표정이 몹시 궁금했지만, 괜히 헛기침을 하며 점잖은 모습으로 창문을 열고 중얼거렸다.
“집에 당도할 때가 다 됐는데?”
“거리로 따지면, 세 바퀴째겠네요.”
정교랑이 말했다.
“세 바퀴째요?”
멈칫했던 진안 군왕은 그제야 정교랑의 말뜻을 알아듣고 마차 문을 벌컥 열었다.
“아경!”
진안 군왕이 소리쳤다.
돼지찜을 먹은 뒤에 생선 요리를 먹었는지, 전분으로 만든 어묵을 먹었는지 헷갈려 하던 경 공공은 깜짝 놀라 하마터면 마차 아래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경 공공이 고개를 돌리자, 진안 군왕이 무릎을 꿇어 엎드린 채로 한 손으로 문을 열고 자신을 노려보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말 산책이라도 시키려고?”
진안 군왕이 눈썹을 치켜뜨고 호통쳤다.
말 산책이 아니라, 사람 산책이지요.
경 공공이 속으로 말하고는 앞섶이 터진 진안 군왕의 옷과 머리카락이 삐져나온 관을 빤히 바라보았다.
“되게 빨리 끝나셨네.”
경 공공이 고개를 돌리고 중얼거렸다.
진안 군왕이 굳은 얼굴로 뒷짐을 진 채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고 선생이 진안 군왕의 안색을 살피고는 그의 뒤를 따라 민망한 듯 손을 모으고 따라오는 경 공공을 쳐다보았다.
쯧쯧, 자네는 정말!
고 선생이 경 공공을 향해 눈으로 말하고는 서둘러 진안 군왕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군왕 내외가 신방으로 돌아오자, 시녀들이 서둘러 옷을 갈아입도록 시중을 들었다.
“먼저 씻어요. 난 잠시 저들과 상의할 게 있으니.”
진안 군왕이 말했다. 정교랑이 진안 군왕을 불러세웠다.
“이쪽 거처에 서재를 하나 마련했으니, 그쪽으로 가서 이야기 나눠요.”
진안 군왕이 놀란 듯이 멈칫했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전하, 이쪽으로 가시지요.”
소심이 길을 안내했다. 진안 군왕이 나가는 모습을 확인한 후, 정교랑은 그제야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경 공공, 고 선생과 함께 들어온 막료 서너 명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전하의 서재인 줄 알았는데, 내원에 있는 서재일 줄이야.
“전하께서 여기에도 서재를 만드신 게냐?”
고 선생이 물었다.
“왕비께서 쓰시는 겁니다.”
소심이 웃으면서 대답하고는 천천히 차를 따랐다.
“왕비께서 말씀하시기를, 전하께서 내원에서 논의하는 게 가장 좋을 거 같다고 하셔서요.”
경 공공이 웃으면서 소심의 말에 맞장구쳤다.
“좋다마다요. 여기에 계시면, 왕비께서도 언제든 전하를 뵐 수 있으니.”
뭐? 나를 한 시도 떠나보낼 수 없어서, 언제든 보고 싶어서 내원에 앉아 있으라고 하는 거 같아? 대체 어딜 봐서?
진안 군왕이 경 공공을 흘겨보았다.
도대체 중독됐던 사람이 나야, 아니면 경 공공이야? 어째 사람이 부쩍 멍청해진 거 같단 말이지.
음, 아니면, 어쩌면, 아마도, 그러니까······. 저 여인이 멀리 가고 싶지 않아서, 혹시라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돌보기 불편하니까 그런 게 아닐까?
너무 조심하는 거 아니야? 내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생각에 잠긴 진안 군왕이 입을 삐죽이며 웃는 것을 본 고 선생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진안 군왕의 얼굴을 차마 더는 보지 못하겠는지, 일부러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설마 쭉 저렇게 지내시는 건 아니겠지?
소심은 진안 군왕의 시녀가 아니기에, 사람들을 서재로 안내한 뒤에 곧바로 예를 올리고 물러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안 군왕의 시녀들도 밖으로 물러났다.
“이번 일에 관련된 자들은 우선 가둬 두었습니다. 늘 하던 대로 처리할까요?”
고 선생이 물었다. 진안 군왕이 서재 안을 훑어보았다.
내실만 한 크기의 서재는 그리 넓지 않았고 원래 쓰던 외원의 서재에 비하면 몹시 작았다.
놓여 있는 가구들도 다 간소하네. 탁자, 방석, 책장, 향로······.
“간소하게 놓인 것들이긴 하나, 다 좋은 물건들입니다.”
진안 군왕의 시선을 따라가던 경 공공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탄했다.
고 선생이 미간을 찌푸리고 헛기침을 했다.
이 두 사람 좀 보게. 분명히 자기 집인데, 꼭 남의 집 희귀한 세간살이를 구경하는 것처럼 굴잖아!
고 선생이 눈치를 주자, 경 공공이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전에는······.”
진안 군왕이 탁자를 손끝으로 두드리면서 입을 열었다.
진안 군왕의 주위에는 사람이 많았다. 여기저기서 보내 준 사람들.
태후가 상으로 내린 사람, 황제가 먹을 갈라고 보내 준 사람, 귀비가 차를 따라 주라고 보낸 사람, 그리고 대신들이 보내 준 말을 관리하는 사람이나 마차를 모는 마부 등. 심지어 어떨 때는 차 맛이 좋다고만 해도 차를 우린 시녀를 보내오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거나 미소만 지어도 그 사람을 보내 주곤 했다.
물론 진안 군왕이 직접 고른 하인들도 있긴 했다. 궁에 새로 들어온 내시나 궁녀를 배정할 때면, 습관처럼 편히 사람을 고르곤 했으니까.
시중을 드는 하인들의 출신은 복잡하지만,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하기도 했다. 진안 군왕이 직접 고른 사람들은 자기 사람이고, 나머지는 전부 자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본분을 지키지 않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하인들을 종종 걸러냈다. 그게 자기 사람이면 그 자리에서 때려죽여 버렸다. 과거 그가 신임했던 집사가 일부러 늑대 떼를 불러왔다는 것을 알고 바로 때려죽였던 것처럼.
하지만 자기 사람이 아니라면, 붙여줬던 사람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굳이 자기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으니까.
“우리 사람이라면, 하던 대로 하면 돼.”
진안 군왕이 고개를 들며 미소를 지었다.
“누가 보내 준 사람이라면 돌려보내고.”
고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려던 찰나, 진안 군왕이 한마디 덧붙였다.
“아, 그냥은 말고, 때려죽여 보내게.”
고 선생이 흠칫 놀랐다.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서 있던 경 공공도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