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09
교랑의경 709화
“왕비 전하.”
편전 안, 정교랑의 행동을 본 두 시종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걸 뽑으시면 안 됩니다!”
두 시종이 주복을 부축하며 정교랑을 따라왔다. 앞에서 걸음을 옮기던 정교랑은 길을 가다가 멈추고, 또 길을 가다가 멈췄다. 두 시종이 속으로 충격이 너무 큰 탓에 미친 건 아닐까 생각하던 찰나, 정교랑이 걸음을 멈췄다.
“생문(生門)은 이쪽에 있다.”
정교랑이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생문? 생문이 무슨 문이지?
그 뒤로 두 시종은 정교랑을 따라 무엇에 쓰였는지 모를 편전 안으로 들어갔다.
두 시종이 편전 안의 불을 밝히고, 주복을 바닥에 눕혔다. 주복의 가슴팍에 반쯤 박힌 화살 끝이 보였다.
“다행히도 거리가 어느 정도 있어서, 몸통을 관통하지는 못했습니다.”
한 시종이 말했다.
몸통을 관통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겠지.
정교랑은 시종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다짜고짜 화살 끝을 잡았다. 누가 봐도 화살을 뽑으려는 동작에, 두 시종은 놀라 혼비백산했다.
“왕비 전하, 그러시면 안 됩니다.”
“그걸 뽑아 버리신다면, 분명 숨이 끊어질 겁니다.”
두 시종이 다급하게 말하면서 놀란 눈으로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저분이 정말로 그 신의 낭자인가?
정교랑이 손에서 화살을 놓았다.
“칼은 있느냐?”
정교랑이 물었다. 두 시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리춤에 있던 칼을 뽑아서 정교랑에게 건넸다.
“왕비 전하, 우선 옷을 찢은 다음 말씀하시면 그때 저희가 뽑겠습니다.”
한 시종이 주복의 옆에 꿇어앉으며 말했다. 시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칼을 건네받은 정교랑은 곧바로 손목을 돌려서 주복의 가슴팍에 칼을 내리꽂았다.
푸슉 소리와 함께, 피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편전 안에 사내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비켜!”
정교랑이 호통쳤다. 정교랑은 재빠르게 발걸음을 움직이면서 주복의 가슴을 총 세 번 찔렀다. 마지막 한 번을 찌르는 동시에, 정교랑은 주복의 몸에 박힌 화살을 단번에 뽑아냈다.
또 한 번 비명이 울려 퍼졌다.
가까이 있던 두 시종의 얼굴과 몸으로 주복의 피가 잔뜩 튀었다. 두 사람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정교랑을 바라보았다.
이게 사람 목숨을 살리는 거야, 죽이는 거야?
몸에서 피가 용솟음치듯 뿜어져 나오자, 가만히 누워 있던 주복이 경련을 일으켰다.
“왕비 전하!”
두 시종이 소리쳤다.
하지만 정교랑은 두 시종의 말과 비명이 들리지 않는 듯, 또다시 손에 쥔 칼을 휘둘러서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냈다. 머리카락이 사방에 흩어졌다. 정교랑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머리를 흔들며 손에 든 칼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비처럼 쏟아지는 머리카락이 온 바닥에 흩뿌려졌다.
미친 건가?
두 시종은 넋이 나갔다.
왜 머리카락을 다 잘라내는 거지?
“왕비 전하.”
뒤늦게 정신을 차린 두 시종이 정교랑을 말리려고 몸을 일으켰다.
“한쪽에 가서 서 있어. 절대로 움직이지 말고!”
정교랑이 소리쳤다.
두 횃불 아래, 정교랑은 어지러운 듯하면서도, 어떤 기괴한 박자가 있는 것 같기도 한 걸음을 옮기며 칼을 휘둘렀다. 정교랑의 모습은 흡사 귀신이 칼춤을 추는 듯한 모습이었다.
두 시종은 낡은 사찰에서 머물렀던 그날 밤, 정교랑이 홀로 고십사를 죽이러 갔던 때가 떠올랐다. 정교랑은 그 많은 시종을 내버려 두고, 혼자서 무기를 잔뜩 챙겨서 떠났었다.
그때 시종들이 감히 정교랑을 쫓아갈 수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정교랑이 ‘절대로 따라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정교랑을 따라가지 않은 시종들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은 정교랑이 외친 그 한마디에 온몸이 얼어붙은 듯, 자리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주복의 몸에서는 아직도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정교랑의 머리카락은 사방에 흩날리고 있었다.
두 시종은 넋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한쪽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래. 미쳤을 수도 있지. 어차피 주 공자는 이미 죽은 거 같은데.
정교랑이 드디어 걸음을 멈췄다.
두 시종은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생각은 틀렸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원래 바닥까지 오던 정교랑의 긴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짧아졌고, 칼을 쥐고 있던 두 손은 칼날로 옮겨갔다. 정교랑이 주복의 앞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인 채, 두 손으로 칼날을 비비기 시작했다.
손을 비벼?
손을 비비다니!
깜짝 놀란 두 시종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정교랑의 손에서 철철 흐르는 피가 주복의 몸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피!
두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각자의 두 손을 깍지 끼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을 수 있을 것처럼.
세상에나! 진짜 미쳤나 봐!
아, 아파서 어쩌려고!
저건 칼이야. 칼날이라고! 살과 피로 이루어진 손을 어떻게 칼날에!
두 사람은 한순간이라도 놓칠세라 정교랑의 두 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선홍색 피가 시야를 가득 메우던 때였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두 시종은 주복의 몸에서 피가 덜 나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정교랑이 칼을 다시 높이 들었다.
드디어 끝난 건가?
살갗이 모두 찢어져서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두 손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종의 눈에, 갑자기 칼날이 번뜩이는 모습이 보였다.
“전하!”
두 시종이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안 됩니다!”
옷깃이 찢어지고, 붉은 피가 정교랑의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여인은 아무런 표정 없는 얼굴과 깊은 두 눈동자로 시종들을 쳐다보았다. 정교랑의 모습은 너무도 침착하여, 칼에 찢긴 어깨가 자신의 몸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 세상에! 이게 지금 뭘 하는 거야!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움직이지 마라.”
정교랑이 단호하게 말했다. 두 시종은 엉거주춤하게 선 자세로 정교랑을 빤히 바라보았다.
정교랑은 한 번, 또 한 번 자신의 몸을 칼로 찔렀다. 여기저기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있자니, 두 시종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시종들의 귓가에 나지막한 읊조림이 들려왔다. 일정한 음률이 있지만 듣기에는 몹시 기이한 목소리가 두 사람의 놀란 가슴을 위로해 주는 듯했다.
“상림(桑林)에 왔으니, 부디 신령들께서 들어주십시오.”
“저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두 손을 갈아······.”
“이 육신으로 기도를 바치오니······.”
황제의 침궁 안.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돌포탄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내시들은 우왕좌왕했지만, 황후와 대신들이 도착할 때쯤에는 겨우 등불을 밝히고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침상 위에 누워 있는 천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황후는 순간 또다시 눈물이 흘러나왔다.
“폐하, 신첩은 폐하를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습니다.”
황후가 침상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늘의 일은 무척 위험했다.
정교랑이 내시를 통해 건넨 쪽지를 보았을 때부터, 정교랑이 보냈던 폭죽 상자를 떠올리기까지. 본디 별생각 없이 받아 둔 상자였지만, 가져온 사람이 정 낭자가 보냈다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하기에 받아 둔 폭죽 상자였다.
내시와 궁녀들, 그리고 황후는 ‘불꽃놀이’라는 쪽지를 보면서 각종 추측을 했었다.
혹시 불꽃놀이를 할 폭죽을 담은 상자 안에 정말로 불꽃놀이가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어떤 신기한 물건이 담겨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상자 안에 든 것을 모두 바닥으로 쏟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비단 향낭이나 신비로운 보따리 같은 건 없고, 두 상자를 모두 뜯어 봐도 그 안에는 폭죽만 잔뜩 담겨 있었다.
“마마, 이 폭죽은 이씨 가문의 것이라고 합니다. 이씨 가문의 이무는 정 낭자의 제자지요. 이무는 정 낭자가 노제를 지낼 때 쏘아 올린 불꽃놀이를 보고 영감을 얻어 돌포탄을 만든 덕에 관직을 얻었습니다. 그 돌포탄이라는 것은 신비궁보다 어마어마한 무기이니, 어쩌면 이 폭죽 또한 목숨을 구할 위력을 가진 무기일 수도 있습니다.”
한 내시가 고민 끝에 말했다.
폭죽이 목숨을 구할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가진 무기라고?
황당한 추측이었지만, 당시 황후는 그 폭죽을 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폭죽을 품에 안고 뛰쳐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황후는 정말로 폭죽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황후가 바닥에 엎드려서 통곡했다.
정말 고단하구나. 살아남아서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이토록 고단한 일이라니.
황후의 울음소리는 태자의 침전에서 들려왔던 것보다 훨씬 절절했다. 대신들도 따라서 무릎을 꿇고 흐느껴 울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막 들려오던 찰나, 황후가 갑자기 악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던 대신들 또한 황후처럼 놀라 기겁을 했다.
황제가 누워 있던 침상이 움직인 것이다.
설마 폐하께서······.
침궁 안에 정적이 흐르고, 모두의 이목이 황제에게 집중됐다.
이때, 머리 하나가 침상 아래서 삐져나왔다.
“마마.”
안비가 민망한 듯 헤헤 웃었다.
“신, 신첩은 여기서 폐하를 지키고 있었어요. 깜빡 잠이 들었다가, 마마와 대신들께서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깼지 뭐예요.”
사람들이 귀신이라도 본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자신을 쳐다보자, 안비는 재빨리 침상 아래에서 기어 나와 허리를 숙이고 치마를 들며 뒤로 물러났다.
“다, 다들 하시던 거 마저 하세요. 신, 신첩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안비가 휘장 뒤로 물러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온몸에 힘이 빠져 방석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대신들이 채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안비가 또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이제 다 무사한 거죠?”
황후가 한숨을 뱉으며 안비를 흘겨보았다.
“물러가거라!”
황후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호통치자, 안비는 화들짝 놀라 휘장 뒤로 몸을 숨겼다.
어휴, 다행이다. 이제 무사한가 보네.
갑작스러운 소동 때문에 황후는 만감이 교차하고 비통하던 감정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황후가 눈물을 훔치고 황제의 침상에 걸터앉아 대신들을 쳐다보았다.
“경들이 생각하기에, 오늘의 일은 어찌하면 좋을 거 같소?”
고능준이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입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피 냄새 때문에, 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주위에서 더는 시끌벅적한 소리와 논쟁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고, 전각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몸을 일으켜 앉은 고능준은 자신이 편전 안에 혼자 누워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왠지 모르게 이곳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태후궁의 전각이었다.
고능준은 밧줄에 몸이 묶여 있지도 않았고, 그를 살벌하게 노려보는 위병들도 없었다.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난 고능준은 옷매무시를 정리하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관모를 집어 머리에 썼다.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고능준이 큰소리로 외쳤지만, 그의 부름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순을 불러오거라!”
내가 그놈과 설전을 벌여야겠으니.
“황후를 만나야겠다!”
황후에게 천륜과 강상의 도를 따져야겠으니!
잰걸음으로 문가에 다가간 고능준이 문을 열려 했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 내가 아무 데나 돌아다닐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두지는 않았겠지.
고능준은 문틈 사이로 밖을 내다보았다. 횃불로 환하게 밝혀진 회랑 아래에 병사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서 있는 병사들은 고능준이 익히 아는 금위군이 아니라 위수군이었다. 간간이 내시와 궁녀들이 회랑 아래를 오갔지만, 모두 상복을 입고 얼굴을 손에 묻은 채 울고 있었다.
“불쌍한 태자 전하, 간신들의 손에 살해되시다니.”
“이건 명백한 모반이야. 고씨 가문에서 모반을 꾀하다니!”
내시와 궁녀들의 말이 문틈 사이로 고능준에게 전해졌다.
고능준이 문을 팍 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모반이라니! 나 고능준이 모반을 꾀하고자 했다면, 지금껏 기다리고 있었겠느냐?
태자가 어떻게 죽었냐고? 태자는 병에 걸려서 죽은 거야!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모반이라 한다면, 병사들을 이끌고 궁문을 폭파해 버린 그놈이 모반을 꾀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