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20
교랑의경 720화
그런 내시들의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던 경 공공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안채로 들어가고자 걸음을 옮겼다.
“뭘 하려는 겐가?”
고 선생이 경 공공을 붙잡았다.
“전하께서······.”
잠시 주저하던 경 공공이 문가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소인이 가서 전하를 설득해 봐야겠습니다.”
“설득한다고? 지금 전하를 어린아이로 보는 게야? 전하께서는 생각과 주관이 있는 분이네. 누가 옆에서 일일이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고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일이라면 모를까, 이번 일은······.”
경 공공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주복 그자가 너무하긴 했잖나. 전하께서 태자비의 체면을 봐서 계속 넘어가 주신 거지. 원래대로라면 진작 그자를 내쫓았어야 했네. 그러니 괜히 가서 성가시게 굴지 말게나.”
경 공공을 말리던 고 선생이 또 다급하게 물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뭐라고 했지? 태자비께서 정사낭의 비석에 글씨를 하나 새기셨다고?”
경 공공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이 추측한 바를 이야기했다.
“그러게 내가 일찍이 말하지 않았나. 태자비께서 참 고명하시다고 말이야.”
경 공공의 이야기를 들은 고 선생이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역시 여인네들이란. 태자비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긴 하지만, 그간 맺어온 원수가 너무 많아. 다들 태자비의 행실을 잘 알기에 그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예의주시하고 있을 텐데, 그렇게 갑자기 비석에 글씨를 새기시면 어떡하나? 남들이 일찌감치 눈치채는 바람에 계획한 일을 그르치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분풀이나 하자고 성급하게 그런 일을 벌이다니 태자비께서 너무 경솔하셨어.”
“태자비께서는 단지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신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일부러 숨기거나 음지에서 행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남에게 들키기를 두려워하시지 않는 당당함을 가지신 것이지요.”
경 공공의 말에 고 선생이 경 공공을 쳐다보며 웃었다.
“그럴 수도 있고. 뭐가 어찌 됐든, 지금은 모든 게 뜻대로 이뤄졌잖나.”
“태자비께서는 바라던 바를 이루셨을지 모르겠으나, 우리 전하께서 어떻게 되셨는지를 보십시오.”
경 공공이 탄식했다.
“전하께서는 황태자가 되셨지. 자네가 이렇게 우거지상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고 선생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경 공공을 흘겨보았다.
“고 선생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경 공공이 언짢은 기색으로 말하자, 고 선생이 입술을 삐쭉였다.
“어떤 일은 굳이 이해하려 들지 않아도 되네. 태자비가 걱정되어 그러는 게지? 이대로 가다간, 얼마 못 버티실 것 같아서?”
경 공공이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낮췄다.
“황제 폐하께서도 몇 달을 저리 버티고 계십니다.”
그러니 태자비께서도 당연히 버티실 수 있지요.
“그러게 말이오. 황제 폐하께서는 천수(天壽)를 다하실 때까지 평온하게 침상에 누워 계시다가 임종을 맞이하실 걸세. 그러니 태자비께서도 그러실 수 있지.”
고 선생이 경 공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경 공공은 복잡한 표정이었다.
“태자비가 이렇게 큰 공을 세웠으니, 전하께서는 분명 그 은혜를 저버리지 않으실 걸세.”
고 선생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꼭 황후로 추봉하실 것이야.”
경 공공의 안색이 새하얘지더니, 고 선생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지금 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거요! 추봉이라니요!”
경 공공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고 선생이 목소리를 낮추고는 경 공공의 멱살을 똑같이 쥐어 잡았다.
“추봉이 아니면? 그럼 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 산송장을 황후로 책봉하기라도 하겠다는 겐가? 아경, 제발 정신 좀 차리게!”
고 선생이 경 공공의 손을 내치고 옷매무시를 정돈했다.
“그게 바로 가장 좋은 결과이자,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야.”
방백종이 손을 뻗어 정교랑의 손을 잡았다. 본디 따뜻했던 정교랑의 손이었는데, 이제는 이불 안에 있어도, 방백종이 아무리 두 손을 꼭 쥐어도, 도통 따뜻해지지 않았다.
정교랑의 몸은 심장 박동도 없고, 맥도 잡히지 않고, 미약한 호흡만 남아 있었다.
“도대체 주복의 목숨과 무엇을 맞바꾼 거예요? 난 더 이상 단 하루도 그자의 얼굴을 못 보겠습니다. 당신을 보다가 다시 주복의 얼굴을 보면, 내가 여태 그자의 사지를 찢어버리지 않은 것에 감탄할 정도예요.”
방백종이 조용히 말했다. 그가 혼자 피식 웃고는 한숨을 쉬었다.
방백종이 한 손으로 정교랑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정교랑의 팔을 천천히 안마했다.
어쩌면, 그런 기이한 비술 덕에 몸이 부패하지 않은 건가? 살이 썩는 냄새가 나지도 않고, 피부의 색이 변하지도 않았어. 몸에 났던 자상도 평범한 사람처럼 서서히 아물고 있고.
정교랑의 팔을 주무르던 그의 손은 어깨를 지나며 정교랑의 목을 향해 차츰 위로 올라갔다. 방백종의 손끝이 정교랑의 가녀린 쇄골 위에 닿았다.
너무 야위었어.
방백종의 손은 천천히 정교랑의 목덜미로 향했고, 그는 정교랑의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부분을 조심스럽게 주물렀다.
“정방, 육가아가 언제 죽었는지 알아요?”
“정방, 오늘까지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아요?”
대답해주는 이 하나 없는 질문을 쏟아내던 방백종이 자신의 손끝을 정교랑의 코 아래에 놓았다. 정교랑의 얼굴을 감싼 손에서 미약한 호흡이 가까스로 느껴졌다.
이게 이 여인이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겠지.
이 미약한 호흡마저 없어진다면, 몸은 서서히 굳고, 얼음보다 더 차가워지겠지.
육가아처럼, 주위에 아무리 많은 얼음을 갖다 놓아도 몸이 썩어 가는 고약한 냄새가 날 거고, 육가아처럼, 관곽에 넣어져 깊디깊은 땅속에 묻힐 거야.
이 세상에 다시는 이 사람이 존재하지 않겠지.
방백종이 고개를 숙이고, 정교랑의 목을 끌어안은 채 허리를 숙였다.
“정방, 어서 일어나요. 당신한테 물어볼 게 있어요. 당신이 대답해 주지 않는다면, 난 너무 견디기 힘들 거 같아요. 지금도 너무 견디기 힘들다고요.”
방백종이 흐느끼는 소리가 방 안에 낮게 맴돌았다.
“어서 일어나요. 어서 깨어나라고요.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이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요.”
이보다 더 긴 밤은 없었다.
반근과 소심은 서로 등을 맞댄 채로 밧줄에 묶여 있었다. 면포에 입을 틀어막힌 두 사람은 소리 없이 흐느꼈다. 소심과 반근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창밖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사라지자 깊은 어둠이 내렸다가, 어둠이 차츰 걷히는 모습이 보였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공포와 절망감이 두 사람의 온몸을 덮쳤다.
새벽녘의 푸른빛이 하늘을 덮을 때쯤, 드디어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거의 까무러치기 직전인 상태의 몸종 두 명을 보고 있자니, 경 공공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
“태자비께서는 이미 가셨다.”
경 공공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몸종은 소름 끼치는 비명을 내지르고는 죽을 각오로 벽을 향해 머리를 박으려 했다.
다행히도 경 공공이 한발 빠르게 두 사람을 붙잡았다.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것 같이 가녀린 두 몸종에게 어디서 그런 괴력이 나온 건지, 둘은 경 공공의 손을 벗어나 그대로 벽에 부딪힐 뻔했다. 죽고자 하는 결심이 얼마나 결연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 내 말은 태자비께서 이곳을 떠나 태자 전하와 함께 동궁으로 가셨다는 뜻이다.”
경 공공이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반근과 소심이 고개를 들고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경 공공을 쳐다보았다. 경 공공은 두 사람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경 공공이 몸을 낮추고, 자리에 주저앉은 두 사람에게 말했다.
“너희를 속이려는 게 아니니, 소리 지르지도 말고, 소란 피우지도 말거라. 정말로 태자 전하께서 태자비를 모시고 동궁으로 가신 것이야. 거기에 계신다면, 태자비를 더 편하게 돌보실 것이다. 매일같이 이리저리 오가실 필요도 없을 테고.”
반근과 소심이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궁에 태자비를 극진히 모실 사람들이 있으니.”
경 공공이 말하면서 두 사람의 입을 막아둔 면포를 빼 주었다.
“저희가 아씨를 모실 수 있어요. 저희가 아씨를 모시게 해 주세요.”
두 몸종은 목이 쉴 정도로 울부짖으며 쉴 새 없이 큰절을 올렸다.
“전하께서는 너희에게 태자비를 맡기지 않으실 것이다.”
경 공공이 단호하게 말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반근과 소심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고개를 들어 경 공공을 올려다보았다.
경 공공이 미간을 찌푸리고 두 사람을 가리켰다.
“그래. 바로 이런 눈빛이야.”
경 공공이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말을 이어갔다.
“바로 이런 눈빛, 이런 표정이 참 보기 불편하단 말이지. 전하께서 더는 그런 표정들을 보고 싶지 않으신 게야.”
“공공, 공공, 앞으로는 말을 잘 들을게요. 더는 울지도 않고요.”
소심이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는 전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전하께서 시키시는 대로만 할게요. 제발요, 전하께 이렇게 빌게요. 아씨께서는 저희가 없으면 안 돼요.”
경 공공이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께서 말씀하시기를, 태자비는 그 누구도 필요하지 않으나, 너희가 태자비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하셨다.”
소심이 고개를 저으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태자비를 다시 뵙고 싶다면,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너희가 한 가지 일을 해낼 수만 있다면 말이야.”
경 공공이 이어서 말했다.
“저희는 뭐든 할 수 있어요. 뭐든 할 수 있습니다. 제발 시켜만 주세요. 저희더러 목숨을 내놓으라고 해도 좋아요.”
반근과 소심이 울며 애원했다. 경 공공이 고개를 저었다.
“이거 봐라, 이거 봐.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을 왜 해? 너희 눈에는, 전하께서 너희를 죽음으로 내몰 분으로 보이더냐? 툭하면 울고, 툭하면 죽겠다고 하니까 전하께서 너희를 곁에 남겨두지 않으려고 하시는 게야.”
반근과 소심이 눈물을 흘리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경 공공을 올려다보았다.
“죽을 필요도 없고, 여러 일을 할 것도 없다. 딱 한 가지 일만 잘 해내면 돼.”
경 공공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반근과 소심은 눈빛을 반짝이면서 경 공공의 분부를 기다렸다.
“걱정하지 말아라.”
경 공공이 또 말했다. 반근과 소심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자, 경 공공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않는 게, 바로 너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이다.”
반근과 소심이 경악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너희가 태자비를 다시 뵐 수 있을 그 날까지, 걱정하지 말고 잘 기다리고 있으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제 이곳을 떠나거라. 태자비의 친정으로 가도 되고, 태자비의 점포로 가도 된다. 무얼 하든 상관없으니,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잠자코 기다리면 되느니라.”
경 공공이 말했다.
그래도 결국 우리를 내쫓겠다는 말이잖아!
반근과 소심이 큰절을 올리며 울음을 터트리자, 경 공공이 갑자기 목청을 높이며 호통쳤다.
“뚝 그치거라!”
날카로운 목소리가 뼈마디를 찌르는 듯한 느낌에, 소심과 반근은 몸을 흠칫 떨며 울음을 삼켰다.
“한마디만 더 했다가는, 한 번만 더 울었다가는, 다시는 너희 아씨를 보지 못하게 될 줄 알아라.”
경 공공이 눈썹을 치켜뜨고는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아씨만 사람을 죽일 줄 안다고 여기느냐?”
동궁은 황궁의 북쪽에 있었다.
황제의 손이 귀했던지라 황궁에는 수십 년간 태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대황자, 즉 회혜황이 죽을 때에도 태자에 책봉되지 않았고, 선문 태자는 바보인지라 스스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할 수 없던 탓에 태후궁에서 지냈다. 따라서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동궁은 몹시 낡고 볼품없어 보였다.
방백종이 갑자기 동궁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자, 공부(工部)에서는 하는 수 없이 사람이 들어와 살 수 있을 정도로만 동궁을 보수했다. 원래는 건물을 점검하고 수리할 수 있도록 며칠 말미를 달라고 하려 했지만, 한번 마음먹으면 절대로 번복하는 법이 없는 태자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공부에서는 최대한 빠르고 간략하게 동궁을 손보고 정리했다.
경 공공이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내시들과 궁녀들은 전각 안을 분주하게 청소하는 중이었다. 태자의 침궁 청소가 가장 먼저 끝났기에, 경 공공은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전하.”
경 공공이 예를 올렸다. 내실 안에서 탁자에 기댄 채 책을 읽고 있던 방백종이 음, 하고 대꾸했다.
“다 처리했습니다. 주 공자는 가둬 두었고, 몸종 둘은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범 군감 댁이 아니라 신선거와 태평거로 간다고 하더군요.”
방백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가 보거라.”
경 공공이 예를 표하고 곧바로 밖으로 물러났다.
실내가 다시 조용해지자, 방백종은 책을 내려놓고 미인탑(美人榻: 여인들이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사용하던 좁고 긴 평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인탑 위에는 두봉을 돌돌 말아 품에 안고 편히 누워 있는 정교랑이 있었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방백종이 나지막이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