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30
교랑의경 730화
양산이 시위들에게 비키라는 손짓을 하고는 정준을 바라보았다.
“우리 아방은 태생이 총명하고 영리했으며, 무엇이든 한 번만 보면 외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아방은 우리 일족이 모든 심혈을 기울여 키워 낸 아이이며, 우리 일족의 모든 능력을 익힌 사람이지요.”
정준이 큰 소리로 웃으면서 기쁨과 자랑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우리 가문이 그런 아방을 키워낸 것이, 단지 네 살이 되던 해에 폐하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양산이 정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아버님, 대량이 누구의 손에 멸합니까? 정씨 가문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비술은 어디에 숨겨져 있고요?”
정준은 양산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우리 아방은 참 착한 아이지요.”
정준의 창백한 얼굴에 슬픔이 서렸다.
“우리 아방은 참으로 가엾은 아이예요.”
‘가엾은 아이’라는 말을 들은 양산의 눈빛이 순간 암담해졌다가 금세 냉랭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 정씨 가문은 결코 고난과 역경을 두려워한 적 없습니다.”
정준이 갑자기 목청을 높이고 눈빛을 반짝이면서 소리쳤다.
“우리 아방은 필시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으며, 비통함이나 슬픔도 없을 겁니다. 우리 아방은 절대로 정씨 가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겁니다!”
점점 더 흥분하는 정준을 보자, 양산이 고개를 돌리고 탄식했다.
“폐하, 물어 봤자입니다. 이미 미친 사람입니다.”
시위가 조용히 말했다.
정준은 시위의 말을 증명하듯, 아방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늘의 도움을 잃고 신령의 노여움을 사, 죽어가는 시체들이 들판에 가득 버려져 있구나. 전장에 나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하네. 끝없이 펼쳐진 평원의 길이 아득히도 멀구나. 장검을 차고 활을 든 채로 머리와 몸이 잘리더라도 후회는 없으리. 진실로 용감하고 무예 또한 뛰어나니, 끝내 굳세고 강하여 가히 범할 수 없다네(天時墜兮威靈怒, 嚴殺盡兮棄原野. 出不入兮往不反, 平原忽兮路超遠. 帶長劍兮挾秦弓, 首身離兮心不懲. 誠旣勇兮又以武, 終剛强兮不可凌. ).”
발음하기 까다로운 초나라 말에 기괴한 곡조였다. 게다가 정준이 쇠사슬에 뚫린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기이한 자세를 보이자, 안 그래도 음산한 지하실이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횃불로 환히 밝혔음에도, 시위들은 시야가 점점 더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양산이 정준을 슬쩍 보고는 몸을 돌리고 자리를 떴다. 양산이 층계를 올라서 밖으로 나오자, 벽은 다시 회전하여 닫혔고, 정준의 기괴한 곡조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대량의 후궁에는 등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의장 행렬이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자, 천자의 침궁 밖에서 황제를 기다리던 황후가 자세를 낮추고 양산을 맞이했다.
“황후께서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시오?”
양산이 눈앞의 여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물었다.
“폐하, 지난번에 신첩이 만들어 드린 양갱이 맛있다고 하셔서, 신첩이 특별히 밤참으로 만들었습니다.”
황후가 예를 표하며 말했다.
“맛있던 것은 그때이기에 맛있었던 것이오. 이번에는 짐이 양갱의 맛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소이다.”
양산이 말하고는 황후를 지나쳐서 침궁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황후는 민망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결국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자리를 떠났다.
“다들 저렇게 마음에도 없는 아첨을 부리기 바빠서야 원.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해대니 더욱 싫증이 나지.”
침궁 안에서 양산이 겉옷을 벗으며 중얼거렸다.
아방은 달랐어.
“당신을 위해 특별히 만들었는데도, 맛이 없을 것 같아요?”
양산의 눈앞에 팔걸이의자에 비스듬하게 앉아 교태를 부리는 한 여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양산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가 시선을 바닥에 떨구고 걸음을 옮겼다. 내시들이 휘장을 들어 올리자, 양산은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침궁 안의 장식과 가구들은 간소했다. 내시들이 모두 물러나자, 따뜻하게 불이 지펴진 겨울밤의 침전 안은 더없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양산이 침상 앞에 서서 옆에 놓인 탁자를 바라보았다. 탁자 위에는 검은 비단이 씌워져 있었다.
“아방, 그래도 네가 있어 다행이야.”
양산이 검은 비단을 걷어냈다. 그 아래로 작은 수정함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일렁이는 등불에 비치는 수정함은 영롱하고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수정함의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의 심장이었다. 그 심장은 금방 사람의 몸에서 도려낸 것처럼 새빨간 빛깔을 띠고 있었다.
양산이 손을 뻗어서 수정함을 매만졌다.
“아방, 여기서 종일 혼자 있느라 지겨웠지?”
양산이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무서울 거 없어. 이젠 내가 곁에 있을 거니까.”
양산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너도 내 곁에서 함께 하고.”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할 테니, 너도 영원히 내 곁을 지켜 줘.”
“이러니까 얼마나 좋아.”
수정함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던 양산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가 두 손으로 수정함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더니 무언가를 확인했다.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양산이 고개를 홱 돌리고 소리쳤다.
내시들이 서둘러 침전에 등불을 밝혔다. 수정함 주위로 몇 개의 등불이 몰려들었다.
허약하고 야위어 보이는 사내가 수정함을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어떠하냐?”
양산이 물었다.
“폐하, 정말로 부패하고 있습니다.”
사내가 대답했다.
양산이 발길질을 하자, 사내는 단번에 뒤로 고꾸라졌다. 하지만 그는 감히 양산에게 반항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빌어먹을 놈!”
양산이 이를 부득 갈면서 사내를 욕했다.
“부패하다니! 어떻게 부패할 수 있느냐! 썩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느냐! 어떻게 아방의 심장이 썩어! 어떻게! 아방은 짐과 함께 평생을 보내야 하느니라!”
침전 안의 내시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두려움에 떨었다.
“혹시 수정함이 망가진 게 아닐지요.”
내시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다른 내시를 향해 말했다.
“어서 새것을 가져오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사내가 이마를 땅에 찧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 수정함은 절대로 망가질 리가 없습니다.”
양산이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럼 어디 한번 말해 보거라.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준수했던 양산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우리 아방의 심장이 도대체 왜 썩고 있냐고!”
사내가 이를 악물고 하려던 말을 내뱉었다.
“폐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마마의 심장은 이미 폐(廢)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폐했다고?
사람이 죽었으니, 심장도 폐하는 게 당연지사지.
술수를 쓰는 술사(術士)들은 꼭 말을 저리 괴상하게 한다니까.
고개를 숙인 내시들이 속으로 생각했다.
“아방의 심장이 폐하다니? 남궁(南宮), 잊지 마라. 짐은 정씨 가문의 사위니라.”
정씨 가문의 재능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곁에서 보고 들은 게 있는 만큼 양산은 일개 술사의 거짓말에 놀아날 사람이 아니었다.
사내가 서둘러 큰절을 올렸다.
“폐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사내가 잠시 주저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신의 말씀은, 이것은 이제 마마의 심장이 아니기에 폐했다는 뜻이옵니다.”
양산이 실소를 터트렸다.
“이게 아방의 심장이 아니라고? 이건 짐이 두 손으로 직접 아방의 몸에서 떼어낸 것이다. 짐이 아방의 심장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게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요?
이치대로라면 절대 이렇게 될 리가 없는데, 왜 지금 저 심장이 썩고 있냔 말입니다!
어떻게 사람의 심장이 갑자기 바뀔 수가 있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수정함의 심장은 점점 더 빨리 부패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대화하던 사이, 새빨갛던 심장은 금세 짙은 갈색으로 변했다.
양산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재빨리 수정함을 품에 안았다.
“아방, 아방!”
너무 흥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양산의 걸음이 휘청이더니 곧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폐하, 폐하!”
내시들이 소리치면서 우르르 몰려갔다. 편전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태의, 태의를 불러라!”
이미 고개가 꺾인 채 바닥에 쓰러진 양산은 흡사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처럼 한 손으로 왼쪽 가슴을 꽉 쥐고 있었다. 그의 다른 한 손은 수정함을 꼭 쥔 채로 천천히 굳어갔다.
수정함에 들어 있던 심장은 결국 말라비틀어져 새까맣게 썩은 고깃덩이가 되었다.
아방! 아방!
돌아와!
돌아와!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고, 동이 트기 직전의 암흑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덮었다. 어둠 속에 넓게 펼쳐진 늪에서 벌레와 새가 지저귀던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멀리서 말굽 소리가 들려오더니, 붉은 점처럼 보이는 횃불과 사냥개가 거칠게 숨을 내뿜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사냥개가 고개를 숙이고 바닥의 냄새를 킁킁 맡으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사냥개가 한 곳에 멈춰 서더니 고개를 들고 경계하는 모습으로 한 방향을 내다보았다. 그 뒤로 말굽 소리와 횃불이 점점 가까워졌다.
냄새를 맡던 사냥개들이 맹렬하게 짖으며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사냥개가 달리면서 만들어낸 바람에 무성하게 자란 띠풀들이 흔들거렸다.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 토끼가 바람을 가르는 화살처럼 빠르게 뛰어갔다.
사냥개들이 급하게 멈춰서고는, 고개를 틀어 토끼가 튀어나온 방향을 향해 짖으며 달려갔다. 진흙이 뒤섞인 늪의 물이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에 난 풀들 위로 쏟아졌다.
“저쪽이다!”
사냥개들을 뒤따라온 사람들이 사냥개가 달려가는 방향을 향해 외치며 말을 재촉했다.
“그쪽이 아닙니다!”
나침반을 들고 있던 서생이 다급하게 외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카만 하늘을 올려다보는 서생의 얼굴에 횃불이 드리워졌다. 그가 머뭇거리면서 손끝으로 무언가를 계산했다.
“저쪽이 아닐 텐데.”
서생이 중얼거렸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오?”
장수가 소리쳤다. 서생은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됐네. 일단 저쪽으로 가 보지. 어차피 크지 않은 곳이니, 마땅히 도망갈 곳도 없을 걸세.”
서생이 대답하지 않자, 장수가 외쳤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
서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수와 병사들은 재빨리 사냥개가 달려간 방향을 쫓아갔다.
그러나 한바탕 추격이 끝난 뒤, 멀리서 사냥개 무리가 토끼 한 마리를 입에 문 채로 돌아왔다. 장수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말머리를 돌리려던 찰나, 갑자기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환하게 밝혔다.
“이런, 경성에 무슨 일이 났구나.”
장수가 하늘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장수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가자. 지금 당장 강주부로 돌아간다.”
장수의 호령과 함께, 사냥개와 사람들은 허둥대며 왔던 길을 따라 달려갔다. 황량한 들판 위로 횃불과 말굽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늪 주위가 다시 조용해지자, 벌레와 새가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서히 동이 트면서 어둠이 걷히자, 하늘이 차츰 쪽빛으로 물들었다.
그때, 늪의 어딘가에서 띠풀이 요란하게 움직였다.
한 사내가 풀숲을 헤치며 걸어 나왔다. 그의 옷은 물에 흠뻑 젖어 있었고, 온몸에는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차디찬 겨울의 바람이 불어오자, 온몸이 덜덜 떨리고 이가 딱딱 부딪혔다. 하지만 그는 몸을 따뜻하게 할 겨를도 없이 냅다 겉옷을 벗어 품에서 이불 보자기를 꺼냈다.
늪에 숨어 있던 여인이 몸을 바들바들 떨며 진흙탕 속에서 기어 나왔다. 진이 다 빠졌는지, 여인은 풀숲으로 올라오자마자 바닥에 쓰러졌다.
“도련님은 어찌 되셨습니까?”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여인이 물었다. 사내가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다행히도 아기는 여전히 발그레한 얼굴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얼마나 편히 잠들었는지, 아기는 입에서 조그마한 물방울을 만들어냈다.
사내가 저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어서 가세. 어서.”
사내가 표정을 가다듬고는, 재빨리 아기를 다시 품에 넣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부축하면서 어딘가로 뛰어갔다.
하늘이 점차 밝아지더니, 동쪽에서 붉은 해가 떠올랐다.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