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290
이진혁이 그랑 란츠를 떠난 지 어느새 1000여 년이 지났다.
일천 년.
아무리 천사라 해도 찾아오는 노화와 수명의 끝을 무시할 수 없는 세월이다.
그러나 이진혁교의 인류연맹 교구 주교이자 영웅왕의 후계자, 이제는 통합된 하워드 가문과 이씨 가문의 가주이기도 한 인류연맹의 기둥, 키르드는 아직 살아 있었다.
아니, 단지 생존만 하고 있는 상태인 것도 아니었다. 거동은커녕, 건강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늙지도 않았다.
이는 키르드 또한 이진혁교의 주교로서 어느 정도의 신앙을 얻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진혁교는 이진혁을 섬기는 신도들의 모임이지만, 적어도 인류연맹에서 키르드는 문자 그대로 신의 아들이었으니 어느 정도 신앙을 모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 덕에 키르드의 혼은 아주 점진적이지만 확연하게 성장했다. 아직 육체의 탈을 벗어던질 정도의 격은 아니라곤 하나 적어도 수백 년 정도의 세월은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의 불멸성을 손에 넣었다.
더 짧게 말하자면, 잡신이 되었다.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되게 자존심 상하는데.”
한참 동안이나 상태창을 들여다보고 있던 장년의 키르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그는 자신이 한때 이진혁이 했던 말을 똑같이 따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찌푸린 키르드의 눈가에는 자글자글한 주름이 잡혔다. 아무리 절반의 불멸성을 손에 넣었다고 한들 그것이 완전한 불로불사를 가져다주는 건 아닌 데다, 이미 찾아온 노화의 결과물까지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급 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키르드는 고민했으나, 곧 그 답에 도달했다.
“······아버지께 묻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아버지를 찾아야겠어.”
“안 그래도 찾고 있잖아요.”
키르드의 혼잣말에 대답한 건 그의 아내 링링이었다. 그녀는 키르드와 달리 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한시적으로 스킬의 힘이 그녀의 겉모습만을 바꿔놓은 것에 불과했다.
링링은 아직 천사였고, 신격에 오르지 못했다. 세월의 흐름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 그녀의 수명도 끝나 안식에 들리라.
그러나 그것이 당장 눈앞의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미리 슬퍼할 일은 아니었으며,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그들 앞에는 산재해 있었다.
물을 한 모금 마셔 목소리를 가다듬은 링링은 하던 말을 마저 이어 했다.
“지난 천 년간 줄곧, 쉬지 않고 인류연맹의 총력을 다해서 찾고 있죠.”
이진혁은 자신이 어디로 향한다는 말도 없이 떠났다. 그나마 상위 세계로 향한 건 아니라는 확언이 있었기에 그들은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진혁이 떠난 후 첫 백 년간, 키르드를 비롯한 이진혁교의 신도들은 일부러 그를 찾지 않았다. 그것이 떠난 그에 대한 무례라고 생각한 탓이기도 했고, 더 솔직히 하자면 윗사람이 없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자유를 만끽한 건 사실 채 백 년도 가지 못했다. 사실 이진혁이 떠난 지 10년도 안되어 신도들은 그를 찾기 시작했다. 마치 엄마가 집에서 나가길 간절히 고대하며 기다리다가, 정작 엄마가 집에서 나가니 몇 시간도 못 참고 어머니를 찾기 시작하는 남자 중학생처럼.
그나마 그것이 떠나간 이에 대한 무례라는 인식이 없었더라면 그마저도 못 참았을 것이다. 백 년이라도 참은 건 어디까지나 이진혁에 대한 예우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백 년이 지나자마자 키르드를 비롯한 각 교구의 이진혁교 신도들은 힘을 합쳐 이진혁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탐색 계열 스킬을 사용하면 금방이리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이진혁이 현존하는 그 어떤 스킬보다도 높은 급의 탐색 회피 스킬을 패시브로 발동하고 있는 줄 몰랐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이진혁교 신도들은 이 넓은 우주에서 이진혁을 육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탐색은 계속되었다.
100년, 200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으나, 그럼에도 그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진혁교를 대표하는 가장 큰 3대 교구 중 이진혁 탐색을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블루 마블 교구의 신도들이었다.
지난 500여 년간, 블루 마블 교구의 신도들은 다른 어떤 교구보다도 치열하게 이진혁을 찾았었다.
크고 밝게 타오른 불꽃이기에 더욱 쉽게 꺼지고 만 걸까.
블루 마블의 공동 주교를 역임하고 있던 루시피엘라와 비토리야나는 풀이 죽어, 자신들의 신이 또 자신들을 버리고 상위 세계로 향했다고 말했다.
키르드는 블루 마블 공동 주교의 두서없는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절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포기한 것은 그랑 란츠 교구였다. 그들은 800여 년 버텼다. 그들이 탐색을 포기하게 된 이유는 어이없게도 부부 싸움이었다. 케찰코아틀과 테스카틀리포카의 싸움은 그랑 란츠라는 거대 교구를 절반으로 쪼갰고, 곧 그렇게 쪼개진 두 세력은 내전에 들어갔다.
키르드는 두 부부의 누구 편도 들 수 없었고, 개입하여 내전을 멈출 수도 없었다. 같은 이진혁교 신도라지만 다른 세력 소속인 이상 내정간섭을 할 수는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3대 교구 중에선 이진혁교의 세가 가장 작다고 할 수 있는 인류연맹 교구가 가장 단단하게 이진혁 탐색의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지난 천 년간, 단지 이진혁을 찾겠다는 이유로 인류연맹의 과학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스킬을 사용하면 이진혁을 찾을 수 없으니 스킬 없이 사람을 찾는 기술을 필요로 했고, 과학기술은 그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탐색했으나 그 누구도 이진혁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들의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여전히 아무도 몰랐다.
이제 불과 십 수 년 후면 이진혁을 찾아 헤맨 것도 천 년이 된다. 천 년을 찾아도 못 찾으면 포기하는 게 정상이나, 그들은 좀처럼 포기할 줄 몰랐다.
아니, 포기할 수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아버지는 지구로 가신 게 아닐까?”
“지구는 벌써 이 잡듯 뒤져봤잖아요.”
사실 이진혁교의 신도들이 이진혁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바로 지구였다. 지구는 이진혁의 고향이었고, 초기 플레이어 상당수의 고향이기도 했다. 그러니 순서를 꼽는다면 이견의 여지없는 1순위 지점이었다.
그러나 지구에서도 이진혁은 발견되지 않았다.
진실을 말하자면 발견하지 못한 거였다.
인류연맹의 조사단이 지구에 파견되었을 때, 이진혁은 폭풍우에 휘말려 바다 깊은 곳에 빠져 있었다. 이진혁교가 지닌 당시의 기술로는 바닷속까지 탐색할 수 없었기에 찾다 못한 그들은 지구에 이진혁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찾아보자.”
키르드가 말했다.
“세월도 흘렀고 기술도 발전했으니 지금 찾으면 찾아질지도 모르잖아.”
“그것도 그렇네요.”
링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달리 방법도 없었다. 그저 힘껏 찾는 것. 그게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렇게 인류연맹 교구의 이진혁교 신도들은 지구를 대상으로 이진혁 탐사대를 다시 한번 보내기로 결의했다.
***
어둠 속.
두 그림자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인류연맹에서 지구를 향해 탐사대를 보낸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마구니 동맹의 두령이었다. 그를 단순한 일개 두령이라 할 수는 없었다. 그가 모시는 주인은 동맹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였으니.
“이번에는 지구인가······. 방해 공작은?”
그 가장 특별한 주인의 물음에, 마구니 두령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음을 안타깝게 여겼다.
“시도는 하고 있습니다만······.”
“그래, 쉽지 않겠지. 이상하게 인류연맹에는 틈이 잘 안 보인단 말이야.”
“줄곧 그랬습죠.”
마구니 두령의 말에 그의 주인, 마라 파피야스는 턱을 만지며 고심했다.
마구니 동맹의 마라 파피야스가 다시 세상에 나와 활동을 시작한 지는 사실 20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일천 년간의 두문불출을 끝내고 눈치를 보던 마구니들은 이 세계에서 이진혁이 사라졌다는 것을 확신한 후에나 다시 행동을 개시했다.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마구니들은 심하게 굶주려 있었지만, 곧 배를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세계의 사람들은 마구니들이 이진혁의 손에 의해 완전히 멸종했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그만큼 마구니에 대한 대응이 덜 되어 있었다. 그 덕에 마구니들은 희생양들을 쉽게 유혹하고 마구니로 전향시킬 수 있었다.
빠른 속도로 세를 불려간 마구니들은 한때 이진혁의 본거지라 할 수 있었던 세력인 그랑 란츠에 마수를 뻗혀 이진혁교의 공동 주교인 케찰코아틀과 테스카틀리포카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것이 그들이 근래에 이룬 가장 큰 성과였다.
마구니 동맹의 다음 목표는 인류연맹이었으나, 인류연맹에의 작업은 잘 통하지 않았다.
이진혁의 후예인 키르드를 중심으로 뭉친 세력이라 그런지 이간계도 잘 통하지 않았을뿐더러, 천 년 전의 일이라곤 하지만 가장 최근에 마구니들의 직접적인 침략을 받은 탓인지 방비도 그럭저럭 잘되어 있었다.
그래서 마구니들은 인류연맹을 상대로는 기껏해야 간첩 몇을 밀어 넣어 정보를 빼내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저 이진혁 탐색 퀘스트는 언제가 되어야 포기할지 모르겠군.”
마구니 동맹의 입장에서 볼 때 인류연맹보다 더 먹음직스러운 상대, 예를 들어 교단이나 만신전, 천계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계속해서 인류연맹에 신경 쓰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만약 인류연맹이 진짜 이진혁을 찾아낸다면?
그럴 가능성은 이미 0에 수렴한다고 믿고 있지만, 완전한 0이 아니라는 점이 신경 쓰인다. 그래서 마라 파피야스는 어떻게 해서든 인류연맹의 이진혁 탐색 퀘스트를 좌절시키려 하고 있었다.
“저······, 마라님.”
마구니 두령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왜? 이제 포기할 때 안 됐냐고? 어차피 이진혁 없으니까 방해 공작 하지 말자고?”
“네.”
마라 파피야스는 지긋지긋한 듯 물었으나, 마구니 두령은 굴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끄덕임에 대한 대답은 단호했다.
“할 거야. 계속해.”
“······네.”
입술을 삐죽 내민 마구니 두령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라 파피야스는 여기서 화를 내봐야 별 의미도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무시했다.
“그럼 지구를 향해 분신 몇을 투입하겠습니다.”
“어차피 하는 거 없잖아. 3번부터 99번까지 다 보내.”
1200년 전의 이진혁을 상대로 한 작전으로 인해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 수가 확 줄었다. 아무리 배를 채웠다고는 하나 말 그대로 허기를 면한 것뿐. 새로운 분신을 만들어낼 정도로 마라 파피야스의 힘이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지금 남아 있는 분신은 고작 99개체. 그중에서 97개체의 분신을 파견한다는 것은 이번 작전에 마구니 동맹의 총력을 퍼붓는다는 의미였다.
마구니 두령은 그러한 마라 파피야스의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생각에 지금은 분신들로 하여금 식사와 정양에 전력을 다하도록 해 동맹의 힘을 끌어 올릴 시기였다.
그러나 이진혁이라는 이름은 마라 파피야스에게 있어 트라우마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 탓인지 마라는 탐색 방해 작전에 항상 총력을 투입하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마라 파피야스가 직접 내린 명령을 무시하거나 반기를 들 수는 없다. 아주 약간이나마 반항의 의미를 담아 한숨을 짧게 내쉬는 게 두령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럼 2번 분신은······.”
“걘 그랑 란츠 쪽 지휘해야지.”
“알겠습니다.”
그나마 ‘식사’는 하게 해주는구나 싶어, 마구니 두령은 다행으로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이어진 마라 파피야스의 말에 뚝 그쳤다.
“그리고 이번 방해 공작 부대의 지휘는 내가 직접 맡겠다.”
“예?!”
마구니 두령의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그럴 만도 했다. 이 나태의 결정체 같은 존재가 직접 나선다고? 의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뭐? 불만 있나?”
“있죠! 마라 파피야스 님이 돌아가시면 마구니 동맹은 끝이에요!”
마구니 두령의 충정 어린 절박한 외침에도 마라 파피야스는 별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는지 심드렁하니 대꾸했다.
“2번 있잖아. 걔가 알아서 하겠지.”
“차라리 2번 분신을 보내고 마라 님이 그랑 란츠를 맡으세요!”
두령의 의견은 온당했으나, 마라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고개부터 저었다.
“싫어.”
“어째서요?!”
두령의 말대꾸에 마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진혁은 상위 세계로 떠났다. 더 이상 우리 마구니 동맹이 놈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을 이유가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움찔거리고 있지.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에 떨고 있어야 하냐?”
마라의 목소리에 담긴 울분에, 두령은 더 따지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도 알아. 신경 안 쓰면 그만인 일이다. 그런데 저 인류연맹의 탐사대가 우리로 하여금 신경 쓰이게 만들고 있잖나? 이번에야말로 탐사를 완전히 좌절시켜야겠다.”
방만하게 드러누워 있던 마라 파피야스는 끙차, 하는 소릴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총력 정도야 투입할 수 있다. 내가 직접 나서는 모범도 보여줄 수 있지.”
마라 파피야스의 동공에 번뜩거리는 살기, 그리고 그 목소리. 마구니 두령은 감히 마라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