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076
1089장. 학신 정모씨의 정체.
“똥파리들은?”
“파리채를 맞고 튀었습니다.”
“새끼들 언제 적 국정원이야. 하라는 국가보안은 내팽개치고 민간인 사찰이나 하고……. 걔들도 참 불쌍타.”
“그러게 말입니다. 같이 세금밥 먹고 살던 처지라 남 일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스를 잘 만나야 해. 일을 해도 보람이 없잖아.”
“걔들도 알았겠습니까. 나름 큰 꿈 꾸고 입사했을 텐데 불법 사찰에 악플이나 다는 신세가 될 줄 말입니다.”
“윗물이 똥물인데 걔들이 맑을 수 있겠냐. 쯧쯧.”
건물 지하에 위치한 특수 비밀 공간에서 한진웅이 혀를 찼다.
모니터를 통해 장태산 주변을 샅샅이 관찰했다.
국정원은 그 사실을 몰랐다.
지금 자신들 머리 위에 군사용으로 사용되는 미국 첩보 위성이 떠 있다는 사실을.
거기에 적외선을 차단하는 특수 장치를 착용한 최정예 경호원들이 주변에 포진해 있었다.
이 모든 일은 장태산이 지시했다.
혹시 모르니 똥파리가 날아들면 확실히 쫓아내라는 내용이었다.
지시대로 특수 경호팀이 사방에 배치됐다.
암호 해킹팀도 합류했다.
대한민국 국가기관 중에 가장 뚫기 어렵다는 국정원 서버가 털렸다.
온시은이 이끄는 컴퓨터 담당 해킹 조직은 세계 초일류였다.
예상은 들어맞았고 통쾌하게 파리채를 휘둘러 똥파리들을 쫓았다.
“다들 긴장 풀지 마.”
“넵!”
한진웅은 가볍게 대화를 나누면서도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지금 보스가 중요한 인물을 만나고 있었다.
지난 대선 후보이자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중요 정치인과 조우 중이다.
자칫 만남이 언론에 알려지면 여러모로 피곤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소리 뭐죠?”
“뭐?”
“……탁! 탁! 그리고 피박…….”
음향 탐지 중인 직원의 눈이 작아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 보스도 한국 남자네.’
한진웅도 가끔 장례식장이나 친구들 모임에서 고스톱과 포커 등을 쳤다.
밥값 내기 정도로 가볍게 즐기는 친목 게임 수준.
그런 게임을 전혀 즐길 것 같지 않은 보스도 고스톱을 치는 중이었다.
“꺼.”
“넵!”
이런 상황에서 내릴 만한 지시는 간단했다.
기껏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을 판돈을 걸고 시간을 보낼 터였다.
백숙에 소주잔 기울이며 몇 판 치는 고스톱의 재미.
한진웅은 감히 상상도 못 했다.
점당 10억이 넘는 엄청난 거액의 판돈이 걸린 게임이 시작된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대표님.”
“응?”
“요즘 야근이 잦으신 것 같습니다. 아직 신혼이신데……. 크크.”
“그러게 말입니다. 자청해서 야근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믿을 만한 직원들 중심으로 모아 놓은 특수 경호팀.
한진웅과 허물없이 지내온 이들이 스스로 야근을 자처한 자신들의 대표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너희들 장가 최대한 늦게 가라. 특히 애는…… 신혼 다 즐기고 낳아!”
느닷없이 한진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얼마 즐기지도 못하고 짧게 끝나버린 신혼.
말로만 전해지던 허니문 베이비가 들어섰다.
자신을 많이 빼닮은 듬직한 쌍둥이 아들을 얻었다.
처음에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조상님 앞에 한 방에 면목도 세웠다.
하지만 기쁨은 잠깐이었다.
쌍둥이 육아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아내.
한진웅을 닮아 덩치까지 큰 쌍둥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집안에서 안전장치 없는 폭탄이 됐다.
기고 걷기 시작하면서 집에는 물건이 온전하게 남아나지 않았다.
아이들과의 육탄전으로 지친 아내는 한진웅에게 화살을 돌렸다.
퇴근 후에나 쉬는 날에는 밥과 설거지, 분리수거 같은 집안의 잡다한 일을 모조리 담당해야 했다.
밖에서는 잘나가는 경호회사 대표였지만 집안에서는 눈치 보고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 보통 남편이자 아빠 신세였다.
띠리리리리리.
그사이 울리는 스마트폰.
화면에 ‘절대 군림자’라는 이름이 떴다.
한진웅의 얼굴이 긴장과 동시에 딱딱하게 굳었다.
“여보…….”
한진웅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 손으로 스마트폰을 가리며 급하게 지휘실을 빠져나갔다.
“오늘도 야근이냐고? ……그게 보스에게 일이 있어서…….”
지휘실을 나가면서 흘리는 한진웅의 변명.
“수당이 세잖아. 애들 학원비라도 미리 벌어놔야지…….”
남은 직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곰 같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조신한 목소리가 완전 코미디였다.
결혼과 육아는 여성에게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무덤이라더니 그 말이 실감났다.
“두 번째 카메라에 열 영상.”
“체크!”
그 와중에도 모니터를 보며 보스를 철통같이 보호하는 씨큐리티 직원들.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
“……대표님.”
양우석 의원이 안절부절못했다.
가볍게 시작된 고스톱은 예상외로 치열했다.
황당한 표정을 짓던 김현재 전 대표도 점당 10억씩 국가를 위해 투자하겠다는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화끈 달아올랐다.
쪼로록.
얼음 통에 담긴 시원한 맥주가 거품을 내며 채워졌다.
후끈한 열기에 넥타이를 풀고 시원하게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김현재.
고스톱은 두 사람이 치는 ‘맞고’가 됐다.
판에 낄 정도의 레벨이 안 되는 양우석 의원은 고스톱 딜러가 됐다.
최대한 공평하게 표를 섞었다.
김현재 대표와 나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입장이 편하다는 걸 알았다.
“고스톱 치시는 대표님 어디 가셨나?”
‘투고’에서 멈춘 채 판을 응시하는 김현재 대표.
갈등하는 게 보였다.
‘쓰리고’에 들어가기에는 상황이 애매했다.
내가 피를 세 개만 먹으면 역전이 된다.
그렇다고 멈추기에는 아까운 판이다.
‘쓰리고’가 되는 순간 ‘따블’이 된다.
지금껏 벌었던 것보다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다.
점당 10억씩 밀어주겠다고 한 판이지만 대충 치고 있지는 않았다.
마법 능력을 빼고 순수하게 내 실력으로 승부를 보고 있었다.
판 분위기는 치열했다.
점수가 날 때마다 양우석 의원이 수첩에 점수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김현재 대표가 5000억 정도 벌어갔다.
그는 목숨을 건 것처럼 보였다.
내가 한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고 열과 성의를 다했다.
둘이 치는 ‘맞고’라 한 판에 수백억이 왔다 갔다 했다.
– 뭘 저렇게 고민하는지! 남자는 고!
– 재촉하면 안 됩니다. 손님 접대는 오례(五禮)의 하나입니다. 지금 장 신선께서는 손님을 대접하는 데 후하지도 않고 박하지도 않게 잘 처신하고 계십니다.
– 보고 있으려니 답답해서 그렇죠.
– 한잔하시죠.
– 근무 중 아니셨어요?
– 주어진 업무가 끝나면 적당히 휴식을 취함도 선비의 또 다른 일상수행법입니다.
– 선비셨어요?
– 네……. 인간 세상에서는 그래도 제법 이름을 날렸죠.
“어떤 분으로 사셨는데요?
귀신과 학신이 틈을 이용해 대화를 나눴다.
한 상 거하게 차려 대접했다.
우리만 먹기 뭐해 백숙과 도토리묵과 파전을 따로 주문했다.
막걸리와 소주, 맥주도 곁들였다.
제사상 옆에 차려지는 사자 밥처럼 별채 한쪽에 떡하니 준비된 음식상.
그 모양을 보고 양우석 의원과 김현재 대표가 의아한 듯 바라봤다.
대충 귀기가 센 곳에서 대접하는 중이라 그렇다며 진실과 거짓을 반반 섞어 둘러댔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게 얻어 받은 술상.
귀신과 학신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술을 나누고 안주를 먹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화목한 술자리.
학신은 홀과 관을 조용히 벗어 놓고 술과 음식을 음미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음식인 듯 시선에서부터 귀하고 소중하게 대했다.
산자들과 달리 귀신들이 음복을 하는 방법은 좀 달랐다.
인간이 허용한 음식의 기를 섭취했을 때 흠향의 기를 얻을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변화가 없어 보이는 음식상.
멀쩡해 보이지만 음식과 술에 담겨 있는 대상을 위한 마음이 특유의 기로 담겼다가 나중에 다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제삿밥을 먹고 나면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금세 허기가 지는 것이다.
– ……업무 특성상 비밀입니다.
–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비밀입니까?
– 하늘의 법이 엄격하여…….
– 적당히 힌트 좀 주시죠? 형님도 궁금한 것 같은데.
고스톱을 치면서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학신 정모씨.
유명한 과거 인사들의 면면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큼큼. 제가 조선시대 후기에 책을 좀 많이 집필했습니다.
– 책요? 많이 얼마나요?
– 한 500권 되지 싶습니다.
– 히익! 500권요? 와아! 진짜 똑똑하셨군요. 그런데 그걸 언제 다 쓰셨대요?
귀신이 연신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말이 쉽지 500권이면 엄청난 권수였다.
– 유배 중에 이것저것…….
– 유배요? 전혀 그런 관상이 아닌데…….
– 서학을 연구하다 그리됐습니다.
– 서학이면……. 천주교요?
짤막짤막하게 말을 하면서도 힐끔힐끔 나를 바라보는 정모씨.
순간 한 인물이 퍼뜩 떠올랐다.
조선 후기 정조 대왕을 모시고 풍운의 삶을 살다 갔던 조선 최고의 실학자.
끗발 날릴 때 집안 형제들이 공부하고 섬겼던 서학으로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
잘나가던 관직에서 내쫓겨 긴 세월 유배를 당했다.
그곳에서 저술했던 귀중한 저서들이 족히 수백 권이 넘었다.
역사 교과서에도 당당히 몇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글의 저자 된 분이다.
– 형님. 아시는 분이세요?
– 저 같은 일개 선비를 장 신선님께서 어찌 아시겠습니까.
말과 달리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는 학신 정모씨.
“풋…….”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신선이 되어서도 자신을 어필하는 정모씨의 면모가 밉지 않았다.
살아생전 업을 잘 쌓긴 쌓았는지 번듯한 신선이 됐다.
정모씨가 저술한 책은 후대에도 귀감이 되는 것들이 많았다.
격동의 시절을 살다 갔던 시대정신의 표본 같은 인물.
“고! 하겠습니다!”
장고 끝에 김현재 대표가 고를 외쳤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흘러내렸다.
단박에 수천억을 딸 수 있는 큰 판.
“후회 안 하시겠습니까?”
다시 한 번 기회를 줬다.
– 와아! 진짜 오래 걸리네!
– 진중한 성격이 도리어 약간의 흠이 되겠군요.
귀신과 학신이 김현재 대표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네!”
김현재는 마음을 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승리하면 벌어놓은 금액 중 상당수가 한 방에 날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마음 하나로 고심 끝에 고를 외친 김현재 대표.
“그럼 갑니다!”
들고 있던 패로 짝을 맞췄다.
탁!
단박에 피 두 개가 추가됐다.
“헛! 그 패가 거기에!”
“쌍피!!!”
김현재 대표와 양우석 의원이 긴장한 시선으로 내 손을 바라봤다.
바닥에 깔겨 있는 패는 세 개.
그중에 하나만 맞아도 내가 승리하게 된다.
파밧.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공간.
– 형님! 치시죠!
귀신이 응원했다.
쌓여 있는 패 하나를 들어 있는 힘껏 그대로 바닥에 내리쳤다.
탁!
힘 있게 깔려 있던 패에 붙는 한 장의 화투.
그 순간.
“헛!”
“아!!!”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