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127
1146장. 위험한 게임(2).
“웨 주석이 완 총리를 도발했다고?”
긴급 정보가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중국 총리실.
직전에 보고를 받은 란커창의 눈썹이 사납게 꿈틀거렸다.
잔뜩 예민해진 표정이다.
몰락의 길을 걸으며 한때는 재기 불가능해 보일 만큼 정도로 처참하게 쓰러졌던 거인이 다시 기지개를 켰다.
방태민이 집 지키는 개 정도로 키워냈던 공청단의 후계자 웨신타오.
미완의 거인이라는 호칭이 그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란커창은 누구보다 웨신타오의 진짜 무서움을 잘 알고 있다.
같은 공청단 출신인 그.
한때는 목숨을 걸 정도로 신봉했다.
웨신타오는 야심과 함께 무척 영민하고 뛰어난 머리를 가졌다.
방태민이 제시한 수많은 시험과 인내의 과정을 통해 차지했던 황좌.
표면적으로야 모든 걸 가진 듯 보였지만 속내는 막상 그렇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방태민의 그림자 안에서 일체 벗어나지 못했다.
홀로 서지 못한 꼭두각시가 됐다.
뒤에서 방태민이 지시한 대로 중국을 이끌었다.
명목상 주석에 불과했다.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군부나 공안 권력을 손에 넣지 못했다.
실세는 방태민 파벌이 모두 쥐었다.
그런 와중에도 웨신타오 역시 놀고만 있지 않았다.
뒤로 조용히 호랑이 새끼들을 키워냈다.
슈건핑이라는 사냥개도 함께 사육했다.
방태민과 상해방을 노리고 절치부심 보낸 긴 세월.
두 번의 주석직이 끝날 무렵에는 독립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하늘이 등을 돌리고 웨신타오에게 절망을 안겼다.
믿었던 정치 후계자의 가족 문제로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게 어긋나버렸다.
그리고 겪게 되었던 피비린내 나는 숙청의 과정.
한 시절 든든한 버팀목이던 웨신타오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몰락했다.
란커창은 이를 악물었다.
살아남기 위해 완진바오와 슈건핑이 내민 손을 잡았다.
란커창은 자신의 손으로 고위직 공청단 출신 상무위원들을 제물로 바쳤다.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웨신타오가 방태민에게 품었을 감정을 란커창은 슈건핑에게 품었다.
언제든 슈건핑을 황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도록 틈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래서 그런지 슈건핑도 란커창을 신뢰하지 않았다.
적과의 동침이 따로 없었다.
공개석상에서도 총리인 자신을 공공연하게 무시하는 슈건핑.
란커창은 감당해야 할 치욕을 인내로 버텼다.
슈건핑이 실기하는 시점을 노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실수하게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졌다.
– 그리고 지금…….
란커창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수족이 실시간 보고를 해왔다.
“지금 뭐?”
– 장립이라는 자가 완진바오 총리의 면전에서 웨신타오 주석의 잔에 술을 채웠습니다.
“장립…….”
란커창이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지난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주석궁에서 이삿짐을 싸면서 웨신타오와 술을 마셨다.
회한의 밤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10여 년의 세월.
주인다운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황제와 가신은 피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다짐했다.
언젠가 공청단의 후계자를 주석궁의 주인으로 만들겠다고 말이다.
란커창는 그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모두가 미완의 주석이라 조롱하듯 불렀지만 자신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란커창을 총리로 만들기 위해 웨신타오가 얼마나 노력했던가.
결의를 다졌던 그날 이후 웨신타오는 조용히 세상에서 사라졌다.
슈건핑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웨신타오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렸다.
1년 동안 언론에 몇 번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지워져 갔다.
참고 또 참았다.
그랬던 그가 말도 없이 경매장에 나타나 도발을 감행했다.
‘도대체 그자가 뭐라고!’
란커창은 장립에 대해 신뢰하지 않았다.
베이다이허에 갑자기 나타난 천둥벌거숭이 같은 자일 뿐이었다.
근본도 모르고 정체도 파악되지 않았다.
오로지 환단을 손에 쥐고 중국을 흔드는 음모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란커창은 예민하게 장립을 경계했다.
첫 번째로 환단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지금도 다들 경매장에 몰려가 어떻게든 환단을 손에 넣으려고 야단이지만 묵묵히 제자리를 지켰다.
중국을 통치하는 내로라하는 자들이 그깟 환단 하나에 이끌려 한곳에 몰린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 불순한 사상이라도 품게 되면 한 방에 중국이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급 상황이 초래된다.
슈건핑이 실제적인 권력을 잡고 있지만 각 성과 그 아래 도시와 현들은 주인이 저마다 달랐다.
보이지 않는 권력자들이 곳곳에서 지방호적처럼 자생했다.
그들을 통제하는 권력이 부재하게 된다면 중국은 5호 16국 시대처럼 뿔뿔이 갈라질 수 있었다.
누구보다 애국이 넘치는 란커창.
– 총리님…….
“중요한 일은 발생 즉시 보고하게.”
– 넵!
통화가 끝났다.
란커창도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권력에 한눈팔면 하루아침에 모든 게 사라지는 정국 정치판.
“장립……. 넌 누구냐!”
란커창은 웨신타오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낸 장립에 대한 분노로 이를 악물었다.
***
– 이거 뭐죠? 독이 든 성배입니까?
귀신이 웨신타오가 건네는 잔을 보며 물어왔다.
귀신도 알아챌 정도로 웨신타오의 행동은 그 의미가 가볍지 않았다.
나에게 쏠린 시선의 의미는 다채로웠다.
경계, 놀라움, 시기, 질투, 의문과 경고 등등.
각 파벌에 따라 그들의 눈빛이 사뭇 달랐다.
귀신아!
귀신을 불렀다.
– 넵! 형님!
자고로 남자는 복잡한 순간에 어떻게 하라고 가르쳤지?
귀신에게 질문을 했다.
– 무조건 직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군기 바짝 뜬 신참 군인처럼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는 귀신.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웨신타오에게 술을 따른 순간 다른 행동은 의미가 없었다.
위험한 게임을 제안한 웨신타오.
“영광입니다. 각하.”
깍듯하게 웨신타오의 권주를 받아들였다.
날 지명한 미래 단골이 될 손님이다.
파밧.
망설임 없는 행동에 웨신타오의 눈동자에 이채가 비쳤다.
술 한 잔이지만 서로 잔을 주고받은 이 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둘 다 잘 알았다.
게임판에 웨신타오를 끌어들였다.
“……고맙네.”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말하는 웨신타오.
“제가 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객, 아니 호갱님!
다들 웨신타오를 은근히 무시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니다.
주석직 10년이면 꿍쳐놓았을 돈과 암암리에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 무시 못 할 정도일 것이다.
방태민의 감시하에서도 묵묵하게 추종자를 키워낸 인물이다.
관운은 넘치지만 안타깝게도 아랫사람의 인복이 박한 관상.
방태민과 슈건핑에게 왕따 당한 웨신타오는 최애 호갱님이 될 가능성이 100%였다.
어려울 때 도와줘야 진짜 친구가 아니겠는가.
내가 살다 온 2020년까지 그렇게 활동량이 많지 않았던 웨신타오의 예상치 못한 등장.
미래는 역시 인간이 순간순간 선택하며 짜나가는 그물의 코와 같았다.
한 박자 숨을 쉬었다.
채근담에도 이럴 때 쓰면 제격인 말이 있다.
사람을 대할 때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랑과 예의를 지키면 인심은 떠나지 않는다 했다.
그리고 일 처리 시에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능력과 지혜를 발휘하면 예기치 못한 화를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이 딱 그런 순간이었다.
다른 이들은 내가 위험에 봉착했다고 여길 테지만 그 반대다.
방태민과 슈건핑에게 있어 나의 평가 가치가 쭉쭉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웨신타오가 술병을 들었다.
쪼로록.
잔을 들어 그가 주는 술을 받았다.
넘치듯 채워지는 마오타이주.
이제 정말 중국 정치 한가운데 섰다.
– 진심 형님의 무쫄림에 찬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쫄긴 왜 쫄아.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등선하고자 마음먹고 이곳에 마법 폭탄을 던질 수도 있다.
매번 말하지만 이들만 제거되면 중국은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다.
얽히고설킨 중국의 복잡한 권력 관계를 한 방에 부수는 방법.
구심점만 사라지면 욕망을 품은 늑대 새끼들끼리 전쟁을 벌일 것이다.
과거 중국 황조들이 망할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각하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누가 봐도 아부성 넘치는 건배사였다.
꿀꺽.
단숨에 잔을 비웠다.
목젖을 열고 훅 들어가는 백주의 알싸한 맛.
막걸리나 와인과 전혀 달랐다.
슬라브 민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독한 중국인들의 심성이 술에 녹아 있었다.
“하오! 하오!”
웨신타오가 기분 좋은 듯 하오를 연발했다.
겁 없이 행동하는 나를 지켜보며 마음에 담는 게 보였다.
술 한 잔에 오가는 마음과 마음.
서로 추구하는 바는 달랐지만 지금은 목적이 같은 동지였다.
“립. 나도 한 잔 주겠나?”
그때 옆에서 들려온 한 사람의 목소리.
완진바오였다.
– 크크. 사랑하는 애인 사이에 끼어드는 또 다른 여인 같네요.
귀신이 그들을 보며 놀렸다.
웨신타오로 인해 완진바오가 의도치 않게 뒤로 밀렸다.
크게 웃었지만 흔들리는 동공을 감추지 못한 완진바오.
중국 전역 일진 학생들이 모인다는 중국고의 전직 회장 밑에 있던 부회장이 나서는 셈이다.
파바바밧.
두 사람 사이에 스파크가 튀었다.
웨신타오가 없는 사이 공청단 양부(養父) 노릇을 하던 완진바오의 속이 바짝바짝 탈 것이다.
공청단 장자는 누가 뭐라 해도 웨신타오였다.
술 한 잔이 더 고팠다.
전 현직 중국고 회장들도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켜봤다.
류미는 속이 타는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공청단 인사들도 당황해 있기는 마찬가지.
“물론입니다. 총리님.”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전직이라지만 회장과 부회장은 엄연히 격이 달랐다.
이 정도는 차별을 해야 내가 먹을 판이 더 커진다.
냉혹한 너구리가 급하게 위험한 게임에 참여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술병을 들었다.
쪼로로록.
그리고 완진바오의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고맙네!”
속이 타는 듯 완진바오가 바로 잔을 들어 술을 들이켰다.
그사이에도 이런저런 계산을 하느라 바쁜 완진바오.
이럴 때는 단순명료하게 상황을 진행시키면 된다는 이치를 간과하고 있었다.
– 분위기 참 좋습니다. 흐흐흐.
사방은 여전히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웨신타오의 등장으로 모두가 머리를 굴리느라 바빴다.
내가 원했던 판은 이런 광경이 아니다.
그렇다면 꺼진 불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만들어야 한다.
– 쉽지 않을 겁니다.
귀신이 나를 자극한다.
가소롭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귀신은 아직도 멀었다.
도박판에 선수들이 부족하면 돈 많은 이들을 새로 채우면 된다.
그때 방태민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앞서 그랬던 것처럼 씨익 웃으며 사인을 보냈다.
금세 판을 읽어내는 방태민.
“립! 한 잔 더 주게.”
그가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각하.”
방태민의 그런 움직임을 기꺼이 환영했다.
그 순간.
“나도 목이 타는군.”
이 자리에서 현재 가장 판돈이 많을 물주님도 게임에 본격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