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87
186장. 주총
“주식회사 안아에 대한 서울중앙지법의 허가결정에 의하여 2008년 5월 21일 임시주주총회의 개시를 선언합니다. 본 임시주총의 목적은 현 경영진와 이사진에 대한 방만 경영과 주주불신으로 인해 여러 주주들의 요구에 의하여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주주총회 사회 진행자가 모두 발언에 나섰다.
“…….”
안아 본사 대회장에서 벌어지는 주총은 무거운 분위기였다.
한쪽 단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사들과 임원들의 표정은 침중했다.
계속되는 안아의 실책에 외국계 자본이 M&A를 시도했다.
지분 상당수가 넘어갔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었다.
단상을 중심으로 왼편 아래에 삼우 로펌 이사 조윤태와 외국계 변호사들이 포진했다.
그들의 표정은 무심한 듯 날카로웠다.
그 반대편에는 안아에 우호적인 주주들이 앉아 인상을 썼다.
안아를 대변하는 변호사들이 최종적으로 위임장을 검토했다.
“그럼 현 경영진에 대한 해임을 청구한 외국계 투자 회사를 대표해 삼우 로펌 이사이신 조윤태 변호사님의 의견 개진이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조윤태 변호사가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에 올랐다.
대기업 안아에 대한 경영진 해임 사건으로 인해 밖은 내외신 기자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러나 경호원들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어 그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여러 투자자들을 대리한 삼우 로펌 조윤태라고 합니다.”
단상에 올라 고개를 숙여 조윤태는 짧게 인사했다.
“안아에 대한 문제는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덩치에 맞지 않는 M&A를 통해 안아 그룹은 현재 꽉 막힌 경영 유동성 문제에 직면한 상태입니다. 부채 비율은 하늘 높은 줄 치솟고 있으며 매출은 곤두박질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아를 경영하는 실질적 주인인 오승혁 회장님과 그 일가는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며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습니다.”
조윤태의 목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조용히 퍼졌다.
“대웅 조선 인수 실패로 회사의 자본금와 유동자금이 고갈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배포 받은 자료에 모든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윤태는 일일이 주주들과 눈을 마주쳤다.
능숙한 웅변가 같았다.
“지금 그룹 상태는 어느 한쪽만 무너져도 순환출자와 순환보증, 무리한 모기업과 계열사 대출로 모두 회생 불능 상태입니다. 당장 오늘 망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거 말이 좀 심하지 않소!”
“적당히 합시다. 외국 놈들 똥구멍 그만 빨아요! 이거 매국입니다! 매국!”
“조용히 좀 해요!”
“아니 네가 뭐라고 조용히 하라 마라야!”
소액주주들끼리 언성이 오갔다.
“조용히 해주십시오. 더 이상 소란이 발생하면 주주총회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퇴장시키겠습니다.”
사회자가 주의를 줬다.
“…….”
다시 조용해지는 주총장.
“이런 까닭에 안아를 걱정하는 해외 투자자들이 나섰습니다. 회사의 주인은 일개 개인이나 가족이 아닌 주주들입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안아 그룹의 적폐를 오늘 일거에 해소할 것입니다.”
조윤태가 선언하듯 말했다.
“이런 이유로 위임 받은 49.42프로의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하여 현 오승혁 회장과 임원 일체의 사임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49.42!!!”
“세상에…… 언제 그렇게 주식을 모은 거야?”
주총장이 소란스럽게 변했다.
49.42프로라면 거의 100프로 안건이 통과된다는 의미였다.
소액주주들까지 찾아다니며 위임 받지 않는 이상 오승혁 회장의 퇴임이 확실시됐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런 현 (주) 안아의 대표이사이신 오승혁 회장님의 반대 의견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조윤태 변호사가 자리로 내려갔다.
대표이사 석에 앉아 있던 오승혁이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안아의 대표이사 오승혁입니다……. 오늘 여러 불미스런 일로 주주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오승혁은 90도로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흐흐. 49.42? 웃기지 말라고 그래!’
오승혁은 오늘을 위해 미친 듯이 주식을 끌어 모았다.
폐쇄된 주주명부를 통해 모든 주주들을 찾아 다녔다.
비자금 수백억을 뿌렸다.
최소 두 배 이상의 가격을 지불하겠다 약조하며 위임장을 받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확보한 주식은 49.45에 육박했다.
정치권을 협박하여 기관투자자들의 위임도 받았다.
믿는 구석이 있는 만큼 담담하게 주총장에 참석했다.
‘그 새끼는…… 죽었다. 크크크.’
눈에 가시 같은 놈에게 킬러를 보냈다.
정보에 의하면 놈은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킬러도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간 것으로 안다.
과거 비자금 회피를 과정에서 알게 된 해외 업자를 통해 소개받았다.
사살 후에 시체도 녹여주기를 주문했다.
그리고 청부 결과는 완벽했다.
집뿐만 아니라 주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린놈의 새끼!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알아?’
투자 재능은 천재일지 몰라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는 눈이 어두웠다.
“주주 여러분. 이 오승혁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아버님 대부터 내려온 이 안아 그룹 제가 반드시 지켜낼 것입니다! 대웅 조선 인수도 결정 나지 않았습니다. 정부에서도 자금 융통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번 위기만 넘어간다면 몇 배의 이익이 주주님들께 돌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이고 견마지로의 충성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오승혁은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열변을 토했다.
그 와중에 동룡 그룹 회장 주현태와 눈이 마주쳤다.
조용히 안아 주식 2프로를 매집했던 동룡 주 회장.
극적인 반전을 위해 특별히 참석을 부탁했다.
2프로 가치를 훨씬 넘는 계열사 하나 뚝 떼어주기로 약조가 됐다.
주현태가 웃었다.
오승혁도 눈빛으로 인사를 건네고 자세를 잡았다.
“부디 현명한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IMF로 인해 빼앗겼던 수많은 기업과 직원들의 눈물을 여러분들은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승혁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오승혁 회장을 믿어 봅시다!”
“또다시 대한민국 기업들을 외국인들한테 넘기면 안 됩니다! 그건 매국 행위입니다!”
안아에서 고용한 소액 주주들이 오승혁 지지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승혁 회장은 평소와 달리 겸손함을 유지했다.
소액주주들의 웅성거림은 장내를 뜨겁게 만들었다.
“그럼 바로 주주표 대결에 들어가겠습니다. 관례에 따라 주주님들은 각자 지분율대로…….”
“사회자님 길게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조윤태 변호사가 손을 들고 이의를 제기했다.
“네?”
“바로 결정하죠. 내 손에 들고 있는 주주지분을 넘는다면 간단할 게 아닙니까. 오 회장님이 동의하면 바로 오픈하도록 하죠.”
‘저 자식! 꼭 한번 손 봐주겠어!’
오승혁은 삼우 로펌의 이사 조윤태를 노려봤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악을 품었다.
“뭐 어렵겠습니까. 주주님들도 지루하실 타이밍인데 저도 좋습니다.”
“그럼 양측 변호사들이 나와 오픈하도록 하겠습니다.”
오 회장이 승낙하자 사회자가 바로 진행을 했다.
변호사들이 일어났다.
위임장에 기록된 주식지분을 서로 교차 확인을 시작했다.
“어?”
삼우 로펌 변호사들이 당황했다.
오 회장이 끌어들인 주식 지분이 상상 이상이었다.
“후후훗.”
오승혁은 자리에 앉아 흐뭇하게 그걸 지켜봤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
모든 이들의 시선이 주식 개표장으로 향했다.
“동룡을 대표해서 나오신 변호사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안아 지분 위임장을 들고 있던 동룡의 변호사가 주현태를 봤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끼이이이익.
닫혀 있던 주총장 문이 열렸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차가 막혀.”
투덜거리며 등장하는 남자.
“어!”
오승혁은 깜짝 놀랐다.
사진으로만 봤던 원수 같은 놈이 나타났다.
찢어진 청바지에 셔츠 따위를 입고 있었다.
주총장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장태산! 저 자식이 어떻게!!!’
놈은 죽지 않았다.
씨익.
장태산이 오승혁을 보고 웃었다.
“조 변호사님 여기 안아에 대한 LOR 지분과 위임장입니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삼우 로펌 대표 변호사에게 서류를 건네는 장태산.
“주식 1.1 프로군요. 잘 받았습니다.”
조윤태가 서류를 확인하고 변호사에게 건넸다.
“최종 확인하죠.”
서류를 확인한 변호사가 참관인과 사회자를 봤다.
총 주식 지분 50프로 이상의 의결.
“최, 최종 확인한 바에 의하여…… 총 50.52의 찬성으로 주식회사 안아 현 대표이사와 임원진들의 해임 요구가 통과되었음을…….”
“안 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
오승혁이 벌떡 일어나 고함을 쳤다.
눈동자가 시뻘겋게 충혈됐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온갖 개고생과 피를 묻혀가며 완성한 안아 그룹이었다.
그걸 눈뜨고 날려야 하는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건 무효야! 무효!!! 절대 인정할 수 없어! 없다고!!!”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며 발광하는 오승혁.
“지랄하네~.”
오승혁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들리는 한 마디.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던 LOR의 대표가 오승혁을 한껏 비웃었다.
“You! Die!”
손가락으로 오승혁의 목을 베어버리는 시늉을 곁들여 대사를 날렸다.
“야아아아아아! 이 개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
흥분한 오승혁이 장태산을 향해 미친 듯 돌진했다.
“경비원들 뭐해! 저 미친놈 끌어내!”
최대주주가 된 조윤태 변호사가 한 마디를 던졌다.
우르르르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치를 보던 장내 경비원들이 오승혁 회장을 잡았다.
“놔! 놔! 이 자식들아! 나 회장이야! 회장 오승혁이라고!!!”
주총장에 울려 퍼지는 오승혁의 처절한 외침.
경비 그 누구도 이제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방금 오승혁이 회장이 아니라 일개 주주로 신분이 바뀌는 걸 모두 지켜보았다.
순식간에 안아의 주인이 바뀌었다.
정체 모를 외국인 투자자들과 LOR 투자 법인의 구성원들로…….
***
“빨리 끌어내!”
“넵!”
조윤태 변호사님 멋지다.
점령하자마자 권력을 마음껏 행사했다.
“이 시간부로 오승혁 회장과 모든 임원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바입니다. 만약 이를 위반할 시에는 엄중하게 민형사적 책임을 묻겠습니다.”
민형사적 책임! 캬아! 대사 죽인다.
“놔아아아아! 놓으라고!”
정신 줄 놓은 오승혁은 질질 밖으로 끌려나갔다.
“주주 여러분. 여러 주주들의 법률 대리인으로서 주식회사 안아의 새로운 대표이사를 추천하는 바입니다. 하관우 님 나와 주십시오.”
조윤태 변호사님의 호명에 뒤쪽에 있던 하관우 이사가 앞으로 나왔다.
오늘따라 감색 양복을 쫙 빼입은 하관우 이사는 누가 봐도 멋졌다.
감동한 듯 주먹을 움켜쥐고 연단에 올랐다.
“여기 하관우 후보는 전 주식회사 대웅의 부사장을 역임한 바 탁월한 경영능력과 위기관리 능력이 검증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를 들어 여러 투자자들은 적극적으로 신임 대표이사로 추천하였습니다. 모두……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주식수가 깡패다.
회장도 바로 쫒아내는 마당에 누가 말릴 수가 없었다.
오승혁 회장을 밀었던 주주들은 멍청히 이 광경을 지켜봤다.
속이 다 뻥 뚫렸다.
2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갔다.
오동성으로부터 시작된 악연의 끝은 나름 해피엔딩이었다.
저 자식 때문에 죽을 뻔했다.
앞으로 두고두고 괴롭힐 생각이다.
내일부터 감사에 들어가 횡령과 배임죄로 두툼하게 세트로 묶어 줄 것이다.
절대…… 감옥에서 다시 기어 나오는 일 없도록 말이다.
“축하한다…….”
옆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
스윽 고개를 돌렸다.
작은 키의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가 악수를 청해왔다.
처음 봤다.
하지만 보는 순간 단박에 알았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외삼촌.”
씨익 웃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오승혁의 빈자리가 서운하지 않도록 새로이 등장한 적.
다음 타깃은…… 이자, 외삼촌이다.
# 187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