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19
218장. 접대 (2)
‘미친! 로버트 라이언……. 맞잖아!’
장한수 실장은 속이 벌벌 떨렸다.
국내외에서 올라오는 극비 정보 자료에서 분명히 봤던 월가의 투자 천재 로버트 라이언과 똑같이 생겼다.
그제야 생각났다.
장태산 저 자식이 로버트 라이언의 한국 파트너라는 사실이 말이다.
하지만 짐작도 못했다.
로버트 라이언 같은 거물이 소리 소문도 없이 입국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왜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임성철 회장은 아직 짐작 못 한 것 같다.
조심스럽게 장한수 실장에게 물었다.
“회장님 일전에 보고 드렸던 월가의 떠오르는 천재 투자자인 로버트 라이언이……. 바로 이분입니다.”
“뭐? 월가의 천재 투자자!”
임성철 회장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냥 신기한 동물 같은 장태산을 한 번 보고 싶어 초대했던 식사자리다.
밥 한 번 먹고 앞으로 도울 일 없냐고 덕담 한 마디 던지면 되는 자리였다.
어린 사업가들에게 우상이 바로 임성철 자신이었다.
이것저것 어른 대접 받으며 즐기러 나온 자리일 뿐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거물이 함께 자리를 하게 됐다.
임성철 회장은 아직 현역이다.
얼마 전 미국에 출장 간 김에 로버트를 만나고자 청했었다.
그러나 여지없이 까였다.
사전 약속 없는 요청인 데다 또 바쁘다는 이유였다.
세계적 반도체 선두 주자 그룹 회장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내가 아니었다.
월가에서는 신처럼 추앙받았다.
갑자기 나타나 몇 년 동안 수천억 달러 투자 수익을 올렸다는 전설 같은 인물이다.
임성철 회장의 자세가 공손해졌다.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 보였던 연장자 모습이 사라졌다.
월가 큰손 투자자에게 잘못 보이면 그룹 경영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었다.
특히 오정전자는 미국 기업과 사업적으로 수없이 얽혀있었다.
‘오늘 이거 우습게 됐군.’
임성철 회장은 얼떨결에 접대 자리를 겸하게 됐다.
장태산이라는 꼬맹이를 만나 평가하려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날아갔다.
장한수 실장에게 눈치를 줬다.
그가 모를 정도라면 꼬맹이에게 당한 게 확실했다.
운만으로 부를 획득한 게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 버렸다.
상류층은 함께하는 친분자의 격으로 판단이 된다.
그런 점에서 장태산은…… 임성철 본인과 같은 레벨이었다.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반갑습니다. 오정 그룹의 총수 임성철입니다.”
임성철이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영어가 절로 나왔다.
“아! 오정그룹 총수셨군요. 반갑습니다.”
손을 잡고 가볍게 웃는 로버트 라이언.
그 모습에 임성철은 바짝 긴장했다.
월가의 투자자들을 허투루 봤다가 큰 코 다친 사업가들이 한둘이 아니다.
“아니 귀한 분이 오신다고 연락이라도 주지…….”
임성철이 장태산을 떠봤다.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확실히 알 필요가 있었다.
“유럽 여행 갔다가 동행 길에 같이 왔습니다. 친구 사이에 밥 한 끼 먹으려고 했는데 마침 회장님이 저녁 쏘신다기에 염치불구하고 동석시켰습니다.”
젊은 놈답게 장태산은 임성철 회장 앞에서 쏜다는 말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그래도 임성철 회장은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로버트 라이언을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허허. 그랬어? 잘했어. 어서 자리에 앉게. 오늘 귀한 분을 소개해 줬으니 상다리 휘어지게 대접하겠네.”
임성철이 상석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평소에는 대통령 빼고 무서울 게 없는 그였지만 오늘 자리는 가시방석 같았다.
예상치 않게 접대 자리가 됐다.
장년 시절 빼고 이런 자리는 처음이었다.
접대를 받는 갑중의 왕에서 을이 되니 몸이 굳었다.
행동도 어색했다.
평소와 달리 장한수 실장도 행동이 굼떴다.
로버트 라이언이 안아 그룹을 날린 장본인이라는 걸 두 사람은 잘 알았다.
세계적 금융 위기 상황이 닥칠 거라는 보고도 받았다.
자본이 곧 권력이었다.
수백억 달러만 움직여도 오정 그룹 하나 삼키는 건 일도 아니다.
면접 자리에 선 신입 사원 신세가 됐다.
“로버트, 배고프지 않습니까?”
“식사는 언제 됩니까?”
장태산이 묻자 로버트가 임성철 회장에게 되물었다.
“장 실장 뭐하나. 어서 특, 특선으로 올리라고 해.”
“넵! 회장님.”
장한수 실장이 밖으로 튀어나갔다.
“로버트,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색한 영어로 임성철 회장이 대화를 주도했다.
“친구가 보고 싶어서 왔을 뿐입니다.”
로버트가 다시 장태산을 추켜세웠다.
“고맙네. 장 대표.”
“네?”
“장 대표 덕분에 로버트와 안면을 트게 되었지 않나.”
“회장님 돈 필요하세요?”
“어? 아니 그게 아니라…….”
장태산의 직구에 임성철 회장 말문이 막혔다.
“로버트는 돈 얘기 나오면 딱딱해집니다.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친구라서요.”
“그렇지……. 나도 그렇네.”
임성철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주객전도의 불편한 접대 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
임성철 회장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나 같은 어린놈에게 이런 말 듣는 건 처음일 것이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에 그래도 속이 시원했다.
천하의 오정그룹 회장을 손에 들고 농담을 하고 있는 내가 대단했다.
사실 오정 그룹도 돈이 필요한 시점인 걸 안다.
불경기라고 투자를 늦췄다가는 후발 주자들에게 금방 따라잡힌다.
한 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하기 힘든 시장이 반도체 업계다.
치킨 게임의 처절한 전쟁터 선봉이었다.
이때쯤 오정에서 상당한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다.
그걸 바탕으로 다른 업체들 피를 바짝 말렸다.
“상 들어갑니다.”
밖에서 듣기 좋은 중년 여성 목소리가 들렸다.
스르륵.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장한수 실장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빨리도 상이 들어왔다.
“오! 원더풀! 원더풀!”
중앙에 놓여 있던 차탁이 치워졌다.
그 자리에 거대한 상이 놓였다.
네 명의 깔끔한 와이셔츠 차림의 남자 종업원들이 들고 올 정도로 상은 엄청 컸다.
종갓집 제사상 크기다.
코스 요리로 나오지 않았다.
임 회장 스타일이 한 상 받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로버트가 원더풀을 연발할 정도로 차림이 대단했다.
상 위에 빼곡히 들어찬 요리 가지 수만도 엄청났다.
쇠고기 더덕말이, 단호박 오리찜, 신선로, 삼합, 가오리찜, 낙지불고기 등등.
10여 가지의 메인 요리와 간장게장 같은 서브 요리들이 상을 가득 메웠다.
대충 보이는 접시 개수만도 40여 가지다.
상다리가 튼튼한 이유가 있었다.
나도 한국에서는 처음 받아보는 거한 한정식이었다.
“전복죽입니다.”
상이 놓이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중년의 미부가 유기그릇에 담긴 죽을 놓았다.
평소처럼 임성철 회장 앞에 놓았다.
“조 여사. 내가 아니라 저기 외국 양반부터 드려.”
“네? 아, 알겠습니다.”
조 여사라는 여인이 잠시 당황했다.
임성철 회장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눈치다.
죽이 로버트 앞에 왔다.
로버트가 내 눈치를 봤다.
“로버트. 한국에서는 먼 곳에서 온 손님에게 먼저 식사를 양보하는 아름다운 미덕이 있습니다. 편하게 드십시오.”
“땡큐!”
로버트 눈치가 빠르다.
내 말을 캐치하고 땡큐 하며 죽을 먹었다.
그제야 임성철 회장도 같이 죽을 먹기 시작했다.
“장 실장님도 같이 드시죠.”
“네?”
등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장한수 실장을 불렀다.
처음 볼 때 같은 종친이라며 친하게 지내자 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바짝 긴장한 비서실장만 남았다.
“그, 그래. 자네도 이리와.”
“…….”
나를 바라보는 장한수 실장.
전화 목소리로 까칠하게 굴던 장한수 실장이 내 눈치를 봤다.
“술 한 잔하시죠. 로버트가 한국 술 마셔보고 싶답니다.”
로버트를 팔았다.
“아…… 알겠습니다.”
바짝 군기가 든 장한수 실장 모습이 가관이다.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했던 오정의 2인자가 쩔쩔매는 꼴이 말이 아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장한수 실장을 오른쪽으로 끌어 앉혔다.
중앙 상석이 임 회장, 왼쪽에 로버트, 오른쪽에 장한수 실장이 앉았다.
임성철 회장과 마주 보는 자리는 내가 차지했다.
“조 여사. 좋은 녀석으로 술 한 잔 가져와봐.”
“바로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조 여사가 저고리 앞섶을 손으로 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40대 초반으로 보였지만 품위가 남달랐다.
젊은 시절 상사병 앓았을 남자들 수백 명은 되었을 듯하다.
“…….”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접대 받는 나와 로버트를 놔두고 임 회장과 장한수 실장 눈동자가 빠르게 부딪쳤다가 흩어졌다.
그 사이 정말 빠르게 조 여사가 술을 가져왔다.
“무슨 술인가?”
“천종 산삼주입니다.”
그래 산삼주……. 오늘 한 번 먹고 죽자!
“로버트 내가 한 잔 따라드리겠소이다.”
“캄사합니다.”
영어로 말하는 임성철 회장에게 로버트가 어색한 한국말 쓰는 미국인 흉내를 냈다.
코미디언으로 진출해도 먹힐 것 같다.
또로로로로.
새하얀 백자기 잔에 따라지는 연황색 산삼주.
주향이 끝내줬다.
방안 가득 산삼 냄새가 진동했다.
몇 백 단위가 아니라 몇 천 만원은 나갈 게 확실했다.
“장 대표도 받아.”
“감사합니다. 회장님.”
무릎 꿇고 한 잔 받아줬다.
그래도 어르신인데 예의를 갖췄다.
앞으로 몇 년 후에 쓰러져 꼼짝도 못할 운명임을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전생에 티비에서만 봤던 거물 인사와의 만남이 낯설고 신기했다.
“장 실장도…… 수고했어.”
여러 의미가 담긴 수고라는 말에 장한수 실장이 바짝 긴장했다.
확실한 주인과 종의 관계처럼 보였다.
“감사합니다.”
장한수 실장도 두 손으로 공손히 모아 잔을 받았다.
“오늘 만남이 즐거워 내 건배사를 하겠네.”
임성철 회장이 여유를 찾았다.
괜히 한국 그룹 서열 1위에 오른 게 아니다.
“Remember this member!!!”
갑자기 영어 선창을 하는 임성철 회장.
오늘 만남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것 같다.
“Remember this member!!!”
분위기 한 번 찐하게 맞춰줬다.
그리고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산삼주.
“크으!”
“오우!”
“하…….”
“음.”
네 마디 감탄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20년 만에 개봉한 100년 산삼주입니다.”
조 여사라는 여인이 설명을 곁들였다.
그래서 더 맛이 끝내줬다.
독주와 어울린 산삼의 진한 향이 목젖을 타고 위장까지 진하게 내려갔다.
이거 진짜 약술이다!
– 요리 경험치가 주어졌습니다.
– 드래곤 호흡법에 미약한 영향을 제공합니다.
어라? 이계 알림창? 너 지구에서도 통하는 거야?
갑자기 들려오는 친절한 알림음 소리에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특전이었다.
“어때 맛이 괜찮나?”
질문은 나에게 하면서 로버트 안색을 살피는 임성철 회장.
그래 오늘 큰 인심 썼다.
“로버트~.”
“???”
“오늘 귀한 대접 받았는데 오정전자 투자 좀 하시죠?”
눈이 마주친 로버트를 향해 살짝 윙크를 날렸다.
어차피 투자 계획에 포함되어 있던 오정전자 투자 건.
“콜!”
힘차게 화답하는 로버트.
나를 향해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순간 안색이 활짝 펴지는 임성철 회장과 장한수 실장.
어디를 가도 로버트와 둘이 파트너가 되면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 219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