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4
23장. 막장
“예린 선배.”
예린은 태산의 선배라는 말에 당황했다.
얼떨결에 자신의 입에서 장태산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오늘 시험 결과가 나왔다.
예상대로 전교 1등이었다.
국어에서 단 한 문제만 틀렸다.
한턱 쏘라는 단짝 친구들의 말에 시내 맛집인 피자핫에 들렀다.
문을 열자마자 시커먼 남학생들이 보였다.
평소처럼 사방에서 자신을 향한 감탄사가 터졌다.
이제는 익숙한 예린이었지만 그래도 떨렸다.
아직은 사춘기 소녀였다.
그때 그가 보였다.
버스에서 순식간에 방심한 자신에게 번호를 따간 2학년 남학생.
장태산.
가끔 문자가 왔다.
안부 인사와 함께 썰렁한 개그를 보내주었다.
딸기가 직장에서 잘리면 딸기시럽이라는 둥. 어이가 없어 피식거리는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길게 문자는 나누지 않았다.
기껏해야 잘 자라는 인사가 전부였다.
그런데 오늘 갑작스러운 만남에 자신도 모르게 장태산의 이름이 나왔다.
“아는 애야?”
“오올! 예린이 다시 봤는데?”
선배라고 부르며 태산이 손을 흔들자 친구들이 예린에게 놀라움을 표했다.
학생회장 출신에 학교에서는 선도부였다.
언제나 예의 바르고 모범생인 예린이었다.
그런 예린이가 아는 남자 고등학생이 있었다.
그것도 쌈박한 장주 고등학교 2학년 영계.
“잘생겼는데?”
“몸도 아주 실해. 키키.”
예린 친구들이 입을 막고 수군거렸다.
예린의 볼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자기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장태산 개새끼…….”
“나쁜 개쇄리. 방학 때 제비탕 끓여먹고 온 새끼.”
“저 누나 나 알아. 장주여고 3학년 전교 탑이야. 우리 누나가 반 사진에서 보여줬어.”
“헐? 탑? 역시 잘난 분들은 노는 물이 다르네. 우리 태산이도 2학년 탑인데 그것도 만점!”
‘탑? 그럼 정말 1등인 거야?’
예린은 귀에 들려오는 말에 깜짝 놀랐다.
태산이 만점이라는 말이 농담인 줄 알았다.
장주 고등학교는 해마다 한국대에 10명씩 입학시키는 지역 명문이었다.
학년 탑이면 이변이 없는 한 한국대는 입학 가능했다.
“누나 피자 먹으로 온 거예요?”
태산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눈빛이 맑았다.
진짜 자신의 등장을 반가워함을 예린은 알았다.
그리고 예린은 봤다.
장주 고등학교 학생들 중에서 유난히 빛나는 태산의 광채를 말이다.
“응…… 친구들이 한턱 쏘라고 해서.”
“한턱이요?”
“안녕. 예린이 친구 은경이라고 해.”
“난 우리 시에서 가장 예쁜 세라 누나야.”
“네. 안녕하세요.”
“태산아. 예린이가 이번 중간고사 전체 짱이야. 그래서 괘씸죄로 피자로 때우라고 했어.”
예린은 친구들의 적극적인 행동에 놀랐다.
예린과 라이벌을 이루는 콧대 높은 애들이었다.
그런 은경과 세라가 자신들을 적극 어필했다.
“예린이에게 이렇게 잘생긴 남자 후배가 있는 줄 몰랐네.”
“정말 후배만 맞는 거지?”
뉘앙스 넘치는 질문이 흘렀다.
피자를 먹고 분개하던 태산 친구들도 태산을 봤다.
모두의 시선이 태산에게 꽂히는 순간.
“예린 선배가 오빠가 짝사랑한다는 여자였어요?”
“……!”
***
‘아우우우우우우우!’
태산은 갑작스럽게 터진 서련의 질문에 속에서 불길이 터졌다.
그래 맞다 짝사랑이자 첫사랑! 젠장!
한창 작업 중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전개가 터졌다.
하필 서련이 이곳에 와 있었을까?
다른 날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필이면 오늘 서련이 나를 찍었을까?
다른 날 찍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필 짝사랑 얘기를 했을까?
모른 척하면 어디 덧날까?
하필 예린이 이곳에 왔을까?
치킨집도 많은데!
하아, 이걸 사람들은 필연적 운명이라고 말할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이번에는 예린에게 향했다.
어서 장태산과 별 관계 아니라고 말하라는 듯한 강요의 눈빛이었다.
“서련아.”
“네. 선배.”
이런. 둘이 잘 아는 사이가 분명했다. 이름을 불러도 찰지면 친분이 있는 거다.
“태산이 잘 알아?”
“아니요. 오늘 여기서 처음 만났어요.”
“처음?”
“네. 딱 제 스타일이에요. 공부도 잘하는 것 같고 잘생겼잖아요.”
와아아…… 서련이 저런 스타일이었어?
티비에서 보던 서련은 숙맥 같았다.
표현력이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고 예능 방송에도 잘 출현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번 본 나를 딱 찍어 자기 스타일이라 말할 정도로 과감했다.
이쯤에서 내가 정리해야 할 것 같다.
과거 말 한 마디 못해 안타까웠던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예린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원래 짝사랑은 그래서 더 지독히도 그리운 것이다.
“서…….”
“나도 그래.”
“……!”
내가 서련을 막 부르려는 순간 터져 나온 예린의 뜻밖의 말.
나도 그래?
으헐! 뭐, 뭐가 그러냐고!
“오오오오오오오오!”
“크으! 장태산 개새끼! 삼류 영화 찍냐!”
“하나도 아니고 둘이라니…….”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친구들이 지랄병에 걸린 듯 발작했다.
먹다 남은 피자와 스파게티 면발들이 분비물과 섞여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예, 예린아…….”
“진짜???”
예린의 친구들도 놀랬다.
나보다는 덜하겠지만 표정들이 경악에 물들었다.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다.
좀 더 로맨틱한 환경에서 고백을 하고 싶었다.
이렇게 삼각관계라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은 사양이었다.
막장도 아니고…….
그런데 묘하게 심장이 쫄깃하다.
막장 드라마가 먹히는 이유가 있다!
계속 중독되는 그 말.
나도 그래……. 나도 그래…….
“왜 나는 그러면 안 돼?”
아니요! 됩니다! 돼요!
“흐음…….”
서련이 고민에 빠진 것 같다.
그렇게 인상 쓸 필요 없다.
니가 아무리 미래의 슈퍼스타 서련이라 해도 난 첫사랑과 꼭 데이트를 하고 싶다.
죽어보니까 아이돌도 다 필요 없더라.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랑이 최고더라.
“선배. 대단해요.”
서련이 인정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빨리 여기서 바이바이하자.
서련아 넌 1학년 말에 스카우트 돼서 대한민국에서 끝장나는 별로 살아가렴.
오빠는 잊어라.
다 하룻밤 꿈이다.
천하의 서련이어도 전혀 아쉬움이 없었다.
예린 선배도 서련에게 전혀 꿇리지 않았다.
도도함과 고결함은 서련을 뛰어 넘었다.
서련이 황새라면 예린 선배는 백조였다.
첫사랑 버프는 그렇게 위대했다.
“그래도 페어플레이 해주실 거죠?”
뭐, 뭐? 페어플레이?
전개가 또 이상해져 간다.
나 같은 게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저러는지 몰랐다.
오늘 처음 만났다.
하루에 수십 억씩 번다는 사실을 알고 저러는 게 아닐 텐데 서련이 자존심을 걸었다.
“흐음.”
예린 선배가 침음을 삼켰다.
모두 다 예린 선배를 봤다.
이게 무슨 리얼 신파극이란 말인가!
“태산 선배. 예린 선배도 번호 알죠? 그럼 저에게도 핸드폰 번호 줘요.”
내가? 왜?
내 전화번호가 동네 짱개집 번호도 아니고 그렇게 함부로 달라는 거 아니다.
“태산아.”
예린 선배가 부드럽게 날 불렀다.
“네?”
“줘.”
“뭘요?”
“니 번호.”
헐……, 이건 헐의 헐이라는 새로운 한자어의 탄생이다.
안 줄 수 없을 것 같다.
뭐랄까? 치열한 전쟁터의 한 중앙에 선 느낌이다.
말로만 듣던 여자들의 자존심 전쟁!
그런데 이게 말이 돼?
서련이는 오늘 처음 봤는데! 왜 나를 찍어?
혹시 서련이 몸에 돈 냄새 맡는 귀신이라도 붙은 거야???
“핸드폰 줘봐.”
서련에게서 폰을 받았다.
분홍색의 아기자기한 액세서리가 달린 폰이었다.
띠띠띠띠.
번호를 찍었다.
그리고 내가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저렴한 비트의 통화음이 피자핫 가게 안에 울렸다.
“우와와와와와! 저 뻔뻔한 새끼!”
“장태사아아아아안!!!”
친구들 입에서 불길이 터졌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왔다.
훗, 그래 마음껏 날 질투해라.
이거 나쁘지 않은 전개다.
한 손에 첫사랑.
다른 한 손에는 미래 스타 서련!
우 예린, 좌 서련.
이 순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막장 전개는 원래 이렇게 진행되는 게…….
지대로 꿀맛이다.
# 24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