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57
256장. 러시아에서 (1)
“사라졌다고?”
“죄송합니다.”
“흠……. 생각보다 더 위험한 놈인 것 같군.”
“암살조를 전멸시킨 후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직 홍콩에 CCTV가 완벽하게 보급되지 않았다.
한국을 비롯해 동남아 여행객이 많이 몰려드는 주말이었기에 찾기가 더 벅찼다.
“한국 국정원 짓인가?”
“그것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평소 체크하던 국정원 요원들 모두 위치가 확보됐습니다.”
“미국 투자자와 가깝다면 CIA 짓일 수도 있겠군.”
“며칠 동안 파악 못한 각국 요원들 수백 명이 왔다갔습니다.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리장창의 오른팔 제갈유량은 상황을 냉정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블랙 요원들 다수가 포함된 요원들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직 중국 정보요원들의 능력은 국제적으로 봤을 때 떨어졌다.
국력이 신장되는 만큼 확장되겠지만 지금까지는 아니었다.
“타고 왔던 비행기는 떠났다고?”
“승객 없이 출발했습니다.”
“밀항선을 이용할 수도 있겠군.”
“항만을 통제했지만 가능성이 큽니다.”
홍콩에 입출항 하는 배들이 하루에도 수백 척이다.
아시아 물류 허브답게 밀항선들도 많았다.
“녀석을 우습게 봤어. 그렇게 간이 큰 놈인 줄 몰랐다.”
“단주님 잘못이 아닙니다. 소신이 무능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아니다. 내 잘못이야. 미래를 예측 못 한 내 잘못…….”
리장창은 심각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
결혼식은 화려하게 끝났다.
딸의 결혼식을 보며 리장창은 아비로서 눈물을 흘렸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이란 같았다. 사위도 마음에 들었다. 리장창이 어떻게 돼도 딸은 보호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딸과 사위는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떠났고, 리장창은 결혼식을 찾은 주요 손님들을 집에 초청해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본토를 비롯해 핵심 화교와 인맥들이었다.
술자리가 파한 후에는 중요 회의가 있었다.
그곳에서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논의했다.
미국 경제 위기가 중국 발전에 위협이 될 것이라 예상됐다.
수백억 달러가 위기자금으로 준비 됐다.
다행히 국가가 관리하는 고정 환율제라 대응이 쉬웠다.
그 와중에도 리장창은 찝찝함을 떨구지 못했다.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던 장태산이 사라졌다.
리장창의 안마당을 다 휘젓고 말이다.
‘재주 많은 여우 새끼인 줄 알았는데 노련한 늑대 새끼였다. 그것도 전랑(戰狼)!’
리장창은 장태산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했다.
내공을 사용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의 고수일 줄은 몰랐다.
조그만 재주로 돈을 벌었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놈은 생각 외로 스케일이 컸다.
‘10억 달러…….’
10억 달러는 서슴없이 푼돈 취급하며 투자하라 권하던 녀석이었다.
그것도 겨우 1퍼센트의 지분을 선심 쓰듯 던지며 말이다.
“홍콩상행 은행장에게 연락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력을 동원해 그 놈 있는 곳을 찾아! 이번에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명!”
리장창은 결심했다.
더 크기 전에 늑대 새끼를 세상에서 지워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
“어떻게 여행은 편안하셨나요?”
편안? 이럴 때 갑자기 욕 하나가 생각났다.
조카의 18색 크레파스 같은!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숨구멍이 뚫려있고 온도조절장치가 장착된 특수 관은 쓸 만했다.
타샤가 수면제를 준다는 걸 사양하고 내공을 이용해 편안하게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사건들을 반추하며 시간을 보냈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내가 죽던 일, 회귀했던 일, 그리고 다시 세상을 살다 마주한 일들 중 상당수가 예견 불가였다.
평범하게 살고자 했다면 큰판을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꿈속 할배가 말했던 이웃집 개들 교육을 위해서는 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홍콩 대첩도(?) 그 사건의 연장임이 확실했다.
뭔지 몰라도 할배가 개입된 것 같았다.
클라라와 아주 찐하게 이별하게 만들었다.
사고 칠 뻔한 그때도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었다.
딱 키스까지만 몸이 허락했다.
그 이상 진도 빼면 무슨 일 날 것 같았다.
그리고 벌어진 사건과 사건.
작은 것들도 큰 사건을 위한 밑밥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눈앞에 요염하고 늘씬한 러시아 스파이가 나에게 꼬리치는 것도 해당됐다.
타샤 레비에프.
나이는 20대 중반.
180에 가까운 모델 같은 키에 허리가 아주 잘록했다.
미인계를 펼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붉은 입술은 매혹적이었고 연푸른 눈동자는 맑은 호수 같았다.
우크라이나 미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렇죠? 그 정도면 훌륭한 편이에요. 훈련받을 때 구정물에서 48시간을 버틸 때도 있었어요. 빨대만 입에 물고 잠수도 몇 시간씩 추가해서 말이에요.”
스파이 요원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그런지 과거 이야기를 꺼내는 타샤.
농담처럼 말하지만 쉬운 훈련은 아니었을 것 같다.
러시아가 많이 거친 동네다.
“만만치 않은 인생을 사셨군요.”
“이것도 직업이잖아요~ 일이 힘들어서 그렇지 짜릿할 때가 많아요.”
짜릿하다고 말할 때 윙크를 날리는 위험한 러시아 여우다.
“언제 떠날 수 있습니까?”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이곳은 모스크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고풍스런 저택이다.
마당도 넓고 성벽 비슷한 돌담도 보였다.
경비가 삼엄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척이 여럿 느껴졌다.
곳곳에 CCTV가 설치됐다.
블라드미르가 말했던 러시아 연방보안국 비밀 안가인 것 같았다.
“성격이 급하신 것 같아요~ 보기보다~.”
“쓰레기들을 두고 사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아직 심장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오해라 말했지만 리장창은 내 목을 원했다.
이제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클라라와의 인연도 완벽하게 끝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말하기에는 세상이 변했다.
이제부터 리장창은 목숨을 걸고 싸울 적이었다.
“그래서 중국 요원들하고 싸우기라도 할 거예요? 혼자서?”
타샤가 놀라는 척 물었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혼자는 아닙니다.”
인간들보다 더 믿음과 신뢰가 가는 신들이 대기 중이다.
인간 업그레이드 끝판왕이 될 것이리라.
갈증 나는 마법 능력.
소설에 나온 것처럼 고 서클만 배울 수 있다면 뭔가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더 시간이 아까웠다.
“돈으로는 힘들어요. 돈이야 배신하지 않겠지만 돈을 굴리는 인간들은 언제나 위험하답니다.”
타샤의 충고가 귀에서 울렸다.
러시아도 믿지 말라는 의미 같았다.
타샤를 봤다.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에 입술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꼬리 몇 개 달린 위험한 러시아 여우가 분명하다.
“당신도 포함입니까?”
“물론이죠. 제 직업 아시잖아요. 조국이 1번, 돈이 2번입니다.”
러시아를 배신하는 일만 아니라면 돈만 주면 도와주겠다 말하는 타샤다.
깔끔해서 좋다.
스파이인 그녀가 차라리 더 솔직하고 진실했다.
“계속 연락하고 싶군요.”
진심이 불쑥 튀어 나왔다.
러시아 쪽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을 것 같았다.
누가 뭐라 해도 러시아는 미국과 맞먹는 깡의 화신 같은 국가였다.
“어머~ 저와 마음이 통한 건가요?”
타샤의 미소가 짖어졌다.
“되도록 빨리 귀국을 부탁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뛰어서라도 가고 싶었지만 여기는 러시아다.
워프 마법이라면 모를까 어림도 없었다.
“며칠만 기다려요. 흔적들 지우고 잠잠해질 때까지 이곳에서 푹 쉬어야 돼요. 당신 덕분에 저도 휴가 받았어요~ 이렇게 여유롭게 보드카를 마신 적이 얼마만인지 몰라요~”
러시아 여우는 독한 보드카를 즐겁게 마셨다.
술을 사랑하는 민족의 딸다웠다.
타샤는 안주도 먹지 않았다.
블랙 원피스를 입은 미녀 스파이와 독한 보드카는 묘하게 어울렸다.
“한 잔 마실래요?”
안가에서 눈을 뜰 때부터 옆에 있던 타사였다.
이곳에서 누구보다 더 믿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주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술이 고팠다.
“러시아 남자 스타일인 거 아세요?”
“모릅니다.”
“무뚝뚝하지만 남자다운 일에는 결코 주먹을 아끼지 않아요. 세상 사람들이 무식한 술주정뱅이들이라 말하지만 그 힘으로 조국을 지켰어요. 보드카만 아는 술꾼들이 말이에요~.”
러시아인들 무시하지 않았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을 패배시켜 버린 승전국 중 하나다.
러시아 금융위기 때 홀로 버텨낸 민족이다.
그들이 살아서 버텨온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다.
성질 욱 한 건 한민족을 닮았다.
또로록.
유리잔에 이름도 모르는 보드카가 가득 채워졌다.
아무 색도 없는 단백한 무채색의 보드카가 영롱하게 보였다.
보드카가 러시아인들의 영혼을 닮았다는 말이 맞았다.
화끈하고 직설적인 알코올 향이 코로 파고들었다.
“다시 인사하죠. 러시아에 온 것을 환영해요. 장태산 동지~.”
농담으로 건배사를 제안하는 타샤.
“열렬히 환영해 줘서 감사합니다. 타샤 동지.”
“풋!”
타샤가 맑게 웃었다.
저 스파이 미소에 홀려 여러 남자들이 정보를 팔고도 남았을 것 같다.
꿀꺽.
단숨에 보드카를 들이켰다.
목젖을 타고 흘러들어가는 불길 같은 맛이다.
뚫고 올라오는 신음을 참았다.
홍콩의 비보다 더 나를 정신적으로 식혀줬다.
“러시아 남자 맞다니까~ 우리 아빠 같아요.”
“작은 아버지 아니었나요?”
“뭐라고요? 푸하하하하.”
타샤가 소리 나게 웃었다.
관에 들어있던 나를 타샤는 작은 아버지라 불렀었다.
그걸 잊지 않고 농담 소재로 삼았다.
타샤와 몇 잔의 보드카를 더 마셨다.
취하지 않았지만 입안에서 독한 알코올이 달달하게 변했다.
타샤의 볼과 눈동자가 붉게 달아올랐다.
“멋있어요~. 유혹하고 싶을 만큼~.”
눈이 마주쳤다.
타샤의 목소리가 촉촉했다.
죽음의 위기를 넘기자마자 뜨거운 위기가 다가왔다.
“타샤 양도 아름답습니다. 가시가 있어 더 매력적입니다.”
바람둥이라 욕하면 욕먹을 자세돼 있다.
홍콩에서 그렇게 마시고 싶었던 술이다.
가시를 감춘 미녀라도 괜찮았다.
지금은 술친구가 필요했다.
스스스스스스.
그때 뭔지 모를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은은한 아카시아 향이 맡아졌다.
사방을 둘러봤지만 특이한 것은 없었다.
다만…….
갑자기 심장이 뜨거워졌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그때 보드카를 마시던 타샤가 갑자기 시를 읊었다.
스파이가 국정원 요원 K처럼 바보일 리 없었다.
그런 타샤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눈동자가 붉은 요석처럼 반짝였다.
전염이 된 것처럼 나 또한 그랬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내 입에서도 러시아어가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알프레도 디 수자의 명시.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타샤가 시를 읊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했다.
다가오는 타샤의 손을 잡았다.
보드카로 이미 달궈진 불덩이 같이 뜨거운 타샤의 손.
정신이 혼미해졌다.
무언가 이 방안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몸이 통제 불능이 됐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순간.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다가왔다.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두 눈을 마주보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 어떤 것들보다 가까운 입술이 달콤하게 속삭였다.
“당신…… 위험한 남자야…….”
귓가에 속삭이는 타샤의 끈적한 목소리.
“당신도…….”
더 이상 말을 나눌 수 없었다.
뜨겁게 침범한 러시아 여우의 입술이 입을 막았다.
그녀의 혀끝에 남아있던 보드카 맛이 느껴졌다.
독한 보드카가 이렇게 달큰한 맛인지 미처 몰랐다.
금세 거칠어지는 숨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 257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