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97
297장. 차이나타운 (2)
끼이리리링~♬ 기이이이~♫.
중국 전통 악기 이후의 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제법 넓은 공간에 붉은 홍등과 중국 도자기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차이나타운의 딤섬 레스토랑 드래곤코트.
오늘도 언제나처럼 분위기가 근사했다.
미슐랭에 오를 만큼 뉴욕커의 입맛을 사로잡은 맨해튼의 명소였다.
“뭐야? 왜 이렇게 조용해?”
레스토랑에 들어서던 도도희는 텅텅 빈 자리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말에는 사전 예약 없이 자리에 앉을 수 없는 곳이었다.
평일에도 맛집 탐방객들이 찾아올 정도로 유명세를 탄 뉴욕의 명소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여기 맞아?”
김한별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흐르는 음악 말고는 종업원도 한 명 보이지 않았다.
기묘한 분위기가 흐른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레스토랑 분위기는 이상했다.
“저기요~.”
도도희가 아무나 무작정 호출했다.
“…….”
역시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왔어?”
주방 쪽에서 불쑥 한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어! 너, 너 뭐야!!!”
도도희가 당황하며 소리 쳤다.
“뭐긴 뭐야~ 대학교 동창 모임이잖아. 그래서 왔어.”
키가 작고 안경을 쓴 동양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모습은 어딘가 비열함을 감추기 위한 가식으로 보였다.
“다른 친구들은 어딨어?”
도도희가 불안한 눈빛으로 다른 친구를 찾았다.
“맨해튼 교통이 좀 복잡해? 늦게라도 오겠지~”
“……장천.”
도도희가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프린스턴 대학원 재학 시절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중국 남자.
홍콩에서 대학을 다니다 학위를 받기 위해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키도 크지 않고 순박한 행동에 도도희는 동료로서 마음을 열었다.
같은 아시아권 학생이라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의외로 유명 명문대라 해도 인종 차별은 심했다.
당시 도도희는 학업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아버지 사업 부도로 한창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아무리 첩의 자식이라도 아버지 회사가 망하는 걸 좋아할 수는 없었다.
비록 태어나 몇 번 본 적 없는 아버지였지만 도도희는 대웅의 부도에 가슴이 아팠다.
그때 장천이 도도희의 배려에 보답하듯 이것저것 잘 챙겨줬다.
장천은 집안이 부유해 커다란 맨션에 혼자 살았다.
그곳에서 도도희가 좋아하던 파티가 자주 열렸다.
중국 부잣집 아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슈퍼카를 몰고 다녔고 친구들에게 한턱 내기를 좋아했다.
도도희에게도 멋진 식사를 대접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러던 장천이 어느 날 도도희에게 느닷없이 고백을 했다.
사랑한다며 사귀자고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한 것이다.
몇 캐럿짜리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준비한 장천이었다.
당시 청혼도 아니고 단지 사귀자는 말을 하기 위해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렸던 장천.
도도희는 그 자리에서 단박에 거절했다.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연애 사업보다는 자기 개발에 충실하고 싶었다.
돈도 궁할 정도가 아니었기에 물질에 현혹되지도 않았다.
도도희 역시 아버지가 세계적 재벌 소리를 듣던 집안의 딸이었다.
정중하게 좋은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당황스럽게 실망하며 눈물까지 흘리던 장천.
순애보 가득한 그에게 퇴짜 놓았음이 내내 마음 아팠지만 외면했다.
그때부터였다.
도도희는 장천을 곳곳에서 자주 마주쳤다.
도도희가 활동하는 곳이면 어디서든 거짓말처럼 조우했다.
모든 것들이 계획적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스토커가 확실했다.
소름이 돋았다.
우연히 장천 집에 초대돼 방문했던 친구의 입을 통해 알게 됐다.
도도희의 사진이 장천 방에 도배가 돼 있었다고 놀란 친구가 전해준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은 뒤부터 도도희는 최대한 장천을 멀리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수업 시간은 함께해야만 했다.
같은 전공과목 교수님에게 지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때는 다른 교수님을 선택했다.
쉽지 않는 결정이었지만 수업 시간에도 자신을 훔쳐보는 장천의 시선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견디기 힘들었다.
졸업하자마자 도망치듯 월가로 취직했다.
이후 장천도 월가에 입성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가끔 우연처럼 연락이 왔지만 외면했다.
한국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한 후 메일로 보고 싶다고 소식을 전했던 장천.
세월이 흐른 만큼 오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번 만나줄까 생각도 했었다.
한국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김한별이 귀신같이 한 남자를 만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가 장천이었다.
그런 장천이 이곳에 나타났다.
‘설마……. 이것도?’
도도희는 습관처럼 장천을 의심했다.
집안 재산을 기반 삼아 월가 중국 투자회사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다.
친구들도 장천 회사에 몇 명 입사했다는 후문도 들었다.
“뭘 그렇게 봐. 의심해~? 어서 앉아. 내가 널 위해 딤섬 요리를 준비했어. 너 딤섬 좋아하잖아~.”
아무렇지 않게 장천이 활짝 웃었다.
도도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딤섬은 월가에 와서 좋아하게 된 요리였다.
장천과 전혀 연관이 없었다.
“아, 아니야 됐어. 오늘은 그만 갈래.”
“벌써?”
딤섬 얘기를 하며 행복해하던 장천 얼굴이 일순간 굳었다.
눈빛도 차갑게 식었다.
“이건 아닌 것 같아. 장천 널 아직 이렇게 볼 자신이 없어.”
도도희는 확실히 말을 꺼냈다.
든든한 보디가드 두 명이 밖에 대기 중이다.
김한별도 옆에 있었다.
“후후후후…….”
장천의 웃음이 소름끼치도록 낮게 깔렸다.
“왜 난 안 되는 거지?”
장천이 걸어 나오며 도도희를 바라봤다.
“뭐, 뭐가?”
“네가 좋아하는 그 한국놈은 괜찮고 난 안 돼? 왜? 키가 작아서? 그것도 아니면 얼굴이 못 생겨서? 도희야. 너 나에게 잘해줬잖아. 그 마음 난 알아……. 네가 아버지 때문에 힘들 때 내가 옆에 있었잖아. 그러니까 나에게 와줘. 나 너 때문에 힘들어. 과거는 다 잊어줄게. 장태산 그 새끼…… 살려줄게.”
천천히 다가오며 중얼거리듯 말하는 장천.
대표에 대해서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이 자식 미쳤어!’
장천의 집착이 생각보다 크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도도희는 숨이 막혔다.
보통 스토커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놈은 다 알고 있었다.
대표의 목숨을 놓고 협박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무슨 헛소리야! 장천! 나, 너 안 좋아해! 친구 이상 감정을 단 한 번도 품어본 적 없단 말이야!”
도도희 목소리가 날카롭게 터졌다.
그녀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밖에 대기 중인 보디가드에게 들리도록 큰소리로 소리쳤다.
“보디가드? 자고 있어. 불러도 소용없어. 오늘 이곳은 널 위해 준비한 파티장이야~. 네 친구와 같이…… 맛있게 먹고 즐기자. 우리…… 학교 다닐 때 그랬잖아. 우리 집에서 와인도 마시고 요리도 즐기면서 서로 위로했잖아…….”
장천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변했다.
과거를 회상하며 행복감에 빠져드는 장천의 눈빛.
“그때는 친구였잖아!”
“그때나 지금이나 난 똑같아. 도도희……. 넌 내 영원한 친구야~ 크크크.”
병적인 집착으로 번들거리는 장천의 눈빛은 오로지 도도희만을 향했다.
귀한 집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원하는 걸 얻지 못한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헬리콥터를 이용하기도 했었다.
중학교 때 슈퍼카를 몰았다.
사고로 애꿎은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아무도 죄를 묻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황제처럼 살던 장천.
큰물에서 세상 경험하라는 아버지의 명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보디가드 여러 명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그를 보호했다.
미국 유학 생활은 지루했던 중국이나 홍콩 생활과는 달랐다.
작은 키에 안경 낀 모습의 장천을 다들 어수룩하게 봤다.
그들의 태도와 낯선 경험이 신선했다.
그 생활도 나쁘지 않았다.
이중적인 모습으로 그런 그들을 지켜봤다.
차별하거나 버릇없이 구는 놈들은 소리 소문 없이 각종 사고를 위장해 손을 봤다.
은연중 소문이 퍼졌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장천을 우습게보던 놈들이 없어졌다.
장천은 평범한 중국 유학생 놀이를 한껏 즐겼다.
편집증적인 버릇이 있었지만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에 잠시 잊고 살았다.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일상이 새로운 맛으로 다가왔다.
잠시 동안의 외유 같았다.
그때 도도희를 만났다.
단연코 눈에 띄었던 한국 미녀.
손만 뻗으면 아무나 취할 수 있었던 중국과 달리 장천은 도도희에게 열정을 퍼부었다.
돈만 쥐어주면 알아서 품으로 파고들던 여자들과 차원이 달랐다.
톡톡 튀는 매력과 어디서든 당당하던 도도희를 꺾고 싶었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다가갔다.
그러나 도도희는 장천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철벽을 쳤다.
멋진 집과 차를 보여주고 확인시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 파티도 열고 착한 짓 놀이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도도희는 고맙다는 말만 뱉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남자들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참았다.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 불만이 계속 쌓였다.
도도희 주변 모든 것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 월가에 투자 회사를 냈다.
동창들 몇을 직원으로 고용해 도도희와 연락을 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 완벽하게 계획을 실현했다.
“미쳤어? 장천! 넌 스토커야!”
도도희가 벼락처럼 스토커라 비난했다.
“맞아. 난 너를 사랑해. 그러니까 모든 걸 용서 받을 수 있어. 맛있는 딤섬 먹고…… 내가 준비한 파라다이스로 가자. 근사한 섬을 하나 구입했어. 넌 그 곳에서…… 여왕처럼 살면 돼. 저기 네 친구는 시녀로 부려. 난 황제고 넌 여왕~ 어때 생각만으로도 죽이지?”
비뚤어진 욕망과 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한 장천의 놀라운 계획을 발설됐다.
“미친 새끼…….”
도도희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장천의 말을 듣고 있는 이 순간이 공포스럽고 수치스러웠다.
나름 조심한다 했는데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을 짰을 줄 몰랐다.
도대체 얼마나 돈이 많기에 맨해튼 한복판에서 납치 계획을 짠단 말인가.
가까웠던 친구들도 이미 장천과 한패가 돼 버렸다.
이제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빨리 빠져 나가자. 밖으로 나가면…… 경찰이 있어!’
도도희는 김한별에게 눈치를 보냈다.
생각에 빠진 듯 장천을 바라보던 김한별은 조금 전과 달리 천하태평이다.
“차슈소우 있어요? 저 그거 완전 좋아해요~.”
“???”
갑자기 딤섬 종류를 물어보는 김한별.
“언니……. 우리 지금…….”
“그게 없으면 하가우도 좋아요. 새우살이 탱탱하면 더 맛있는 거 아시죠?”
김한별이 장천을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물론이지~ 다 준비 되어 있어.”
“생맥주는요. 어디 제품이에요? 맨해튼 초콜릿 맥주가 유명하다던데 준비 됐겠죠?”
김한별은 전혀 이 위기 상황에 위축되지 않았다.
차라리 신이 난 듯 보였다.
“언니 왜 그래! 우리 지금 감금 됐어!”
어느새 식당문은 셔터까지 내려져 굳게 닫혀 있었다.
주방 쪽과 사물들 뒤쪽에서 그림자가 여럿 보였다.
여차하면 장천의 보디가드들이 덮칠 수도 있었다.
극도의 긴장 상황에서 여유를 부리는 김한별이 낯설었다.
“크크크. 도희 친구라 그런지 성격이 좋아~ 그것도 준비해 주지. 오늘이 마지막 만찬이 될 거니까~.”
장천이 김한별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잠재되어 있던 욕망이 폭발한 뒤라 이제 더러운 내면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저 계집도 괜찮군. 흐흐.’
장천은 내심 도도희가 고마웠다.
질릴 때까지 처절하게 짓밟아 버릴 생각이었다.
사랑이라 말했지만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일 뿐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소유하고 나면 금방 싫증 날 게 빤했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배고파요. 빨리 주시면 안 될까요?”
“시간은 많아.”
“무슨 소리예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장천의 말에 김한별은 생긋 웃으며 답변했다.
“무슨 헛소리야! 너희들의 시간은 이제 모두 내 것이야!”
“아닌데~ 당신 게 아니라 그분 겁니다.”
“그분?”
“아깝네……. 정말 시간 없는데…….”
김한별은 말과 함께 식당 중심에 걸려 있는 괘종시계를 쳐다봤다.
“언니……. 왜 그래?”
김한별의 특이 증상을 알고 있는 도도희가 바짝 쫄며 물었다.
“저 바늘이 8시를 가리키면…….”
댕! 댕! 댕! 댕! 댕! 댕! 댕! 댕!
괘종시계가 느릿하면서도 정확하게 8번 울렸다.
콰아아아아앙!
그때 잠겨 있던 식당 문이 강렬한 굉음과 함께 박살이 나며 터졌다.
그리고…….
“왔다!”
미친 듯 환호성을 지르는 김한별.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란 장천과 도도희는 빠르게 식당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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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