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31
431장. 오늘 주인공은 너야 너!
“응?”
“뭐야? 저 동양인 시간이 좋은데?”
“오버페이스 아냐?”
출발선 뒤에서 대기 중이던 크로스컨트리 세계 선수권 상위자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컨디션이 동일하다는 조건 하에 누가 메달권 안에 들 것인지 서로 알고 있었다.
벤쿠버 개막식장에 다녀온 하위 선수들 말고 메달 예상자들은 처음부터 이곳을 벗어나지 않고 연습을 했다.
아침에 눈이 내려 딱딱하게 얼어 있던 설질이 더 좋아졌다.
오전에 불었던 강풍이 잦아들면서 크로스컨트리 스키 타기에 알맞게 환경이 변했다.
대기실 중계 화면에 선수들의 중간 기록이 떴다.
저마다 공략법이 달랐다.
그러나 15km 경기는 경기 방식이 단순했다.
닥치고 돌진밖에 없었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졌다.
메달권 40분대 시간이 최근에는 37분대까지 단축됐다.
유망주들이 대거 합류했다.
과거에는 북유럽 선수들이 강세였지만 근래에 들어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남부유럽 선수들이 두각을 드러냈다.
체격 조건은 대부분 좋았기에 차별에 의미가 없었다.
각국 스키장의 발달로 시설과 연습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과학과 결합해 선수들의 힘을 최대로 뽑아냈다.
다만 그 부류에 동양인들은 합류하지 않았다.
팬층이 거의 없었고 선수층도 종잇장처럼 얇았다.
국가 지원도 타 종목에 비해 전무해 세계 대회에서 얼굴 자체를 보기가 힘들었다.
겨우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나 저희들끼리 판을 벌이고 놀았다.
하지만 오늘 눈앞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경기 시간이 지체됐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30초에 한 명씩 출발하기에 35분이면 70명에 가까운 전체 출전 선수들이 전부 뛸 수 있다.
20분이 지났다.
선두에서 출발한 하위권 선수들의 대략적 윤곽이 나왔다.
오버페이스를 펼치던 중국 선수와 다른 선수들 몇 명이 기권했다.
일본 선수도 40분대를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됐다.
참가에 의미가 있는 전반부 선수들 중 눈에 띄는 두각을 보인 선수는 두 명.
“둘 다 한국인이야?”
“누구 아는 사람 있어?”
“나도 처음 보는데…….”
“뭐야? 쟤들 약 한 거야???”
중간 지점을 지나면서 체크된 기록이 예사롭지 않았다.
두 선수의 스키복에 각인된 국가명을 보고 한국 선수임을 알았다.
국제 대회에서는 얼굴을 본 적 없는 신예들이었다.
촤아앗 촤아아앗!
두 사람은 예사롭지 않는 실력으로 중간 지점을 돌파했다.
출발을 준비하며 대기실을 벗어나 자세를 잡는 선수들 얼굴이 굳어갔다.
자꾸 시선이 중계 화면으로 향했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의 등장.
어쩌면 오늘 목에 메달이 걸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
“와우! 도대체 누구야?”
“지치지도 않나 봐? 앞선 선수들과 차원이 다른데?”
“한국 선수들 맞지?”
“이게 말이 돼…….”
결승선에 위치한 관람석에서 일단의 웅성거림이 일었다.
캐나다도 요즘 들어 노르딕 스키 강자로 떠올랐다.
알래스카와 접해 있어 유난히 겨울이 길었다.
아이스하키를 비롯해 겨울 스포츠 위주로 인기가 많았다.
대부분 프랑스나 유럽 이민자들 후손이다 보니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그런 캐나다 관람객들과 스키 관계자들은 대형 화면을 보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노르딕 선수뿐만 아니라 응원객도 거의 없는 한국 선수들이 하위권 선수들 제치고 선두에 섰다.
무엇보다 기록이 중요했기에 모두 숨을 죽였다.
그들은 심지어 딱 하나 있는 휴식처에도 들르지 않았다.
제공되는 따뜻한 수프와 물도 마시지 않고 주구장창 내달렸다.
먼저 출발했던 선수들 대부분을 따라 잡았다.
“38분대는 가능하겠지?”
“……37분대도 노려볼 만해.”
“세상에…… 이런 이변이…….”
코치를 비롯해 스키 관계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술렁였다.
지치지 않고 로봇처럼 스키를 타고 있는 동양인들이 이제는 두려웠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이변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혜성처럼 세계 피겨계에 등장한 김유나처럼 말이다.
“이상해……. 뭔가…….”
뚫어지게 화면을 응시하던 소피아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다니엘이라는 한국 선수와의 약속이 찝찝해 연습장에서 나와 경기장에 왔다.
그리고 놀랄 만한 결과를 확인했다.
다니엘은 조영준이라는 한국 선수 뒤에서 부지런히 쫒아왔다.
여유가 있어 보였지만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그에 반해 약간은 지쳐 보이는 조영준 선수.
누가 뒤에서 밀어주기라도 하는 듯 지쳐있음에도 속력이 그대로였다.
소피아는 노르딕 스키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요행보다는 무지막지한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했다.
오로지 강철 같은 체력만이 승리를 보장했다.
그래서 다니엘과 약속했던 것이다.
결코 왜소한 체격과 약한 체력의 동양인은 노르딕 쪽에서는 앞으로도 빛을 발할 수 없었다.
“바람이……. 밀어주는 것 같잖아?”
조영준 선수 옷자락이 가끔 펄럭였다.
다른 선수와 달리 바람이 그를 돕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대단해!!!”
그 와중에 선두 그룹에 올라선 한국 조영준 선수가 결승점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힘을 짜내는 듯 숨은 거칠었고 표정을 일그러졌다.
격한 스포츠에서만 볼 수 있는 인간 한계의 감동.
관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가장 먼저 나타난 무명의 한국 스키어.
한국 선수 기록이 전광판에서 계속 보였다.
38분대를 지나 37분대 초반 안착이 확실한 조영준 선수가 마지막 스퍼트를 냈다.
“다니엘…… 당신…….”
그런 조영준 뒤쪽에서 달려오는 다니엘이라 불리는 장태산.
지금쯤이면 폐가 뒤집혀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것도 힘들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 살짝 걸쳐 있는 옅은 미소를 소피아는 분명 볼 수 있었다.
“도대체…… 뭐야???”
놀라움과 함께 엄습해 오는 강렬한 의문.
어느새 장태산이 결승점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
계획은 완전 대성공이다!
어젯밤 정성을 다해 마사지한 효과가 있었다.
타국 선수들의 놀림을 직역해 준 영향 때문인지 조영준은 피똥 지를 만큼 열심히 달렸다.
나는 그런 조영준을 위해 1서클 윈드 마법을 펼쳐 살살 티 나지 않게 밀어줬다.
다행히 뒤에서 바람이. 적당히 불어주어서 마법의 흔적을 감출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지치고 힘들어 보이면 장거리 힐 마법을 날렸다.
스키에는 경량화 마법을 걸어놓았다.
조금이라도 힘을 덜 들이도록 가볍게 해줬다.
그 덕분에 37분대에 결승선에 진입한 조영준.
평소 40분대를 넘게 달리던 조영준은 누가 봐도 엄청난 괴력을 발휘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휘이이이~ 휘이이이이~.”
“신기록이다!!!”
결승점을 통과한 조영준을 향해 환호성을 터트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안 봐도 37분 초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코스 난이도로 인해 올림픽 신기록은 중요하지 않았지만 세계적 선수가 되려면 37분대는 찍어야 했다.
조영준은 계획대로 성공했다.
문제는 나였다.
살살 달렸지만 조영준을 서포트 하기 위해 일정 거리를 따라붙어야 했다.
30초 차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자칫하다가는 금메달을 딸 수도 있었다.
그러면 안 된다.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난 철저하게 동메달이나 따는 수준의 1인 역을 맡아야 했다.
금메달의 영광은 조영준이 받아도 충분했다.
하나, 둘, 셋……. 열.
속으로 숫자를 셌다.
이 속도라면 조영준보다 10여 초 빠를 수밖에 없었다.
결승점이 가까이 다가왔다.
“힘내요! 당신이 1등이에요!”
“장태산! 장태산! 장태산!”
몇몇 교포들이 한국말로 나를 응원했다.
1등이라는 말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마음을 굳혔다.
선발주자들 중에 아직 따라오는 자가 없었다.
모두 40분대를 훌쩍 넘길 것이다.
두근두근 심장이 오랜만에 제멋대로 뛰었다.
두 번은 가기 싫은 군대 건을 여기서 끝내야 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군대는 대한 남아의 필수 코스였다.
그렇다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갈 수 있는 법무 장교도 싫었다.
폼 잡아봤자 죄 짓는 일반 병사들에게나 먹히지 그쪽도 계급 사회였다.
상명하복의 까다로운 군율과 온통 사내밖에 없는 암흑의 세계.
이제 그 끝이 보였다.
고지가 바로 저기!
결승점이 다가오자 바짝 더 힘을 내봤다.
촤아아앗 촤아아아아앗.
마지막 남은 힘까지 냈다.
37분 13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이대로 가면 이번 대회 신기록으로 금메달이다.
씨익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액션을 연기하려고 해도 너무나 평온했다.
“후우! 후우! 후우!”
하지만 팬들을 위해 거친 김을 황소처럼 뿜었다.
얼굴에 인상도 썼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파이팅!!!”
“마지막 질주야!!!”
“그뤠잇!”
사방에서 들려오는 환호성.
결승점을 통과한 조영준이 환하게 날 향해 웃고 있었다.
지친 표정에도 오늘 자신의 경기에 대단히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아니라 내가 금메달을 따도 좋아할 것 같은 저 표정이 싫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은…….
콰다다다당.
“헉!”
“뭐야!”
“이런!!!”
시원하게 미끄러졌다.
아니 눈이 왜 이렇게 미끄러운 거야~ 흐흐흐.
1, 2, 3, 4…….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가라는 옛 격언을 떠올렸다.
넘어져서 바라보는 캐나다 겨울 하늘 끝장나게 시원해 보였다.
생각 같아서는 푹 쉬고 싶었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일어서! 어서 달려!”
“아오오오오……. 아까워라.”
사람들의 탄식이 들렸다.
“으으으.”
아픈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경을 이겨낸 영웅의 행보처럼 온 힘을 다해 스키를 끌며 나아갔다.
“힘내요!!!”
“어서! 달려! 어서 이리와!”
이런 게 뭐 감동이라고 사람들이 힘내라고 외치며 격려했다.
그리고 난 결승점을 너무나 어렵게 통과했다.
37분 43초.
1등인 조영준의 결승점 통과 시간은 37분 34초였다.
딱 9초 차이.
“수고했어! 너……. 진짜 대단하다!”
조영준이 결승점을 통과한 나에게 다가와 힘껏 껴안았다.
얼마나 뛰었는지 촉촉하게 땀으로 젖은 조영준의 머리칼 냄새가 오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한국 대표팀의 선전에 사방에서 함성이 터졌다.
사람들 이런 거 참 좋아한다.
이왕 연극하는 거 기분 좀 더 냈다.
“오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형이야!”
처음으로 조영준을 형이라 칭해줬다.
메달 따면 많이 볼 사이도 아니었다.
“태산아…….”
눈동자가 빨개지더니 가슴이 떨리는 감동을 맛본 조영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이고! 내 새끼들!!!”
코치인 서준호 교수님이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얼굴이 행복에 젖어 보름달이 됐다.
메달에 걸려 있는 코치 몫의 보너스가 장난 아니었다.
“다…… 코치님 덕분입니다!”
조영준이 울먹이며 서 교수님께 영광을 돌렸다.
“무슨 소리야. 네가 잘한 거야! 네가!”
흥분한 두 사람.
카메라가 열심히 그런 우리 모습을 찍었다.
“다음 선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오! 이대로 들어오면…….”
누구 맘대로!
어깨를 가볍게 풀고 결승점을 향해 달려오는 선수를 쳐다봤다.
그리고 씨익 입가에 얕고 사악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윈드…… 윈드~.”
# 432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