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30
429장. 메달을 따야 하는 이유 (1)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두.
“뭔가 있는데…….”
CIA 팀장 루크는 떠나는 헬기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비밀 채널을 통해 기사단이 테러분자들을 처리했다는 정보를 받았다.
휴게소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모두 정리가 됐다.
의심 가는 자들은 없었다.
테러 훈련이라는 말을 대부분 납득하지 못했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었다.
선수들은 버스에 나눠 타고 서둘러 휴게소를 떠났다.
이틀 뒤부터 시작되는 경기가 그들에게는 더 중요했다.
경상 환자들은 가볍게 치료를 받았다.
급박했던 분위기와 달리 뒤처리는 조촐한 사건으로 끝났다.
루크는 쓴 입맛을 다셨다.
뭔가 드러나지 않은 게 더 있었지만 터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상부에서도 입 닫으라는 명이 내려왔다.
사건의 전후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건 한복판에 있었던 모두가 기억을 상실한 채 잠을 잤다고만 했다.
CIA 특수팀에서 맡아야 할 사건이 분명했다.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었던 루크에게 이번 일은 벅찼다.
그에 반해 팀원 잭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이것저것 적었다.
특수팀 출신답게 상부의 지시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이해한 것 같았다.
“잭슨 우리도 이제 철수를…….”
“팀장님! 저기!”
그때 따라왔던 잭슨이 한쪽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시간이 흘러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특수부대도 떠나고 경찰들만 몇몇 남아 뒷수습을 하던 곳에 한 남자가 보였다.
안개가 사리진 달밤에 산책이라도 한 듯 여유로웠다.
“다니엘 장!”
루크도 깜짝 놀랐다.
다니엘이라 불린 남자가 휘파람을 불며 휴게소로 다가왔다.
“누구십니까?”
경찰관이 다가가 신원을 확인했다.
“한국 노르딕 스키 국가 대표 태산 장이라고 합니다.”
“버스 안 타셨습니까?”
“저기 개인 자가용을 타고 왔습니다.”
“여권과 운전면허증, 선수 증명 서류를 보여주십시오.”
예민해져 있던 경찰이 까칠하게 나왔다.
누가 봐도 수상한 등장이었다.
“팀장님…….”
“알았어.”
루크가 경찰관에게 다가갔다.
“이분. 내가 압니다.”
“네?”
경찰관이 당황했다.
CIA 직원이 나섰다.
“신원검증 안 해도 압니다. 이름은 태산 장. 국적은 한국. 현재 스키 선수 맞습니다.”
루크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아, 알겠습니다.”
경찰관이 물러갔다.
“절 아십니까?”
“그럼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다니엘 장 대표님. CIA 팀장 루크라고 합니다.”
활짝 웃으며 손을 내미는 루크.
‘흐흐흐. 이게 웬 보너스야!’
직접 만날 기회를 노렸던 승진의 열쇠.
“감사합니다. 루크.”
다니엘이라는 슈퍼 인사가 루크의 손을 힘껏 움켜잡았다.
***
“으윽……. 왜 이렇게 허리가 아픈지…….”
조영준이 쑥쑥거리는 허리를 잡고 인상을 썼다.
당사자는 모르겠지만 난 잘 알고 있다.
“가장 먼저 뛰던데요?”
“네? 뭘요?”
뭐긴 뭐야.
날 잡으려고 선두에 섰던 좀비 무리들 중에 한 분이었다.
조영준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 저에게 불만 많았죠?”
“제가요?”
“그런 것 같은데…….”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감정적으로 표출할 정도는 아닙니다.”
“와아! 내 기억에는 잘 해준 것밖에 없는 데 뭐죠? 치킨에 맥주에~.”
“그래서 그 정돕니다. 태산 씨 선수촌에서는 남자들 적입니다. 유나 양하고 친하잖아요.”
“단지 그것뿐입니까? 영준 씨도 여친 있잖아요.”
“그건 그거고 유나는 유나 양이죠.”
“헐…….”
조영준의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사정 다 아는 선수촌 사람들이 이럴진대 모르는 국민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유나는 그냥 동생이에요.”
“다들 그렇게 시작하죠.”
“아오! 저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요!”
“그럼 더 나쁜 놈이네요.”
“…….”
오늘따라 더 까칠한 조영준이다.
아사신에 의해 오염되었다 정신 차린 줄도 모르는 그가 어이없었다.
“연습 안 해요?”
“했어요.”
“언제요?”
“러시아에서요.”
“러시아요? 언제요?”
“틈틈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잘하는 것 같군요.”
“그날입니까?”
“뭐요?”
“여자들 한 달에 한 번 걸리는 그날.”
“……변태.”
그냥 말을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조영준이 이렇게 말이 많은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편해졌다는 뜻도 됐다.
“어디가 아픕니까?”
“……왜요?”
“물리치료 좀 해주려고 그럽니다.”
“…….”
“뭐죠? 그 의심스런 눈초리는?”
“세상이 하도 험해서.”
“아! 정말 됐고요! 빨리 누워 봐요!”
조영준이 휘슬러에 지정된 선수촌 호텔 개인 침대에 누었다.
아사신의 습격 때문인지 경호는 삼엄했다.
“자격증 없지 않습니까?”
“유나도 저에게 받았습니다.”
“……소문내도 됩니까?”
“내일 경기 뛰기 싫죠? 그냥 한국 가고 싶으면 말만 하세요.”
우두둑 손을 풀었다.
“…….”
새벽에 도착한 선수들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다들 오전 늦게까지 잠을 잤다.
그런다고 돌아올 컨디션이 아니었다.
점심 먹고 운동 대신 호텔방으로 돌아온 조영준은 심각했다.
그에 반해 북유럽 선수들은 그사이 컨디션을 회복해가고 있었다.
바이킹을 조상으로 둔 후손들다웠다.
“아파도 참아요.”
“어설프게 만지면 근육 탈 납니다.”
“한 번 받고 나서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따라온 코칭스태프들도 모두 엉망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보면 모두 똑같은 조건에서의 결투였다.
손을 비비며 조영준 등판으로 다가갔다.
새벽에 그렇게 날뛰더니 등판에 멍도 들었다.
조영준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내 인생 프로젝트를 위해 앞에 세울 방패로 필요했다.
힐 마법을 조종해서 손에 담았다.
손에서 빛이 났다.
그리고 천천히 조영준의 어깨부터 시작해서 안마를 하기 시작했다.
“으윽……. 으으으……. 흐윽……. 하윽…….”
처음에는 신음을 흘리던 조영준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흘러나왔다.
누가 들으면 오해하기 딱 좋을 장면과 효과음이었다.
조영준 몸에 남는 마력 좀 뿌려줬다.
내일 15km가 아니라 40km를 뛰어도 쌩쌩할 것이리라.
그렇게 약 20분쯤 마사지를 해주었다.
“뭐, 뭐죠?”
나른한 데다 개운 플러스 황홀함까지 가득한 표정으로 조영준이 물었다.
“메달 따면 한턱 쏴요.”
멍한 표정을 짓는 조영준.
자신의 몸이니 잘 알 것이다.
지금 그 어떤 때보다 최상의 몸 상태로 회복됐다는 것을.
***
“수면 가스였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납득이 안 가.”
소피아는 호텔 로비를 걸으며 새벽에 있었던 사건의 전말을 풀고자 노력했다.
상부에 연락했지만 그곳에서도 모른다는 답변만 들었다.
“단체 세뇌도 아니고……. 도대체 뭐야.”
여러 훈련을 받았던 소피아였지만 짐작을 못했다.
“CIA가 투입될 정도라면 심각한 건데 아무 일도 없었어.”
혼자 중얼거리는 소피아.
내일 펼쳐지는 단거리가 아닌 노르딕 복합에 출전하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어차피 조직에서 제공한 특수한 훈련과 비법으로 다른 선수들보다 몸 상태가 좋았다.
금메달은 염려 없었다.
노르웨이 유명인사가 되기 위해 프로그램이 착착 진행됐다.
“이거 마셔요.”
“???”
갑자기 스윽 자신 앞에 나타난 커피를 든 손 하나.
굵고 거친 남자 손으로 보이지 않았다.
“다니엘…….”
“무슨 문제 있습니까? 혼자 중얼거리던데…….”
어느새 다가온 다니엘이 웃으며 물었다.
“아니에요.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랬어요.”
언제 그랬냐는 듯 소피아는 활짝 웃었다.
조직에서 최대한 가깝게 지내라는 명을 받은 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인간적으로 호기심이 갔다.
미국 사교계의 거물 사라 요한슨이 좋아하는 동양 남자는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쳤다.
거친 선수들과 달리 지적 향기가 풍기고 동시에 은은한 자신감이 몸에서 배어 나왔다.
호르몬 강렬한 수컷이 아니었다.
슈트가 잘 어울리는 교육을 잘 받고 귀한 가문에서 태어난 후손 같았다.
영국에서 접해봤던 귀족가문의 자재들과 비슷했다.
아니 비교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남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여자에게는 존경을 받기에 합당한 어떤 기운.
카리스마였다.
그리고 가볍게 커피를 건넬 정도로 친절했다.
목소리도 듣기 좋았다.
노르웨이 현지인 특유의 발음에 마음이 활짝 열렸다.
“육상도 잘하시죠?”
“네~. 한때는 육상 선수였어요.”
“어쩐지…….”
고개를 끄덕이는 다니엘.
‘뭐지? 뭘 알고 있다는 저 표정은?’
다니엘의 시선이 조금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감탄이 아니라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왜요?”
“하하. 아닙니다. 달리기를 잘하는 것 같아서요.”
‘이 남자 앞에서 뛴 적이 없는데?’
다니엘이 뭔가를 아는 것 같았다.
“시합 시간이 내일 11시죠.”
“네.”
“첫 경기니까 부담 내려놓고 달려요. 크로스컨트리는 운동에 좋아요.”
“메달 딸 겁니다.”
“메달요? 내일요?”
“네~.”
“…….”
소피아는 할 말을 잃었다.
내일 크로스컨트리 프리스타일 15km 경주는 노르웨이와 덴마크, 스웨덴 선수들이 강자였다.
특히 동료인 한센은 이 종목에서 압도적이었다.
동양인이 결코 낄 자리가 아니다.
메달 안정권이 37분대가 유력한 상황에서 동양인 선수들은 대부분 40분을 넘어갔다.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었다.
“소피아는 믿지 못하는 것 같군요.”
“사실……. 그래요.”
소피아는 솔직하게 답했다.
괜히 예의상 하는 말을 뱉고 싶지 않았다.
다니엘과 친해져야 하지만 선수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은 남았다.
“이거 메달을 딸 이유가 하나 더 생겼군요.”
“네?”
“내기해요. 만약 내가 메달을 따면 소원 들어주기.”
다니엘이 웃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지그시 다니엘을 바라보던 소피아.
‘이 남자 바보 아냐?’
절대 자신이 패배할 수 없는 내기였다.
“네……. 그렇게 해요. 반드시! 소원 들어주기.”
소피아는 가지런한 치아가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430
회귀의 전설
430장, 메달을 따야 하는 이유 (2)
“오늘 어디에서 중계해?”
“KBC에서 중계합니다.”
“빨리 켜봐!”
“넵!”
“김 병장님 시작합니다!”
[2010년 캐나다 동계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15km 프리스타일 경기가 바로 시작합니다. 기상 상태가 양호하지 않아 2시간 정도 경기가 지연되었습니다. 오늘 이 경기에는 대한민국의 유망주 선수 두 사람이 출전합니다. 양수혁 해설위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경기 메달을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제 예상으로는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아직 스키 분야에서는 걸음마 수준입니다. 특히 노르딕 스키는 신체적 역량 차이로 인해 선두 그룹을 따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러나 희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영준 선수와 신인 장태산 선수에 대해 대회 관계자는 메달을 한 번 노려봐도 좋다고 전해왔습니다.] [그래요? 하하. 그 관계자 저도 한 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 이제 경기가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선수들이 출발 선상에 몸을 나타냈습니다. 해설위원님 노르딕 스키, 그중에서 크로스컨트리는 어떤 스키입니까?] [노르딕 스키 중 하나인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다들 생소할 겁니다. 북방을 의미하는 ‘노르드’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발달한 스키입니다. 보통 크로스컨트리, 스키점프, 노르딕 복합 이렇게 3종목으로 나눠집니다. 그중에서 지금 펼쳐지는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15km, 30km, 50km 종목이 있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이 종목에서 메달을 딴 적 있습니까?] [1960년 스쿼밸리 동계올림픽에서 기하윤 선수가 처음으로 출전했고 메달은 동계아시아게임에서는 몇 번 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는 메달과는 거리가 먼 성적을 냈습니다.] [경기 방식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지금 펼쳐지는 15km 프리스타일 경기는 인터벌 스타트 경기로 진행됩니다.] [인터벌 스타트 경기요?] [최소 10초에서 30초 간격으로 개인 출발을 하는 경기입니다. 결승 지점에서 출발 시간과 합산해 순위가 매겨집니다.]아나운서의 차분한 목소리가 TV를 통해 전해졌다.
“이건 예선도 없나 봅니다. 바로 달린답니다!”
“흐흐흐. 김 병장님 제대하기 전에 크게 털리겠습니다.
“전 재산 담배 다섯 갑 걸었지 말입니다. 올해부터 면세담배 사라져 PX에서 제값 주고 사온 녀석입니다.”
“제가 아는데 크로스컨트리 스키에서는 메달 못 땁니다. 우리는 유럽 애들에 비하면 유치원 수준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늘은 무조건 파티입니다!”
한국시간 새벽 6시.
캐나다 시간 오후 1시에 크로스컨트리 경기가 시작 됐다.
갑자기 강풍이 불고 눈이 내려 예정 시간보다 2시간이나 늦어졌다.
일요일이었던 어제 오후 갑자기 쏟아진 폭설 재설 작업 때문에 쉬지 못했던 1사단 15연대 본부대 병사들은 오전 자유 시간을 명받았다.
어차피 군단 동계 훈련도 1월 초에 모두 끝났다.
전방에서 동계 훈련이 없는 사단은 대부분 눈과 씨름하거나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다.
괜히 움직였다가 병사들 사고라도 나면 간부들만 골치 아팠다.
그렇게 혜택 아닌 혜택을 누리고 있는 본부대.
월요일 아침 늦잠을 자야 할 병사들이 일찍부터 부산을 떨었다.
아침 식사도 거른 채 TV를 켰다.
부대 내에서 철저히 금지가 됐지만 오늘은 은밀한 내기가 걸렸다.
김형철 병장 친구인 장태산이 메달을 따느냐 마느냐에 다들 촉을 세웠다.
“흐흐흐. 오 일병 다 적었지?”
“넵! 김 병장님.”
“니들 경기 끝나면 바로 상납해라.”
김형철이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아니 김 병장님 이건 아니라니까요. 그냥 지금이라도 포기하면 제가 애들 말려보겠습니다.”
“맞습니다. 이건 분명히 질 게 뻔합니다.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 따기도 벅찬데 올림픽 메달이라니요. 저기 유럽 선수들 보십시오. 떡대가 다릅니다.”
“와아아아. 피지컬 장난 아니네.”
화면이 돌아가며 대기 중인 선수들을 한 번씩 카메라에 담았다.
그냥 봐도 190cm 장신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동양 선수들의 왜소한 체격과 대놓고 비교가 됐다.
“난 내 친구 장태산 믿는다. 그놈은……. 학교 다닐 때부터 전설이었다.”
“에이~ 그래봐야. 동네 전설이겠죠.”
“17대 1로 싸움 좀 했습니까?”
말년 병장이 돼 가는 김형철을 향해 아래 기수인 두 사람이 편하게 말을 나눴다.
지는 해처럼 왕고에서 밀려나는 뒷방 병장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17대 1? 아그들아. 그 정도로 되겠냐? 장주시 조폭들 모조리 아작냈어~.”
“네? 조, 조폭을요?”
“혹시…… 몇 년 전 뉴스에 나왔던 장주시 조폭 검거 이야기 주인공이…….”
“그래. 내 친구 장태산이 뒤집어 놓은 거야.”
“와아아……. 대단하십니다!”
“그뿐만이 아니지. 공부도 갑자기 엄청나게 잘하게 되면서 한국대 법학과 들어갔다. 그리고 니들도 봤다시피 FOB랑도 엄청나게 친해. 그 놈은…… 너희 상상을 뛰어넘는 탈 지구인 급이다.”
김형철은 장태산에 있어 신급에 해당하는 경외심을 품었다.
“흐흐. 그래도 메달은 힘듭니다. 유나 양과 스피드 스케이팅, 쇼트 트랙 말고는 모두 메달 꽝입니다.”
하지만 휘하 소대원들은 김형철과 생각이 달랐다.
다음 주에 분대장 견장이 예약된 넘버 투 유 병장이 고개를 저었다.
“맞습니다! 이건 보나 마나입니다.”
“흐흐흐. 오늘 복 터졌습니다.”
눈으로 봐야 믿을 수 있다는 표정들이었다.
“새끼들 속고만 살아가지고……. 긴 말 할 것 없다. 똥인지 된장인지는 먹어보면 아는 거고~ 오늘 난 친구에게 모두 걸었다.”
깔깔이 두 개를 입고 베게로 팔베게를 만든 김형철 병장이 느긋하게 모포 위에 누웠다.
“설마…….”
“아, 아닐 거야. 공부벌레 한국대 생이 언제 운동했다고 무슨 올림픽 메달이야…….”
“그렇지?”
“만약에 김형철 병장님 말대로 된다면…….”
“오늘 한국 선수가 크로스컨트리 스키에서 메달 따면……. 완전무장에 팬티만 입고 연병장 돌겠다!”
“꺄아아! 역시 떠오르는 태양 유 병장님이십니다!”
“저도 같이 돌겠습니다!”
“저도요!”
막사 안에 머물고 있는 병사들 중에 일병 이상 참가한 내기 대결.
걸린 판돈 20만 원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걸 모두 혼자 감당한 김형철 병장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워낙 자신감 넘치는 말과 행동에 도리어 내기를 건 나머지 병사들이 긴장했다.
아닐 거라 애써 믿었지만 혹시나 하는 사건이 터질 수도 있었다.
모두 숨을 죽였다.
타앙!
TV에서 출발 신호가 힘차게 울렸다.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오늘 이곳 캐나다 휘슬러에서 펼쳐지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15km 프리스타일에 출전한 대한의 건아들이 메달을 딸 수 있도록 모두 기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흥분한 아나운서 목소리가 막사 안에 울렸다.
그리고 긴장한 병사들이 눈이 빠져라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타앙!
전자총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오르막과 평지, 내리막으로 각각 3분의 1로 구성된 코스를 향해 첫 번째 선수가 내달렸다.
바로 뒤에 다음 선수가 대기했다.
30초 간격으로 선수들이 출발했다
강풍과 눈으로 2시간 동안 경기가 지연됐지만 문제 없었다.
촤아앗 촤아앗.
첫 번째 선수가 힘차게 튀어 나갔다.
팔과 엉덩이 근육이 보기 좋게 씰룩거렸다.
설원의 마라톤으로 불리는 크로스컨트리는 주법에 힘이 많이 필요했다.
특히 프리스타일은 스키를 신고 뛰듯이 달려야 했다.
15km 내내 쉬지 않고 달리는 무지막지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게 하는 경기였다.
조영준과 나는 선두 그룹에 속했다.
세계 랭킹에 따라 출발 순서가 정해졌다.
이렇다 할 국제 성적이 없는 우리는 들러리 정도로 취급당했다.
뒤에 대기 중인 세계 기록 선수권자들은 우리를 보며 비웃기까지 했다.
“저것들은 뭐야? 괜히 눈길 어지럽히지 말고 제대로 뛰어라. 헛발질로 넘어져 앞길 막으면 안 돼~.”
“킬킬킬. 원숭이들이 눈은 잘 타나 몰라?”
“엄마 젖 더 먹고 와야 하는 거 아냐? 크크크.”
“칭총들 짧은 몸뚱이 봐라. 흐흐흐흐.”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놈들도 보였다.
유럽 국가 선수들이 다수였다.
아무리 선진국이라 해도 유럽 놈들 중에 양아치들은 섞여 있었다.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캐나다 선수들 대부분 나를 비롯해 동양 선수들을 비웃었다.
긴장감을 풀기 위해 약한 자에 대해 무시와 경멸,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물론 자기들끼리 은밀히 나누는 대화였지만 특출한 나의 귀에는 다 들렸다.
영어를 비롯해 각국 언어로 욕을 해대고 있어서 알아듣는 동양 선수들이 드물었다.
나만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게 가능했다.
중국과 일본, 대만, 한국 선수가 동양권 선수들의 다였다.
모두들 주눅이 들어 있었다.
언어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덩치와 기세로 이미 기가 죽어 있었다.
오늘 메달을 따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 됐다.
“……쟤들 뭐라는 거야?”
잠시 후에 출발해야 할 조영준이 기분 나쁜 듯 놈들을 노려보며 물어왔다.
아침 대기 시간부터 우리를 보고 실실 쪼개는 놈들의 비웃음을 모를 수 없었다.
“원숭이들 엄마 젖 더 먹고 오라는데요~.”
“뭐, 뭐라고! 이 금털 오랑우탄 같은 새끼들이!”
조영준 선수 성깔 있었다.
키는 크지 않지만 깡다구가 넘쳤다.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왔다.
“신경 꺼요. 실력으로 저 새끼들 큰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려요.”
“알았어! 오늘…… 내가 피똥 싸는 한이 있어도 달린다!”
조영준 선수가 결의를 다졌다.
자극제로 아주 좋았다.
“……한국 새끼들 시끄럽네.”
바로 앞에서 출발할 중국 놈도 우리 편이 아니었다.
중국어로 중얼거렸지만 바로 직역되어 귓속을 파고들었다.
중국 놈은 ‘칭총’이라는 중국인 비하 발언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짱깨 가다가 콱 엎어져 대가리 깨져라. 흐흐.”
저주를 뿌렸다.
“뭐라고!”
개폼 잡고 있던 짱깨가 뒤를 돌아봤다.
“어이구~ 그게 들렸어요? 한국어로 한다는 게 중국어가 나갔네~. 크크크.”
전혀 사과할 의사 없는 표정을 지으며 짱깨를 놀렸다.
강한 유럽 선수들에게는 찍소리 못하고 괜히 조영준과 나에게만 시비였다.
저열한 짱깨 본성이었다.
힘이 없을 때는 고개를 숙이다 어느새 뒤통수를 치는 족속들다웠다.
대국이라 스스로 부르지만 밴댕이 소갈딱지만도 못한 짱깨들.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타고난 민족성 자체가 돈 말고는 누구를 믿지 못했다.
인의예지를 한참 더 배워야 할 민족이었다.
“다카이시 할아버지, 미네코 할머니…….”
그에 반해 내 뒤에 선 일본 선수는 양반이었다.
눈을 감고 정신집중 주문을 외웠다.
들어보니 고조할아버지부터 시작해서 조상들 이름을 쭉 불렀다.
천황을 위해 목숨을 버렸던 2차 세계 대전의 정신 유산을 엿볼 수 있었다.
“준비!”
중국인 선수가 출발 자세를 취했다.
“출발!”
심판의 명령에 중국 선수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다른 선수보다 더 빨리 달렸다.
한눈에 봐도 오버페이스 주법.
오래 못가 지쳐 떨어질 게 뻔했다.
그 뒤를 이어 조영준도 자세를 잡았다.
“천리마처럼 달려요!”
힘차게 뒤에서 응원했다.
“준비! 출발!”
그리고 조영준이 출발선을 벗어났다.
스타트가 좋았다.
처저적.
출발선에 자세를 잡았다.
카메라가 날 찍고 있는 게 보였다.
전국에서 보고 있을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오늘은 서비스를 날릴 시간.
“준비! 출발!!!”
심판의 말에 출발선을 박찼다.
촤아앗 촤아앗 촤아앗.
힘차게 스키를 신고 달렸다.
근육이 팽팽하게 당겼다.
물론 힘 조절을 했다.
앞서가는 조영준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번 대회 메달권은 최소 37분대.
아직 조영준의 실력으로는 힘들었다.
그러나 뒤에 내가 있었다.
조영준의 등을 바라보며 가볍게 입술을 뗐다.
“윈드~.”
# 431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