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49
449장. 강의하다 (2)
“저 남자야?”
“세상에……. 나이도 엄청 어려 보이는데 동차 합격?”
“법학과 학생 맞지?”
“도대체 몇 학번이야?”
헌법 수업을 신청한 학생들은 순식간에 멘붕에 빠졌다.
자신들보다 어려보이는 남학생이 동차 합격생이라는 사실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렵겠나?”
주태열 교수가 강의 의사를 다시 물었다.
“아닙니다.”
중후하게 깔린 목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장태산.
“목소리 쩐다.”
“도대체……. 부족한 게 뭐야?”
“키도 엄청 커.”
“히잉……. 내 심장 방금 강제로 빠져 나갔어.”
웅성거리는 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며 장태산이 앞으로 나왔다.
저벅저벅.
가벼운 그의 발걸음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두려움이 없군.’
주태열 교수는 앞으로 나서는 장태산을 지켜보며 입학 면접 때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미친놈처럼 보였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면접장에 온 놈이 법학에 대해 까놓고 소신을 밝혔었다.
권력의 시녀라는 둥, 고리타분해서 배울 게 없는 학문이라는 둥.
장장한 교수들과 논쟁을 벌였다.
뼈아픈 말들이었기에 교수들도 어쩌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토론 자세는 칭찬할 만했지만 감정 점수에서 불합격이 확실했던 장태산.
놀랍게도 미끼를 던져 합격의 열매를 따냈다.
2학년까지 사법시험 2차 동차 합격을 일궈내겠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떨어지면 스스로 자퇴하겠다고 선언까지 했다.
교수들은 괘씸하기도 했지만 당돌한 포부 때문에라도 녀석을 합격시켰다.
주태열 교수는 합격을 반대했지만 결국 녀석의 합격 처리를 받아들였다.
한국대 법대를 우습게 본 죄를 적당한 수업시간에 응징하리라 마음을 먹기도 했었다.
또 기타 여러 알력으로 녀석을 충분히 눌러버리겠다는 생각을 품었었다.
그러나 놈은 생각 외로 영리했다.
2학년까지 법학 수업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교수들이 당황할 만큼 학과를 장악해 갔다.
무엇보다 동기들이 녀석을 인정했다.
친화력뿐만 아니라 성격이 장난 아니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법대 위상을 한창 높여줬다.
동시에 엄청난 부를 일궈 주태열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저 나이에 자수성가해 몇 년 사이 재산을 수조로 불렸다.
대국재단 이사회의 때 봤던 숫자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했다.
가벼운 생각에 괴물이라 생각했지만 그 이상이었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대국재단에 수조의 출연금을 만들어낸 무적 청춘.
강의실에 함께 앉아 있는 학생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지도 몰랐다.
같은 학생 신분이지만 인생의 질 자체가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았다.
대한민국 재벌들도 장태산 포스에는 밀렸다.
수조를 껌값처럼 생각하는 자산가는 대한민국에 없었다.
약속대로 사법시험도 동차까지 동시에 무난히 합격했다.
그런 결과를 얻고도 3차 면접 시험에는 나가지 않았다.
2차 합격 점수가 낮아 그랬다는데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녀석은 충분히 수석을 차지할 수 있었을 만큼 실력이 출중할 것이라.
그러나 장태산은 적당한 합격선에서 멈췄다.
뿐만 아니라 동계 올림픽에 출전해 한국대 역사상 처음으로 메달까지 안겨줬다.
총장님이 널리 알려야 한다는 직접 발언이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없었던 일처럼 입을 닫았다.
장태산이 자신이 이용하는 경로로 총장님께 의견을 전달했거나 또 다른 힘을 이용해 조용히 처리했음이 확실했다.
부족한 것 없이 잘난 녀석이 심기까지 무서웠다.
멀리 할 것 같은 권력도 이용할 줄 알았다.
재력도 부족함이 없었고 도대체 무슨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오늘 수업 시간에 장태산을 직접 불러냈다.
장태산의 한 마디는 여기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줄 게 분명했다.
비슷한 또래의 전혀 다른 삶에서 오는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주태열 교수가 생각해도 법은 따분하고 고리타분했다.
암기 잘하고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 강의실에서 수업 받는 학생들 중에서도 수십 명이 나중에 가서는 합격할 게 뻔했다.
과거부터 그랬다.
그런 학생들에게 과연 장태산이 무슨 말을 할까 기대가 됐다.
“법학과 08학번 장태산. 여러 학우님들의 귀한 시간을 잠시 빌리겠습니다.”
고개를 가볍게 숙여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인사하는 장태산.
“0, 08학번?”
“예비역이 아니라 현역이었어?”
“스물두 살? 세상에 저 나이에 동차가 가능해?”
사방에서 불신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늘은 또 뭘 보여줄까?’
고연지는 수군거리는 다른 학생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만날 때마다 상상을 뛰어넘는 행동을 보였던 장태산이었다.
당장 데뷔해도 될 만한 시 창작 능력뿐만 아니라 운동신경도 단기간 올림픽 메달을 딸 만큼 좋았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 법학관에서 벌어지는 그의 또 다른 도전.
무슨 생각인지 교수님이 선뜻 강의를 하라고 귀한 시간을 할애했다.
지금까지 겪어온 한국대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먼저 강의라는 말은 아직 어리고 부덕한 저에게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학우로서의 조언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00명이 넘는 학생들 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장태산.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며 입가에 당당한 미소를 머금었다.
‘교수 자리도 잘 어울리겠군.’
주태열 교수는 어지간한 강사들보다 두둑한 배짱을 보이는 장태산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스윽.
장태산이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칠판에 또박또박 한자를 적어갔다.
법무선악재인소용
法無善惡在人所用
다시 학생들을 향해 돌아선 장태산.
“여러분 이 뜻이 무슨 뜻을 갖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진하게 울리는 장태산의 목소리.
“…….”
강의실 안의 모든 학생들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장태산의 다음 말을 기대하며 숨을 죽였다.
***
“용서하지 않을 거야! 장태산……. 네놈을!”
으드득.
어제 당한 모욕에 한숨도 자지 못한 진미혜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태어나 어제 같은 모욕은 처음이었다.
부동산 투기로 단번에 졸부가 된 아빠를 졸라 중매로 만난 남편에게 병원을 사줬다.
실력과 사업수단이 좋았던 남편은 강남에서 제일가는 개인 병원을 일궈냈다.
가난한 시골 출신 의사치고는 욕심이 정말 대단했다.
그 덕분에 일찍부터 사모님 소리를 듣고 살았던 진미혜는 어제 같은 치욕은 태어나서 처음 겪었다.
한국대 의대에 진학한 딸 덕분에 요즘 어깨뽕이 대단했었다.
찬병원과 결합한 한국대 의대 재학 중인 딸이 진미혜의 명함이 됐다.
졸부 딸이라는 신분은 완전히 세탁 됐다.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가문의 안주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새파랗게 어린놈에게 다른 것도 아니고 돈으로 발렸다.
남편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던 블랙 카드.
놈이 그걸 꺼내 진미혜를 보란 듯이 눌러버렸다.
그것도 가방 몇 개 수준이 아니라 매장 전체 물건을 구매해 버렸다.
그 어느 재벌집 사모도 그렇게는 구입하지 못했다.
수십억을 한꺼번에 카드로 지를 정도 되려면 5대 재벌 정도나 되어야 가능했다.
찬병원 사모라고 하지만 한 달에 억 쓰기도 벅찼다.
도저히 비교가 안 되는 재력 차이.
한국대 의대 신입생인 장주희의 신상을 털어 장태산이라는 놈을 알아냈다.
놈의 말대로 한국대 법대에 재학 중이었으며 투자 회사 대표였다.
“감히 첩의 딸년이 운용 중인 그깟 중용 대학교 이사장이 뭐라고!”
요즘 강남에 서서히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중용 대학교 이사장에 대한 소문.
주현태 동룡 회장의 배다른 여동생이었다.
두 사람 사이는 좋지 않다고 들었다.
“내가 가진 힘을 똑똑하게 보여주지!”
악독한 눈빛을 뿜어내던 진미혜는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번호를 눌렀다.
– 이게 누구야. 바쁘신 진 여사님 아니야~.
“안녕하세요~ 사모님. 잘 지내시죠?”
– 진 여사님 덕분에 잘 지내지. 그런데 무슨 일이야?
“이번에 저희 병원에서 새로운 피부재생 시술법과 크림이 나와 연락드렸습니다. 어떻게 오늘 시간 되세요?”
– 그래? 당연히 가야지. 고마워~ 매번 이렇게 챙겨줘서.
“무슨 말씀이세요~ 청장님 덕분에 여러 혜택을 받는 건 우리 집안이죠~.
– 아니야. 번번이 내가 신세를 졌잖아. 도와주지도 못하는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순간 진미혜 입가에 득의만만한 미소가 퍼졌다.
그 동안 깔았던 밑밥을 거두어들일 때였다.
오늘 같은 날을 위해 그간 뿌렸던 비용이 상당했다.
“그래서 부탁드릴 것도 있고…….”
– 그래? 뭔데?
“탈법을 저지르는 집안이 있는데 너무 안하무인으로 인생을 살아서요. 법대로 세금 꼬박꼬박 내고 살아가는 우리 같은 시민들은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제대로 법의 무서움을 가르쳐 줬으면 합니다.”
– 요즘 같은 세상에도 그런 집안이 있어? 말해 봐. 도대체 어떤 집안이야?
“만나서 조용히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 알았어. 내 화장만 하고 바로 나갈게.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계획대로 통화는 잘 끝났다.
권력을 잡은 자는 남자지만 뒤에서 조종하는 건 대부분 여자들이었다.
대한민국 권력판도 마찬가지였다.
강남 사모들을 뒤에서 주도면밀하게 조종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진미혜.
진미혜만이 가진 재능을 충분히 살렸다.
“장태산……. 넌 끝났어! 호호호.”
***
대답하는 학생들이 없었다.
쉬운 한자들로 구성된 문장이었지만 품고 있는 뜻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법에는 선악이 없으며,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에게 달렸다.’라는 뜻입니다. 이 문장과 어울리는 헌법 조문이 있습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강단에 서도 전혀 쫄리지 않았다.
두 번째 인생을 사는 나에게 눈앞의 모두는 어린 동생들이었다.
초롱초롱 경외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몇몇 남학생들이 질투 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그건 간단히 무시했다.
“…….”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아직 헌법 조문을 모두 파악 못한 법률 신입생들인 것 같았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헌법 제 103조.”
내가 들어도 낭랑한 목소리가 강단에 울렸다.
멋지게 폼 잡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었다.
요즘 들어 법대생이 아니더라도 사법시험이나 로스쿨에 합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 강의실에서 미래의 법관이나 검사, 변호사들이 수십 명씩 나올 수 있었다.
미래의 그들에게 강의가 아니라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
“시험공부 노하우 같은 건 어차피 없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법학시험은 암기 과목입니다. 책 읽고 써머리하고 자기 것으로 만든 뒤 판례를 섞어 멋지게 리뉴얼하면 됩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에게는 다들 이골이 난 공부 방법입니다.”
한국대 생들에게 공부 방법을 운운한다면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겠다고 덤비는 것과 같았다.
죽다 살아나 머리가 깨어나지 않았다면 나도 감히 이들 앞에 서거나 따라갈 수도 없었다.
이들은 대부분 공부의 신이었다.
“제가 적었던 문장과 이 헌법 조문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문장 그대로 법관의 주관적 양심에 따라 법률을 해석해 재판하라는 뜻이 아닙니까? 인간의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법을 집행하는 자에게 주어진 의무적 명제처럼 말입니다.”
복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맞습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국의 연방항소법원 판사이자 법학 논문에 최다 인용되는 법학자 리처드 포스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판은 지극히 정치적이다.’ 이 정치라는 의미도 제가 제시했던 문장이나 조문과 연관이 있습니다. 어떤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강의가 의외로 재밌었다.
학생들의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말 그대로 어떤 정치적 편견을 소유한 법관, 특히 대법관의 판결이 정치적 구속력을 발휘한하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 의견도 맞습니다.”
“그럼 지금 강의자는 어떤 뜻으로 말하는 겁니까?”
복학생 남학생은 나를 다소 경쟁자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판사들이나 검사, 변호사들도 모두 사람입니다. 다양한 사회의 충돌에서 그들이 각자 맡고 있는 소임들이 있습니다. 그때 가장 중시해야 할 덕목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치적 견해도 이것을 바탕으로 깔고 있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담담하게 받아쳤다.
난 내 뜻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이들을 가르칠 생각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
어차피 살아온 환경과 배경이 달랐다.
이들의 전인격과 세계관은 내가 개입할 영역이 아니었다.
다만…….
“법은 사회적 충돌에 대한 최종적이며 불가역적 책임을 지우는 행위입니다. 구속력이 대단해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이 법률에 복종해야 합니다. 장점도 있고 여러 단점도 등장합니다. 권력에 귀속한 판결이 어떤 사회를 만들어 냈는지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한국사에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
강의실은 조용한 공기를 유지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대부분의 학생들이 알아들었다는 의미였다.
미래 법률가를 꿈꾸는 그들에게 각인시킬 단 하나.
등을 돌려 칠판에 다시 한자를 적었다.
이재일시손재만세
利在一時害在萬世
그리고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학생들을 다시 바라봤다.
“일시적인 이익은 만대에 해를 끼친다……. 라는 뜻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후에 법률가가 되신다면 눈앞의 이익보다는 부족하지만 정의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그 힘을 사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어떤 법도 인류애를 바탕으로 깔지 못한다면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독재자의 요술 방망이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해악은 어느 날 자신의 후손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걸 꼭 기억하십시오.”
말을 잠시 끊고 나를 응시하는 학생들을 마주 바라봤다.
그들에게 오늘 이 시간을 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 어떤 법도 사람 위에 설 수는 없습니다! 그 점만 잊지 말아 주십시오. 법을 집행하는 자는…… 살아있는 양심 위에서 춤을 추어야만 죽어서 법 집행에 따른 단죄의 대가로 하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법입니다!”
# 450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