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73
473장. 계파 (2)
‘아빠를?’
빙긋 웃고 있는 장태산의 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이예린은 알았다.
아빠는 요즘 들어 더 바빴다.
대법관 하마평에 오른다는 걸 예린도 잘 알았다.
아빠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서 고등법원 부장판사까지 올랐다.
지방 순환근무를 자처할 정도로 법관 일에 열정적이었다.
그런 아빠를 감옥에 보낼 수도 있다고 말하는 장태산.
예린의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고 질문이었다.
이예린이 법학과를 선택하고 법관이 되려는 이유도 아빠의 영향이 컸다.
실력과 인품이 넘치는 훌륭한 법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했다.
“태산아…… 농담이 좀 심한 것 같은데…….”
“농담요? 전혀 아닙니다~.”
뭔가 자신이 모르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장태산.
지금 이예린은 그 어느 때보다 장태산이 필요했다.
공부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올려놓은 상태지만 마무리가 약했다.
자꾸 장태산에 대해 강의실에서 던졌던 강아린 선배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강아린 선배는 합격시켜 주면 머슴이라도 되겠다고 했다.
학생회장 유학필 선배가 태산이 도움을 받아 차석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신림동 선배들을 통해 알아보니 그건 진짜였다.
은밀히 유학필 선배가 후배들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문도 동시에 돌았다.
실체를 알 수는 없지만 뭔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반신반의하겠지만 이예린은 느낌이 왔다.
장태산 덕분에 한국대 법학과 입학 당시에 큰 도움을 받았다.
병실에서 주고받았던 논술 문제가 그대로 출제됐다.
뿐만 아니라 장태산은 독학으로 공부해 사법시험 2차까지 패스했다.
운동 신경도 뛰어나 동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군대도 면제였다.
계획적으로 인생을 설계하고 그대로 실천하고 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학교에서 다른 누구보다 장태산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이예린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린 장태산.
말도 안 되는 폭탄 같은 질문을 던져놓고 여전히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결단이 필요했다.
장태산 말대로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아빠에게 그럴 일이 발생할 리가 없었다.
누구보다 청렴하고 맑은 심성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법과 양심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그래야지.”
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었다.
점점 사법시험 합격생 숫자가 줄어들었다.
로스쿨에 입학한 학생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야 했다.
한국대 법학과 졸업생으로 합격해야 선배들에게 관심을 받을 것이다.
앞서 사회에 뛰어든 선배들에게 있어 로스쿨 학생들은 서자들이나 다름없었다.
“믿어도 됩니까?”
“맹세할게.”
“그럼 하늘에 대고 맹세하십시오.”
“???”
“이예린은 장태산의 도움을 받아 사시에 합격하면…… 반드시 그의 계파가 되어 활동할 것을 모든 신들의 이름 앞에 맹세합니다!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삼대가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
장태산은 만화나 소설 속에서 나오는 웃기지도 않는 맹세 문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읊어댔다.
그러나 듣는 순간 심장이 벌렁거리고 몸이 벌벌 떨렸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정말 삼대가 천벌을 받을 것만 같았다.
“싫어요?”
“아, 아니 진짜 그렇게만 말하면 돼?”
“네~.”
‘그래. 태산이가 나쁜 짓 할 남자도 아니고.’
그녀가 봐왔던 장태산은 누구보다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크게 사고를 쳐 버리는 장태산.
그의 계파가 되어도 크게 나쁠 것 같지 않았다.
인연은 인연을 부르는 법.
이예린은 아직 장태산과 다른 모습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다.
“나…… 이예린은 장태산의 도움으로 사시에 합격하면 반드시 그의 계파가 되어 활동할 것을 모든 신들의 이름 앞에 맹세합니다!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삼대가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기어코 이예린은 맹세했다.
쿠궁! 쿵! 쿵쿵!
그때 갑자기 머리 위 하늘에서 느닷없이 천둥소리가 들렸다.
‘뭐야!’
잘못 들었는지 몰라도 이예린은 순간 식겁했다.
마치 이 맹세가 장난이 아니라는 하늘의 뜻처럼 받아들여졌다.
“배신하지 마십시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 절 배신하면 그 자리에서 벼락 맞습니다.”
여전히 웃는 얼굴을 하고 협박을 하는 장태산.
“배신은 한 번으로 족해. 다시는…… 너 배신 안 해.”
이예린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일단 믿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배신해야 할 것 같으면 직접 말해 주십시오.”
“피이~. 그럼 그게 어떻게 배신이야. 자백이지.”
“곧 연락하겠습니다.”
“태산아…… 그런데 정말 합격 가능한 거야?”
“선배 그거 모르죠.”
“뭐?”
“전 미래를 보는 신기가 있어요~.”
“!!!”
***
“죽이라고…… 그를?”
본국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암살 수업을 받았지만 이런 암호 지령은 처음 받아봤다.
혼란스러웠다.
감시자가 아닌 킬러로 선택됐다.
그와 가깝게 지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가 뽑혔다.
“하아.”
짧은 한숨이 그녀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를 만난 이후 행복했던 순간순간들의 장면이 떠올랐다.
같이 한국 서민 음식을 맛보고 소주를 마셨다.
그로 인해 추억이 몇 개 더 생겼다.
정말 자신이 진짜 교환학생이 된 것처럼 학교생활을 즐겼다.
주변에 좋은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양국 관계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해주었다.
전생에 한국 사람이라도 되는 양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렸다.
그런데…… 때마침 지령이 내려왔다.
그를 암살하고 고국으로 귀환하라는 통보였다.
“하아아아…….”
한숨이 깊어졌다.
딸깍.
엔터를 치자 암호메일이 삭제됐다.
이제 남은 건 지령을 실행하는 일뿐.
기숙사 창밖 너머로 하나둘 가로등이 무심하게 켜지고 있었다.
***
“황 이사. 준비 잘 되고 있지?”
“넵! 회장님!”
황동석은 느끼하게 묻는 구광필의 독기 어린 시선에 대차게 답했다.
요즘 들어 구광필이 좀 변했다.
예전 서울을 정리할 때 보였던 예민하고 날선 모습이다.
목표를 정하고 노릴 때 보이는 구광필의 특유한 기운.
짧게 자른 하얀 머리칼이 독사 비늘처럼 날카롭게 반짝였다.
한 번 물면 반드시 숨통이 끊어져야 직성이 풀렸다.
황동석은 바짝 긴장했다.
저 독니에 자신이 물릴 수도 있었다.
“시원하게 처리해봐. 너한테 20장 주마.”
‘20장?’
용돈 액수가 커졌다.
자신에게 이 정도 줄 정도면 최소 100장은 받았을 것이다.
“적어?”
“충분합니다!”
“잘해야 한다. 그 새끼…… 물건인갑다. 겁도 없이 한동철이 보낼 때 알아봤지만…… 살만큼 산 늙은 친구들이 벌벌 떨 정도라니……. 흐흐흐.”
구광필이 음흉하게 웃음을 흘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수한 목숨들을 헤쳐온 자의 살인미소였다.
“철수 보내주마.”
“네? 처, 철수요!”
구광필이 철수를 보내준다는 말에 황동석은 화들짝 놀랐다.
조직에서도 상부층이나 아는 이름이 철수였다.
그는 오로지 구광필을 위해만 움직였다.
손속이 얼마나 잔혹한지 내로라하는 조폭들도 뒷걸음질을 쳤다.
격투 중에 이로 상대방 목젖을 뜯어낼 만큼 야생동물 같은 잔혹성을 보였다.
손에 칼을 쥐어주면 순식간에 인간 백정으로 돌변했다.
가죽과 뼈와 살점을 분리하는 방법이 마치 전문 발골인처럼 예술이었다.
그러나 결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구광필의 명을 기다리며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 지냈다.
그의 정체를 소문으로만 들은 자들 사이에서 전직 남파 간첩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왜? 싫어?”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철수가 합류하면 일하기는 더 편해졌다.
조폭 수십 명을 우르르 대동하는 것보다 확실했다.
“그놈은 어떻게 처리할 거야?”
“미끼를 사용할 겁니다.”
“미끼? 크크크크. 그래 순진하고 어리석은 놈들에게는 그 방법이 최고지.”
과거 자신도 이용했던 방법이라 구광필은 이를 드러내놓고 웃었다.
“미끼는 싱싱해야 한다.”
“놈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최측근입니다.”
“그래 최측근 좋다! 어감부터 다르잖아~. 크크크. 황 이사 이제 독립해도 되겠다야~.”
“회장님 곁에서 몸이 가루가 되도록 충성하겠습니다!”
“그런 소리 말아라. 때가 되면 다 독립해야 영역도 확장하고 기세도 크는 법이다. 물론 집 나가도 고향을 향해 오줌 싸는 개새끼가 되면 안 된다~.”
“전 그런 놈 아닙니다.”
“믿어. 믿으니까 얘기해 주는 거야~.”
얘기가 아니라 협박이다.
“전 죽어서도 강남하나회 구광필 회장님의 부하일 뿐입니다.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황동석은 먼저 이 조직을 나가는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조직을 떠난 자들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를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구광필은 의외로 잔혹한 인물치고 상황에 따라 통 크게 움직였다.
그런 이유로 아직까지 잡음 없이 조직을 굴릴 수 있었다.
주먹 쓰는 조폭도 요즘은 돈이 흘러가는 곳에 목숨을 거는 세상이었다.
“나…… 서련이 빨리 보고 싶다.”
“……놈만 처리하고 바로 진상하겠습니다.”
“기다리다 사리 나오기 전에 끝내라~. 내 친구들이 다들 화병으로 병원에 눕게 생겼다. 크크크크.”
“넵!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인자 황동석의 고개가 90도로 꺾였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조폭계를 통틀어 유일무이 1인자로 군림하고 있는 구광필.
오직 그의 앞에서는 충성만이 살 길이었다.
***
[오늘 오바마케어라 불리는 미국 건강보험 개혁 법안이 연방 하원에서 가결 통과되었습니다. 이번 개혁 법안은 전국민 의료보험 의무가입을 꿈꾸는 현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공약으로써…….]CNN에서 속보 뉴스가 떴다.
저소득층을 비롯해 상당수 의료보험을 못 받거나 질병으로 파산하는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법안이 이제야 완성됐다.
그간 미국은 의료보험을 공적영역이 아닌 사적영역에서 처리했다.
기업 이윤과 맞바꿔버린 미국식 시장경제의 어두운 단면이었다.
의사협회나 보험협회를 비롯해 사회 기득권층의 반발을 불러오는 불씨가 됐다.
법안이 통과되고도 미국은 몇 년 뒤에나 해당 개혁안을 시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물러난 뒤 얼마 되지 않아 트럼프와 여러 주정부에 의해 반격을 맞았다.
잘 사는 자의 재산은 차별 없이 보장받아야 한다는 미국 화이트 중산층들의 반말이었다.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공존의 예의를 모르는 자들의 오만함이 불러온 결과였다.
사각지대에 놓인 자들이 자신들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부유층이 소유한 부가 영원할 거라는 그들의 착각이 불러온 행동들이었다.
그런 이기심이 모여 수많은 이들을 질병 난민으로 만들었다.
철저한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였다.
그 점에서 한국식 의료보험 운영 방식은 천국과 같았다.
점점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의료보험조차 없었다면 수많은 이들이 질병을 얻는 동시에 파산하거나 길바닥에서 생을 마감하게 됐을 것이다.
“세상은 오늘도 평화롭군.”
금융위기로 치솟았던 신흥국들의 환율들이 점점 안정화 되어갔다.
환율 그래프로 보이는 세상은 평화를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안정화라지만 급격한 환율 폭풍 뒤였기에 과거보다는 곡선이 가팔랐다.
돈을 벌기에는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한 번에 확 벌어들이는 수준은 아니지만 어둠 속에서 작업하기가 좋았다.
“유럽만 박 터지겠어…….”
환율은 움직이는 생명체였다.
다른 곳은 안정되어 가지만 누적된 폭발력은 유럽을 강타한다.
놀고 있을 수 없었다.
어차피 내가 푼 자금 좀 거둬들인다고 그들이 망할 리는 없었다.
“환율 폭락, 그리고 다시 폭등~ 폭락~ 몇 년간은 여기서만 놀아도 되겠군~.”
남의 나라 불행이 나의 당연한 행복이 될 수는 없지만 지금은 축복의 순간인 건 맞았다
경쟁력이 뛰어난 독일과 프랑스 같은 나라와 게으른 주변 국가가 같은 통화를 사용하고 경쟁하다 보니 당연히 재정적자가 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환율과 국가개입 등의 방법으로 조절할 수 있었지만 통합된 유럽은 조절이 불가능했다.
타다닥 타다다다닥.
프로그램을 동원해 해외 계좌를 열어 투입 자금을 늘렸다.
수치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프로그램 됐다.
선물과 옵션뿐만 아니라 여러 변동 환율시장에 뛰어들었다.
하루에도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굴렸다.
돈이 스스로 살아서 운용되며 수익을 자동 창출했다.
“해외 은행을 구입한 것도 잘한 일이야.”
조세피난처 은행을 몇 개 구입해 놓은 게 도움이 됐다.
자금만 충분하다면 계획한 수많은 것들은 일도 아니었다.
돌리고 돌려 자본을 세탁하고 정리하기에 최적이었다.
소유자로서 특별한 계좌와 전산처리에 관한 특혜를 받았다.
자금이 한차례 흘러간 자리는 흔적을 지웠다.
로스차일드에게 눈총받지 않을 정도만 자본을 축적해 갔다.
원하는 만큼 쌓으려면 아직도 어림없었다.
로버트 라이언에게 묶여버린 자금은 손댈 생각이 없었다.
노출된 자금은 더 이상 비자금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자본가와 그들의 세상을 협박하는 용도로는 최고였다.
“그럼 오늘도 즐겁게 퇴근을…….”
– 어둠의 죽음이 당신을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 가까운 인연에게 위기가 전염되었습니다.
“!!!”
# 474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