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8
47장. 곰 사냥 준비!
“대표님! 여기 뇌물을 바치옵니다! 부디 연약하고 아리따운 소녀를 영원토록 짜르지 마시옵소서~.”
“아리따운 소녀? 여기에 그런 소녀가 어디 있습니까? 혹시 유령이 보여요?”
“대표님!!!”
설날 휴식이 끝났다.
이번 설 명절은 역대급이었다.
아버지의 호통과 회유에 작은 아버지들과 고모들 모두 넘어갔다.
그날 저녁 나와 채무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냥 빌려주면 형제간에도 돈 문제로 탈이 난다.
치킨집 매입 자금을 빌려주는 대신 채권을 대신해 어머니 이름으로 담보 가등기를 잡기로 약속이 됐다.
작은 고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에 담보 가등기를 걸었다.
돈이 필요한 작은 아버지들 모두 각서뿐만 아니라 채무 공증까지 마쳤다.
완벽하게 법적으로 마무리 됐다.
다 해봐야 7억도 안 됐다.
어머니 계좌 하루 수익에 한참 못 미쳤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나와 상담이(?) 끝나자 모두 부리나케 서울로 돌아갔다.
시댁에 가야 하는 막내 고모만 빼고 작은집 식구들 모두 내려왔다.
그리고 모두 부모님을 깍듯하게 대했다.
나이 어린 사촌들도 어찌나 예의바른지 내가 알던 사촌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설 명절에도 아버지는 제대로 위엄을 보였다.
장손으로서 제수씨들에게 100만원씩 격려금을 하사했다.
사촌들에게는 나이에 따라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까지 세뱃돈이 뿌려졌다.
집안의 기강이 제대로 섰다.
돈의 힘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작은 어머니들이 엄마의 지시에 군인들처럼 움직였다.
어찌나 호호거리며 알랑방구를 뀌던지…….
그 여파는 나에게도 왔다.
난생 처음 쌍둥이들과 난 작은 아버지들에게 돌아가면서 세뱃돈을 받았다.
사촌들이 나를 장손 형님이나 오빠라 부르며 깍듯하게 모셨다.
귀여운 녀석들에게 10만원씩 용돈을 쐈다.
내 차를 보고 녀석들 눈이 돌아갔다.
한 번만 태워달라고 다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내 주가는 하늘을 찔렀다.
비록 돈으로 맺어진 설 명절이었지만 아주 화목했다.
음식은 부족함이 없이 넘쳤고, 저녁에는 음주와 고스톱 판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강조하던 뼈대 있는 가문 종손 집안 풍경은 아니지만 웃음이 넘쳤다.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살아생전 자식들끼리 싸우지 않기를 염원했던 우리 할매.
돈으로나마 근심 걱정을 덜어드렸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분이 나를 아주 깍듯하게 모셨다.
“유 팀장님, 이게 뭡니까?”
“그게……, 이번에 엄마하고 호주 여행 갔는데……, 현지인들이 이게 아주 좋다고 하더라고요. 대표님 밤을 날마다 새시잖아요. 그러니까…….”
“뭐가요? 캥거루 에센스라……, 이거 먹으면 막 도로 위를 캥거루처럼 뛰어 다니나요?”
“모, 몰라요! 비싼 거니까! 그냥 하루에 한 알씩 꼬박꼬박 드세요! 그거 남자들에게 아주 효과가 만점이래요!”
내 물음에 유세라 팀장은 얼굴을 홍시처럼 붉히며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여행 뒤에 찾아온 건강한 에너지가 그녀에게서 풍겼다.
“풋!”
그녀가 나가자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딱 봐도 내가 아니라 노바 형에게 필요한 약품이다.
아직 나에게는 필요 없는 정력제.
호주에 갔다가 순진한 모녀가 가이드에게 지갑을 탈탈 털린 것 같다.
“서울 생활도 당분간 바이 바이네~.”
고등학생으로 살기 참 힘들다.
운전면허를 따고 자동차를 얻어 족쇄 1차 개방이 풀렸지만, 양에 차지 않았다.
당장 며칠 후면 3학년 개학이다.
학교 수업에 충실해야 했다.
엄청난 돈을 쓸어 담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적자에게 간판만큼 중요한 게 없다.
더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학벌은 필수다.
“유 팀장 누나에게 뭐라고 하지? 하하하. 나 고삐리인 걸 알면……, 퇴사하려나?”
노바 형의 스킬 습득 후에 난 여자 눈빛을 더 깊게 읽을 수 있게 됐다.
유 팀장 누나는 나에게 호감을 강하게 표했다.
내 나이가 어리다는 걸 알기에 참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고삐리라면 또 달랐다.
2007년도에는 아직 여자 연상을 2020년처럼 대수롭게 보던 세상이 아니다.
“점점……,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는 구나…….”
2007년과 2008년, 2009년은 조용했던 세상을 거대한 태풍이 뒤집어 놓았다.
절대 강자라 생각했던 미국 금융시장이 개박살이 난다.
미국 연방준비은행 FRB가 양적완하라는 이름으로 미친 듯 프린터 달러를 찍어내지 않았다면 세상은 대공황에 직면했을 뻔했다.
오직 미국만이 가능했던 무식한 돈질의 끝판왕.
나도 그 돈질의 콩고물을 제대로 받아먹어야 한다.
이때가 기회다.
격변은 또 다른 영웅을 탄생시키는 법이다.
며칠 동안 계획을 세웠다.
머리에 저장된 각국의 주가지수, 각종 선물, 국제금리, 환율 차트로 큰 그림을 그렸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밑그림이다.
체계적으로 투자 방법을 수립했다.
국내외 자금에 대해 면밀한 투자 계획을 완성했다.
당분간 부동산이나 무너져가는 기업 따위를 인수할 생각은 없다.
부동산은 움직이지 않는 자산이다.
흔적이 많이 남는다.
나를 노리는 적의 타깃이 될 수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소유는 없었다.
다만 어둠 속에서 그들을 지배할 뿐이다.
먹지도 못하는 성을 소유한 영주가 아니라 누구라도 경외하는 9서클 용병 마법사가 내 꿈이었다.
세상을 지배하는 건 오직 돈!
금융이다.
거대한 흑자 기업도 한 달만 돈이 꼬이면 도산하는 법이다.
그 시대가 가까웠다.
IMF 만큼은 아니어도 휘청거릴 국가가 많았다.
통 작게 국내에서 지지고 볶지 않을 것이다.
풍부한 자금을 소유한 자만이 영광을 누릴 것이다.
그리고 난……, 보이지 않는 돈의 주인이 될 것이다!
***
“도대체 대표님 정체가 뭐야? 법인 카드로……, 무슨 피자와 간식을 이렇게 사 드신 거야? 피자가 주식도 아니고…….”
LOR 투자법인의 유일한 직원인 유세라는 법인 카드 명세표를 작성하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3월이 되자 대표님은 장기 지방 출장을 갔다.
워낙 일이 밀려 주말에만 가끔 방문한다는 연락만 받았다.
워낙 하는 일이 종잡을 수 없어 그러려니 했다.
대표가 없어도 회사는 잘 굴러갔다.
가끔 증권회사와 은행 담당자들이 찾아오거나 연락하는 게 다였다.
유세라는 천국 같은 꿀 직장 생활을 즐겼다.
칼 출근 칼 퇴근은 언제나 보장됐다.
유세라는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이 정체 모를 회사가 죽을 때까지 유일한 직장이라 생각해 회사는 빠지지 않았다.
그런 회사 중요 업무 중 하나가 법인 카드 사용내역 정리였다.
카드 내역을 출력해 회계사무소에 매달 전달했다.
그런데 카드 내역이 수상했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대표님이 사용한 카드 내역이…….
“피자 가게 15회, 치킨집 11회, 분식집 20회……, 피씨방 월정액 결제가 10건? 뭐지? 새로운 사업 구상인가? 피자나 치킨, 분식, 피씨방 체인점을 준비하시는 건가? 영업 노하우를 습득하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다니시는 거겠지?”
한 번 갈 때마다 수십만 원씩 피자와 치킨 비용이 나갔다.
어지간한 대기업 과장 월급 정도가 먹는 비용으로 계산됐다.
“혼자 간 건 아닌데……, 여자친구랑? 아니야 그러기에는 양이 많아. 이 정도 양이라면 돼지 위장을 소유한 고삐리들이나 가능한데……. 혹시 우리 대표님……, 동생들에게 카드 줬나? 그것도 아니면 지방 체대생인 거야? ……, 나에게 감추지 않아도 되는데. 학벌이 뭐가 부끄럽다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유세라는 대표의 정체를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다.
감사로 임명된 조윤태 변호사에게 물으면 웃기만 했다.
유세라는 풀리지 않는 답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회사 일에 정성을 다해 몰입했다.
이번 달에는 얼굴도 못 본 대표님.
부디 여자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
“질리는 새끼들……, 스트레스를 피자로 풀다니……. 이제 피자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네.”
책상에 앉았다.
모니터 다섯 대가 동시에 책상 위에서 나를 바라봤다.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고 지난 한 달을 생각했다.
남고의 개학날은 항상 그렇듯 반가운 욕설로 시작됐다.
학년이 바뀌고 교실과 반이 달라졌지만 인간은 변하지 않았다.
돼지들을 부양하던 지난 3월이다.
더 성숙해진 수컷들의 향기가 교실에 가득했다.
방학 동안 호텔 스위트룸에서 지냈던 나에게는 더 고역이었다.
빨리 이 저주가 끝나기를 기도했다.
방학이 끝나자마자 친구 녀석들은 나에게 온갖 협박, 애교, 화끈한 USB 뇌물(?), 저질 우정을 내세워 간식을 탐했다.
고3이 되자 다들 스트레스가 많았다.
먹는 걸로 풀었다.
학교 급식이 정상화 됐지만 슈퍼 돼지들의 위장 탐식은 끝이 없었다.
우리 집이 부자가 됐다고 소문이 쫙 돌았다.
어머니가 벤츠를 몰고 학교에 왔었다.
대학 진로 상담을 받기 위한 방문이었다.
내가 선물한 명품 가방에 점잖은 롱스커트 정장을 입고 방문한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빛났다.
강남 상류층 마나님의 행차 같았다.
애들이 돌머리가 아닌 이상 바로 집안 사정에 대해 알아챌 만했다.
아직 내가 구름전투사의 작가라는 걸 몰랐다.
그저 아버지가 주식으로 벼락부자가 됐다고만 말했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만 꼬로록 소리 나는 배를 붙잡고 내 앞에서 3일 굶은 돼지 표정을 짓는 친구들이 더 많아졌다.
녀석들의 순수한 연기를 인정해줬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를 녀석들이다.
보증을 서달라는 것도 아니다.
매일 학교가 파하면 피자와 치킨, 분식집을 코스처럼 돌았다.
순례자도 아니고 녀석들은 골고루 피자와 치킨, 분식의 은혜와 감동을 맛봤다.
내 주머니 걱정하는 놈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들이 처먹는 간식 값이 500만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몰라서 말이다.
“드디어 오늘 밤…….”
다시 화면을 봤다.
미국 시장이 개장하는 4월 3일 아침.
한국 시간으로 10시 30분.
미국 서머타임으로 개장 시간이 한 시간 빨라졌다.
카운트다운 5분 전.
오랜만에 제대로 긴장이 됐다.
오늘을 위해 그동안 실탄을 가득 충전했다.
오일 선물은 급등락 장이 없었다.
소소하게 며칠에 2, 3프로씩 등락을 거듭했다.
담보금 비중을 줄이고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누적 수익이 상당했다.
현재 곳곳 통장에 쌓여 있는 자금이 10억 달러에 달했다.
한화로 1조.
오늘 이 자금이 한 방에 뻥튀기가 될 예정이다.
“오늘이 내 옵션 데뷔일이다.”
그동안 선물로 자금을 축적하면서도 옵션에는 손대지 않았다.
선물보다 레버리지가 엄청났다.
나도 몸을 사렸다.
급락장에서 콜을 매도하면 매도자의 의무에 걸리는 순간 한 방에 아웃이다.
하지만 급락장에서 콜 옵션을 매도하고 풋 옵션을 매수하면……, 초초 대박이었다.
“심장 떨리네~.”
시원한 캔 커피를 마셨다.
오늘 전 화력이 집중됐다.
사냥꾼이 덩치 큰 곰을 상대하듯 곳곳에 그물을 깔고 함정을 팠다.
일주일 전부터 공매도로 미국 2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회사인 뉴센추리 파이낸셜 주식을 건드렸다.
동시에 일주일 전부터 뉴센추리뿐만 아니라 동종 업계 주식 몇 개의 개별 콜 옵션을 매도하고 풋 옵션을 매수했다.
급락을 노린 한 방.
옵션 계약은 보통 당일 결산하는 게 트레이더들의 특징이었다.
선물과 달리 장기 투자로 날을 넘기는 걸 꺼렸다.
2001년 9.11 테러 같은 불가항력의 사건에서 깡통 된 트레이더들이 많았다.
그러나 난 도박을 사랑했다.
남아 있는 자금을 모두 털어 개인 주식 선물거래에서 숏 포지션을 취했다.
적의 숨통을 노렸다.
어차피 오늘을 기점으로 이달 안에 숨통이 끊어지는 600억 달러짜리 대형 곰이다.
그 곰의 가장 맛있는 살점은 내 차지였다.
“10, 9, 8, 7, 6, 5, 4, 3, 2……, 1!”
미국 주식 시장이 열렸다.
그리고…….
“예스! 예스! 예에에에에스스스스스!”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며칠 전부터 시장의 조짐이 이상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
개장과 함께 파란꼬리를 남기며 급격하게 추락했다.
한국과 달리 낙폭 제한이 없는 미국 주식.
뉴센추리 파이낸셜뿐만 아니라 동종업계의 노바스타 파이낸셜, 프레몬트 제너럴 등이 모두 고공에서 추락했다.
실로 엄청난 하락폭.
순식간에 수십 프로씩 주식이 떨어졌다.
타닥 타다다다닥.
주식이 떨어지자 선물 시장도 동시 하락했다.
옵션 시장도 난리가 났다.
상승을 예약했던 콜 매수자들과 풋 매도자들의 비명이 그래프에서 들렸다.
그와 반대로 콜 매도자들과 풋 매수자들의 웃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착각이 일었다.
선물도 마찬가지였다.
주식을 들고 있을 투자자들의 망연자실한 모습도 보이는 듯했다.
드디어 쓰러진 미국 대형 흑곰.
난 빠르고 신속하게…….
곰의 쓸개부터 내 주머니에 쓸어 담았다.
# 48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