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7
46장. 아버지를 당할 수가 없었다.
“태, 태산아!”
엄마가 제일 먼저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얼굴이 상기된 표정이 단단히 뿔이 나셨다.
착하고 여린 엄마다.
지금껏 참고 참았던 분노가 많았다.
“엄마. 무슨 일 있으세요? 전 안 부쳐요? 어~ 오랜만에 작은 아버지들과 막내 고모도 오셨네.”
뻔뻔하게 나갔다.
나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렸다.
“다들 잘 지내셨습니까. 얼굴 잊어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어깨도 쫙 폈다.
과거 기억하고 있는 명절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매번 저들이 와서 부렸던 행패가 끔찍했다.
안방을 자기네 방처럼 사용했다.
내 방도 물론 빼앗겼다.
궁색한 내 물건들은 사촌들 손에 박살이 나거나 사라졌다.
누구 하나 미안하다거나 이해를 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는 참았다.
난 이 집안의 장손이다.
장손이라고 나를 끔찍이 사랑해 주었던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당장 소리쳐 쫒아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던 할머니 새끼들이라 참았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형제도 인륜의 도를 넘으면 안 보는 세상이다.
누가 봐도 너무했던 아버지의 형제들.
“뭐야! 왔으면 정중하게 큰절해야지! 말투가 그게 뭐야! 어른들이 우습게 보이냐!”
“큰오빠, 태산이 쟤 도대체 왜 저렇게 건방져요? 달랑 고개 한 번 숙이면 그게 인사예요?”
개인 사업하는 첫째 작은 아버지 장대철이 준엄하게 꾸짖었다.
막내 고모가 종달새처럼 짹짹 짖었다.
아버지 형제들인데 얼굴들이 고약스럽게 변했다.
‘첫째 고모만 빼고 다 모였네.’
자존심 강한 첫째 고모는 그나마 인간 축에 들었다.
시댁에 가지 않고 이곳에 찾아온 막내 고모는 욕심이 턱에 덕지덕지 붙었다.
덩치가 큰 둘째 작은 아버지는 인상을 썼다.
서울시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셋째 작은 아버지는 나를 째려보기까지 했다.
하아~ 이 양반들 봐라.
“에이, 다들 왜 그러세요. 부모님 제삿날에도 오지 않던 분들이 예의를 그렇게 따져요? 그건 상도덕이 아니죠~.”
뼈 있는 팩트 일침을 날렸다.
묵묵히 아버지는 눈을 감고 계셨다.
이 자리에서 가장 괴로운 분이다.
집안의 장자라는 위치가 그런 거다.
가장 큰 어른으로서 감정보다 이성적 체면을 차려야 하는 위치였다.
“뭐, 뭐야!”
“이 자식이!”
“어머머. 저 싸가지 없는 말투는 누구한테 배운 거야? 올케한테 배운 거예요?”
모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날 노려봤다.
“엄마, 쌍둥이들은?”
“친구들 만난다고 나갔다.”
다행이다.
어린 쌍둥이들에게 어른들 못난 꼴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도 어차피 이 집안의 장손이다.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너 지금 어른 말 무시하는 거야!”
삐쩍 마른 셋째 작은 아버지가 자리를 박찼다.
“어른요? 우리 집에 아버지 말고 어른이 있어요?”
한 바탕 확 휘저어야 할 집안이다.
돈을 떠나서 가족이라면 이러면 안 된다.
큰형인 아버지를 깍듯이 모셨어야 했다.
아픈 할아버지를 대신해 직장 생활로 돈 벌어 동생들 밥 벌어먹게 뒷바라지하신 분이다.
“너 이 새끼가!!!”
휘이익!
손이 날아왔다.
이거……, 집안 막장극 또 시작이네.
턱!
나보다 키가 훨씬 작은 막내 작은 아버지에게 맞을 내가 아니다.
한국대 논술문제에서 나왔던 가치의 문제.
내가 맞아서 집안 꼴이 잘 돌아간다면 맞아 줄 의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 집은 한바탕 뒤집어 재정비가 필요한 정화작업이 필요했다.
“너, 너 지금 감히 어른 손을 잡아!”
“다 큰 조카 뺨을 때리는 어른이 어른이에요? 저 집에서 한 번도 맞은 적 없이 곱게 컸어요~ 그런데 지금껏 용돈 한 번 준 적 없던 분이 어른이라고 날 때려요? 이거 맞으면 바로 폭력 신고 들어가요~ 제 변호사님이 고위 검찰 출신인 거는 모르죠?”
“…….”
폭력 신고라는 말에 다들 안색이 핼쑥하게 변했다.
내가 컸다는 걸 이제야 인식한 것 같다.
“태산아, 그만해라.”
“네, 아버지.”
이런 날은 아빠라고 부르면 안 됐다.
장자인 아버지의 권위를 높여드려야 했다.
“형! 저 자식 저렇게 막 키워도 됩니까!”
“오빠!!! 집안 꼴이 이게 뭐예요! 큰 올케는 뭐 하셨어요? 저 망나니 같은 자식을 어떻게 키우신 거예요!”
“그만들 해라.”
아버지가 1차 경고를 날렸다.
“뭘 그만둬요!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은 따끔하게 교육을 시켜야죠!”
“맞아요! 감히 작은 아버지께 대들다니!”
“말세다 말세…….”
아직 정신들 못 차렸다.
자신들이 본 모습을 마주하지 못하고 남만 탓하는 전형적인 인성 고질병이다.
가만히 그들을 봤다.
“그만 하라고!!!”
그때 버럭 터지는 아버지의 호통.
오! 아버지 짱입니다!
처음으로 형제들 앞에서 고함을 치는 아버지 모습이 낯설었지만 멋졌다.
쩌렁쩌렁 집안이 다 들썩거렸다.
잠자던 호랑이의 포효.
“혀…… 형…….”
“형이 아니라 형님이라 불러라!”
“…….”
“오, 오빠 왜 그래요. 무섭게.”
“막내 내가 너를 잘못 키웠다. 늦둥이라고 부모님이 너를 어여삐 여겼기에 나도 따랐다. 하지만 네 행태를 보니 조상님과 김 서방 집안에 면목이 없다. 아무리 출가외인이라지만 너 하나 때문에 우리 장씨 집안 조상님들이 다 욕을 먹는 모습에 이 오라비 가슴이 무너지는 구나…….”
옳소!
우리 아버지 올해 이장으로 선출 되셨다더니 언변이 부쩍 느셨다.
아버지의 꾸중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의 이런 모습 처음이었다.
나도 막내 작은 아버지 팔목을 놓았다.
“태산이 너도 작은 아버지와 고모께 사과해라.”
“넵! 아버지!”
사과하는 거 일도 아니다.
사회 생활하다보면 이보다 더 개떡 같은 경우는 허다했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거 아니다.
다만 최후까지 인간으로서의 자존감만 잃지 않으면 됐다.
“작은 아버지들과 막내 고모께 이 장씨 집안 장손이 불손한 언어와 행동에 대해 깊이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사과 인사를 올렸다.
장씨 집안 장손을 강조했다.
누가 뭐라 해도 난 종손이었다.
방계의 곁까지 뿌리가 아닌 장손은 집안의 중심이었다.
내 말의 무게감이 달랐다.
“큼…….”
“헛…….”
작은 아버지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장손의 사과를 안 받는 순간 어찌 될 거라는 걸 모를 분들이 아니다.
나와 척이 지는 순간 집안과의 인연은 끝난다.
아무리 가족과 친척이 해체되어 가는 세상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집안 문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쉬운 건 내가 아니다.
“뭣들 하느냐. 아랫사람이 사과를 하면 넉넉한 어른의 자세를 보여야지!”
세상에 어른이 되었어도 교육을 받지 못한 어른이 많다.
우리 집안도 그랬다.
병치레가 많았던 할아버지와 착하기만 했던 할머니가 자식들을 망쳤다.
돈이 없어 기가 죽었던 시골 청년 아버지가 이제 허리를 폈다.
집안의 장자가 호통을 쳤다.
“미, 미안하다. 태산아. 작은 아버지들이 못난 모습 보였다.”
“태산아, 고모도 미안해.”
“아닙니다. 조카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아버지의 위엄에 모두들 기가 죽었다.
집이 변했다.
그것만으로도 작은 아버지와 고모가 눈치를 챘어야 했다.
집의 변화는 그 집 문화의 변화를 의미한다.
예전 버릇대로 부모님을 무시하고 떠들다가 호되게 당했다.
아버지가 앉아 있는 보료가 그걸 의미했다.
어머니 솜씨로 격이 달라진 집안의 살림살이를 봤다면 입을 조심스럽게 놀리는 게 맞았다.
“모두 앉아라.”
“네……, 형님.”
아버지 앞에 그 휘하 형제들이 앉았다.
나는 그 뒤에 무릎 꿇었다.
“지금껏 내 부덕의 소치로 너희들의 안하무인 행동을 막지 않았다. 장남으로서 집안을 일으켜 세우지 못한 죄로 동생들의 무지를 깨우쳐 주지 못했다. 명절에 감히 종갓집에 빈손으로 찾아오는 너희들을 가르치지 못한 죄로 난 조상님께 면목이 없다.”
우렁우렁 아버지 목소리가 울렸다.
모두들 숨을 죽였다.
잠자던 호랑이가 깨어났으니 늑대와 여우들은 몸을 사리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아버지의 선포.
“…….”
모두들 입을 다물고 경청했다.
“첫째, 명절날과 부모님의 합동 기일에는 반드시 참석할 것! 그것도 제수씨들과 조카들을 대동하지 않을 시에는 집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가 내린 첫 번째 강령이 파격적이었다.
사실 작은 어머니와 사촌들 얼굴은 잊어버릴 정도다.
“둘째, 집안 어른으로서 체통을 지키기 못할 시에는 회초리를 칠 것이다!”
오오! 아버지 이것도 파격적입니다!
“셋째, 큰형수는 장씨 집안의 기둥이다. 만약 제수씨들이나 너희들이 무례를 범하면……, 다시는 우리 집에 발을 들여놓지 못할 것이다! 알겠느냐!”
아버지도 쌓인 게 많으셨다.
별것도 없으면서 어머니를 무시하던 작은 어머니들에 대한 경고였다.
“너희들이 비록 나와 한 집에서 자랐지만, 이 집안은 엄연히 장씨 집안 장손 가족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예가 없이 함부로 오고 가면 아니 될 것이다! 집안의 장손인 태산이가 다 컸다. 모범을 보이지 않는 어른은……, 집안에서 내칠 것이다.”
아버지 표정이 준엄했다.
누구 하나 반기를 들지 못했다.
“내 말을 모두 이해했느냐?”
“네……, 형님.”
“소희는 왜 대답이 없느냐!”
“아, 알겠습니다. 오라버니.”
큰형이라는 자리가 저런 위치다.
나이가 먹어도 눈빛과 말로 다 커서 일가를 이룬 동생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물론 그 권위는…….
“대철이와 소희는 돈이 필요하더냐?”
“네? 네! 형님. 이번에 동네에서 잘 나가는 치킨집이 싸게 나왔습니다. 인수할 자금을 조금 보태주시면……, 이 동생 열심히 살겠습니다!”
“오라버니! 아파트 잔금만 도와주세요. 꼭 제때 이자 쳐서 갚아드릴게요.”
“형님……, 저도 개인택시를 바꿔야 하는데……,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대상이는 뭘 원하느냐?”
“큰형님, 전…….”
형제들이 아쉬운 소리를 뱉었다.
찾아온 목적이 다 있다.
탓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저분들의 완벽한 개과천선을 바라지 않았다.
“태산이와 상의해 보거라.”
“네? 태, 태산이하고요?”
“그게 무슨…….”
“무슨 뜻인지 모르겠느냐? 농사일로 내가 바빠 이 집안의 재정을 태산이에게 일임했다. 그러니 우리 집안의 장손과 상의하거라~.”
아! 아버지! 아버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찡긋 한쪽 눈을 감으시며 윙크를 보내는 귀여운 나의 아버지!
아들인 나를 등에 업고 혼자서 집안의 장자 노릇 제대로 즐기셨다.
그리고 나에게 모든 뒷수습을 떠넘겼다.
난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아버지에 비해 인생 짬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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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