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3
52장. 원숭이 두목
“주식의 신이……, 모든 거래를 종료했습니다.”
“……, 주식을 모두 팔았단 말이야? 모두???”
“네. 계좌에 잔고 1만 원만 남겨 놨습니다. 같이 연동되었던 다른 명의자 계좌 잔액도 이체 되었습니다.”
“아!”
카움증권의 팀장 전영국은 팀원 윤정혁의 보고에 머리를 움켜잡았다.
욱신욱신 두통이 밀려왔다.
주식의 신이 판을 정리했다면 이보다 큰일은 없다.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진 주식의 신.
그가 남긴 족적은 비공식적 전 세계 최고의 수익률이다.
최근에 마이너스 주식 수익률을 보이긴 했지만 그건 잠깐의 실수인 게 확실했다.
“어디로 간 거야? 그 자금이 그냥 사라지지 않았을 거 아냐! 흔적을 찾아봐!”
“아마도……, 외환선물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KR 선물 회사에 근무하는 친구가 어제 몇 천억의 개인 자금이 입금되었다고 점심시간에 전화가 왔습니다.”
“외환선물시장! 그 도박판에?”
“네. 그 정도 자금이라면 주식의 신이 확실할 겁니다.”
“LOR 투자 법인은?”
“조용합니다.”
“젠장……, 회사 때려치우고 주식의 신이 계시는 회사에 입사하고 싶네. 이번에는 도대체 얼마나 털 생각인 거야?”
나이를 떠나 주식의 신은 증권사 직원들에게는 무한 존경의 대상이다.
어지간해야 질투도 하겠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그는 주식의 신이다.
소망이 있다면 그저 경이로운 수익률이라도 보고 싶었다.
“LOR 투자 법인에서 직원을 뽑는다면 저도 가보고 싶습니다.”
“그래? 그렇지? 나만 그런 거 아니지?”
“물론입니다. 신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습니다.”
“직원 뽑는지 잘 알아봐. 유세라 팀장에게 시간 날 때마다 안부 인사드려라.”
“넵! 최선을 다해 접대하고 있습니다.”
“껄떡대지 마라. 딱 봐도 대표가 그냥 뽑은 거 같지 않더라.”
“네…….”
팀장의 뼈 있는 충고에 윤정혁은 힘없이 대답했다.
LOR 투자 법인의 유일한 직원인 유세라 팀장은 그곳을 방문한 모든 남자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윤정혁도 그 남자들 중에 선봉이다.
“에휴, 그나저나 주식의 신이 걱정이네. 외환시장은 주식과 또 다른 막장의 정수인데…….”
팀장 전영국은 주식의 신을 걱정했다.
그러나 그는 몰랐다.
주식의 신이라는 별명이 곧 환율의 신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
예전 군대 시절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려도 굴러간다는 말이 있다.
학교 시계도 마찬가지다.
어느덧 7월이 됐다.
학교생활은 조용하면서 치열하게 흘러갔다.
고3이 주는 무게감에 머리칼을 박박 깎은 녀석들 머리통이 교실 곳곳에서 빛났다.
하지만 그 시절이 주는 유쾌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서로 같은 공간에서 함께한 동지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친구들과는 여전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보냈다.
가끔 전교생에게 피자를 돌려 포인트를 따기도 했다.
어머니 명의로 학교의 전 교실에 냉온풍기를 달아주면서 또 포인트를 땄다.
학교에 익명으로 장학금을 기증해 역시 포인트를 벌었다.
인간은 몰라도 카르마 포인트는 정확히 계산이 됐다.
“캬아! 시원하다~. 태산아 어머니께 진짜 고맙다고 꼭 인사드려라.”
“나 너희 어머니 덕분에 수능 점수 10점은 더 오를 것 같다!”
“크크크. 친구가 부자가 되니까 별게 다 좋네.”
시원하게 에어컨이 가동되는 교실에서 친구들이 점심 후의 나른함을 즐겼다.
요즘 부쩍 나에게 퍼붓던 욕설이 줄어들었다.
나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식은 것 같다.
‘오늘 드디어……, 결산이다!’
3개월의 투자 기간이 끝났다.
엔화 대비 환율이 고평가된 캐나다 달러 FX 마진을 청산할 때가 왔다.
1차로 맛보게 될 캐나다 달러와 엔화 파트.
투입 액수가 큰 캐나다 달러 구입 미국 달러 매도 파트는 푹 담가놓은 상태다.
그놈은 11월에 상투를 제대로 찍을 것이다.
“태산이 저 자식 표정이 왜 저래? 밤에 혼자 좋은 거 본 거 아냐?”
“수상한데……, 태산이하고 그때 여신들과는 어떻게 됐어? 아직도 만나냐?”
“느낌이 안 좋아. 저 새끼 저럴 때마다 꼭 사건 터지던데…….”
청산 후에 맞이할 돈벼락을 생각하며 환상에 젖을 때 친구 녀석들이 날 괴롭혔다.
쌩까고 무시했다.
오늘 저녁 미국 시장이 오픈될 때까지 이 긴장감과 쾌감을 온전히 누리고 싶었다.
띠리리~ 띠리리리~♪.
그때 내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학교 교칙이 엄했지만, 전교 1등에게만 주어진 특혜다.
모르는 번호다.
‘해외?’
그것도 낯선 국제번호 앞자리가 찍혀 있다.
수화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니엘!!!”
통화가 연결되자 격하게 내 영어 이름을 부르는 한 여인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반가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클라라?”
홍콩의 그녀, 클라라였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가 단박에 떠올랐다.
“다니엘, 놀랐지? 지금 뭐 해?”
“점심 먹고 잠시 쉬고 있었어. 그런데 이 번호는 뭐야?”
“핸드폰이 비에 젖어서 지금 회사 전화로 하는 중이야. 레오 이사님이 안부 전하래.”
다른 투자와 달리 원금과 이자를 확실하게 챙긴 레오는 내가 고마울 것이다.
지금 홍콩상행 은행은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다.
그리고 곧 핵폭탄이 그 중앙에 떨어질 예정이다.
“저런, 어쩌다 젖었어?”
“다니엘 생각하며 길을 걷다가 빗물에 빠뜨렸어. 오늘 아침 홍콩에 비가 많이 왔어. 그래서 다니엘이 보고 싶었어. 문자를 막 보내려는데 발이 미끄러지며 핸드폰이 하수구에 빠져 버렸어.”
“다치지는 않았어? 괜찮아?”
“응~ 괜찮아. 다니엘이 걱정해 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
“다음에 만나면 클라라 닮은 섹시하면서 잘 빠진 핸드폰 하나 선물할까?”
“다니엘, 나 보고 싶구나?”
“그럼.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마음은 클라라 곁에 있지.”
“피이~ 그러면서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거야?”
“……, 이곳 일이 바빠서.”
학교 빠지면 학생부에 마이너스다.
마음은 굴뚝이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다.
“알았어. 나도 회사 일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 미국 모기지론에 투자했다가 지금 난리가 났어.”
“그래?”
클라라는 그 사이 나와 편하게 말을 놨다.
문자를 주고받고 간간이 전화를 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나이 차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HSBC 사건을 난 모른 척했다.
세상 이치는 공평했다.
누군가 털려야 내 주머니가 채워졌다.
“그래서 말인데 나 휴가를 빨리 갈 것 같아. 비서팀들은 당분간 할 일이 없대.”
“휴가?”
“다니엘이 초대했잖아. 나 다니엘 한국 고택에서 휴가 때 머물고 싶어. 괜찮겠지?”
“물론! 언제든 환영이야!”
말은 콜을 외쳤지만 순간 당황했다.
우리 부모님이 나에 대해서는 노터치지만 고삐리가 미모의 외국 여성과 휴가를 같이 보낸다는 걸 알면…….
부모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다.
“다니엘,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 당신을 만나는 그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클라라 목소리가 촉촉했다.
내 마음도 순간 전염됐다.
그녀가 많이 보고팠다.
“클라라. 오는 날짜와 시간 문자로 부탁해. 공항에 마중 나갈게.”
“정말?”
“그럼. 먼 곳에서 오는 친구에게 당연한 일이지.”
“다니엘. 당신은 정말……, 좋은 남자야.”
“클라라 당신도 그래.”
“그럼 문자할게.”
“응. 기다릴게.”
꿀이 뚝뚝 떨어지는 달달한 전화 통화가 끝났다.
클라라를 생각하자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녀는 여러모로 참 착하고(?) 좋은 여자다.
하지만 교실 분위기가 싸했다.
“…….”
왁자지껄 떠들던 교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노려봤다.
입을 떡하니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녀석도 있었다.
“자, 장태산……, 너 영어를 언제부터 그렇게 잘했어?”
“야! 너 금방 클라라라는 여자와 통화한 거 맞아?”
“와아! 장태산. 이 의리 없는 새끼야! 뭐? 당신이 오는 날을 기다리겠다고? 맞지? 그 문장 그거 맞지?”
“섹시! 으아아아! 섹시래!!!”
“공항에 마중 나가겠다고 나도 들었어!”
“당신도 그래? 뭐가 그래 새끼야! 우리 심장에 네가 오늘 불을 지르는구나!”
“타도하자! 장태산!!!”
“솔로천국! 커플지옥! 동지들이여! 모두 정의의 주먹을 들라! 오늘 우리는 고3 수험생임을 망각한 역적 장태산을 처단하기 위해 모였노라!”
“모두 공격!!!”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뭐야! 이 새끼들 진짜 눈이 돌아갔잖아!
클라라와 통화 좀 했다고 눈이 헤까닥 돌아간 친구 놈들이 나를 향해 돌진했다.
우르르르르르르르.
“멈춰! 멈추라고!”
“죽어! 죽어어어어어!”
퍽! 퍼버버버버벅!
사방에서 친구들의 따끔한 주먹이 날아왔다.
안면을 감싸고 등으로 때웠다.
다들 영어 듣기 평가 점수는 높아서 영어 대화는 대충 알아들었다.
연애하는 놈이 거의 없는 반에서 난 저주의 대상이 됐다.
“항복! 항복한다!”
미친 수컷들을 말려야 했다.
진짜 때려죽일 생각인 것 같다.
“닥쳐! 넌 점심시간 끝날 때까지 처맞아야 해!”
“너로 인해 분노 게이지가 200프로 상승했다! 공부도 잘하는 놈이 얼굴도 잘생긴 것도 큰 죄인데 외국인 여자 친구도 있어? 넌 이게 공평하다고 생각해?”
“저 역적을 죽이면 우리에게 미녀가 돌아올 확률이 높아집니다! 동지들이여, 힘을 더 내서 팹시다!”
자식들이 사정 좀 봐주고 때리지 진짜 힘을 담는 놈도 있다.
그래, 때려라. 난 괜찮다.
때리는 네들 주먹이 더 아플 거다.
내공을 더 끌어올렸다.
“헥헥……, 그런데 이 새끼 왜 아프다고 안 해?”
“내 손이 더 아파…….”
“이런 괴물 같은 놈…….”
때리는 놈들이 지쳐 떨어졌다.
태극오행양의심공의 공능 덕분으로 몸이 단단해졌다.
내공을 살짝 불어넣기만 하면 저런 솜 주먹들은 전혀 탈이 나지 않았다.
“새끼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승자의 대사를 읊었다.
“야! 장태산! 이 나쁜 놈아! 네가 그러고도 친구냐!”
“나쁜 놈! 죽일 놈! 썩을 놈!”
“귀신은 뭐 하는지 몰라. 저런 바람둥이는 염라대왕에게 이실직고해 바로 끌고 가야 우리 같은 평민이 행복한 세상이 올 거 아냐!”
사방에서 친구들의 원망 담긴 욕설이 들렸다.
그래 그 심정 나도 안다.
과거 나도 너희들처럼 연애하는 놈들이 그렇게 싫었다.
“겹살이 쏜다.”
“???”
“안 먹을 거야? 오늘 삼겹살 쏜다고! 그것도 다정식당 생삼겹으로다가 형아가 쏜다!”
“!!!”
친구들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심적으로 갈등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난 걱정하지 않았다.
저 돼지들이 겹살이를 버릴 정도로 정신연령이 높지 않다는 데 전 재산 다 걸 수 있다.
그리고…….
“친구야!!!”
“야! 사랑이 과하게 넘치는 우정 보소! 태산아!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다. 연애는 피 끓을 때 하는 거라고!”
“태산아 네 사랑 우리는 만장일치로 지지한다!”
“태산아 넌 진짜 난 놈이다! 존경한다! 장태산!!!”
조삼모사에 등장하는 원숭이 무리가 멀리 있지 않다.
시내에서도 줄 서서 먹는다는 다정식당 생삼겹에 모두 넘어갔다.
식탐에 다들 눈이 멀었다.
넘어가지 않는 게 이상했다.
다정식당 저온 숙성 삼겹살은 내가 먹어 본 삼겹살 중 최고였다.
오늘도 카드값 좀 나가겠지만 전혀 손해가 아니다.
오늘 밤 들어올 거대한 목돈.
그리고 애들이 소소하게 주는 카르마 포인트는 무조건 남는 장사다.
“그래? 그럼 형이 시원하게 음료수 무제한으로 돌릴 테니까! 모두 매점으로 나를 따르라!”
“태산이 형! 같이 가!”
화과산 원숭이 대장 손오공같이 기세등등 매점으로 돌격했다.
지금은 음료수 한 병으로도 세상 행복한 내 친구들.
그대들이여, 이 우정 영원히 잊지 말자.
세상이 앞으로 우리를 아프게 할지라도 오늘 우리는 행복하였노라고!
# 53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