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4
53장. 무서운 고삐리
“휴우.”
길게 숨을 들이켰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열어보는 선물 바구니를 개봉하는 심정이다.
내 예상대로 그래프는 아름답게 쭉쭉 뻗어 올라가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10억 달러를 투자한 금광을 개봉하는 순간이다.
타닥 탁탁탁.
몇 단계의 법인 암호키를 눌러 거래 시장에 접속했다.
“떨리네.”
먼저 환율 그래프가 보였다.
횡보합이 시작됐다.
오늘을 기점으로 일주일 정도 주고받다가 캐나다 달러가 하락하고 엔화가 올라간다.
그 전에 장을 정리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투자 금액 1조짜리 슈퍼 복리 적금 통장이 보였다.
딸각.
마우스가 거래 창의 실시간 계좌잔고 창을 눌렀다.
그동안 투자 수익으로 계속해서 물타기를 했다.
며칠에 한 번씩 계좌 평가이익이 늘어날 때마다 캐나다 달러를 매수하고 엔화를 팔았다.
그러기를 수십 차례.
처음 계획보다 투자금이 화끈하게 늘었다.
10억 달러가 부리는 마술쇼!
지금 개봉 박두였다.
단순명료한 화면으로 바뀌었다.
“허어억!”
신음이 먼저 비집고 나왔다.
“!!!”
동시에 눈이 부릅떠졌다.
인간이 만든 도박판의 끝판왕 FX 마진 거래!
“도대체 이게 얼마야……,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십억, 백…….”
숫자 단위가 바뀌었다.
분명 내가 투자한 돈은 미화 10억 달러였건만 미화 정산 예정 내역은 무려…….
“157억 5천 3백…… 만 달러!!!”
보고도 믿기 어려운 엄청난 수익이다.
국내 주식 시장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투자 수익이다.
수익이 났다 해도 받아줄 기관이 없다.
롤 오버한 마진 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이자 수익도 수백만 달러가 넘었다.
“…….”
멍하니 화면을 보는 와중에도 수익이 조금씩 늘어났다.
정신을 차렸다.
청산 기회가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물건이 인기 있을 때 팔아치워야 한다.
선물시장은 옵션과 달랐다.
옵션은 권리와 의무를 사고파는 공식 거래 시장인 백화점이라면 FX 마진 시장은 대형 상설 장터다.
오직 현찰 박치기만 통했다.
시세 조정 같은 조작 수법이 통하지 않았다.
그날 필요한 각국의 자금들이 상인들을 통해 사고 팔렸다.
그 흐름이 대단히 유동적이라 감히 누구도 시장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
옵션에서 수백 배 수익이 난다 해도 개인이 1조 수익을 넘기는 건 벅찼다.
규칙적 룰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하룻밤에 수십조씩 번다는 말은 옵션 시장을 모르는 뻥이다.
하지만 FX 마진 시장에서는 수익이 가능했다.
하루에도 국가 간에 움직이는 콜 자금이 엄청났다.
지금과 같은 환란의 시기에는 자금 흐름의 변동성이 대단했다.
손이 바빠졌다.
앞으로 벌어들일 천문학적인 수익도 팔아야 내 돈이었다.
타다다다다 타다닥.
캐나다 달러가 계속 강세라 생각한 기관과 개인들이 빠르게 내 매물을 받아갔다.
며칠 후에 캐나다 달러가 약세로 돌아간다는 걸 다들 몰랐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했다.
나의 승리는 누군가의 패배로 직결됐다.
승자와 패자만 존재하는 냉정한 전장이다.
밤이 깊어갔다.
피로가 몰려오면 물을 마시며 매물 정리에 박차를 가했다.
개인적으로 투자했던 어머니 계좌와 내 자금, LOR 투자 법인의 일부도 청산했다.
그리고 밤이 지나기 전에 난……, 거의 모든 거래를 청산할 수 있었다.
“……화끈하게 밤을 불태웠네…….”
어느새 창문너머 저 멀리서 붉은 기운이 움트기 시작했다.
청산과 동시에 다른 외환들을 거래했다.
내 순수 국내 법인 자금과 개인, 어머니 마진도 같이 청산했다.
해외 자금과 달리 적당하게 굴렸다.
보는 눈이 많았다.
마진콜 대비 적립금도 안정적으로 넣어놨었다.
그래도 1,000프로 가까운 수익률이었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하룻밤 사이에 쏟아져 나오는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금고를 열어야 할 것 같았다.
자금을 분산시켰다.
캐나다 달러 약세를 예상하고 캐나다 달러를 매도하고 미국 달러를 매수했다.
동시에 유로를 매수하면서 영국 파운드화를 매도했다.
유럽 연합 소속이지만 화폐만큼은 따로 사용하는 영국 파운드화가 금융위기에 약세를 면하지 못했다.
2008년 초반까지 1차 폭락한 뒤에 몇 달 횡보합, 그리고 두 달 만에 2년 동안 폭락한 것보다 더 폭락하게 된다.
곳곳이 지뢰밭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파라다이스 황금 길이다.
“다음 코스를 설계한다.”
내 위로 세계 부자들이 수백 명이 넘게 존재했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부에 경의를 표했다.
그것도 공식적인 부자들일 뿐이다.
어둠 속에서 암중으로 세계 경제를 조종하는 개인과 집단은 파악도 안 됐다.
좀 더 은밀하게 자금을 굴려야 했다.
꿈속 할배가 말했던 비웃는다는 이웃이 누군지 대충 눈치를 챘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아직 난 어린애 수준이다.
새벽 여는 해가 찬란한 위용을 보였다.
긴 밤 어둠을 기다리며 온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태양!
녀석의 거대한 열기가 나를 삼켰다.
난 태양이 되고 싶었다.
누구도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금융계의 거대한 태양 말이다.
***
“……이게 말이 돼?”
“뭐가 말입니까?”
“지금 내가 숫자를 잘못 본 건 아니지?”
“왜요? 뭐가 잘못 됐습니까?”
“방금 장기 투자됐었던 FX 마진 계좌들이 청산됐다. 캐나다 달러 매수 엔화 매도 매물인데…… 거래 수익이…… 3조가 넘는다.”
“FX 마진을 장기 투자를 해요?”
“3조요???”
“기관 투자잡니까?”
3조 수익이라는 말에 KR 선물 야간 외환 담당 거래팀의 직원들이 모두 팀장에게 다가와 모니터를 응시했다.
두 명의 개인과 한 개의 투자 법인 계좌였다.
이름은 비밀 처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청산 수익은 숫자로 보였다.
몇 달 전 수천억 원의 자금이 하루에 몰린 적이 있었다.
연금과 같은 기관 자금 100조 정도가 운용되는 KR 선물에서도 개인의 투자치고는 상당히 많았다.
암중에서 활약하는 고수들 중에서도 수조 단위 다국적 선물을 운용하는 이도 있다.
머리 검은 외국인의 자금이 상당하다는 걸 대부분 알았다.
IMF 당시 비자금을 통해 엄청난 부를 획득한 한국인들의 불법 비자금이 상당수 사모펀드 형태로 국내에 투자됐다.
그들에 비하면 초기 투자금은 작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개인 둘에 법인 하나다. 내가 보기에는 동일인이 확실하다.”
팀장급에서만 볼 수 있는 수익 현황이다.
모두들 팀장 주변에서 눈을 빛냈다.
“수익률이 970프로?”
“세상에…….”
“와아!”
“이건 뭐……, 환치기의 신이네. 신!”
직원들 모두 엄청난 수익률에 모두 신음을 토했다.
평소라면 엄한 팀장이었지만 오늘은 정신이 없었다.
한 번의 장기 투자로 3조의 수익은 지금껏 없던 일이었다.
팀장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정도 VVIP 고객의 수익률이 유출되면 시말서가 아니라 강제 퇴직이 결정될 사안이었다.
“이거 신문에 나면 난리 나겠네~.”
“난리가 아니라 슈퍼스타 탄생이지. 30억 달러가 순수 외화 수익금인데!”
그때 흥분한 직원 둘이 뱉지 말아야 할 말을 뱉었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너희들 제정신이야? 고객 수익률은 비밀인 거 몰라!!!”
놀란 팀장의 호통이 터졌다.
직원들이 후다닥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너희들 만약 정보가 유출되면 나를 포함해 다 모가지라는 거 명심해라! 증권회사들도 본격적으로 선물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 고객님 빠져나가면…… 니들 다 죽는다!”
팀장이 엄포를 놨다.
잠시 엄청난 수익률에 정신줄을 놨기에 벌어진 참사다.
만약 회사 감사팀에 적발이라도 되면 바로 호출이다.
“모두 비밀 엄수해! 알았지!”
“넵!!!”
모두 바보가 아니다.
이 정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개인 투자자라면 정보에 민감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 남자 직원은 입이 간질거렸다.
카움증권에 근무하는 친구가 말했던 투자자가 확실했다.
수익률에 대해 말해주면 술 한 잔 거하게 산다고 했다.
입이 무거운 친구였다.
그에게만 오늘 밤 살짝 흘려줄 생각이다.
***
“태산……, 아니 장 대표님.”
“에이. 왜 그러세요~ 조 변호사님. 편하게 평소처럼 태산이라고 부르세요.”
“…….”
조윤태는 방학을 맞아 서울에 올라온 LOR 투자 법인의 어린 대표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지난 가을 그가 알던 그 녀석이 아니다.
그 사이 키는 더 컸고 어깨도 떡 벌어졌다.
얼굴도 고등학생이라고 하기에는 중후한 맛이 흘렀다.
특히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검사 재직 당시 수많은 범죄자들과 사람들을 만났던 조윤태다.
웬만한 사내들은 검사의 눈빛에 쫄기 마련이다.
그런데 눈앞의 녀석은 그렇지 않았다.
깊은 눈동자는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웃고 있지만 그 안에 감춰진 깊이는 짐작도 안 됐다.
처음 만남조차 범상치 않았다.
자신의 사비를 털어 학교 폭력과 지역 조직을 정리했다.
말로는 쉽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배짱 넘치는 행동이다.
그리고 오늘 몇 달 만에 만난 녀석은 더 큰 어른이 되어 있었다.
‘법인 자산 규모가 1조가 넘는다니……, 도대체 이 녀석 정체가 뭐야?’
기가 차고 코가 막힐 일이었다.
누가 자수성가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1조 원 자산 클럽의 주인이라는 걸 믿겠는가.
그래서 쉽게 말을 놓지 못했다.
1조 원이라는 돈은 그만큼 엄청난 돈이었다.
재벌가 주인도 현찰 1조 원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녀석은 그 돈의 순수한 주인이다.
“장 대표. 내가 이 투자 법인의 감사지만……, 돈의 정체를 모르겠다. 정말 순수하게 투자로 벌어들인 게 맞나?”
“장부에 있잖아요~. 제가 이번에 환율 변동을 기가 막히게 맞췄습니다. 몇 달 전 꿈에 조상님이 큼지막한 황금빛 단풍잎을 들고 나타났지 뭡니까. 그래서 냉큼 캐나다 달러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조상님이 또 나타나시어 퇴색한 단풍잎을 들고 선몽하시기에 정리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박 맞았습니다. 흐흐흐.”
녀석의 넉살 좋은 웃음에 조윤태는 입을 다물었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었다.
고등학생이 세계적 환율 흐름을 꿰차고 엄청난 행운을 거머쥐었다는 걸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회계사에게 물어보니 전혀 자금에 문제가 없다더구나. 정부 정책으로 세금도 없고 공식 투자업체를 통해 다시 재투자한 상태라 세무 문제는 깔끔하단다.”
“당연하죠. 저 돈 많이 벌어서 애국하고 싶은 시민입니다. 탈세는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의 권한으로 장부를 봤지만 이건 뭐 흠잡을 데가 없다.
오고 가는 투자가 몇 번 되지도 않았다.
법인 계좌에 잠깐 찍혔다가 사라진 자금의 흔적만 남았다.
더욱이 모든 수익이 아직까지 면세가 되는 주식과 외환 거래였다.
이익이 나도 국가에서 강제로 어찌할 수 있는 자금이 아니었다.
투자 법인 뒤에 숨어 있어 더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벌어서 뭐 하려고 그래? 이 정도면 자손 5대까지는 놀아도 먹고 살겠다.”
“벌어서 뭐 하기는요~ 소고기도 사 먹고 남으면 집과 차도 사고~ 그래도 남으면 별장도 하나 구입해야죠.”
“그래도 많아.”
“안 많아요. 앞으로 열릴 큰 장에서 쇼핑하려면 부족해요.”
“쇼핑에 1조 원이나 투자해? 그룹이라도 인수할 거야?”
“그럴까요? 그룹 인수할까요? 그럼 변호사님 그룹 고문 변호사로 위임할게요.”
농담 같지 않는 고삐리 말에 조윤태는 또 입을 다물었다.말로는 이길 수가 없었다.
아니 이미 돈으로도 끝났다.
저 정도 자금이라면 대형 로펌을 인수하고도 남을 거금이다.
“변호사님~.”
“그렇게 친근하게 부르지 마. 이제는 네가 두렵다.”
“왜 그러세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말해봐. 이제는 놀라지도 않으마.”
“뒷조사 좀 부탁해도 돼요?”
“뒷조사? 왜 사는 동네에 깡패들이 아직 남았어?”
“아니요. 우리 어머니 뒷조사 좀 해주세요.”
“뭐라고? 네 어머니? 설마……,”
“바람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뭘 조사해?”
“제 외가에 대해서 알아봐 주십시오.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흐음……,”
조윤태가 생각에 빠졌다.
로펌 정보원을 통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기간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알았다. 원래 안 되는데 네 부탁이니까 들어주마. 문자로 이름하고 주민등록번호 보내줘.”
“감사합니다. 조 변호사님. 복 받을 겁니다.”
“복은 됐고 나중에 잘나간다고 나 모른 척하기 없기다.”
“물론입니다. 저만 믿으세요. 조 변호사님 나중에 자가용 비행기 타고 다니실 겁니다.”
“…….”
자신감 넘치는 눈앞의 고삐리 말에 조윤태는 농담으로 듣지 않았다.
진짜 탈 것 같은 자가용 비행기.
조윤태는 눈앞의 고삐리가 오늘 확실히 무서운 존재라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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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