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5
54장. 동네 선배
“다니엘!!!”
그녀가 달려왔다.
인천국제공항 1층 입국장으로 쏟아지는 인파 사이에서 유독 빛나는 클라라.
유럽 모델 같은 큰 키에 시원한 아이보리 치마반바지와 하늘색 민소매로 뽀얀 어깨를 드러낸 그녀는 주변을 순간 침묵하게 만들었다.
새하얀 피부에 어울리는 선글라스를 착용하고도 날 발견했다.
거침없이 클라라는 달려와…….
덥석 안겼다.
아! 이 기분 도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정확한 느낌이 전달될까.
일단 그냥 좋았다.
귀한 휴가 기간을 나와 함께 보내기 위해 홍콩에서 날아온 제비 같은 클라라였다.
“뭐야? 둘 다 모델이야?”
“다니엘이면 남자도 외국인 같은데?”
“정말 잘 어울린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연예인 뺨치는 클라라와 나란히 한 나도 빠지지 않았다.
서울에 오자마자 지난겨울에 머물던 호텔 스위트룸에 짐을 풀었다.
삼시 세끼 밥 먹기 편하지, 수영장에 헬스클럽까지 스위트룸 투숙객은 공짜다.
그리고 옷 몇 벌을 샀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브랜드명도 생소한 수제 명품으로 세팅했다.
역시 비싼 게 돈값을 했다.
옷을 입었다는 생각이 사라질 정도로 편했다.
키도 187센티미터까지 자랐다.
쉬지 않고 태극오행양의심법을 수련했다.
몸매가 살자 옷 빨도 제대로다.
클라라가 안겨도 한 팔로 안아줄 수 있었다.
“오는 동안 힘들지 않았어?”
“전혀~ 나 어젯밤부터 한숨도 못 잤어. 다니엘이 있는 한국에 간다는 사실에 심장이 뜨거웠어.”
클라라의 목소리가 촉촉했다.
푸른 눈동자가 나만을 향해 반짝였다.
주변 상황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나만 바라봤다.
내 심장이 위험하게 달궈졌다.
“가방 줘.”
“응~.”
바퀴 달린 큼지막한 여행 가방을 받아서 끌었다.
클라라가 내 왼팔에 팔짱을 꼈다.
누가 봐도 사랑하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다.
우리 둘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사람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어깨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다.
이럴 때 남자들의 어깨 뽕은 자신감의 상징이 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과였다.
2학년 담임선생님께 확실히 인생관이 물들었다.
공부가 미래의 마누라 얼굴을 바꾼다는 말은 진리다.
내 친구들도 그 말을 어떤 격언보다 동의했다.
피부에 확 와닿는 진실한 충고가 아닐 수 없다.
삐빅.
주차장으로 내려와 마이 카 앞에 섰다.
“다니엘! 차가 너무 좋다!”
클라라도 직설 화법을 자주 사용하는 외국 여자다.
포르쉐의 날렵한 자태 앞에 숨기지 않고 감탄을 터트렸다.
내숭 없는 클라라가 좋다.
“타시죠. 레이디.”
“고마워. 다니엘~”
문을 열자 클라라가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탔다.
가방을 트렁크에 넣고 운전석에 앉았다.
우르르릉 우르릉.
키를 돌리자 바로 6기통 엔진이 날카롭게 울었다.
“한국에 온 걸 환영해. 클라라.”
“초대해줘서 고마워. 다니엘.”
차 안에서 그녀에게 환영 인사를 건넸다.
나를 보고 웃는 클라라.
가볍게 입술이 다가오더니 내 뺨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하아, 클라라 그러면 안 돼!
난 당신 향수만 맡아도 하루 종일 힘들단 말이야!
***
“대표님은 또 어디를 가신 거야? 뭐가 이렇게 바빠? 달랑 하루 있다 사라지고…….”
LOR 투자 법인의 유일한 직원인 유세라는 사라진 대표 때문에 속상했다.
몇 달 동안 주말에 두 번 대면한 게 전부였다.
회사 오너 얼굴 보기가 아이돌 보는 것만큼 힘들었다.
어제 갑자기 나타났다.
활짝 웃으며 보고 싶었다는 설렘의 말을 던졌다.
내심 그동안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도 보고하고 저녁까지 먹고 싶었다.
감사님과 차를 마시며 대화하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남자다.
무슨 사건이 있었던지 얼마 전에는 각 증권회사와 은행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모두들 대표 근황을 묻고 서운한 부분이 있다면 연락을 달라고 사정했다.
유세라는 대표 덕분에 대형 금융권의 중요한 인물이 됐다.
“이번에는 KR 선물 회사야? 선물은 도박판이라고 하던데 괜찮겠지?”
며칠 전 KR 선물 회사 직원들이 찾아와 명함과 함께 비싼 난 화분을 들고 찾아왔다.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남겼다.
유일한 직원이지만 회사 자금이 얼마나 되는지 몰랐다.
철저하게 대표하고 감사님만 볼 수 있었다.
“다단계만 아니면 돼. 이런 회사는 지구상에 없으니까.”
때가 되면 알아서 월급과 보너스가 통장에 꽂혔다.
아무도 없는 대형 사무실이지만 유세라는 적응했다.
대학 시절 부족했던 어학 공부에 매진했다.
영어, 일어, 중국어를 몇 달 동안 수준급으로 끌어올렸다.
사무실에 친구들을 불러들이지 않았다.
유세라는 느낌으로 알았다.
이 회사가 곧 엄청 부흥할 거라는 사실 말이다.
“여자만 안 만나면 돼. 바람둥이 기질이 보이지만 어쩌겠어. 다 잘나서 그런 걸.”
유세라는 몇 달 사이에 듬직해진 대표를 생각하며 얼굴을 붉혔다.
호리호리한 몸매 같지만 은근히 보이는 근육은 유세라를 설레게 만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여유롭고 당당한 자세는 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올해 휴가 때는 워크숍으로 때우자고 해야지. 오붓하게 둘이서. 헤에.”
상상만으로 행복한 유세라.
그녀는 몰랐다.
홍콩에서 날아온 물 찬 제비가 대표를 이미 낚아채서 훨훨 날아가고 있다는 걸 말이다.
***
부우우우우웅! 부웅!
“다니엘! 한국 고속도로 너무 좋아!”
인천공항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로 방향을 잡았다.
휴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는 평일 낮 시간 때였다.
수도권을 벗어나면서 시원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좁은 홍콩에서 요 몇 년간 거주했던 클라라가 열린 창문으로 시원하게 바람을 맞았다.
오픈카도 한 대 장만해야 할 것 같았다.
“쉬었다 갈까?”
“응~”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유명한 행담도 휴게소로 차를 몰았다.
서해대교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홍콩 바다를 질리게 봤을 클라라였지만 바다를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나도 바다를 보자 마음이 시원했다.
수컷 원숭이떼들이 뛰노는 교실에서 벗어나자 살 것 같았다.
나와 클라라가 전화하던 그날 놈들은 무려 200인분의 삼겹살을 아작 냈다.
일인당 5인분이 넘었다.
식당 삼겹살 모두를 완판시켰고, 그것도 모자라 목살을 비롯해 각종 부위 돼지살들도 씹어 삼켰다.
다행히 술은 먹지 못해 콜라 100병, 사이다와 환타 100병도 같이 마셨다.
살아 있는 슈퍼 돼지들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겹살이 완판 대전 이후로 방학 때까지 애들은 나를 건들지 않았다.
그리고 잘나가는 동네 친한 형의 마음으로 기꺼이 물주가 될 수 있다.
쏠쏠하게 들어오는 카르마 포인트에 비하면 그깟 돈은 푼돈이다.
“구우우우웃! 휴게소가 환상이야!”
차에서 내리던 클라라가 탄성을 터트렸다.
‘웁스!’
나도 그녀 뒷모습을 보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진짜 백만 불짜리 몸매였다.
키는 서양계였지만 피부는 동양계처럼 잡티가 거의 없었다.
늘씬한 그녀의 다리에 자꾸 눈이 갔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만으로 소중했다.
“다니엘~ 갑자기 배가 고파졌어.”
식욕을 자극하는 먹을거리들이 주차장까지 침범했다.
눈을 반짝이며 클라라가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물론 가는 와중에 남녀들이 나와 클라라를 보고 멈췄다.
“와아아! 대단해. 먹을 것들이 너무 많아!”
홍콩촌에 살던 그녀가 고속도로 휴게소 간이 먹을거리 판매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공부하던 미국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일 것이다.
미국 휴게소도 도시 주변에나 이런 휴게 시설이 갖춰져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한국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Rest Area는 말 그대로 잠깐 쉬었다 가는 장소다.
“먹고 싶은 거 골라봐.”
클라라를 이끌고 초이스 뷔페식 식당부터 우동이나 라면을 파는 분식코너까지 돌았다.
내손을 잡고 클라라는 연속 ‘와우’ 하며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 저거!!! 그리고 커피!”
클라라는 호떡을 골랐다.
홍콩에서 자주 먹었을 중국식 호떡과 같아 보인 것 같았다.
호떡을 구입했다.
길거리표 원두커피를 한 잔 사서 그녀에게 건넸다.
“뜨거우니까 조심해.”
종이로 호떡을 싸서 건넸다.
클라라는 조심스럽게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호떡을 삼켰다.
갑자기 호떡이 부러웠다.
그녀가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불렀다.
나를 보기 위해 홍콩에서 낯선 나라에 찾아온 클라라가 고마웠다.
“달콤해! 완벽해!!!”
달콤한 꿀물이 흐르는 쫄깃쫄깃한 호떡과 커피를 마시며 클라라는 만족감을 표했다.
조합이 한국스러웠지만 그녀는 벌써 적응을 끝낸 것 같다.
그녀가 호떡을 먹자 주변 남자들이 힐끔거리며 봤다.
외국 슈퍼 모델급 여인이 호떡을 먹는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매혹적이다.
날름 혀를 이용해 꿀을 빨아 마시는 클라라…….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서 시선을 뗐다.
외국에서 만났던 여자가 놀러 온다고 엄마에게는 전했다.
열린 생각의 소유자인 엄마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쌍둥이들은 용돈을 좀 더 줘서 입을 막으면 됐다.
나와 눈이 비슷한 아버지는 흡족해할 게 확실했다.
“다니엘. 나 저것도~.”
어느새 호떡을 해치운 클라라가 호두과자를 가리켰다.
참 입맛이 나보다 더 토속적이다.
“그래. 알았어. 여기 앉아서 기다려.”
“응~.”
말 잘 듣는 클라라를 놔두고 호두과자 앞으로 이동했다.
아버지가 좋아하셨기에 큰 걸 구입하면 될 것 같았다.
“선물용으로 큰 거 하나 주세요.”
“네. 손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호두과자를 선물 박스에 담고 있는 사이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
그리고 날 보고 있는 한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
원수까지는 아니지만 이제는 흘려보낸 인연이라 생각했던 그녀가 다가왔다.
외나무다리도 아니고 휴게소에서의 이런 조우라니!
“태산아…….”
“예린 선배.”
그녀 이예린이 나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이름을 불렀다.
나도 쿨하게 답했다.
반년 사이에 그녀는 더 성숙해졌다.
졸업식 때와 달리 얼굴이 부쩍 여성스러웠고 화장도 살짝 진해졌다.
압도하는 미모는 여전했다.
휴가를 가는 듯 짧은 청반바지 아래로 새하얀 다리가 시원하게 드러나 있었다.
옷차림도 과감해졌다.
“잘 지냈어?”
“네~ 고삐리가 별일 있겠어요.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보기 좋아 보인다.”
예린 선배가 나를 위아래로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지금 왜 이렇게 아는 체를 하는 거야?
졸업식 때 나를 외면했던 예린 선배였다.
그녀의 이런 태도가 낯설었다.
아니, 불쾌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연락이 없던 선배였다.
이런 우연한 장소에서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이상했다.
“여기 나왔습니다. 손님.”
“감사합니다. 많이 파세요.”
호두과자 박스를 손에 들었다.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선배 다음에 봐요.”
이제 첫사랑이라고 가슴이 아릿한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경험은 며칠이면 족했다.
호구도 아니고 어장관리 당하는 그런 기분을 갖고 바보로 사는 건 말도 안 됐다.
어떻게 얻은 또 한 번의 인생인데 망칠 수 없었다.
“태……, 태산아.”
등을 보이며 지나가는데 예린 선배가 날 불렀다.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
“다니엘~ 무슨 일 있어?”
그때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클라라가 다가왔다.
“누구야? 아는 분이야?”
클라라가 예린 선배를 보고 물었다.
화끈하고 직설적인 그녀의 물음.
“어~ 과거에 알고 지냈던 동네 선배.”
# 55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