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6
55장. 나 이 결혼 찬성이다!
“만나서 반가워요. 다니엘의 여자 친구 클라라 리예요.”
“네? 네……, 이예린입니다.”
예린은 당황스러웠다.
방학이 시작되고 답답한 마음에 옛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내려가는 길이다.
남자 친구와 요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입학 때는 그렇게 다정하던 선배가 몇 달이 지나면서 마음이 떠난 듯 태도가 달라진 게 느껴졌다.
그는 10대 재벌에 속하는 안아 그룹 후계자 중 한 사람이다.
예린의 아버지가 나름 잘나가는 판사지만, 대기업 총수에 비하면 그저 그런 판사였을 뿐이다.
예린은 몇 달 만에 끝났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공주 대접을 받았다.
동성 선배와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드라이브를 다녔다.
말로만 듣던 강남 맛집들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때때로 이벤트 선물로 명품들을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그를 믿고 둘만의 해외여행도 다녔다.
하지만 이후부터 선배는 예린에게서 서서히 관심을 거두었다.
예린도 그에게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둘 사이는 정리가 되어 갔다.
예린은 자존심이 상했고, 마음이 아팠다.
미래까지 생각하고 동성을 만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태어나 처음으로 패배감과 자존감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그때 고등학교 친구들이 그녀를 불렀다.
대학교 동기들이나 선배들 사이에서 예린은 찍혔다.
동성 선배와 함께 다니면서 친구나 선배들과 멀어졌다.
복잡한 때 휴게소에서 우연히 만난 장태산.
예린은 과거 그로 인해 받았던 따뜻한 기억들을 떠올렸다.
초콜릿을 건네며 수줍게 인사하던 소년이 어느새 멋진 남자로 바뀌어 나타났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아직 고3이 분명한데 옷은 최고급 명품들로 빼입었다.
심플한 시계조차도 수천만 원이 호가하는 제품이다.
남자 친구도 소중하게 여기던 시계였다.
키는 더 커졌고 어깨는 안기고 싶을 만큼 단단하고 넓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갑자기 아는 체를 하고 싶었다.
분명 자신이 첫사랑이 확실했다.
졸업식과 그 이후에 연락을 하지 못한 건 미안했다.
하지만 동성 선배가 질투가 많은 사람이라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자신이 있었다.
미안하다 말하고 다시 한 번 태산과 연락을 주고받고 싶었다.
그런데…….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것도 한눈에 봐도 대단한 미인이다.
키가 크고 늘씬한 동양계 혼혈 미녀였다.
예린은 태산이 달라 보였다.
영어로 대화하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여신 같은 미인을 여자 친구라 당당히 밝힐 수 있는 태산이 멋있었다.
질투심도 일어났다.
“아름다운 분이시네요. 앞으로 자주 만나 친하게 지내요.”
클라라가 손을 내밀었다.
성격이 소탈한 것 같았다.
웃고 있는 가지런한 치아가 매력적이었다.
“그래요. 다음에 만나면……, 인사해요.”
예린은 클라라의 손을 잡았다.
그때 웃는 얼굴로 클라라가 손에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파팟!
여자만 느낄 수 있는 경고의 눈빛도 받았다.
본능적으로 안 것 같았다.
“다니엘~ 이제 출발해요. 우리 빨리 집에 가요.”
“알았어.”
예린의 심장이 쿡쿡 쑤셨다.
집에 가자는 말에 와르르 모든 게 무너졌다.
한때 자신이 받던 태산의 사랑과 관심이었다.
“선배. 잘 가세요.”
다음에 만나자는 흔한 말도 없었다.
말을 하면서도 차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는 태산이었다.
예린은 가슴이 아려왔다.
저 눈빛이 말하는 의미를 모르면 바보였다.
“예린. 다음에 또 봐요.”
클라라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네……, 다음에 봐요.”
예린도 마지못해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태산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클라라와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팔짱을 낀 두 사람은 누가 봐도 다정한 연인의 모습이다.
“하아.”
예린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멀어져 가는 태산의 뒷모습에 가슴이 저릿저릿 아파왔다.
***
“어머니~. 처음 뵙겠습니다. 클라라입니다.”
“어서 와요. 클라라. 만나서 반가워요.”
“어머니. 미인이세요~.”
“클라라도 미인이야. 어서 들어와요.”
어머니? 언제 한국말을 배운 거야!
클라라와 호두과자를 먹으며 집에 도착했다.
예린 선배는 등을 돌리는 순간 싹 잊어버렸다.
격변하는 세상에서 돈 벌기도 바쁜데 바람난 첫사랑을 기다리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
이미 연락을 드려서 엄마는 집에 계셨다.
집에 도착해 엄마를 마주치는 순간 클라라는 한국말로 어머니를 불렀다.
물론 뒷말은 영어였지만 어머니는 몇 개 외국어를 할 수 있는 분이다.
둘이 서로를 미인이라 금칠하며 금세 친해졌다.
엄마 성격이 그렇게 활달한 분은 아니다.
그런데 클라라 손을 잡고 집으로 인도했다.
“와우! 집이 정말 아름다워요.”
클라라는 주차장에서부터 원더풀을 외쳤다.
산자락을 병풍 삼은 고택은 누가 봐도 그림이다.
돈을 빨아 마신 집이 짱짱해졌다.
천장 매립 시스템 에어컨이 시원하고 조용하게 가동되며 습기를 제거했다.
그 사이 엄마의 풍경화 몇 점이 거실을 장식했다.
대형 원목 다탁이 창가에 놓여 운치를 더했다.
클라라는 눈을 반짝이며 집안을 구경하고 다녔다.
고택이었지만 방을 모두 연결해 1층만 100평 수준이다.
미니 주거지가 다수인 홍콩과는 완전 다른 주거 문화다.
“다니엘, 이 그림은 뭐야? 대가 작품인 것 같아! 감성이 깊숙이 묻어 있어.”
클라라는 엄마 그림에 관심을 표했다.
잘려진 나무 단면을 중심으로 뻗어 나가는 가지 모습이었다.
인간의 심성 같은 나이테로 시작해 희로애락의 감정이 가지 끝 나뭇잎에 묻어났다.
내가 봐도 멋졌다.
“우리 어머니 그림이야.”
“정말? 어머니 화가셔?”
“그쪽 전공이야.”
“그래? 나도 한때 화가가 꿈이었는데! 다니엘, 어머니 너무 기품이 넘치셔.”
클라라도 우리 엄마를 좋아했다.
누가 봐도 우리 엄마는 호감을 품었다.
단아한 모습과 행동, 기품 넘치는 말씀은 나도 볼 때마다 놀라는 모습이다.
죽기 전까지는 엄마가 그냥 말이 없는 분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살면서 알았다.
우리 엄마 같은 고품격 여성은 세상에서 보기 힘들다는 걸 말이다.
“차 마셔요.”
“감사합니다. 어머니!”
클라라가 엄마 손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
엄마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셋은 다탁에 둘러 앉아 엄마표 수제 감잎차를 마셨다.
이른 봄에 딴 감잎을 녹차처럼 덖어 차로 마셨다.
“둘은 어떻게 만난 거야? 사귀는 사이 맞아?”
엄마가 우리에게 물었다.
“아직 친구예요. 홍콩에서 만났어요. 다니엘, 좋은 남자예요.”
클라라가 먼저 말했다.
뜨거운 키스를 나눴지만 딱 거기까지다.
애인 사이는 아니라는 걸 클라라도 안다.
“그래?”
엄마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날 봤다.
어머니! 저 그런 남자 아닙니다.
“여보~ 나 왔어.”
“엄마!”
“오빠 온 거야? 어라? 이 예쁜 신발은 뭐야?”
아빠와 함께 쌍둥이들이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들어서던 그대로 몸이 굳었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클라라를 모두 발견했다.
뭐야. 예쁜 외국 여성은 처음 보는 것처럼!
“안녕하세요. 아버님.”
클라라! 아버님 소리는 또 언제 배운 거야!
그리고 꾸벅하고 고개 숙이는 인사법은 또 어디서 습득한 거야!
“어, 어……, 그래요.”
“다니엘 친구 클라라 리라고 합니다. 잠시 신세를 지겠습니다.”
뒷말은 영어였지만 아빠도 한때 대기업에 근무하던 인재였다.
“헐……, 지금 저분이 우리 오빠를 다니엘이라고 부른 거야?”
“오빠. 뭐야? 국제 연애하고 있었던 거야? 저분 정체가 뭐야???”
쌍둥이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충 영어를 알아듣고 나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자식들~ 이게 바로 오빠의 능력이다.
“쌍둥이 주아? 주희? 만나서 반가워. 난 클라라야.”
클라라는 내가 전화로 얘기했던 여동생들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활짝 웃으며 먼저 다가갔다.
외국 언니가 손을 내밀자 쌍둥이들은 공손하게 악수를 했다.
클라라가 자기들 이름까지 알자 입을 다물었다.
“네, 헬로……,”
“바, 반가워요. 제가 주희예요.”
영어 앞에 얼어붙은 쌍둥이들의 모습에 한국 영어의 폐해가 보였다.
그냥 바짝 얼었다.
“여보, 그런데 이 손님은 어떻게…….”
“제가 얼마 전에 얘기했잖아요. 태산이 손님이 휴가 때 방문할 것 같다고.”
“아! 그 손님……, 그런데 여자분이라고는…….”
“당신, 성 차별하는 건 아니죠?”
“무, 물론이지. 나 그런 편견 있는 남자 아니야.”
아버지 말하는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았다.
이래서 피는 못 속이는 거다.
“태산이 오빠 손님이야. 사랑하는 딸들. 손님이 계시는 동안 불편하지 않게 예의를 갖춰주기를 엄마가 요청할게.”
“네~ 엄마!”
“걱정 말아요. 엄마! 저 예쁜 언니 딱 제 스타일이에요.”
엄마가 간단하게 현장을 정리했다.
요즘 들어 엄마가 많이 변했다.
다소곳하고 여성스럽던 엄마가 가끔 대장부 같았다.
외가 쪽 유전인자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가문의 여식이기에 저렇게 멋질 수 있을까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왜 엄마가 외톨이처럼 혼자였는지 그것도 알고 싶었다.
“클라라 언니를 게스트 룸으로 안내해. 먼 곳에서 와서 시차 적응도 필요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싶을 거야.”
“네! 엄마!”
“클라라~ 애들이 앞으로 사용할 방을 안내해 줄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엄마.”
어느새 어머니가 엄마로 진화했다.
클라라의 변신 능력에 속으로 경탄을 터트렸다.
참으로 놀라운 눈치와 응용력이었다.
괜히 HSBC의 잘 나가는 비서가 아니다.
“클라라, 환영해요. 자기 집이라 생각하고 있는 동안 편안하게 쉬어요.”
“아버님. 땡큐~!”
“나도 땡큐~! 하하하하하.”
예상대로 눈이 높은 우리 아버지도 클라라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다.
예쁘면 어느 곳에서나 저렇게 대접 받는 건 만국 공통이다.
“언니, 저를 따라오세요.”
“이 가방은 내가 들고 갈게요~.”
쌍둥이들은 클라라의 방문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주희가 클라라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렇게 클라라가 게스트 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와 아빠, 엄마가 거실에 남았다.
“태산아…….”
아버지가 날 불렀다.
눈빛에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고 현재 진행 상황이 어디까지인지 묻는 것 같았다.
아버지,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도 사생할은 노터치입니다.
“네. 아버지.”
“난 국제화 시대에 국적은 사랑에 아무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근엄하게 말했다.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엄마도 날 보며 요상하게 웃었다.
“네? 그게 무슨…….”
“난 이 결혼 찬성이다!”
“네에에에! 겨, 결혼요???”
– 카르마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뭐? 카르마 포인트가? 왜!!!
# 56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