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92
693장. 땡 잡은 날.(2)
“스마트 팩토리 사업이라……. 흥미롭네요.”
“고자룡 회장의 막내딸인 고연지가 대표로 취임했습니다.”
“그러니까요. 엘자 고 회장님이 선대 회장님의 유지를 어기고 풋내기 딸을 사업장 대표로 삼다니……. 이거 냄새가 나는데요?”
종로에 위치한 NK그룹 회장실.
오십 대 초반의 두꺼비 인상을 가진 조태훈 회장이 박태호 비서실장의 보고를 받았다.
“투자금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일개 솔루션 업체에…… 인원이 엄청나군요. 빌딩을 통으로 다 사용할 정도라니.”
조태훈은 보고서를 꼼꼼히 살폈다.
조태훈 회장은 아무리 제가 부리는 아랫사람이라 해도 함부로 하대하지 않았다.
특히 박태호 비서실장은 조태훈 회장이 처음 입사 때부터 함께했던 동지다.
하이넥스 인수 건도 박태호 실장의 힘이 컸다.
똑똑하고 유능했다.
충성심도 남달랐다.
파트너로서 평생을 함께해도 될 비서실장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정보에 의하면 투자금이 조 단위를 훌쩍 넘는다고 합니다. 그것도 외국계 자본으로 말입니다.”
“외국계 자금이라……. 그렇게 큰 금액을 투자받을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면 하이넥스나 인수하지. 뜬금없는 솔루션 사업이라니…….”
엘자와 NK는 대그룹들 중에서 맞수였다.
초반엔 사업 영역이 겹치지 않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두 그룹은 치열하게 서로를 견제해야 하는 경쟁관계에 있었다.
섬유로 시작해 화학과 석유, 통신, 배터리, 그리고 작년에 인수한 하이넥스로 엘자를 확실히 누르고 연간 그룹 매출액 2위권에 안착한 NK.
엘자와는 지속적으로 부딪쳤다.
배터리 사업에 NK가 진출하며 엘자 연구원과 기술을 빠르게 흡수했다.
통신에서는 NK텔레콤이 엘자텔레콤을 여유롭게 제쳤다.
스마트폰까지 생산하는 엘자였지만 한 번 빼앗긴 점유율을 쉽게 되찾을 수 없었다.
행보가 둔중한 엘자그룹과 달리 NK는 일찍 조직 의사 전달 체계를 슬림화했다.
조중건 선대 회장이 일찍 운명을 달리해 삼십 대 후반에 회장이 된 조태훈의 작품이었다.
NK는 일찍 지주회사가 되어 상속 문제에서 자유로웠다.
그룹 상속이 깐깐하지 않았던 시절에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로 회사를 키워 NK와 합병했다.
다른 어떤 기업보다 안정적으로 회사를 지배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권력이 대단했던 군사정권 대통령과 사돈을 맺었다.
그 덕분에 알짜 국영기업을 헐값에 인수받았다.
NK가 그저 그런 중견기업에서 내놓을 만한 그룹이 될 수 있었던 발판이었다.
하지만 조태훈 회장은 정작 와이프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슬하에 자녀를 넷씩이나 두었지만 전직 대통령 딸인 와이프와는 현재 별거 중에 있었다.
조태훈 회장은 이혼을 원했다.
하지만 경영권 문제에 예민한 회사 임원들과 회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는 와이프가 원하지 않았다.
마음이 심란한 상태에서도 조태훈 회장은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아버지 조중건 회장의 치밀한 승부사 기질을 물려받은 덕도 있었다.
“연대도 수상합니다. 테스크 포스팀이 가동됐다고 합니다.”
“테스크 포스팀요?”
“전문구 회장의 지시라고 합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독립운동이라고 합니다.”
“독립운동요? 그게 무슨 말이죠? 이해하기 쉽지 않네요.”
“일본에 의존하던 부품을 국산화하는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일본산 부품을요? 왜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국산화도 좋지만 글로벌 자유 무역 시대에 괜히 그러면 탈납니다. 일본이 공산당 중국도 아니고……. 대체 할 수 있는 부품이 아닌 것도 많습니다. 그리고 국내 중소기업을 어떻게 믿습니까? 어느 정도 돈 벌면 다들 딴 짓 하지 않습니까. 기반도 제대로 못 갖추면서 기업 확장하고 환율에 투자하고……. 일본처럼 장인 정신으로 무장해도 모자랄 판에…….”
조태훈 회장은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룹과 관련된 하청업체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중에 상당수는 돈도 많이 벌었다.
문제는 체계적인 자산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룹이나 대기업처럼 전문 회계팀이나 자산관리팀이 없다보니 오너에 의해 모든 것들이 결정됐다.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결정된 사안들은 대부분 문제가 됐다.
횡령과 배임은 기본이고 기술개발 대신 엉뚱한 짓을 많이 벌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준비해야 합니다. 일본과는 산업적으로 경쟁 관계입니다. 반도체 부분만 해도 일본 정부가 절치부심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래봐야 늦었습니다. 치킨 게임에서 패배하면 바로 퇴출입니다. 부품이나 소재 쪽 말고 일본은 반도체 업계에서 재기불능입니다.”
조태훈도 돌아가는 판을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엘자에 투자했다는 해외 투자자들은 누굽니까? 연대로템도 그렇게 뭔가 물밑에서 큰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LOR 투자법인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LOR이라면…….”
“장태산이라는 친구가 실질적 주인입니다.”
“아! 맞아 장태산!”
조태훈도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다.
최근 들어 경제계에 인사들 사이에서 계속 그 이름이 회자됐다.
특별한 수익 기법으로 수조원의 부를 일궜다는 천재 투자자.
안아를 필두로 그룹과 기업들이 LOR 손에 의해 해외 자본에 넘어갔다.
핵심에 장태산이 존재했다.
교묘한 수법 때문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장태산이 인수 기업들의 수장들을 임명한 것만은 확실했다.
정권 차원에서도 쉽게 손을 쓰지 못할 정도의 인맥 거물.
“엘자와 연대 둘 다 장태산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오정 임성철 회장님과도 친분 관계가 돈독합니다.”
“흐음……. 그렇군요. 그런데 왜 우리 NK에는 연락이 없죠?”
“네?”
“기분이 그렇네요. NK에도 투자할 상품들이 널렸는데……. 날 무시하는 건가.”
“아닐 겁니다. 장태산과는 접점이 없을 뿐입니다.”
“아니에요. 기분이 별로에요. 장태산……. 이런 식이라면 우리와 안 좋은 쪽으로 엮일 게 확실해요.”
조태훈은 감이 좋았다.
재계 서열 2위인 NK와 인연이 없는 장태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됐습니다. 우리가 먼저 고개 숙일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조태훈도 자존심은 있었다.
한 번 만나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굳이 연락을 먼저 취할 필요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궁금하기는 하네요. 그 친구가 뭘 하려는 건지 말입니다.”
더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보라는 지시였다.
“조치하겠습니다.”
“그래요. 부탁해요. 장태산 그 친구…… 잘 한 번 파보세요.”
***
‘땡?’
신덕수는 형님 장태산의 시선을 좇았다.
처음 만났을 때도 ‘내가 전생 네 형’이라며 말문을 열었던 장태산.
누가 보면 미친놈이 아닌가 생각하겠지만 신덕수는 그 말 한마디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 이후부터는 장태산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었다.
신덕수에게 장태산은 그런 존재였다.
한마디로 신이었다.
아픈 몸을 낫게 해주고 이렇게 변호사까지 만들어줬다.
그의 한 서린 인생에 복수의 방법과 계획, 실행이 있게 해준 주재자였다.
그런 장태산이 마당 한쪽에 있는 커다랗고 오래된 석등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갑자기 땡이라니요.”
“따라와.”
저벅저벅.
빠르게 석등으로 다가가는 장태산.
“대단하지 않냐?”
“저는 잘…….”
석등은 상당히 컸다.
과거 넓은 마당을 밝히는 용도로 사용됐던 석등.
세월의 흔적만큼 많이 깎이고 부식됐다.
고풍스런 멋스러움이 묻어났지만, 굽여 살필 만큼 특별한 구석은 없었다.
“겉만 살피지 말고 전체적으로 봐봐. 느낌 오지 않아?”
“……비싼 놈인가요?”
변호사가 됐지만 신덕수는 귀물을 보는 눈은 없었다.
“돌이 비싸봐야 돌이지.”
“그럼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
“저기 삽 가져와봐.”
“네.”
갑자기 구석에 세워진 삽을 가져오라는 장태산.
신덕수는 장태산 형님이 시키는 대로 삽을 들고 왔다.
“여기 아래 파봐.”
“넵!”
땅 파는 데는 소질이 있는 덕수가 힘차게 삽질을 시작했다.
퍼억! 스으윽! 퍽! 슥!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삽질 소리.
탕!
“어?”
얼마쯤 팠을까.
갑자기 삽 끝에서 전해지는 딱딱한 감촉.
“더 파봐.”
“네…….”
이상함을 느끼며 신덕수는 처음보다 조심스럽게 삽질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건…….”
꽤 오래 돼 보이지만 튼튼한 궤짝 귀퉁이가 눈에 들어왔다.
수십 년은 된 듯했지만 옷칠과 특수 코팅이 돼 있어 나무궤짝은 이상이 없었다.
“꺼내.”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하는 장태산의 지시.
“끄으응.”
마저 흙을 거둬내자 나무궤짝의 온전한 상태가 드러났다.
한 힘 하는 신덕수가 나무궤짝을 들어올렸다.
제대로 인상이 구겨질 정도로 궤짝은 무거웠다.
“이게 뭡니까?”
한쪽으로 꺼내놓은 궤짝을 내려다보며 덕수가 물었다.
“네 장가 밑천.”
“장가 밑천요?”
“열어봐.”
“네…….”
‘도대체 무슨 소리신지…….’
형님이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이면서도 신덕수는 감을 잡지 못했다.
염씨네 고택 석등 아래 이런 게 묻혀 있을 줄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이런 것까지 이미 알고 있는 형님의 능력에 다시 한 번 놀랄 뿐이었다.
끼이이이익.
자물쇠도 채워지지 않은 궤짝이 천천히 열렸다.
“헙!!!”
뚜껑을 열던 신덕수가 크게 놀랐다.
궤짝 안에는 놀랍게도…….
“이게 다 뭡니까?”
“보면 몰라. 금덩이잖아. 저 비닐 안에 있는 건 무기명 채권이네. 오호! 일본 채권도 있네.”
놀랍게도 궤짝은 보물 상자였다.
1kg 금괴가 수십 개였다.
꽁꽁 싼 비닐 안에는 형님 말대로 엔화와 채권 뭉치가 들어 있었다.
“설마!”
그때 퍼뜩 떠오른 과거사.
“염씨 조상들이 죽으면서 묻었던 궤짝이다.”
“아!”
염씨 삼형제의 아버지가 죽으면서 함께 사라졌던 가문의 동산.
그것 때문에 삼형제는 기를 쓰고 아버지의 땅을 탐냈다.
“이제 네 거다.”
“염씨 삼형제에게 상속되어야 할 물건인데요. 이렇게 되면 점유이탈물 아닙니까?”
“땅값이란다.”
“네? 땅값요?”
이해가 가지 않는 장태산의 말.
“응. 땅값.”
장태산이 석등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대화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다.
“형님. 거기…… 누가 있습니까?”
장태산이 특별 능력을 소유한 소유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얼떨떨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신덕수는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물었다.
“덕수 네가…… 아버님을 빼닮았구나.”
“그걸 어떻게…….”
“미안하시단다. 그리고 사랑한단다……. 못난 부모 밑에서 이렇게 훤한 인물로 커줘서 더 바랄 게 없으시단다.”
“혀, 형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응시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태산 형님.
덕수의 몸이 덜덜 떨렸다.
전하는 말에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아……부지? 어무이?”
불과 얼마 전까지 입에서 떠나지 않았던 사투리가 다시 덕수 입에서 흘러나왔다.
스으으읏.
그때 뭔지 모르지만 포근한 기운이 덕수를 감쌌다.
“!!!”
맞았다.
어릴 적, 칭얼거리던 자신을 말없이 따스하게 안아주셨던 엄마의 품.
세상 것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엄마만이 줄 수 있었던 그 온기.
“어머님이……. 빨리 장가가란다. 네 장가 밑천 지키느라……. 이승을 못 떠나셨단다.”
장태산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주루루루룩.
신덕수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눈물.
염씨 집안에 땅을 빼앗기고 원통한 한을 품고 돌아가셨던 부모님.
덕수에게 정당한 땅값을 물려주고 싶어 염씨 집안 보물과 함께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감히 다 갚을 수 없는 부모의 은혜.
“어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전생 지리산 호랑이 덕수가 산청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두 번 다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엄마를 뜨겁게 불렀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