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91
692장. 땡 잡은 날.
꿀꺽 꿀꺽 꿀꺽.
옥수수 막걸리를 어느 때보다 시원하게 들이켜는 전문구 회장.
벌써 몇 병째 마셨는지 모른다.
속이 탔다.
촤아아아앗 촤아아앗.
파도 소리를 안주 삼아 전문구는 오랜만에 양껏 막걸리 병을 비워냈다.
‘완벽하게…… 밀렸어.’
로템 매각 문제로 만날 당시만 해도 이렇게 기울지 않았다.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가며 딜을 했다.
누가 봐도 연대에 돌아오는 이익이 많았다.
고정적으로 자동차 미션을 제공한다는 조건은 큰 메리트였다.
안전에 신중한 볼부라면 연대미션의 공신력이 세계적으로 급등할 수 있는 계기였다.
로템 지분도 비싼 값에 팔았다.
어차피 장태산이 아니라면 러시아에서 사업권을 따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중국의 물량 공세는 두려울 정도였다.
국가에서 패키지로 러시아에 사업 제안을 했음이 확실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서로 견제하며 균형적 동반자 자세를 유지했다.
그걸 깨트린 장태산.
“독립운동…… 허허.”
전문구는 헛웃음을 뱉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이제 이십 대 중반의 젊은 청년이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일본은 경쟁자인 만큼 일찍부터 부품 수입을 줄여왔다.
국산화가 필수였다.
일본 부품 업체들의 차별은 관련 업계에서 유명했다.
한국에 판매하는 엔진과 부품들은 일본 국내 업체에 공급되는 부품과 비교해 볼 때 2등급 수준이었다.
대놓고 차별을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연대 입장에서는 그들이 뛰어난 품질을 유지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부당한 조건을 받아들였다.
더럽고 치사해 절치부심 노력해 일궈낸 부품 독립.
기업 운영 안정성과 이익적 측면에서 접근했지 단 한 번도 독립운동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나보다 더 넓고 길게 보는 시각이라니…… 난놈은 난놈이야.”
젊은 친구에게 존경심까지 일었다.
국가 미래 산업을 위해 수조를 투자했다.
50억 달러는 연대가 몇 년 동안 투입할 신차 개발 비용과 맞먹었다.
소형차는 3000억, 대형차는 5000억 정도 개발비가 소요됐다.
그런 엄청난 자금을 탄소섬유 하나에 던졌다.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들 배포.
그런 장태산의 행보에 전문구는 자존심 따위 내려놓고 승복했다.
명분과 자본 모든 것에서 밀렸다.
“행로거산이라니…….”
전문구의 고집스런 경영방식에 대놓고 경고를 해온 장태산.
웃는 얼굴로 바라보며 보낸 차가운 눈빛에 전문구는 항복 선언을 뱉었다.
“회장님. 약주가 과하십니다.”
전문구의 그림자 격인 기획조정실 부회장 정진환이 말렸다.
나이가 있는 회장이 한창 때보다 더 마시고 있었다.
묵묵히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회장이 적잖이 충격받은 걸 알았다.
“자네도 장태산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정진환도 나눈 대화 내용을 대충 회장에게 들었다.
계속되는 장태산과의 인연.
건들지 말아야 할 거물이라는 걸 2인자 격인 정진환은 확실히 깨달았다.
“다른 건 몰라도 회장님을 취하게 만든 걸 보면 그 친구가 대단하기는 합니다.”
“그렇지? 크크크.”
또로로록.
“어라! 그새 다 마신 거야?”
어느새 막걸리 병이 또 비었다.
“회장님…….”
“알았어. 마누라처럼 잔소리 하지 말아. 이게 막잔이야.”
꿀꺽.
차갑게 식은 안주는 손도 안 대고 전문구는 마지막 잔을 들이켰다.
장태산은 진작 자리를 뜬 뒤였다.
“크으! 좋다!”
탁!
전문구 회장은 마지막 잔을 비우고 빈 잔을 테이블에 힘 있게 내려놓았다.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저물고 있는 속초 바닷가.
“사장단 소집해.”
“지금요?”
“응. 지금.”
회장의 황소 눈망울 같은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오랜만에 보는 강렬한 눈빛.
‘변했다. 과거처럼!’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하나둘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있던 전문구 회장이었다.
그런데 장태산과의 만남 이후 과거의 기세를 되찾았다.
오랫동안 지켜봤던 정진환 부회장은 그런 전문구 회장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대호(大虎)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고 있었다.
“회의 주제는 무엇으로…….”
“독립운동!”
“네???”
“으흐흐흐흐흐. 우리도 독립운동 한 번 거창하게 해보자! 연대 독립 운동!!!”
***
[이번 경찰청 대규모 인사는 정권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청와대의 고심이 느껴지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던 별장 동영상에 관련된 고위직들은 모두 한직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특히 차기 서울지방경찰청 청장으로 예정됐던 염동훈 치안감은 보직을 받지 못해 조만간 사퇴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죠. 자리를 남겨주기에는 정권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염중천이 검찰 수사를 받는 와중에 동생이 무사할 수는 없죠. 국민들 정서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되면 염상천 국회의원도 다음 총선에서 공천받기 힘들지 않을까 조심히 예상해 봅니다.] [실세인 여당 친조계에서…….]와장창!
“X발! 이 새끼들아 나 안 죽어! 어디서 개소리들이야!!!”
들고 있던 맥주잔을 힘껏 TV를 향해 던지는 염동천 치안감.
종편 시사프로그램 패널들의 미래 예측에 대한 발언을 듣고 화를 참지 못했다.
별장 성 접대 의혹은 빠르게 덮어지고 있었다.
염중천과 연관된 정재계 인사들이 뒤에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염씨 가문은 권력에서 배제됐다.
그중에서 경찰 고위직인 염동천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괜한 TV에 맥주잔을 왜 던져요!”
“뭐라고? 이 여편네가 어디서 개소리야!”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를 풀지 못한 염동천이 안방에서 나오는 와이프를 향해 소리쳤다.
“뭐요? 개소리? 지금 말 다 했어요?”
“그래! 개소리!”
“…….”
평생을 기고만장하게 살다 자리에서 쫓겨난 뒤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염동천을 한심한 듯 노려보는 와이프.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아요. 우리 이혼해요.”
“……뭐라고! 이혼?”
“큰 형님도 오래 참았죠. 정말 염씨 집안 징글징글해요! 당신 포함해서 모두 다 바람둥이에 폭력적이에요!”
“바람둥이? 야! 조선미!”
쿵쿵쿵.
염동천이 빠르게 아내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스윽.
손이 높이 올라갔다.
“왜! 또 때리게? 그래 때려라! 이제 맞고는 못 산다. 때려! 나도 뉴스에 한번 나와 보자!”
다른 때 같지 않게 조선미가 큰소리로 악을 썼다.
“닥쳐! 이게 뒤지려고 미쳤나!”
염동천의 눈알이 돌아갔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인 와이프가 한 식구로 안 보였다.
“때려! 대단한 집이라고 자랑하더니 친일파? 애들이 얼마나 부끄러워하는지 알기나 해? 학교에서 친일파라고 왕따를 당해! 그런데 아빠라는 작자가 새끼들 일에는 관심도 없어! 이혼해! 이 더러운 집안 내력을 애들한테 물려주기…….”
쫘아아악! 쫘아아악!
급기야 염동천이 참지 못하고 손을 날렸다.
“아아악! 악!”
뺨을 맞고 비명을 지르는 조선미.
“개새끼야! 때려! 더 때려! 때리라고!”
얼굴에 손자국이 선명하게 난 조선미가 악을 쓰며 염동천을 더 자극했다.
“그래 오늘 잘 걸렸다! 서방 무서운 줄 모르고 어디서!”
쫘아악! 쫘악!
평소 부부 싸움 때도 폭력을 예사로 행사했던 염동천은 아주 고삐가 풀렸다.
스트레스를 풀려는 듯 아내 조선미를 닥치는 대로 손바닥과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아아악! 아아아아아악!”
비명을 멈추지 않고 계속 지르는 조선미.
그러나 염동천은 짐작도 못 하고 있었다.
집안에 설치된 몰래 카메라가 모든 상황을 낱낱이 찍고 있다는 사실을.
***
“오! 좋은데? 추녀마루와 내림마루, 용마루, 망와, 머거불까지……. 다 정석대로 건축됐다. 작품이다. 작품.”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한옥을 만났다.
산청에 위치한 한옥 고택.
잘난 집안이 살던 곳답게 넓은 대지면적과 연면적, 건축면적, 건폐율 모두 대단했다.
수백 평 부지 위에 건축된 수십 칸 한옥 고택.
“어린 시절…… 이 집만 오면 주눅이 들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 모두 그랬습니다. 대대로 지주 행세를 해온 터라 모두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염씨 집안은 현대판 양반 가문이나 진배없었습니다.”
고택을 바라보며 덕수는 과거를 회상했다.
종이었던 아버지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덕수에게 씻을 수 없는 몹쓸 짓을 남긴 염씨 집안사람들.
이제야 벌을 받게 됐다.
고택은 몇 달 동안 방치된 듯 먼지가 부옇게 앉았다.
마당에는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아 잡초가 무성했다.
“그것도 다 한때다. 지금은 이 집이 네 손에 들어왔잖아.”
“다 형님 덕분입니다.”
덕수의 연락을 받았다.
염중천의 이혼 소송이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됐다.
여론이 악화되자 염중천은 재산을 처분하기를 원했다.
비밀 재산까지 들춰내자 급해진 것이다.
변호사들끼리 만나 합의 조정 이혼으로 가닥이 잡혔다.
수백억 대 재산 중에서 상당한 몫이 성공 수수료로 돌아왔다.
염중천은 대대로 살던 고택도 매각했다.
산청에서 인심을 잃게 되면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탓이다.
한 많은 그 고택을 덕수가 구입했다.
덕수의 부모님 뼛가루가 뿌려졌다는 밭에 가서 인사도 드렸다.
복수의 1단계가 완성된 셈이다.
“현대식으로 개량하자. 돈과 정성을 들여야 집도 새 주인을 진심으로 맞아주는 법이다.”
“집이 사람을 맞이하는 겁니까?”
“가택신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집 담당 토지신, 조왕신을 비롯해 여러 집안 신들이 사람을 봐가면서 들이는 거다. 괜히 욕심 부려 남의 집을 탐했다가는 죽어 나갈 수도 있다.”
“저는…… 괜찮은 겁니까?”
“집도 친일파라는 딱지는 싫어한다. 봐라. 널 보고 집이 웃고 있잖아.”
오래됐지만 기운이 남다른 고택은 새로운 주인인 신덕수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나에게만 보이는 밝은 기운들.
“초석과 기둥, 서까래가 단단하니 새로 기와를 얹고 통창과 폴딩식 한식 창호를 달면 기가 막히겠다. 전기공사를 비롯해 부엌과 화장실도 대대적으로 개량하면 바람 쐬기 좋은 별장이 될 것 같다. 내가 아는 대목장분들이 계시니 개조는 걱정하지 마라. 형이 한턱내마.”
나보다 나이 많은 덕수였지만 하대는 자연스러웠다.
“언제나 감사드릴 뿐입니다.”
“속은 시원해?”
“……아직은 아닙니다.”
덕수의 복수는 현재진행 중이었다.
염중천은 과거처럼 구속되지 않았다.
언론의 힘을 이용했지만 염중천이 심어 놓은 권력이 뿌리가 더 탄탄했다.
여러 사건들로 국민들 관심사가 일제히 다른 곳으로 돌려졌다.
이학희에 대한 수사도 지지부진.
다만 염씨 집안 셋째 아들 염동천만 경찰직에서 내려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염씨 집안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염중천 자식들을 비롯해 나머지 핏줄들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대를 이을 만한 자식이 없는 집안은 가문이 닫힌다고 봐야 했다.
갈수록 핏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여전히 중요했다.
“아직 시간과 기회가 충분하다. 무리하지는 마.”
“형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우직한 신덕수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띠리리리.
그때 덕수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JS로펌 변호사 신덕수입니다.”
목소리를 쫙 까는 신덕수.
어느새 변호사라는 호칭이 제법 어울리는 인물이 됐다.
– 증거 자료 확보했어요.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불안한 여성의 목소리.
“괜찮으십니까?”
– 네. 지금 한국대 병원인데 전치 4주 정도가 나온다고 해요.
“……수고하셨습니다.”
– 아니에요. 악마 같은 놈과 이 집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참을 수 있어요.
“바로 경호원들 보내겠습니다. 특실로 입원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 변호사님만 믿겠어요. 큰 형님처럼 저를 구해주세요!
간절한 여인의 목소리.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그 집안에서 구원해 드리겠습니다!”
덕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 빨리 오실 수는 없나요?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지금 지방이니…… 몇 시간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 기다릴게요.
통화가 끝났다.
“염동천 와이프?”
“네. 증거 자료를 모두 확보했다고 합니다.”
보고받은 직후 함께 계획했던 사건이었다.
“필요한 지원 있으면 말해.”
“알겠습니다.”
염씨 집안 며느리들이 모두 다 이혼을 원했다.
가문의 안주인들이 없어지는 상황.
“그럼 올라가자. 공사 끝나면 이곳에서 술 한잔 거하게……. 응?”
그렇게 고택을 둘러보며 돌아서려는 순간.
유난히 한곳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형님! 왜 뭐가 있습니까?”
“덕수야……. 너 땡 잡은 거 같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