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70
875장. 가을과 함께 떠나다.
“그 자식 마음에 안 들어요. 생각만 해도 찝찝하다고나 할까…….”
“누구 말입니까?”
“장립 말입니다.”
“아!”
베이다이허의 시진핑 별장 바로 지척에 위치하고 있는 왕뢰 상무위원의 별장.
거실에는 시진핑의 최측근이자 태자당의 핵심 권력자들인 세 명의 상무위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중앙판공청 주임 방창걸, 중앙서기처 서기 왕뢰, 중앙규율검사위원회 서기 이악산.
이름만 대어도, 대륙을 벌벌 떨게 만들고도 남을 삼인방이 얼큰하게 술에 취했다.
남은 2014년과 내년 여름까지의 권력 배분이 끝이 났다.
피 터지는 결전이었다.
상해방의 저력은 여전히 무서웠다.
대형 민간 기업 상당수가 상해방의 기반이 되었다.
국영 기업들 간부들도 마찬가지.
하나씩 하나씩 빼앗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상해방은 중국의 부(富) 반절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무너질 것 같다가도 다시 회복하기를 반복했다.
저변에 깔려 있는 인재들이 상당히 많았다.
밑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공산당원들 중 상당수가 상해방과 연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앞으로 적어도 5년 이상은 더 털어내야 기세가 꺾일 것으로 보였다.
원자바오가 이끄는 공청단도 견제구를 던졌다.
그런 상황에 돌발폭풍처럼 나타난 장립.
이래저래 베이다이허의 중심이 되었던 건 인정해야 했다.
“조심히 다뤄요. 시 주석께서 관심이 많아요.”
방창걸이 주의를 주었다.
시 주석뿐만 아니라 얽히고설킨 인연 관계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벌써 여기 있는 이들도 장립의 단약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몇 년 후면 다들 일흔을 넘긴다.
생명 연장의 묘약을 소유한 귀인 앞에서는 꼬리를 말 수밖에 없는 입장들이다.
“그래서 더 기분이 나쁘단 말입니다. 그깟 단약이 뭐라고 다들 그렇게 눈치를 보는지…….”
아직은 젊은 축에 드는 이악산이 큰소리를 냈다.
여기 모인 이들 중에 공적 무력을 소유한 유일한 권력자가 바로 이악산이었다.
방창걸이 은근히 눈살을 찌푸렸다.
‘저러다 다칠라. 쯧쯧.’
가장 나이가 많은 방창걸은 이악산의 혈기에 혀를 찼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그 위력을 가장 잘 발휘하는 법이다.
그걸 모르고 혈기에 취해 망나니처럼 칼을 휘두르는 이악산.
이악산의 불법적인 행위는, 알만 한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렸다.
특히 불법으로 사유 재산을 불리고 있다는 소문이 많이 돌았다.
상해방 인물들을 차례로 정리하면서 그들의 재산을 개인적으로 빼돌린 것이다.
물론 윗선에도 어느 정도 상납을 했지만 남은 것들은 모두 자신과 가족 명의 재산으로 세탁했다.
그 부분을 시 주석이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보기와 달리 시진핑은 더 욕심이 많았다.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는 이악산.
“방 주임님 말처럼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장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의 신임도 두텁다는 소문이 쫙 퍼졌어요.”
그나마 눈치 빠른 왕뢰가 이악산을 말리고 나섰다.
“흥! 그래봤자. 근본도 모르는 해외 화교 출신 놈입니다. 어디서 이상한 단약 제조법을 배워와 설치지만 고작 그뿐입니다.”
이악산은 장립에 대한 분을 쉽게 풀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요절을 내고 싶었다.
‘베이다이허 기간이 끝나자마자…… 손을 봐주마!’
아들의 앞날을 위해서도 장립은 분명하게 제거되어야만 했다.
똑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다급하게 여러 번 들렸다.
“무슨 일이야?”
별장 주인 왕뢰가 신경질적으로 문을 향해 물었다.
술잔이 오갔지만 분명 중요한 회의 중이었다.
이런 시간에는 웬만히 급한 사건이 아니면 분위기를 흐트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만큼 급한 일이라는 의미였다.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긴장과 흥분이 섞인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넵!”
드르륵.
묵직한 문이 열렸다.
안의 예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특별히 방음처리가 되어 있는 문이었다.
“어? 자네는 왜.”
“서……기님.”
왕뢰의 비서뿐만 아니라 이악산의 최측근 비서도 함께였다.
이미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두 명의 비서.
“무슨 일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방창걸이 다급하게 물었다.
하지만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주저하는 두 사람.
“무슨 일이냐니까!”
급기야 왕뢰가 목소리를 높이며 호통을 쳤다.
“사, 사고가 났습니다!”
주저하던 비서가 화들짝 놀라며 툭 내뱉었다.
“사고? 무슨 사고?”
“……이광 도련님이.”
이악산의 비서가 말을 뱉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광이 왜?”
상황 파악을 못 한 이악산이 느긋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조금 전 사고사를 당하셨습니다.”
“사고사……. 뭐! 사고사!!!”
콰다당.
놀란 이악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의자가 뒤로 넘어졌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사고사라니!”
왕뢰가 덩달아 놀라 물었다.
사고도 아니고 사고사 보고였다.
그 말인즉 이광이 죽었다는 뜻이었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이광 도련님이 스포츠카를 몰다 절벽에서 그만…….”
털썩.
비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는 이악산.
넋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손이 귀해 겨우 얻은 아들이었다.
오냐오냐 감싸며 키워 버릇이 없긴 해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녀석이었다.
경제 호황 덕에 시대적으로 대부분 가정의 자제들이 어리광을 피우며 크는 때였다.
이광 수준 정도는 중국 권력자들에게 흠거리도 되지 않았다.
때가 되면 정신을 차리고 제 구실을 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여, 이광이 일으키는 사고쯤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언젠가 제 뒤를 이어 가문을 이끌어갈 아들이었다.
그런 귀한 외동아들 이광이 사고사를 당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이악산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이광아! 이과아아아아아앙아아아아!!!”
타다닥.
넋이 나간 채로 미친 듯이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뛰쳐나가는 이악산.
“…….”
실내는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가끔 벌어지는 권력자 가문 자제들의 사고 소식.
대부분 산아 제한으로 자식이 하나밖에 없는 권력자들이라 이악산이 당한 일이 남일 같지 않았다.
“휴우.”
누군가의 입에서 새어나온 한숨소리.
예상치 못한 소식과 함께 베이다이허의 마지막 밤이 조용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
타다다다다닥.
베이다이허의 이른 아침.
지난밤을 보내고 하루아침에 날이 쌀쌀해졌다.
입추가 지나면서 곧장 찾아온 기온이 바뀐 차가운 날씨.
어제 낮에 느꼈던 따사로움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루 만에 완연한 가을 날씨로 변했다.
몽골 쪽에서 불어오기 시작한 북쪽 바람에 모두의 옷차림도 바뀌었다.
가을이 찾아온 베이다이허의 한가로운 풍경 속에서 한 여인이 뛰었다.
머리를 가볍게 묶고 땀이 날 만큼 힘차게 달리는 여인.
몸짓에서 다급함이 엿보였다.
“헉헉.”
그녀는 차를 놔두고 직접 두 발로 뛰었다.
답답함과 그리운 마음을 날리고 싶어 뛰었다.
덜컥.
별장을 지키는 경호원이 그녀를 알아보고 비켜섰다.
띵동 띵동!
마당을 가로질러 급하게 현관 벨을 누르는 여인.
“누구세요?”
“나……야. 류미.”
“이른 아침에 무슨 일?”
“열어.”
띠릭.
현관문이 열렸다.
이른 아침 수련을 마친 양소려가 기가 창창한 모습으로 류미를 맞았다.
“립은?”
양소려를 보자마자 안쪽을 휙 둘러보며 립을 찾는 류미.
“떠났어.”
“떠나? 언제!”
“오늘 새벽에.”
“아!”
양소려의 말에 류미가 짧게 탄식을 터트렸다.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장립을 보고 싶었다.
한발 늦었다.
밤사이 바뀐 가을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린 장립.
“이광이 죽어서 다들 떠들썩한데…… 장립이 먼저 생각났어?”
양소려가 류미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 물었다.
밤새 몹시 시끄러웠다.
상무위원 이악산의 아들이 술을 마신 상태로 운전을 하다 절벽으로 추락했다.
평소 음주운전을 즐겨 했던 이광이었기에 사고 소식을 듣고 다들 ‘그랬구나.’ 하는 반응들이었다.
그러나 사고에 의구심을 품는 자들도 꽤 있었다.
이광을 따라다니던 경호원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전에 이광의 경호원들이 바닷가에서 장립과 만나고 있던 장면을 목격했다는 얘기도 함께 나왔다.
정황상 장립에 대해 의심은 갔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이악산의 경호원들이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찾느라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렇게 깊은 밤이 지나고 밝아온 아침.
속속 권력자들이 베이다이허를 떠났다.
그중에는 장립도 포함됐다.
“쓰레기 하나 사라졌는데 내가 신경 써야 해?”
류미의 반응은 생각보다 더 쿨했다.
권력자 집안에서 태어나 타인의 생사를 많이 목격해 왔다.
북경 고위 집안 자제들만 다닐 수 있는 유치원과 학교를 거쳐 오면서, 조용히 친구들이 사라지는 일을 종종 겪었다.
“다들 예민해. 적당히 떠들고 다녀.”
“됐고. 립은 어디로 갔어? 홍콩?”
“몰라.”
“뭐라고? 몰라? 너 나 질투해?”
류미가 양소려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
“어.”
“!!!”
양소려의 솔직한 반응에 류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자신이 알고 있는 양소려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미 무술인이었다.
남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더 나은 실력을 배양해 상해방에 도움이 되고자 키워진 양소려.
그런데 오늘 난생처음으로 예상치 못한 양소려의 솔직한 대답을 들었다.
“난 남자 좋아하면 안 돼?”
“네 사형들이 좋아할까?”
“걱정 마. 그건 내 일이니까.”
똑 부러진 양소려의 대답.
“후훗. 심심하지 않겠네.”
류미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내뱉었다.
“만나고 싶으면 직접 연락해.”
“알았어. 홍콩으로 찾아갈게.”
“할 말 다 했지?”
“어.”
“그럼 가줄래? 나도 짐을 싸야 하거든.”
“재밌네. 호호호호호.”
류미가 과하다 싶을 만큼 소리 내어 웃었다.
“간다~.”
그리고 가볍게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하아아.”
류미가 사라지자 양소려가 긴 한숨을 뱉었다.
지난 밤 한숨도 못 잤다.
이광의 죽음에 장립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장립을 감시하기 위해 붙인 경호원들의 보고.
이 사실을 다른 집단에서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태연하기만 했던 장립.
새벽에 그가 떠날 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광의 죽음과 관련이 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고 빙긋 웃기만 하던 장립.
“나쁜 남자야……. 몸에 해로워.”
스트레스를 홀로 감당하고 있던 양소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장립에게 자꾸 이끌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같이 수련했던 사형들의 애정공세를 지금까지 단칼에 거절해 왔던 양소려에게 불어온 훈풍.
양소려는 심마에 빠트리는 낯선 감정에 마음이 괴로웠다.
“어디에 있든 조심해……. 장립…….”
상해방을 떠나 개인적으로 엄청난 도움을 주었던 장립이다.
양소려는 진심으로 그의 건투를 빌었다.
중국 권력 한복판에 들어온 이상 기류를 동반한 태풍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이 순간부터 모든 게 속속들이 상부에 보고될 게 확실했다.
그 촘촘한 그물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 수십 번 발생할 것이다.
권력의 또 다른 이름이 왜 피의 권좌인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
“가을이네…….”
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
엊그제까지 맹위를 떨치던 여름이 금세 꺾이고 날씨는 가을로 바뀌고 있었다.
봉은사에 은은히 내려앉고 있는 가을 정취.
한껏 눈에 담았다.
베이다이허의 일은 잘 마무리 됐다.
이후 미국을 거쳐 장태산으로 돌아와 입국했다.
“괜찮은 추억이었어.”
중국 권력자들과 함께했던 베이다이허의 낮과 밤.
날것 같은 권력의 속성을 제대로 맛봤다.
공산주의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전제 제국주의와 같은 중국의 권력은 독특했다.
많은 걸 깨달았다.
욕망은 그 자체로 강력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것.
“이곳도 다르지 않아.”
대한민국도 모양만 다를 뿐 똑같은 욕망을 연료 삼아 나라를 움직였다.
결코 나쁘다고만 말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감정.
그 안에서 길을 찾아가는 나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죽음을 경험하고 다시 회귀한 나.
그만큼 다른 이들과 입장이 다른 만큼 한 발자국 뒤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남달랐다.
그리고.
삐이이잇.
– 회장님. 다들 모였습니다.
발랄한 유세라 상무의 목소리다.
“모두…… 들어오라고 하세요.”
– 네!
물론 삶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는 나 또한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치열하다.
전쟁 중인 세계 한복판에서 직접 싸워야 하는 장수.
나의 신분은 홍콩의 장립이고, 황실 수호 공작 베커 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은 회장 장태산이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