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74
982장. 부탁의 방법(2).
“양우석이라ⵈⵈ.”
“장태산이 국회에 심어 놓은 끄나풀이 확실합니다. 지역구 당선에도 장태산의 도움을 받았다는 게 국정원 정보팀의 결론입니다.”
“그래 수상하긴 해. 본래 장주시가 보수 쪽 색채가 강했잖아. 그런데 갑자기 스캔들로 사건이 커지면서 양우석이 어부지리로 당선됐단 말이지.”
청와대 내부에 위치한 민정수석실.
윤병운은 국정원에서 파견 나온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뛰어난 머리와 잔꾀, 냉정함으로 오늘의 자리에 오른 윤병운은 적에 대한 촉수를 접은 적이 없었다.
몸을 사리는 공길춘 실장과는 투지가 달랐다.
사실 장태산의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나빴다.
자신과 인연이 깊었던 고위 공무원들 상당수가 여론에 밀려 낙마했다.
모두 다 계획한 듯 중요한 순간에 벌어진 일들 때문이었다.
가장 뼈아픈 사건은 검찰총장 임명 때였다.
이학희 총장은 자신이 심사숙고해 밀던 패였다.
놀기 좋아하고 눈치도 빨랐던 이학희 총장.
그를 통해 검찰을 장악하고 조근영 대통령과 자신들의 권력을 확고히 유지하기 위한 계획이 있었다.
검찰이 갖고 휘두르는 힘을 윤병운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없는 죄도 만들어 상대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는 사법 폭력 조직이 검찰이었다.
그런 검찰을 휘어잡을 수만 있다면 정권이 바뀌어도 뒤탈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청문회 과정 중 터진 스캔들로 인해 내정이 확실시됐던 이학희가 낙마했다.
그 틈에 양우석이 스타가 됐다.
‘뒤에 장태산 네놈이 있겠지.’
불시에 어이없이 당한 터라 후에 사건을 파고들었던 윤병운.
이학희 뒤에 있던 스폰 염중천 때문에 일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을 찾아냈다.
염중천 부부의 이혼소송에 장태산 로펌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교묘하게 수법들이 감춰져 있었지만 엘리트 검사 윤병운의 눈은 피할 수 없었다.
마침내 꼬리를 잡았다.
결국 장태산이 조근영 대통령에게 엿을 먹인 결과가 초래됐다.
그 여파는 비서실장과 자신에게도 미쳤다.
워낙 알아서 몸을 바짝 낮추고 주순자에게 잘 보여 버티고 있었지만 그도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전에 장태산의 목을 꺾어 놓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심지어 공길춘은 장태산의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강한 자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공길춘.
그에 반해 윤병운은 독불장군 기질이 다분했다.
한 번 목표로 삼은 적은 반드시 물어뜯고 찢어발겨야 속이 편했다.
그래서 윤병운은 지금까지 장태산에 관련한 정보를 꾸준히 모았다.
러시아, 미국을 제집 드나들 듯하는 와중에도 사법시험에 합격한 장태산은 그럴싸한 사냥감이었다.
하물며 보유한 재산의 규모가 얼마인지 모를 정도다.
외환거래법 위반으로 조지고 싶어도 좀체 증거를 잡기가 어려웠다.
뒤에 두고 있는 배경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그러한 배경이 윤병운을 더욱 자극했다.
‘네놈이 얼마나 잘났는지 끝까지 해보자!’
충성하는 정보원들을 이용해 장태산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따로 윗선에 보고하지는 않았다.
물론 눈에 띌 정도로 과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은밀히 청와대에 앉아 장태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 틈에 걸려든 양우석과 장태산의 조우.
당장 엮어 언론에 뿌리면 좋은 횟감이 되겠지만 잠시 참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어설프게 공격해 봐야 도리어 역으로 당하게 될 걸 잘 알았다.
검사들이 범죄자들을 상대할 때는 타이밍을 잘 맞춰 한 방을 깊숙이 찌르는 기술을 썼다.
절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절대적 한 수.
윤병운은 그때를 노렸다.
“그리고 조금 전 부속 비서실을 통해 들어온 내용이 있습니다.”
속삭이듯 은밀히 입을 여는 정보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뭐야?”
윤병운도 속삭이듯 물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청와대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최대한 입 밖에 낼 때 조심해야만 했다.
조근영 대통령의 사생활이 외부로 알려지는 순간 전 국민이 떼로 일어날 게 자명했다.
자신도 보고로 전해 들으며 인상을 찌푸렸던 일들이 수두룩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평생 죽을 때까지 발설하지 말아야 할 청와대 야사.
오월호 사건 때문에 청와대 보안은 더 강화됐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먹통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컨트롤타워.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현 정권은 끝장날 것이다.
“주 선생님이 어제 들어온 건 아시죠?”
“그래.”
“VIP와 뭔가를 상의하시다ⵈⵈ.”
정보원이 말을 잇다 잠시 입을 다물었다.
“뭔데?”
윤병운은 촉이 날카로워지는 걸 느꼈다.
자신과도 관련되어 있을 주순자의 행동.
“장태산에게 뭔가 부탁을 하려 한다고 합니다.”
“뭐라고? 부탁? 주 선생님이?”
“네.”
“뭣 때문에?”
“그게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아! 가장 중요한 걸 빠뜨리면 어떻게 해!”
“부속 비서관들 통해서 알아봐! 최대한 빨리!”
“넵!”
‘주순자 또라이 여편네 같으니! 적과 아군도 구분을 못 해! 적인 놈에게 도대체 무슨 부탁을 하겠다는 거야!’
즉흥적인 아줌마 식견으로 대한민국을 주무르고 있는 주순자.
윤병운은 주순자만 생각하면 골치가 지끈 아파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아이의 손에 쥐어진 장난감 같은 권력의 공.
통제되지 않는 주순자를 통해 사방 천지로 던져지고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버텨 내고 있지만 세상에 완벽한 보안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윤병운은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하고 튀어?’
언제 불통이 튈지 모르는 정권의 미래.
하지만 아직은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강했다.
정치권에서 물러나기 전에 양껏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움켜진 자만이 알고 있는 권력의 달콤함은 한 번 중독되면 끊기 어려운 마약과 같았다.
냉철한 윤병운조차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권력이 주는 쾌락은 상상을 초월했다.
***
– 뭡니까? 형님 이제 아줌마도ⵈⵈ.
닥쳐! 잡귀야!
음란마귀 같은 잡귀의 상상력.
이계로 가서 노바 형님에게 노예로 진상하면 아주 좋을 것 같다.
“누구?”
임성철 회장도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물었다.
어차피 이들은 한팀이었다.
정보를 오픈해도 상관없었다.
“바쁘신 주순자 여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다 주시고 영광입니다.”
“!!!”
주순자라는 말에 임성철 회장이 냄비를 든 채 화들짝 놀랐다.
정보력이 남다른 오정의 회장이니 그럴 만도 했다.
주순자가 대한민국의 보이지 않는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 누구예요? 왜 회장님도 놀라시는 겁니까? 답답해 미치겠네!
죽어서도 귀신들은 세상사에 관심이 많았다.
장립은 주순자의 정체를 몹시 궁금해했다.
– 할 말 있는데 우리 좀 만날까?
어라? 이 아줌마 뭐지?
나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도 아니고 목소리에서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뭔가 목적이 있음이 확실했다.
– 수상한데ⵈⵈ. 수상해.
귀신도 그 냄새를 맡았다.
임설철 회장도 자리를 뜨지 않고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목적이 있는 아줌마의 위험한 초대.
“뭡니까?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주순자도 알고 보면 재밌는 여자다.
잔머리는 우수하지만 멀리 보는 통찰력은 없었다.
정치판과 종교 판에서 잔뼈가 굵어 사람 홀리는 재주가 특출날 뿐이다.
하지만 행동을 보면 허술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근영 대통령과 딱 어울리는 한 세트였다.
포장지만 화려한 부실한 상품.
– 보자고 하면 볼 것이지 남자가 왜 그렇게 말이 많아!
까칠한 성격 어디로 안 사라진다.
한 번 튕기자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권력의 정점에 있으니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여자였다.
안하무인의 주순자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나를 타박했다.
“우리 관계가 뭇 남녀 사이는 더더욱 아닌데. 그 말을 들으니 웃깁니다.”
– 야! 장태산!!!
참지 못하고 버럭 호통치는 주순자.
이제야 말이 통했다.
– 뭡니까! 이 몰상식하고 교양 없는 아줌마는!
귀신이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주순자 목소리를 듣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주순자 씨.”
좀 더 낮고 진중한 목소리로 주순자를 불렀다.
– 왜!
“제 경고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적정선은 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주순자 집에서 마주쳤던 사건을 다시 한 번 인식시켰다.
그때 구광필의 죽음을 언급하며 휴전을 맺은 일을 떠올리게 했다.
간간이 주순자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나에게 반말로 지껄이는 것까지는 허용하지 않았다.
저런 스타일의 여자는 한 번 받아주면 주제를 망각하기 마련이다.
적당히 자르고 적당히 협박을 겸해야 정신줄을 놓지 않는다.
– 미안해ⵈⵈ. 내가 잠시 흥분했나봐.
주순자가 퍼뜩 과거를 떠올리고 금세 꼬리를 말았다.
“아는 사이일수록 서로 예의를 지켜야 아름다운 사회가 되는 법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필요와 목적이 있을 때마다 주순자와 난 가끔씩 딜을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
“말하십시오. 뭘 도와주면 됩니까?”
– 만나서 얘기하자.
주순자의 목소리가 한결 차분해졌다.
그렇다면 그녀의 불같은 성격을 가라앉힐 만큼 큰일을 도모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싫습니다.”
간단명료하게 단칼에 거절했다.
괜히 크게 엮여봐야 나중에 해로웠다.
“전화로 하시죠.”
– 국가 일이야! 그러니까 고집 그만 부려.
국가 일?
주순자 입에서 흘러나오는 ‘국가’라는 말이 웃겼다.
자신이 대한민국을 진짜 운영하는 주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한 번 만나봐.”
임성철 회장이 입을 뻐끔거리며 소리 없이 말했다.
뭔가 감이 오는 듯한 표정이다.
– 저 아줌마 쌍판을 보고 싶습니다! 콜 하시죠!
귀신이 팔을 걷어붙였다.
돈이나 여타 다른 문제는 아닌 게 확실하다.
동업자가 아니라 서로 간에 적이라는 걸 그녀와 나 둘 다 잘 알고 있다.
– 나라를 위해 힘 한번 써줘.
“???”
저렇게 말하니 괜히 궁금하기는 하다.
천하의 주순자가 나라를 팔아 나를 초청할 정도라면 상상하는 것보다 사이즈가 클 가능성이 높았다.
“뭡니까? 그 일이.”
– 집이지? 차 보냈어. 거의 도착했을 거야.
어라. 이 아줌마 추진력 보소!
겁도 없이 집으로 차를 보낸 주 여사.
삐이잇.
마침 인터폰이 울렸다.
“무슨 일입니까?”
인터폰을 받았다.
– 회장님. 청와대에서 차를 보내왔습니다.
“네? 청와대요???”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