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492)
492.
부악- 부악- 부악-!
레오는 신경질적으로 엘제니에의 머리를 붙잡은 채 목을 썰고 있었다.
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던 엘제니에가 순간 레오와 눈이 마주쳤다.
감정이란 게 느껴지지 않는 냉담한 무표정.
거기에 무미건조한 붉은색 눈동자까지.
그 모습을 보며 엘제니에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키에에에에에에! 커헉!”
엘제니에의 입에서 쏟아지던 비명이 막혔다.
그 입을 틀어막은 건 다름 아닌 그녀의 목을 썰고 있던 레오의 검이었다.
“시끄러우니까 그만 짖어.”
“커헉! 꺼억! 꺼억!”
푸욱-!
레오는 짜증스럽게 엘제니에의 입에 꽂아 넣은 검에 힘을 주었다.
입을 관통해 목 뒤를 뚫고 나온 검이 더욱 상대의 살에 파고 든다.
울컥- 울컥- 피를 토해내며 끅끅- 거리던 엘제니에의 핏빛 눈동자가 위험스럽게 번뜩였다.
번쩍-! 꽈아아아앙-!
엘제니에가 뿜어낸 피에서 붉은색 섬광이 번뜩이더니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지축이 흔들리는 거대한 폭발.
치솟는 검붉은 색 화염과 연기 속에서 엘제니에가 목을 부여잡은 채 뛰쳐나왔다.
“하하하! 멍청한 자식!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엘제니에가 불타는 핏빛 불꽃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나는 피의 여왕! 내 피는 곧 강력한 무기가 되지! 영웅들도 두려워하는 힘이야! 꼴좋다! 아하하하!”
핏발이 선 눈으로 숨을 헐떡이며 레오를 마구 조롱했다.
필요 이상으로 말을 내뱉는 엘제니에.
그것은 공포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마족으로서 공포의 존재로 살아왔다.
군단장의 자리에 오를 만큼 엘제니에는 태어날 때부터 강력한 마족이었다.
수없이 많은 전장에서 활약해왔고 그 과정에서 많은 영웅들과 싸웠다.
엘제니아는 약자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맞서 싸운 적 중엔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강자도 있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조금 전처럼 벌레를 잡듯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레오가 풍긴 기운은 단순히 압도적인 강자라던가 사냥꾼이라는 느낌이 아니었다.
‘마치 도살자 같았어.’
짧은 순간 각인 된 레오라는 공포에서 엘제니에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화르르륵-!
“……!”
핏빛 화염이 일렁이더니 한곳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화르륵-!
강력한 폭발과 화염에 휩쓸렸음에도 불구하고 레오의 몸에는 작은 그을음조차 없었다.
화르르륵-!
손바닥 위에서 불타는 엘제니에의 피의 화염을 내려다보던 레오가 고개를 들었다.
“보면 볼수록 짜증 나네.”
“뭐라고?”
“마물 여왕의 군단 출신이냐?”
“그걸 어떻게?!”
레오의 말에 엘제니에가 흠칫 몸을 떨었다.
타르타로스의 군단장은 마족을 이끄는 존재.
그 와중에 자신의 심복을 창조하기도 한다.
그리고 군단장의 특성에 따라 탄생한 마족의 성향도 드러난다.
레오의 눈에 맺힌 살기가 더욱 스산해졌다.
이곳은 오래전 루나가 눈을 감은 곳.
이런 장소에 마족의 발길이 닿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더더욱 그 마족이 5000년 전.
루나와 악연이 깊은 마물 여왕과 관련된 마족이라면 더더욱.
화르르륵-!
레오의 손에서 불타던 피의 화염이 진홍색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연옥.”
레오가 주문을 완성했다.
별의 마법으로 만들어낸 연옥의 불꽃.
루나가 완성한 별의 마법의 불 계통 마법 중 최상단에 위치한 주문이다.
물론 루니아가 익힌 염제까지 포함한다면 별의 마법 중 최강의 불의 마법은 염제이지만 애석하게도 염제는 루나가 살아생전 완성하지 못한 마법이다.
그렇기에 완성된 마법이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별의 마법 불꽃 계통 중 최강은 이 연옥이다.
그리고 연옥은 염제를 완성시키기 위한 실험과정에서 탄생한 일종의 염제의 하위호환 마법.
하지만…….
‘염제는 에레보스를 죽이기 위해 루나가 연구했던 마법이야.’
레오는 자신의 손에서 불타오르는 연옥을 바라보았다.
비록 염제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신적 존재인 에레보스가 아닌 마족들에게는 전율스러운 화력의 마법이다.
더더욱.
‘불꽃을 다루는 마족들의 천적이지.’
연옥은 정화의 불꽃.
불꽃을 다루는 마족들에게는 치명적인 힘을 발휘하는 마법이다.
화르륵-!
레오의 검에 연옥이 인챈트 되었다.
“레오…… 도령?”
그런 레오를 첸 시아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자신이 알고 있는 레오와는 달랐다.
“화났어요?”
걱정스러운 듯 묻는 첸 시아를 돌아본 레오가 조금 쓰게 웃으며 말했다.
“둘 다 여기서 기다릴래?”
레오가 다시 검을 바라보았다.
“그다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거든.”
그때였다.
레오의 모습을 보다 못한 엘제니에가 도주했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눈앞의 소년이 괴물이라는 것을.
레오가 엘제니에를 추격하려는 순간 게이트가 열리고 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걸 본 레오가 인상을 찡그릴 때였다.
“가세요, 레오님.”
에이란이 검을 뽑으며 말했다.
“괜찮겠어?”
“용서하실 수 없는 거잖아요. 루나님이 잠드신 이 장소에 마족이 발을 들이는 것을.”
에이란이 평소와는 다른 날카로운 눈으로 말했다.
“저도 용서할 수 없어요. 저 흉물스러운 마물들은 제가 베어낼게요.”
에이란의 말에 첸 시아가 손을 들어 올렸다.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레오 도령을 따르려고 다짐한 순간부터 레오 도령의 발목을 잡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 없어요.”
첸 시아가 빙긋 웃었다.
“저와 에이란 양이 힘을 합친다면 저런 마물들은 충분히 해치 울 수 있어요. 걱정말고 저 군단장을 처단해주세요.”
“괜찮겠어?”
“레오 도령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아직 부족하겠죠. 하지만 우리를 마냥 지켜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말아주세요. 전에 전투학 수업 때 듀란군에게 말했죠? 정점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첸 시아가 빙그레 웃었다.
“저는 레오 도령과 같은 무대에 서고 싶어요. 최선을 다해 쫓아갈 거예요. 그러니 믿어주세요.”
“저도에요! 레오님!”
의욕적으로 말하는 두 사람을 레오가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헛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빠르네, 애들이 크는 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두 소녀를 보며 레오가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 믿고 있을게.”
오러 스텝을 밟은 레오가 엄청난 속도로 엘제니에를 추격했다.
“가죠, 시아 양!”
에르퀸트와 드웨노가 만들어 준 방패로 무장한 에이란이 의욕적으로 나아가다가 멈칫했다.
“시아 양?”
조금 불만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첸 시아를 보며 에이란이 당황했다.
“성장이 빠르다는 걸 알면 조금은 여자로도 봐줬으면 좋겠네요.”
***
레오는 엄청난 속도로 숲을 가로지르며 엘제니에를 추격했다.
레오가 엘제니에가 소환한 군단에 발목을 잡힌 건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시간도 군단장급의 강력한 마족에게는 도주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보통의 상대라면 말이지.’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일깨워진 초감각이 기민하게 주변을 탐색해갔다.
재앙의 시대가 한참이던 사이.
무수히 많은 마족들을 토벌한 대영웅들은 어느새인가 마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마족들이 공포에 떨었던 자는 다름 아닌 살아남는 영웅 카일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가장 잔인하게 마족을 죽였기 때문이지.’
배신자를 처단하고 그 과정에서 잔인한 손속을 보였던 자신이다.
근본적인 적이자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마족을 봐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오랜 용병 생활을 통해 레오는 잘 알고 있었다.
공포를 각인시키는 것만큼 전투를 쉽게 끌어가는 방법은 없다고.
마족과 마물도 생물이다.
그런 만큼 공포를 지니고 있다.
레오와 한 번이라도 맞서 생존한 마족은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탁-!
레오가 검을 고쳐 쥐었다.
그 순간 투척을 하듯 검을 던졌다.
콱-!
“커헉!”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검이 엘제니에의 등에 꽂혔다.
“어, 어떻게……!”
“도망치는 건 포기하는 게 좋아.”
텁-!
레오가 검을 쥐었다.
“내가 전장에서 마주쳤을 때 죽이겠다고 마음먹고 도주에 성공한 마족은 실라투나 밖에 없거든.”
“이익! 무슨 개소리…….”
부왁-!
“캬아아아악!”
레오가 검을 그대로 쳐올리자 엘제니에의 몸이 잔인하게 찢겼다.
콱-! 우득! 콰가각-!
레오의 검격이 엘제니에의 몸을 엄청난 속도로 베어냈다.
“그만…… 좀 해! 이 하등생물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고통에서 허우적거리던 엘제니아의 몸에서 피가 산탄처럼 쏟아져 나왔다.
콰가가가가강-!
피의 파편에 닿은 곳은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레오는 엘제니에의 공격에 조금의 피해도 입지 않았다.
콰득-!
“키헥!”
오히려 발로 엘제니에의 머리를 짓뭉개버리는 게 빨랐다.
우득- 우득-!
함몰된 머리가 엄청난 속도로 회복 된다.
레오는 그런 엘제니에를 걷어 찼다.
처참하게 바닥을 뒹군 엘제니에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마족을 한두 마리 잡은 게 아니라서.”
레오가 싸늘하게 웃었다.
“온갖 괴랄한 힘을 쓰는 녀석들을 이골이 날 정도로 잡았거든. 대게 그런 놈들은 타고난 힘에만 의지만 하더라고.”
대답을 한 레오의 검이 번뜩였다.
“끼아아아아아악!”
부악! 촤악-! 콱!
레오의 검이 엘제니에를 철저하게 난도질했다.
죽지 않을 정도로 레오에게 철저하게 고문당한 엘제니에가 몸을 회복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네놈! 대체! 대체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이성을 잃은 채 치를 떠는 엘제니에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너희 마족은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데 이유가 있나?”
엘제니에의 말문이 막혔다.
“그거랑 같은 거야. 내가 마족인 너를 잔인하게 죽인 건.”
싸늘하게 비웃은 레오가 말했다.
“네놈…… 정체가 뭐냐!”
“레오 플로브, 사령왕에게 내 말을 듣지 못했나?”
“레오 플로브라고?”
엘제니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령왕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와 마주친다면 살아남기 힘들 테니 되도록 맞서지 말라는 것을.
그때까지만 해도 엘제니에를 포함한 군단장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영웅이라고 해도 고작 어린 나이에 불과한 인간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맞서니 사령왕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군단장치고는 약하군. 녀석도 참 고민이 많겠어.”
레오는 눈앞의 군단장이 군단장 중에서도 약한 존재라는 걸 단번에 눈치챘다.
일전에 되살아났던 군단장, 저주왕 키고르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의 키고르스는 온전한 힘 상태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군단장이라는 힘에 어울릴 정도는 되었다.
“실라투나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 꿰찬 거냐? 형편없을 수밖에 없군.”
레오가 비웃음을 날리자 엘제니에의 어깨가 파들파들 떨렸다.
“감히…… 인간 따위가 날 무시해?”
“군단장의 자격도 없는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레오가 검을 쥐지 않은 손을 들어 올렸다.
강력한 마력과 함께 코메테스가 소환되었다.
고오오오오오-!
강력한 별의 마법이 넘실거렸다.
“포기해.”
레오가 비웃음을 날렸다.
“포기하면 편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력한 연옥의 불꽃이 타올랐다.
고오오오오오-!
엘제니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 순간.
우웅-!
“……?”
코메테스가 반응했다.
번쩍-!
‘뭐지, 이건?’
갑자기 레오의 손에 리시나스의 영력이 넘실거렸다.
코메테스는 그런 리시나스의 영력에 반응했다.
우웅-! 우웅-!
‘코메테스에 깃든 루나의 마력이 공명한다?’
통제를 벗어난 힘에 레오가 당황하는 순간.
파삭-!
코메테스가 빛의 알갱이가 되었다.
“뭐?”
레오가 황급히 코메테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빛의 알갱이가 된 코메테스를 잡을 수는 없었다.
그걸 본 레오가 경악했다.
‘코메테스에 있는 회수 기능?’
살아생전 루나는 자신이 사용했던 지팡이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마치 기사가 무구를 모으듯.
루나 역시 강력한 마도 지팡이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물건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만큼 지팡이에 회수 마법 술식도 새겼다.
그건 말 그대로 주인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능.
레오는 물론이고 세이룬조차도 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사용할 수 있는 자는 오직 한 사람.’
레오가 당황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화르르르륵-!
“이, 이건 뭐지?”
엘제니에의 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엘제니에의 얼굴이 순간 희열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아…… 힘이……! 힘이!”
핏빛 불꽃은 이내 검은 불꽃으로 바뀌었다.
엘제니에는 지금껏 얻지 못했던 전능감에 몸을 떨었다.
“아아! 들린다! 들려온다!”
머리를 붙잡고 눈을 까뒤집은 엘제니에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신의…… 위대한 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께서 원하신다!”
이성을 잃은 엘제니에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레오에게 덤벼들었다.
“살아남는 영웅 카일! 네놈의 죽음을!”
느닷없이 돌변한 분위기에 레오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검을 들어 올렸다.
부악-!
엘제니에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레오는 이것과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었다.
‘에레보스의 사념.’
자신이 죽었던 장소에서 만났던 에레보스의 사념과 닮아 있었다.
자신을 레오 플로브라 부르던 엘제니에가 갑자기 카일이라고 부른 것 역시 그 영향인 듯했다.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레오가 검을 고쳐 쥐고 엘제니에의 몸통을 내려찍으려는 순간.
화르륵-!
엘제니에의 몸이 검은 화염에 휩쓸려 사라졌다.
푸욱-!
허무하게 땅을 찍은 레오가 숨을 내뱉었다.
‘놓쳤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히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스릉- 탁-!
검을 검집에 넣고 아공간으로 돌려보낸 레오가 코메테스를 들고 있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계약진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정령의 것도 아니고 환수의 것도 아니었다.
레오는 처음 손에 넣은 계약진이었다.
‘영령 계약.’
맺은 적 없는 영령의 계약진.
그리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별의 마력에 레오는 마음이 떨리는 걸 느꼈다.
저벅- 저벅-
숲 전체는 어느새 조용해졌다.
조금 전 까지 느껴지던 마물의 기척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손에서 시선을 뗀 레오가 고요해진 숲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코메테스가 날아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저벅-
흐드러진 꽃과 떨어진 나뭇잎을 밟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사박- 사박-
이윽고 발소리는 생기 있는 풀을 밟는 소리로 변했다.
그 순간 레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마법?’
눈앞에 펼쳐져 있는 환영 마법을 본 레오가 눈을 크게 떴다.
누가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레오 조차도 알아보기 힘든 환영 마법이 걸려 있었다.
레오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공간이 일렁이더니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솨아아아아아아-!
눈앞에 보인 것은 두 개의 묘비였다.
그 중 레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낯익은 묘비였다.
5000년 전.
레오와 리시나스가 만든 묘비.
그리고 그 옆에는…….
‘내 묘비.’
베르키아와 비하르가 수습한 자신의 유골을 묻은 무덤이었다.
카일의 무덤 앞에는 본 적 있는 검은색 단검이 있었다.
‘비하르의 단검?’
그건 레오가 드웨노에게 부탁해 만들어서 비하르에게 선물로 줬던 단검이었다.
레오가 무덤에 다가가려는 순간.
웅-!
손등에 새겨진 영령의 계약진이 반응했다.
레오의 시선이 루나의 무덤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곳에는 빛의 알갱이가 된 코메테스가 떠 있었다.
그 빛의 알갱이 속에서 누군가의 확연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걸 바라본 순간 레오는 마음이 술렁이는 걸 느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확실한 게 하나 있었다.
레오는 떨리는 손으로 코메테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민 순간.
누군가 레오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화악-!
주변에 꽃잎이 휘날렸다.
빛의 알갱이는 하나로 뭉치더니 서서히 형태를 취해갔다.
하지만 그건 지팡이의 형태가 아니었다.
빛무리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이윽고 빛이 사라지고 그곳에는 아름다운 엘프가 레오의 손을 잡은 채 허공에 떠 있었다.
설마하던 레오는 그 모습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허공에 떠 있던 엘프, 루나의 몸이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오더니 ‘사박’ 소리와 함께 바닥에 착지했다.
손을 잡은 채 우두커니 굳어 있던 레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루…… 나?”
레오의 부름에 감겨있던 루나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윽고 별처럼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솨아아아아아- 불어온 바람에 연은빛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막 잠에서 깬 듯 몽롱하던 아름다운 눈동자에 곧 초점이 잡혔다.
멍하니 레오를 올려다보던 루나가 웃으며 부름에 응했다.
“응, 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