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90)
590.
“카일…… 님?”
루메른은 힘겹게 고개를 돌려 카일을 바라보았다.
바위에 걸터앉은 채 무심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카일을 보며 루메른이 안도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루메른의 몸에 힘이 빠졌다.
카일이 왔다면 더 이상 걱정할 것 없었다.
지금 자신의 세계에서 날뛰고 있는 에레보스는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내 발버둥은 헛되지 않았어…… 다행…….”
뻑-!
“억?!”
“뭐가 다행이란 거야. 이 망할 자식아.”
카일은 주변에 굴러다니던 벽돌 조각을 들어 루메른의 얼굴을 향해 집어 던져버렸다.
졸지에 안면을 강타당한 루메른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루메른을 보며 카일이 말했다.
“그대로 네가 죽어 버리면. 개벽의 세계에서 죽어라 고생하게 되는 건 네 동료들 아니냐?”
“…….”
“그리고 이후에 에레보스가 다시 바깥으로 나왔을 때.”
카일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에레보스를 상대해야 하는 건 저 아이들이 될 거야.”
카일이 에레보스와 맞서 싸우고 있는 영웅 후보생들을 바라보았다.
“그게 다행이란 거냐?”
카일의 냉정한 물음에 루메른이 입술을 깨물었다.
“믿는 게 나쁜 건 아니지 않습니까.”
“…….”
“동료들을 믿고…… 제 뒤를 이어줄 아이들을 믿고…….”
루메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신을 믿는 것이 나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나쁜 건 아니지.”
휘오오오오-
불어온 바람이 카일의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먼저 떠난 카일의 친우들도 최후에는 카일을 믿고 편히 눈을 감았다.
“수천 년 동안 너희가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는 나도 상상할 수 없어. 지치는 것도 당연해.”
무한이 계속되는 세상.
세계가 다시 시작될 때 자신이 몇 번을 반복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세계를 공략하고 다시 루프를 시작하려 할 때는 알게 된다.
자신들이 몇 번이나 이 일을 반복했는지.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세이룬이 전해 왔다.
시작의 영웅 카일의 부활을.
로디아도 카일과 함께 리시나스의 세계를 공략했다.
끝없는 루프 속에서 카일의 등장은 개벽의 영웅들에게 있어 희망이자 드디어 쉴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을 것이다.
쉬고 싶은 것도 당연하다.
그것이 설령 자신의 죽음이라도.
할 수 있는 만큼 했다고.
그것이 결코 잘못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개벽의 영웅들도 그럴까?”
“…….”
루메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내가 봤던 세이룬과 로디아도 지독하게 지쳐 있었어. 하지만 그 녀석들은 너와는 달랐어. 포기하지 않고 더욱 힘을 냈지. 분명 쉬는 건 에레보스의 완전한 토벌을 본 이후라고 생각했을 거야.”
카일이 루메른과 눈이 마주쳤다.
“그 녀석들도 믿고 있는 거야. 네가 포기하지 않을 거란 걸.”
루메른의 손이 떨렸다.
카일이 영웅 후보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너를 믿고 있기에 불가능하단 걸 알면서도 맞서 싸우고 있어. 네가…….”
카일이 눈을 가늘게 떴다.
“황혼의 기사가 자신들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한계를 넘어 와 줄 거란 걸 믿고 있는 거다.”
루메른의 손에 힘이 들어왔다.
“네가 본 너의 학생들은 어땠지?”
루메른이 힘겹게 몸을 돌렸다.
몸이 비명을 내지른다.
온 몸의 마나를 한순간에 연소시켜 일으킨 대폭발.
몸은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하지만 그건 에레보스 역시 마찬가지일 터.
콱-
루메른이 손에 힘을 주었다.
‘내 학생들은…… 내 바람과 같은 학생들이었어.’
루메른의 학생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원했던 이상적인 학생들.
한계에 부딪혀도 망설이지 않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아이들.
그중에서도 자신과 전혀 닮지 않은 학생도 있었다.
‘칼 토마스.’
이 자리에 있는 게 신기했던 학생.
하지만 그렇기에 루메른이 가장 이상적으로 여겼던 영웅의 모습.
무수히 많은 한계를 넘어섰다.
루메른은 알고 있다.
시작의 영웅을 만든 건 그의 능력이 아니라 그의 의지였다는 것을.
칼은 순수한 의지만으로 이 자리에 있었다.
루메른은 그런 영웅이 되고 싶었다.
‘잊고 있었어.’
자신이 눈앞의 대영웅을 동경했던 이유를.
한계에 끝 없이 부딪히며 절대 포기하지 않고 불가능 가능으로 만들었던 자신의 이상을.
‘한계를 넘어서라고?’
루메른이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포기한 주제에 대체 누구에게 한계를 넘어서란 거야.’
황혼의 기사는 언제나 한계를 넘어섰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저 학생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자신의 거짓된 모습을 동경해 이 자리에서 선 저 아이들에게.
그 동경했던 모습이 거짓이 아니란 걸 보여줘야 한다.
‘그게 학교를 설립한…… 교육자로서의 모습이겠지.’
루메른이 몸을 일으켰다.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생명의 불꽃을 불살라 힘을 쥐어 짜냈다.
“쿨럭. 쿨럭.”
속에서 역류한 피가 입에서 쏟아졌다.
하지만 루메른은 개의치 않았다.
터벅- 터벅-
카일은 그런 루메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도움은 일절 주지 않는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그 야속해 보일 법한 태도에 루메른은 웃었다.
‘그래…… 이것도 믿음이겠지.’
자신의 후계자가 이 정도 시련에 쓰러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
터벅- 터벅-
루메른이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 발걸음이 더욱 가속한다.
이윽고 루메른이 전장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일어서서 달려가기 시작한 루메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카일은 생각했다.
‘내가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루메른은 지금 한계를 넘어섰다.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도약하기 시작한 루메른이라면.
온전한 에레보스의 조각이라면 모를까.
일부분에 불과한 저 조각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카일의 시선이 칼에게로 향했다.
‘거대한 힘을 가진 사람만이 위업을 이룩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다른 영웅 후보생들과 비교한다면 칼의 실력은 보잘것없다.
하지만…….
‘칼은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어.’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
타인의 가능성을 찾고 그 가능성에서 희망을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눈.
결정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마음.
칼은 신기하게도 조금씩 대영웅들을 닮았다.
‘어찌 보면 신기한 건 아니지.’
지금의 시대를 만든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들이다.
그리고 앞장서서 이 시대를 만든 리시나스는 생각했다.
후대에 자신들이 추구했던 가치가 남기를.
로디아가 후대 사람들이 영웅의 세계 속에서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꽃피우기를 바랐듯.
리시나스 역시 후대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소한 행동 속에 대영웅들이 추구했던 것들이 남기를 바랐다.
칼의 능력은 지극히 단순했다.
모두가 까마득한 절망을 바라볼 때.
그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 시작해 나가는 것.
단순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능력.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능력.
하지만 애초에…….
‘혼자서 뭘 할 수 있지?’
자신조차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흠이 아니다.
누군가 곁에 있다면 무한한 가능성을 손에 넣는 셈이니까.
히어로 레코드의 등장으로 위업을 이룬 자만이 영웅이라 불리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옛날에는 더 단순했어, 그렇지?”
카일이 리시나스를 떠올리며 웃었다.
함께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되자는 그 말에 자신은 영웅도 뭣도 아니라고 짜증스럽게 말한 후 돌아온 대답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을 위해 힘을 낼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영웅이라고 생각해.’
빙그레 미소 짓던 리시나스를 떠올리며 카일이 망토자락을 만지작거렸다.
***
화르르르륵-!
“온다!”
칼의 외침에 윈드 와이번의 고삐를 꽉 쥔 엘리자가 소리쳤다.
“꽉 잡아!”
화악-!
윈드 와이번이 엄청난 속도로 하강을 시작했다.
칼을 잿더미로 만들기 위해 쫓아왔던 에레보스는 그런 칼과 엘리자를 추격했다.
“왜 저게 너만 노리는 거야!”
“나야 모르지!”
“좋겠네! 세계 최흉의 재앙이 인정하고 있잖아! 이 중 자신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게 너라고! 자랑스럽겠다!”
“넌 이게 좋아 보이냐! 이게 자랑스러워 보여?!”
“꽉 잡아!”
콱-!
칼이 엘리자의 허리를 꽉 잡고 몸을 밀착 시켰다.
엘리자가 영력을 일으켰다.
파직-! 파지지직-!
순간 엘리자의 몸에서 순백의 뇌전이 일어났다.
“어어? 어?”
칼이 놀란 표정을 짓는 사이 와이번의 온몸에 순백의 뇌전이 휘감겼다.
“이거 뭐야?!”
“레오 플로브 흉내!”
레오에 의해 계속해서 뇌전의 정수에 노출 되었던 엘리자는 어느 순간부터 영력에 뇌전을 축적시켰다.
애초에 페가수스와 파장이 맞는 영력.
물론 뇌전의 정수 그 자체는 아니지만 엘리자의 가능성은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러서 각성한 것이다.
과아아악-!
윈드 와이번의 속도가 에레보스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그걸 확인한 칼이 소리쳤다.
“클로에!”
그 순간.
쩌저저저저저적-!
세계가 얼어붙었다.
일순간이지만.
루메른의 공격으로 인해 힘이 약화된 에레보스조차.
사아아아아아-!
마법을 전개한 클로에의 주변에는 그 누구도 서 있지 않았다.
가까이 가면 얼어붙기 때문이다.
클로에의 몸에서 하얀 서리가 피어오른다.
“마법으로…… 이 정도 위력의 빙계 마법이 구현 가능해?”
루니아가 경악한 표정을 짓자 에이란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마력의 순도를 본다면…… 얼음 정령에 버금가요.”
“뭐? 클로에 뮐러는 순수 마법사잖아!”
“일전에 루나님이 클로에 양에게 남긴 마법이에요. 얼음 정령의 영역에 들어설 수 있는 마법이라 알고 있어요.”
“세상에.”
그런 마법 술식을 만든 루나도 루나지만 그 터무니없는 마법 술식을 여기까지 완성한 클로에도 대단했다.
쩌저저적-!
그 순간 얼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파칭-! 파바바바밧-!
얼음을 뚫고 나온 에레보스가 집요하게 칼을 쫓아갔다.
그걸 본 아르가 발을 쿵쿵 굴렀다.
“아니! 저 불덩어리는 대체 왜 칼만 노리는 거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잖아!”
아르도 속력이 느린 건 아니다.
하지만 엘리자와 비교한다면 손색이 있었다.
게다가 칼을 보호하면서 에레보스를 피하는 일에는 소환사인 엘리자가 가장 적합했다.
“덕분에 우리가 편한 것도 있지.”
아바드가 빙그레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그에 맞춰 첼시가 눈을 감고 입을 살짝 벌렸다.
“아-”
첼시가 노래를 시작하자 주변의 마력이 요동친다.
이 역시 루나가 두 사람에게 남긴 마법이었다.
무영창 마법과 목소리로 주변의 바람을 통제하는 마법.
두 사람의 마법이 셀리아의 검 끝으로 향했다.
화르르르륵-!
제르딩거의 불꽃과 르왈린의 바람이 만나며 거대한 불꽃이 만들어졌다.
“딱 좋네.”
고오오오오! 화르르륵!
루니아가 히죽 웃으며 염제를 사용했다.
순백의 화염이 제르딩거의 불꽃을 삼키고 더욱 막강해 져갔다.
칼과 엘리자가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어마어마한 위력의 공격이 완성되었다.
“문제는 이걸 에레보스에게 어떻게 맞추냐는 건데.”
“내가 할게!”
아르가 호기롭게 나서자 드리아나가 아르의 목덜미를 잡았다.
“이미 자네는 내상이 심각하네.”
“하지만 저 마법을 인챈트화 했을 때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나 말고 누가 또 있…….”
“내가 하지.”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곳에는 루메른이 서 있었다.
그런 루메른에게 에이란이 다급히 물었다.
“루메른님, 괜찮으신가요? 무리를 하시면 안 돼요.”
“난 괜찮아.”
루메른이 검을 들었다.
“시간이 없어, 그러니 부탁해.”
온몸에 염제를 휘감고 있던 루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오오오오-!
루메른의 검에 염제의 불꽃이 깃들었다.
그걸 확인한 루메른이 무릎을 굽혔다.
콰악-!
루메른이 에레보스를 향해 도약했다.
화르르륵-!
뒤에서 느껴지는 검은 불꽃에 칼이 손에 쥔 지팡이를 꼭 쥐었다.
-어리석은 저항은 그만두고 포기해라.
에레보스의 조롱 소리가 들렸다.
그에 칼이 뒤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너 같으면 포기하겠냐!”
“그래.”
“……!”
-루메른?
곧바로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칼이 눈을 휘둥그레 떴고 에레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학생에게 많은 걸 배우는군.”
화르르르륵-!
루메른이 검을 치켜들었다.
“엘리자!”
칼이 황급히 소리치자 엘리자가 그 자리에서 방향을 틀었다.
“믿음직스럽군.”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린 루메른이 그대로 검을 에레보스에게 꽂아 넣었다.
화르르르륵-!
검은 화염과 백색의 화염이 뒤섞이며 일순간 에레보스의 몸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 사이.
마치 구멍을 연상시키는 시커먼 구체가 보였다.
“으랴아아아아!”
칼이 지팡이를 그대로 구멍에 꽂아 넣었다.
화악-!
그 순간.
재앙의 불꽃이 그대로 흩어져 자취를 감추었다.
“이겼다!”
칼이 주먹을 움켜 쥐며 소리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영웅 후보생들도 환호성을 내질렀다.
***
지상에서 영웅 후보생들의 사투를 지켜보던 카일이 빙긋 웃었다.
“훌륭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