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612)
612.
철걱- 철걱-
가드스론의 성벽 위.
카일은 저 멀리서 끝없이 밀려오는 망자의 군대를 바라보며 검을 뽑았다.
“카, 카일.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지 않을까?”
카일의 등 뒤에 몸을 숨긴 아르온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리석은 소리 말게, 아르온.”
거대한 배틀 엑스를 어깨에 걸친 드웨노가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며 카일 옆에 섰다.
“여기서 도대체 어디로 도망친다는 말인가?”
“우으…….”
드웨노의 말에 아르온이 신음성을 내뱉었다.
세계 최후의 요새 가드스론.
이곳이 무너지는 건 곧 세계의 멸망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도망칠 곳은 없다.
두려움에 떠는 수인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쉰 드웨노가 카일에게 물었다.
“이 싸움, 어떻게 될 것 같나? 카일.”
“글쎄.”
카일은 지평선 너머까지 보이는 망자의 군단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번은 가드스론이라도 힘들지 않을까.”
검을 쥔 카일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카일 뿐만 아니다.
드웨노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 역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타르타로스의 최강의 군단이라 불리는 사령왕의 군단.
세계가 멸망으로 치닫는 이 시대에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많다.
그 시체가 모두 사령왕의 군대인 것이다.
“오랜만이네. 저 징그러운 것들을 보는 건. 정말이지 내 시야에서 영원히 꺼져 줘도 되는데 말이야.”
카일이 뒤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리시나스와 루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왜 개뼈다귀 군단은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걸까?”
1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최흉의 군단을 보며 루나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세계는 멸망 직전이었으니까.”
리시나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얼마 있지 않아 멸망할 세계야. 사령왕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세계를 바라보며 여흥을 즐겼겠지.”
“그, 그런 사령왕이 왜 갑자기 쳐들어온 거야?”
아르온이 울상을 지으며 묻자 리시나스가 팔짱을 꼈다.
“아마 탐식왕의 죽음 때문이겠지.”
탐식왕 요르문간드의 토벌.
멸망해 가는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변.
“그 사건이 사령왕에게 경각심 줬다는 거군?”
루나가 팔짱을 끼며 망자의 군단을 노려보았다.
“흥! 얼마든지 오라 그래! 내가 다 쓸어 버릴 테니까!”
“지, 진짜? 루나만 믿으면 되는 거야?”
“그럼! 나만 믿어! 아르온!”
주먹으로 가슴을 팡-! 하고 친 루나가 호기롭게 말했다.
“넌 내가 모든 걸 해결 해줄 때까지 저것들을 막아내기만 하면 돼!”
“결국 나도 싸워야 한다는 소리잖아.”
아르온이 울상을 지었다.
“슬슬 준비하게. 이제 곧 있으면 공격을 해올…….”
말을 하던 드웨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드웨노뿐만 아니다.
카일도 살기에 반응하여 마력을 전개했다.
그 순간.
쿠과가가가가각-!
하늘에서 거대한 시체의 비가 내렸다.
그건 단순한 뼈가 아니었다.
강력한 마법사의 시체로 만들어진 흑마법.
닿는 모든 걸 파괴하는 죽음의 비였다.
“사령왕의 마법이다!”
“어서 빨리 보호 마법을!”
가드스론의 성벽 위에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사령왕의 마법을 막기 위해 마력을 전개했다.
루나 역시 다급히 마법을 준비했다.
‘늦어!’
아무런 낌새도 없이 펼쳐진 강력한 마법.
카일 보다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지만 루나의 마법은 카일보다 빨리 완성되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완벽하게 막아내기에는 이미 늦었다.
‘성벽의 피해는 피할 수 없겠어!’
루나가 이를 악문 순간.
파앗-!
금빛 섬광이 휘몰아쳤다.
하늘로 치솟은 아르온이 검을 뽑았다.
황금색 오러의 폭풍이 하늘을 수놓는 순간.
콰가가가가가가가강-!
황금의 검기와 함께 엄청난 폭발이 지축을 뒤흔든다.
머지않은 훗날.
용자라 불릴 위대한 수인의 일검에 사령왕의 마법이 저지된다.
탁-!
바닥에 착지한 아르온을 보며 모든 이들이 숨죽였다.
몸을 일으키는 아르온의 몸에서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위압감을 내뿜고 있었다.
“카일! 무서웠어!”
자신에게 달려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아르온을 보며 카일은 한숨을 쉬며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친구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이렇게 겁이 많으면서 제일 먼저 달려갈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루나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드웨노가 말했다.
“리시나스.”
“응.”
“카일은 이번은 막기 힘들다고 하던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
카일을 힐끗 바라본 리시나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다섯 사람 주변으로 가드스론을 지키는 영웅들이 모여들어있었다.
‘막기 힘들다라…… 카일치고는 제법 긍정적인 전망이네.’
드웨노 역시 그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물어본 이유는 간단했다.
카일과 리시나스의 말은 무게감이 다르다.
어리석은 자라 조롱 받은 리시나스는 자신이 주장했던 것을 하나하나씩 이루었다.
결국에는 가드스론에서 희망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드웨노는 그런 리시나스의 거짓말을 들려주기 위해 물은 것었다.
“막을 수 있어.”
리시나스가 말했다.
‘이 거짓말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
속으로 쓰게 웃었다.
“사령왕의 군대는 타르타로스의 중추야.”
리시나스가 성벽 위로 올라가 손을 들어 올렸다.
화르르르륵-!
부정한 것을 불태우는 염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천칭이 우리 쪽으로 기울게 될 거야.”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저 무한에 가까운 망자의 군단을 전멸시키면 타르타로스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다.
기울대로 기운 천칭이 조금은 자신들 쪽으로 기울 게 분명했다.
‘너무도 미미해서 그렇지.’
하지만 리시나스는 개의치 않았다.
이 거짓말이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리라.
“이 세계가 멸망하는 일 따윈 없어. 그러니 모두 나를 믿고 따라 줘.”
“와아아아!”
“지혜의 드래곤이 우리와 함께 한다!”
“가드스론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간악한 사령왕에게 멸망을!”
영웅들의 사기가 치솟는다.
오늘이 끝이 아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워어어어어어어-!
망자의 군단이 돌격하기 시작한다.
세계의 운명을 건 전투가 시작된다.
수인과 드워프 전사가 선두에 선다.
후방에서 엘프 마법사가 마법을 노래한다.
드래곤은 대정령들을 소환했다.
다섯 명의 대정령이 소환되었다.
“엘시.”
카일의 부름에 엘시가 부름에 응한다.
“지원 부탁해.”
-…… 알겠어요.
카일은 망자의 군단을 막아내기 위해 최전방으로 향했다.
그런 맹약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림자 정령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오늘이 마지막이 되겠군요.
“그렇게 되진 않을 거야.”
-…….
성벽 위에는 흑룡과 어둠의 대정령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자신을 향해 빙그레 웃는 리시나스를 엘시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는 사령왕을 이길 수 없어요.
“아니 이길 수 있어.”
리시나스의 눈이 반짝인다.
엘시는 그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을 보았다.
자신의 까만 눈도 저렇게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다.
-어떻게요?
“네가 있기 때문이지.”
-네?
리시나스의 말에 엘시는 드물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넌 특별한 정령이야, 엘시. 그림자는 또 다른 나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 그림자를 가지지 않은 존재는 없거든.”
-그게 어쨌다는 거죠?
“너는 그림자 정령이잖아? 그림자는 곧 네가 지배하는 대상이야.”
-…….
“처음 네 존재를 알았을 때. 나는 너와 계약하고 싶었어. 하지만 난 네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없었지. 오직 카일만이 네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있었어.”
엘시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는 존재는 다름아닌 리시나스였다.
흑룡인 리시나스와 어둠의 정령인 엘시는 그 누구보다도 상성이 잘 맞았을 테니까.
하지만 빛을 바라보는 리시나스는 어둠에 깊게 물든 엘시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그랬기에 엘시는 자신 못지않은 어둠이 깃든 카일에게 끌렸다.
“그러니 그 힘으로 카일을 도와줘.”
리시나스기 빙긋 웃었다.
“너는 분명 어둠 속에서 빛나는 네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거야.”
***
“무얼 하느냐! 알시아!”
이스타의 호통에도 알시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당혹스러운 눈으로 엘시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게 대체.’
알시아는 불의 정령으로 오랜 세월 이스타의 하위 정령으로 존재해 왔다.
그랬기에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엘시를 쥔 손을 놓은 알시아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엘시의 몸에서 흘러나온 그림자가 스멀스멀 알시아의 발을 타고 올라왔다.
흠칫-! 몸을 떤 알시아가 엘시와 떨어지려 했다.
하지만 그림자에 붙잡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아……!
알시아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엘시가 부드럽게 웃었다.
“무서워하지 마요.”
화악-!
그림자가 알시아를 집어삼켰다.
그 모습을 본 이스타는 물론이고 다른 최상급 불의 정령들이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공격해!”
이스타의 외침과 동시에 불의 최상급 정령들이 엘시를 공격했다.
그 자리에 선 엘시는 웃으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화악-!
그림자가 마치 해일처럼 불의 정령들을 덮쳤다.
순식간에 불의 정령들이 집어삼켜졌고 이 공간에 남은 건 두 대정령뿐이었다.
이스타의 얼굴이 굳었다.
“내 부하들을 어떻게 한 거냐?”
“내 그림자에 품었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말로 설명하긴 어렵네요. 직접 보여드리는 편이 빠르겠죠?”
엘시가 웃으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화르르르륵-!
엘시의 그림자에서 알시아를 포함한 모습을 감추었던 불의 최상급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본 순간 이스타의 눈이 부릅떠졌다.
‘내 지배력이?’
조금 전까지 자신의 휘하에 있던 정령들에 대한 지배력이 사라지고 없었다.
불의 최상급 정령들 역시 당혹스러운 눈으로 엘시와 이스타를 번갈아 보았다.
그들 역시 갑작스럽게 자신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이냐!”
“이건 내 지배의 권능이에요. 당신의 정령들을 빼앗은 건 미안한 일이지만. 당신도 나를 해치려고 했으니 비긴 걸로 하죠.”
엘시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이익 내 말을 들어라! 너희 불의 정령들의 주인은 나! 정화의 정령 이스타란 말이다! 어째서 어둠의 대정령의 말을 듣는 것이냐!”
이스타는 필사적 지배력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도저히 엘시의 권능을 깨트릴 수 없었다.
상황 파악을 끝낸 최상급 정령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알시아가 눈을 깜빡였다.
-우리의 주인이 여기 이분으로 바뀌었다는 거지?
-그런 것 같군.
알시아의 말에 한 정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자기밖에 모르는 나르시즘 정령을 합법적으로 두들겨 패도 된다는 소리지?
성질이 불같은 불의 최상급 정령들의 눈에 흉포한 기질이 떠올랐다.
“이, 이건 반란이야! 감히 주인을 공격하겠다는 거냐!”
-저 새끼 조져!
-너 오늘 잘 걸렸다!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평생 소원이 오늘 이루어졌다!
“끄아아아아아악!”
콰가가가가강-! 화르르륵!
엘시에게 제압당한 이스타는 그대로 최상급 정령들의 불꽃에 유린당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 엘시가 볼을 감싸며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저런. 여러분. 심하게는 하지 마세요.”
“으어어어어어!”
정화의 정령 이스타의 처절한 절규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