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626)
626.
엘프들은 긴장된 눈으로 마물의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오는 그런 그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엘프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고결한 엘프들이었다.
재앙의 시대가 시작되고.
지상의 가장 강대한 세력 구축했던 엘프는 타르타로스의 침공에 속절 없이 무너져 내려갔다.
어떤 종족이든 똑같았지만 엘프는 그러한 경향이 더욱 심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도 엘프는 종족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종족이었지.’
다른 종족에 비해 미형의 외모를 가졌으며 오러와 마법, 소환술 가리지 않고 눈부신 재능을 가진 이들이 많이 탄생하는 종족.
이 시기의 엘프들은 다른 종족들에게도 숭상받던 우수한 종족이다.
그 영향으로 비대해진 자부심은 서서히 오만과 독선으로 물들었고 그렇게 엘프라는 종족을 중심부터 썩게 만들었다.
미증유의 재앙 앞에서 강대한 힘을 자랑하던 하이 엘프들은 오래전부터 지켜온 고결함을 버리고 자신의 목숨을 위해 동족들을 희생시켰다.
자신들은 특별한 존재이며 특별한 존재를 위해서는 타인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선민사상이 불러온 만행이었다.
그렇게 엘프라는 종족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하이 엘프들은 속절없이 썩어 무너져 내렸지만, 엘프라는 종족 자체가 희망을 잃은 건 아니었다.
아무리 썩었다고 해도 당시의 엘프라는 종족은 분명 세계의 기둥이 되는 거대한 나무를 키워냈다.
그 나무 끝에 피어난 새싹들은 고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의 고향을 찾기 위해.
그리고 세계에서 재앙을 몰아내기 위해.
대의를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 바로 여기 있는 엘프들이었다.
루나 역시 그 무수히 많은 새싹 중 한 사람이었다.
“루나님! 제 뒤에 계십시오! 제가 꼭 지켜드리겠습니다!”
엘프 청년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적응이 하나도 안 되네.’
자신을 향해 루나라고 부르는 주변 엘프들의 반응에 레오는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려야 했다.
“루나님이 안심하고 마법을 쓸 수 있도록, 저 히리안이 지켜드리겠습니다!”
청년이 반짝이는 방패를 단단히 잡으며 말했다.
“히리안?”
“에이. 또 까먹으셨습니까?”
히리안이 너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히리안.
레오가 알고 있는 이름이다.
재앙의 시대에도 압도적인 실력자들은 명성을 남겼다.
이 시대에서 영웅은 지금 시대의 영웅보다도 더욱 소중하고 값진 존재였다.
‘지금처럼 영웅이 차고 넘치는 시대가 아니었으니까.’
아군에게는 그나마 살아갈 날을 이어 나가게 해줄 실낱같은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에는 살아남는 영웅과 어리석은 자라고 불렸던 자신과 리시나스는 기피 대상이었다.
카일은 동료가 된 이들이 모두 죽는 불길한 인간이었고 세계는 구원받을 수 있다며 사람들을 헛된 희망으로 홀리는 리시나스는 마녀 같은 드래곤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카일과 리시나스는 고립되지 않았다.
불길한 존재들이라 불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이 전투에 참전한 전장은 승리를 거두거나 생존자들이 많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가드스론에서 카일과 리시나스는 평상시에는 멀리 하되 전장에서는 숭배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건 아직 본격적으로 전장에 나서 본 적 없는 아르온을 제외한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당시의 루나는 이미 압도적인 마법으로 패배가 확실시되어 보이는 전장을 몇 번 이나 뒤집은 대마법사로 명성이 높았다.
이때 루나는 엘프들의 지도자가 된 아킨트와 함께 엘프의 희망으로 불렸었다.
드웨노 역시 강력한 드워프 전사이자 대장장이로 그를 파티에 영입하고자 하는 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외에도 이 시대에 영웅이라 불리는 존재들은 커다란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대의 영웅 중 이름은 잊혀졌지만, 그 행적만큼은 5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레오 역시 당시의 유명한 영웅의 이름을 여럿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이 녀석은 아니지만.’
히리안은 영웅이라 불리던 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만한 실력을 가진 이도 아니다.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엘프의 기사.
레오가 그를 기억하는 건 루나 때문이었다.
이 전투가 끝난 이후 히리온은 죽는다.
히리온뿐만이 아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엘프들이…… 여기서 죽음을 맞이하지.’
***
엘프의 숲에서의 전투가 끝난 후.
가드스론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었던 울창한 숲에 루나는 이 전투에서 잃었던 동족들의 무덤을 만들었다.
시신조차 묻을 수 없었던 무덤.
하지만 루나는 전투에서 사망한 동족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며 하나하나 정성껏 비석을 만들었다.
“참 바보 같지. 목숨을 걸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히리온의 이름을 새기며 특히나 안타까워하던…… 아직은 소녀의 모습이 남아 있던 엘프 여인, 루나가 씁쓸하게 웃었다.
“아는 사이야? 많이 안타까워하는 걸 보니 뛰어난 녀석이었나 보군.”
“아니, 전혀. 이 전투에서 처음 만났어. 실력은…… 전장에 서면 안 되는 엘프였지.”
루나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손을 모으며 말했다.
“이 엘프뿐만이 아니야. 이번에 눈을 감은 많은 엘프가 전장에 나서면 안 되는 이들이었어.”
아직 전장에 설 자격이 없는 이들.
하지만 그들은 무기를 들고 타르타로스와의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 밖에 싸울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족들을 추모하는 루나를 보며 리시나스가 말했다.
“내 제안. 어떻게 생각해?”
“너희와 함께 가달라는 거지?”
루나가 카일과 리시나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울창한 숲속에서 루나는 조금 가라앉은 눈을 하고 있었다.
자신감을 잃은 목소리로 루나가 말했다.
“대체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나보다 먼저 죽는 동료들과 파티를 짜기는 싫어.”
루나가 무덤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런 루나의 모습을 보며 리시나스가 카일의 등을 쿡 찔렀다.
“내가 말하라고?”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나보다는 네 말이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아.”
“망할 도마뱀.”
자신이 살아남는 영웅이기에 자신 보고 설득하라는 걸 안 카일이 작게 투덜거리고는 루나 앞에 섰다.
“뭐 얼마나 너보다 먼저 많이 죽어갔다고 그런 말을 해?”
“뭐?”
루나의 눈이 사납게 변했다.
리시나스는 얼굴을 덮으며 ‘좋게 다독여 주라는 의미였는데. 시킨 내가 바보지.’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넌 뭔데 말을 함부로 지껄여?”
으르렁거리며 쏘아붙이는 루나를 보며 카일이 덤덤히 말했다.
“살아남는 영웅.”
카일의 대답에 루나가 멈칫했다.
그런 루나를 보며 카일이 이죽거렸다.
“나도 나보다 먼저 죽는 녀석은 동료로 삼기 싫어. 마침 딱 네가 적임자 같거든.”
“…….”
카일의 얼굴을 바라보던 루나의 얼굴이 살짝 누그러들었다.
카일의 눈에서 자신 보다 더한 그림자를 엿봤기 때문이다.
최소한 자신을 조롱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너희 목표가 뭔데?”
“에레보스 토벌.”
“…….”
순간 루나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레보스를 쓰러트릴 거라고? 너 혹시 또라이니? 뭘 잘못 먹었길래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루나는 진심으로 연구 대상을 봤다는 얼굴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그에 카일이 얼굴을 팍 구기며 리시나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루나는 에레보스 토벌이라는 말을 곱씹어 생각하더니 이내 말했다.
“그래도 뭐, 좋아. 에레보스 토벌! 나에게 딱 어울리는 목표네! 마음에 들어. 너희 파티에 합류할게.”
기운을 되찾은 루나가 말했다.
“카일이라고 했지? 내 이름은 루나! 장차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될 몸이니 날 파티로 받아들인 걸 영광으로 알도록!”
***
그날 이후 루나는 다짐했다.
더 이상 사람들이 무의미하게 죽는 걸 막겠다고.
‘이 녀석은 끝까지 루나를 지키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했지.’
레오가 힐끗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킨트도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다.
이 싸움이 무모하다는걸.
하지만 무모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물 여왕의 손에 넘어간 엘프의 숲에서는 지금 마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다가는 주변 일대의 세력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다.
탈환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마물 여왕과 그 군단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혀야 했다.
여기서 마물 여왕을 억누르지 못하면 세계의 멸망은 더욱 가속화 된다.
그 정도로 상황은 절박했다.
여기 있는 엘프들은 그걸 막기 위해 무모한 싸움에 나선 것이다.
그때였다.
쿠우웅-!
지축이 흔들린다.
푸드드득-
숲에 서식하는 새들이 깜짝 놀라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 새들은 곧 숲에 서식하는 마물들의 먹이가 되었다.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경박하고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웃음에 엘프들이 귀를 꽉 틀어막았다.
조롱 섞인 목소리에 아킨트가 입을 꽉 깨물었다.
태연한 척 자신만 믿으라던 히리온이 방패를 꽉 쥐었다.
“루나님! 이제 뒤로 물러서십시오!”
그때 검을 든 엘프 여기사가 다급히 달려와서 말했다.
엘프들은 알고 있다.
루나의 마법이야말로 이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이라는 걸.
루나가 마음 놓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앞에서 최대한 버티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였다.
“루나님! 저희가 목숨 걸고 루나님을 지키겠습니다!”
패닉에 빠져 있던 히리온도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말했다.
주변 엘프들의 말에도 레오는 미동도 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루나, 미덥지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를 믿어라. 네가 최대한 마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믿어요.”
레오가 덤덤히 말했다.
“아킨트. 당신은…… 여기 있는 이들은 목숨을 걸고 루나를 지킬 겁니다. 그건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요.”
“루나?”
주변 이들의 눈에는 마치 루나가 다른 사람처럼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황하는 주변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레오는 말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공략 목표: 영광스러운 승리의 역사를 되풀이하십시오. 최대한 많은 엘프를 학살하십시오.]꾸욱-!
레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곳은 레오가 아는 영웅의 세계가 아니다.
이곳의 주인공은 영웅이 아닌 군단.
그것도 가장 지긋지긋한 악연으로 엮인 실라투나였다.
레오는 그 악연을 분명 청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있었던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 세계는 루나에게 있어 아픔 그 자체야. 그 녀석이 죽는 그 순간까지 짊어져야 했던 일이지.’
아버지 같은 이를 떠나보내고.
미숙했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이 희생해야 했던 피와 눈물로 얼룩진 과거.
쿠구궁-!
저 멀리 마물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오가 앞으로 나섰다.
“나 때문에 목숨을 걸지 마.”
루나를 지키기 위해 모여든 엘프들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너희들이 지켜야 할 건 각자의 목숨이야.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하, 하지만 하이 엘프들은 그렇게 해서!”
“놈들은 방식이 잘못된 거야. 그렇다고 자기 목숨을 우선시하는 게 잘못된 게 아니야. 자신을 아끼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야.”
레오가 말했다.
“내가 너희를 지켜줄 테니까. 너희는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 그게 지금 너희가 해야 할 일이야.”
“하, 하지만 루나님! 그럼 루나님에게 짐을 떠넘기기만 하는 거잖아요!”
“괜찮아, 이미 오래전부터 짊어지고 있으니까.”
“……?”
또다시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레오를 보며 히리온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레오를 보며 아킨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누가 너를 지켜준다는 거냐?”
“…….”
레오가 아킨트를 바라보았다.
“내가 지키겠습니다.”
“……?”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아킨트를 보며 레오가 웃었다.
[자, 어떤 놈부터 사냥해볼까?]쿵-!
공포를 주기 위해 느릿느릿 다가오는 실라투나를 보며 레오가 무릎을 굽혔다.
‘승리의 역사를 되풀이하라고? 최대한 많은 엘프를 학살하라고?’
레오가 고개를 들었다.
‘누구 마음대로?’
자신이 이곳에서 승리한다 해도.
역사는 뒤바뀌지 않는다.
이미 쓰여 진 역사는 다시 쓸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시작의 영웅인 이상. 내 눈앞에서 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건 용납할 수 없어. 설령 그게 거짓된 세계라고 할 지라도.’
쾅-!
레오가 도약하자 하나의 탄환처럼 실라투나에게 날아갔다.
실라투나가 일순간 멈칫한다.
그런 실라투나를 보며 레오가 싸늘하게 웃었다.
“어차피 난 이 세계를 망치러 온 존재라는 거잖아?”
고오오오오-!
레오의 손에서 거대한 마력이 일렁였다.
지금 이 시대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는 마법이었다.
먼 훗날 루나가 완성 시키는 마법.
“그럼 이것 저것 눈치 볼 것 없이 널 쳐 죽이면 된다는 거네?”
레오가 섬뜩하게 웃었다.
심상치 않은 마력에 실라투나의 얼굴이 굳었다.
“사냥당하는 건 너다. 마물 여왕.”
레오의 손에서 마법이 완성됐다.
별의 마법-종언.
번쩍! 콰가가가가가가강-!
[키에에에에엑?!]이 시대에